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No. 0, pp.341-393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19
Received 27 Sep 2019 Revised 13 Nov 2019 Accepted 15 Nov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12.50.341

피히테의 후기 종교철학 연구
이정환
한세대학교 강사, 조직신학/기독교윤리 (leben97@hanmail.net)

A Study of Fichte’s Late Philosophy of Religion
Jung Hwan Lee
Ph.D. Lecturer, Systematic Theology Hansei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Funding Information ▼

초록

이번 연구는 후기 피히테의 관념론적 종교철학에 관한 분석으로서, 독일 관념론의 사변적 기초를 마련한 피히테의 절대자 이론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찰한 작업이다. 연구범위는 초기 학문론에서 주창된 자기의식의 동일성과 주관성으로부터 파생된 인식의 문제들에 대한 셸링과 헤겔의 비판적 논지를 시작으로, 1800년의 저작인『인간의 사명』의 도덕 종교적 관점을 분석하며, 1806년 베를린 시기의 종교 강연집인『복된 삶으로의 지침』, 그리고 1810년 이후부터 마지막 생애 시기인 1813년까지의 후기 학문론과 철학 강의에서 주제화된 신론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칸트의 이성비판과 도덕철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피히테는 신의 절대성과 파악불가능성에 기초하여 자아와 지의 근원적 형상인 하나님 개념을 후기 사상에서 인류의 도덕성 실현의 원천으로 파악했다. 선험론적인 비판철학에서 이성의 궁극적 토대는 이념적으로 신학의 대상이라고 천명한 칸트 이래로 절대자인 하나님은 피히테를 비롯하여 셸링과 헤겔의 관념론에 이르기까지 그들 철학의 중심 주제였다. 특히 후기 피히테의 신론은 초월적 자아에 기초한 주관적 관념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상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의 관념론적 철학에 대한 양대 비판이라 말할 수 있는 무신론과 허무주의는 후기 종교사상을 객관적으로 고찰하게 된다면, 역사적으로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감각적인 직관으로부터 시작하여 개념을 구성하고 초월적 이념에 이르러 끝난다고 주장한 칸트의 비판철학은 피히테의 후기 철학에서 절대자의 지성적 직관을 통한 절대지(absolutes Wissen)의 현시로 전개되었고 하나님의 존재와 현상개념의 명확한 구별을 철학적으로 변증하게 되었다. 이러한 철학적 신론에 관한 후기 피히테의 종교론 연구는 19세기 독일 관념론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도 중요한 학술 연구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앞으로 후속 연구과제의 새로운 도전과 창의적인 응용성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Abstract

This research is an analysis of post-Fichte’s idealistic philosophy of religion, and in Korea the first work to examine Fichte’s theory of the absolute, which laid the basis for the historical theory of German idealism. Starting with Schelling and Hegel’s critical thesis on the issues of cognition derived from the identity and subjectivity of self-consciousness advocated in the early theories, the scope of the study is to analyze the moral and religious views of the 1800 book “The Vocation of Man” and then to examine mainly the doctrine of God issued from “The Guide to the Blessed Life” a collection of religious lectures from the period of Berlin in 1806, and the later Die Wissenschaftslehre and the lecture of philosophy from 1813 to the last lifetime since 1810. Fichte, greatly influenced by Kant’s critique of pure reason and moral philosophy, identified the concept of God, the fundamental figure of self and intellect as a source of human morality in his later thought, based on God’s absoluteness and incomprehensibility. Since Kant, who declared that the ultimate foundation of reason in transcendental critical philosophy was object of theology in ideal, the absolute God has been the central subject of their philosophy, from Fichte to the idealism of Schelling and Hegel.

In particular, the theory of the late Fichte sets the stage for important development of thought in transcending the limits of subjective idealism based on transcendental self. If atheism and nihilism, two major criticisms of his idealistic philosophy, objectively consider later religious ideas, we can confirm that they were historically wrong prejudices. Kant’s critical philosophy, which claimed that all human perceptions begin with sensual intuition and end up forming concepts and reaching transcendental ideal, unfolded the representation of the absolute knowledge through the intellectual intuition of the absolute in Fichte’s later philosophy and led to philosophical apologetic of the clear distinction from the existence of God and the concept of phenomena. Post-Fichte’s study of religion on this philosophical theory holds an important academic value in Christian theology as well as in the field of German idealism research in the 19th century, and hopes to bring new challenges and creative applications to follow-up research projects in the future.


Keywords: Transcendental Philosophy, Knowledge, Intellectual Intuition, Self-consciousness, Self-positing, Fact/Act, Practical Reason, Duty, Moral Law, Moral Order, Absolute Freedom, Love, Religion
키워드: 선험 철학, , 지성적 직관, 자기의식, 자기정립, 실행, 실천적 이성, 의무, 도덕법칙, 도덕질서, 절대적 자유, 사랑, 종교

I. 들어가는 말

무신론 논쟁으로 피히테가 예나 대학 철학과 교수직을 사임하던 해인 1799년, 셸링은 선험철학과 자연철학을 하나의 동일한 사변적 학문으로 통합하여 유한한 것 안에서 무한한 것을 서술하는 작업을 “모든 학문들의 최고 문제”라고 선언한다.1) 이미 칸트도 철학의 순수이성은 초월자에 관한 신 인식의 이념과 이상을 제공한다고 언급했다.2) 여기서 철학은 지성의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활동 모두를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과제의 방향에 있어서는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즉 선험철학의 과제는 실제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 아래 종속시키는 것이며, 그 반대로 자연철학의 과제는 이념적인 것을 실제적인 것으로부터 해명하는 데 있다.3) 1년 뒤 셸링은『선험론적인 관념론의 체계』입문에서 인식하는 주관과 그 인식의 대상인 객관 사이의 일치를 설명하는 과제가 모든 지(Wissen, 앎)에 있어 최고의 과제이자 “철학의 주요 과제”라고 다시금 환기시킨다.4) 선험철학은 “자아를 부단히 강화시키는 것(potenzieren)”이며, 이 철학의 전체 방법은 자아를 자기직관이라는 하나의 단계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식의 자유하고 의식 있는 행위 가운데 모든 규정들을 정립하는 단계까지 이르는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데 있다.5) 이처럼 1794년 피히테의 학문론에서 본격적으로 주창한, 자아의 절대적 의식행위이론에 영향을 받은 셸링의 초기 사상처럼6), 피히테를 시작으로 셸링과 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은 그 체계적 사유 발전의 시초에서부터 인식 주체인 자아의 주관성과 동일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철학의 근본원리를 발견하고 해명하는 작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기 피히테의 철학은 유한한 의식 안에 있는 이성의 무제한적 힘에 의해 수행되는 ‘자아의 실행(Tathandlung)’에 기초했다.7) 다시 말하면 자아 스스로의 자기정립의 행위와 그 행위의 산물까지 절대적 자아에게 귀속시키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정신활동의 내재적 힘을 철학의 근본원리로 상정했다. 피히테는『전체 학문론의 기초』에서 “비판적 혹은 실제적 관념론”으로 지칭한 자신의 비판철학의 본질은 “절대적 자아가 단적으로 무제약적이고 그보다 더 높은 어떤 상위의 것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것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성립한다.”고 말한다.8) 자기 동일성의 주체이자 실체인 자아의 실행에서 절대적 자아는 “단적으로 자기 자신과 동일하면서 그 안에 모든 것이 하나이며 동일한 자아”인 일자이고, 그 안에 아무런 주-객관의 구분도 없는 절대적 동일성이자 그 어떠한 다양함도 없는 순수 동일성으로 정의된다.9) 초기 학문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유한한 지성적 존재자인 인간의 의식행위를 설명하면서, 두 가지 방향, 곧 자아가 생명과 의식의 원리를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반성했을 경우 구심적(자신 안으로 복귀하는) 운동과 원심적(무한성을 향해 나아가는) 운동으로 구분한 것과, 이와 연관하여 “하나님의 자기의식” 개념을 언급한 사실이다. 피히테는 정신의 활동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구분된, 자아의 두 활동 방향은 본래적으로 하나이고 동일한 방향으로서, 하나님도 유한한 존재자인 인간처럼 자신을 스스로 반성할 경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기의식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는 “일자 안에 반성되어진 모든 것이 있으며, 모든 것 안에 반성하는 자인 일자가 있으므로,” 하나님에 의해 반성된 것과 반성하는 것, 의식 자체와 그 의식의 대상은 전혀 구분될 수 없기 때문이다.10) 이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여 그 활동의 구분을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유한한 이성 역시 자기반성에 있어서 그 둘의 방향은 일치하며 그 구분을 우리가 “영원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현실적 경험의식에 있어서 절대적 자아의 요구에 의해 자아는 자신의 관념적 활동과 실천적 활동을 하나로 통합하고 일치시켜야 한다. 이와 같이 지성적 의식을 실천적으로 통일해야 할 무한 과제가 이성적 존재자인 우리에게 주어졌다. 인간 정신의 구분 가능한 두 활동은 최종적으로 일치된 의식의 통일성을 과제로 삼는다.

한편으로 초기 피히테에게 자아의 자기정립 활동의 근원적 힘은 자아 외부에 존재하는 그 어떤 초월적 존재자(하나님), 혹은 사물 자체에 의한 초재적인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아 자신을 통한 선험적인 “내적 능력”에 기인한다.11) 동시에 절대적 자아의 힘에 의한, 무한성을 향한 정신의 근원적 욕구와 충동은 자신의 관념적 활동에 의해서는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창조적 힘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이러한 자아의 자기 결핍과 경계 지어진 한계를 벗어나길 원하는 자아의 관념적 충동은 자아의 완전한 자립성을 추구하는 동경의 느낌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자신에게 대립한 비아의 현실세계(감성세계)에서 자아는 도덕법칙의 정언명령에 따라 세계를 규정하는 실천능력을 산출한다. 이 같은 전기 피히테 사상은 무제한적 이성의 힘에 기초한 절대적 자기동일성 이론을 완성하여, 자아의 정립행위를 기초로 실천적 학문을 구상했다. 그러나 초기 학문론에서 제시한 자아의식의 정립활동과 자기의식의 실현가능성은 다음의 질문들을 통해 이론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즉 “무한한 자아의 이념”이라고 정의한 절대적 자아 개념이 어떻게 인간 정신의 유한한 주-객관 활동에 앞서 존재하면서 선험적으로 경험적 자아를 가능하게 만드는 무제한적 조건이 될 수 있는가? 또한 학문론 3부의 “실천적 학문의 기초”에서 언급된 자아의 도달할 수 없는 선험론적인 이상(Ideal)을 경험적 자아가 스스로 산출할 수 있는가이다. 피히테에 따르면, 자아의 이상이란 자아가 자신을 무한한 존재자로 고양시키는 것이다.12) 우리가 사유와 존재의 절대적 동일성을 제시한 의식철학의 근본명제를 확인한다면, 자아는 자신의 의식에서 한정하는 비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제한되어질 수 있음을 의식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자아의 유한한 객관적 활동은 규정될 수 있고, 자아의 이상은 연역된다. 그렇다면 비아뿐만 아니라 자아도 결국 이 지점에서 모두 지양되어야만 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우리가 학문론의 근본명제 제 1원칙 ‘자아는 단적으로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규정을 참작한다면, 자아는 결코 어떤 조건에서든 지양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물음들과 더불어 신학자인 판넨베르크도 지적했듯이, 자아를 자신이 정립하는 행위의 주체이자 결과라고 규정할 경우, 어떻게 정립하는 자아가 자신에게 의식된 그 자아와 동일한 자아가 될 수 있으며, 자기의식 안에 있는 자아의 행위가 자아와 자기 사이의 일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조건일 수 있는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13)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자에게는 의식과 사유를 매개로 자신을 비롯한 주변 대상들을 객관화하고 초월하는 행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가 정립할 수 있고 현실에서 자기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무제약적인 철학의 근본원칙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반성과 사유를 통한 인간의 자기정립과 자기초월은 자신의 운명을 완성시킬 이성의 최종적인 근거일 수 없으며, 자기의식이야말로 자기소외를 직접 경험하는 장소일 수 있다.14) 따라서 인간의 자유로운 초월적 사유행위(자아의 생산적 활동)로 자기의식의 원천인 자아와 자기실현의 대상인 자기를 완전하게 일치시킬 수 없다는 문제의식은 전기 피히테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미해결의 난제라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이같이 제기된 초기 피히테 학문론의 중요한 문제들이 어떻게 후기 피히테의 철학과 종교론에서 수정되었으며, 절대자 개념을 기초로 학문론을 새롭게 구상했는지를 이번 연구 과제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초기 학문론에서 무제한적으로 증명된 절대 자아개념은 후기에 이르러 ‘절대자의 발현’과 형상 개념 아래 새롭게 재해석되고 수정된다. 또한 절대 자아 개념은 그의 후기 문헌들 속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철저하게 배제될 만큼, 피히테 자신도 초기 학문론의 자아 행위 이론에서 드러난 중대한 문제들을 인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절에서는 피히테의 종교론을 고찰하기에 앞서서, 초기 그의 학문론에서 주창한, 자아의 절대적 동일성 이론에 대한 셸링과 헤겔의 논점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후기 피히테의 종교사상이 어떠한 발전사적 형성과정을 갖게 되었는지를 고찰하겠다.


II. 전기 피히테의 동일성 철학에 관한 셸링과 헤겔의 비판
1. 피히테의 주관적 사변철학에 대한 셸링의 비판과 자연철학

20살의 약관의 나이로 1795년에 저술한 셸링의『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는 칸트의 경험적 자아와 선험적 자아의 이원론적 분리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존재와 사유의 일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철학의 최고 원칙을 제시했다. 이 원칙은 바로 피히테의 전기 학문론에서 주창된 ‘절대적 자아’이다. 초창기 셸링은 유한한 자아, 혹은 경험적 자아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이 절대적 자아 개념을 인간의 궁극적 지식의 실제적 근거이자 주관과 객관 모두를 초월한, 무한한 ‘순수자아’로 표현한다. 절대적 자아란 칸트가 말하는 ‘현상, 사물 자체’가 아니며, 분할 가능한 사물이나 객체, 혹은 어떤 추상적 개념, 관념이 아니다.15) 이 자아는 자신의 존재와 모든 존재의 실재성까지 단적으로 포괄하고 정립하는 “모든 실재성의 총괄 개념”16)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험적 자아와는 달리 절대적 자유를 소유한다. 오직 절대적 자아만이 자신과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정립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무한히 갖고 있으므로 자신 안에 ‘절대적 동일성(A=A)’을 정립할 수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셸링은 자신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절대적 자아의 근원 형식을 존재와 본질이 일치하는 “순수 동일성”으로 규정한다.17) 직관은 외부의 감각적 인상들을 받아들이는 수용능력이기에 오직 감성적 직관만이 가능하다는 칸트와는 달리, 피히테의 지성적 직관 개념을 따르고 있는 셸링은 절대적 자아를 지성적 직관 안에서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절대적 자아는 절대적 자유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성적 직관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으며, 경험적으로 규정 가능한 객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의 근원적 원리인 절대적 자아는 자신의 창조적 사유 행위를 통해 자신 속에 절대적 인과성을 산출하고 주-객관의 분리를 지양한다. 그래서 이 초월적 자아는 “지성적 직관 안에 있는 순수 자아”로 표현된다.18)

모든 지의 실제적 근거인 무한한 절대 자아는 순수 동일성 형식을 산출한다. 연이어 이성의 구성적 원리이자 학문 체계의 통일성 이념을 제시한 셸링은 2년 뒤『자연철학의 이념』에선 순수 동일성 개념을 절대자(절대적인 것) 용어로 설명한다. 자아의 외부 세계인 자연과 그 자연에 관한 우리의 경험은 반성적인 정신 행위를 통해서는 결코 정신과 자연, 직관과 개념, 그리고 이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을 내적으로 통합하여 동일하게 간주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가 품고 있는 합목적성 역시 기계론적 자연관의 물리적 법칙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이 같은 전통적인 경험적 자연과학의 이원론적 사고에 반하여 셸링은 스피노자가 역설한 자연 개념의 이중적 본성을 수용하여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과 ‘생산물인 자연(natura naturata)’을 구분하면서 하나로 통합한다. 철학이 만일 절대적 학문으로 자신의 인식 방식을 무제약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 인식의 대상인 절대자와 절대적 지는 무차별적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절대적으로 이념적인 것은 실제적으로도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무차별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19) 더 나아가 절대자는 자신의 영원한 형식이 절대성이고, 그의 인식 행위에서 존재와 형상이 동일한 일자라고 한다면, 그 행위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출하는 유한성과 무한성, 혹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자기 동일화를 형성하는 활동으로 연역할 수 있다. “자연은 가시적 정신이며, 정신은 비가시적 자연이어야 한다.”20)는 자연의 철학 이념은 이러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무차별적으로 지양하고 화해시키는 절대자의 순수 동일성, 다시 말해 절대자를 “영원한 인식 행위”인 동일성 자체로 파악할 때, 그 논지의 타당성이 입증된다. 이로부터 셸링은 피히테의 학문론 체계가 이념적인 것(무한성)을 현상하는 자연보다 선행시키고 이념에 우선성을 부여하여 “상대적 관념론”에 이르렀다고 비평한다. 피히테의 동일성 철학은 경험적으로 현상하는 자연세계의 특수자를 일반 존재로 해체하여 이념적 세계만을 지향하는 차별적 동등성만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상세하게 피히테 철학의 주관적 일면성을 비판한 셸링의 논점을 확인한다면, 무차별적 절대자의 인식 행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우선 주관-객관성의 일반 형식을 다시 철학의 첫 번째이자, 모든 것으로 간주한 피히테 철학은, 이를 전개하면 할수록 그 동일성 자체가 다시 특수성으로 주관적 의식에 더욱 제한되며, 이를 절대적인 과제 그리고 그 자체로 무한한 과제의 대상으로, 절대적 요구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모든 실체를 사변으로부터 추출하여 동일성 자체를 빈껍데기로 남겨두었고, 반면에 칸트의 학설처럼 절대성을 새로운 것에 대한 믿음과 행위를 통해 철저하게 주관성과 연결시킨 것으로 보인다.21)

절대자의 인식 행위가 실제적으로 유기체의 전체 자연 안에 드러난다는 셸링의 자연철학은 이념과 자연의 세계가 자체 안에 각자 특수한 개별적 통일성을 내포하여 서로가 구분 가능하지만, 절대자에게는 두 상이한 측면이 하나의 절대적 합일의 행위로서 지성적으로 직관된다고 논증한다. 그의 사변적 자연학에서 서술하고자 한 중심 내용은 모든 존재하는 것의 총괄 개념인 자연 안에도 선험적 자아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활동이 존재하고 있으며, 자연은 “무제약적 실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22) 동시에 이와 같은 자연의 절대적 활동은 그 힘에 반작용하는, 무제한적 활동을 무한히 억제(Hemmung)시키는 대립된 경향성에 의해 나타나며, 자연 자체가 갖고 있는 대립의 이중성에 의해 자연은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완전하게 실현한다. 그에 반하여 피히테의 관념론은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자연의 신비를 이념적인 절대자 안에서만 사변적으로 지양시켜, 결국에는 반성하는 주체의 주관적 동일성만을 철학의 원리로 확정했다고 셸링은 지적한다.

1800년 셸링은『선험론적인 관념론의 체계』저술에서 자기의식을 선험철학의 원리로 내세워, 철학을 “자기의식의 역사”로 정의한다.23) 자연과 정신의 동일성을 확고하게 정립하기 위한 초기 셸링 철학의 노력은 의식과 무의식의 자아 활동 모두를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반증한다. 인간의 모든 지가 인식의 주체-객체 사이의 일치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면, 사유하는 주체에게는 자신을 객체로 대상화시킬 수 있는 활동의 원리를 자신 안에 가져야 한다. 철학의 과제는 “주-객관에서 매개 없는 동일성”을 찾는 작업이며, 동일성은 자기의식에서 발견된다.24) 자기의식의 원리는 근원적으로 자아 안에 정초되고, 우리는 자기의식적 활동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객관화하여 자기에 대한 참된 앎을 획득한다. 이때 지의 실재성을 보증하는 원리인 자기의식은 자기인식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자기의식의 인식 활동은 피히테의 학문론에서처럼 실제적, 관념적인 활동으로 구분되며, 이 두 활동을 자아가 지성적으로 직관할 때 하나의 근원적으로 동일한 자기의식의 활동으로 정립된다. 자아의 주관적인 관념의 정신 활동은 추론과 개념들을 매개로 수행될 수 없으며, 오직 자유로운 지성적 직관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지성적 직관은 자아가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의식 자체이자 자기인식의 동일성을 말한다. 자아는 오직 지성적 직관을 통해서 자신의 동일성을 인식한다. 피히테는 지성적 직관을 가리켜 “모든 철학에 있어서 유일하게 고정된 견해”로 설명하기도 했다.25) 이에 따라 셸링에게 지성적 직관은 “모든 선험론적인 사유의 기관”으로서 관념적 활동에서 항시 동반되어야 할 자기인식의 기체(Substrat)이다.26) 그로부터 1년 뒤『나의 철학체계에 관한 서술』을 통해 셸링은 피히테의 관념론이 철저하게 ‘주관적 관념론’으로 수행되었음을 거듭 언급하면서 자신의 관념론을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피력한다. 이성은 여기서 일자이자 절대적 동일성, 무차별적인 절대이성, 혹은 즉자(An-sich)로 명시된다. 이성이 자신의 절대적 동일성(A=A)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동일성을 하나의 동일성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이며, “동일성에서의 동일성”이라는 존재형식을 취한다.27) 이러한 절대적 동일성 개념은 주관적인 것(사유)와 객관적인 것(존재) 사이에서의 양적인 무차별의 형식을 갖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대이성의 자기인식의 관점에서 절대적 동일성 자체로 규정된다.

이처럼 셸링의 동일성 철학에서 주창된, 이성의 무제약적 동일성 형식에 대한 철학적 확증은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를 일치시키는 최고의 절대자와 그 이성적 법정의 자기근거를 해명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셸링 철학의 후기 시기에서는 자연과 정신을 통일하는 이성의 동일성 철학을 스스로 파기하고, 이성을 근원 원리로 전제한 부정철학을 극복하기 위해 ‘긍정철학’을 제시했다.28) 그는 이성 중심의 철학 원리를 지양시켜 폐기하고, 사유의 한계 바깥에 실재하는 현실적 실존의 근거를 밝히는 이성 비판의 철학으로 나아간다. 긍정철학은 이전까지 이성 학문의 방법으로 간주되었던, 개념으로부터 존재를 고찰하지 않고, 오히려 개념에 앞서 있는 존재로부터 출발하여 개념으로 전진시키는 “선험적 경험주의”를 지향한다.29) 이제 셸링은 모든 개념과 사유 위에 위치한 존재 개념을 철학의 “시원적인 존재(Unvordenkliche Sein)”, “파악할 수 없는 것(Unbegreifliche)”으로 표명하여 관념적 이성주의로부터 완연히 결별한다.30) 이성의 원리는 더는 자신의 자유로운 주체적 힘과 무제한적 실체의 근원을 형이상학적으로 보증받지 못한 채, 독일 관념론 역사의 마지막 인물에 이르러 숙명적인 위기와 새로운 정신의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2. 피히테의 주관적 동일성 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과 차이의 동일성

헤겔은 자신의 첫 번째 저작인 1801년 7월『피히테와 셸링 철학 체계의 차이』서문에서 자기 자신의 순수 사유, 즉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인 ‘자아=자아’라는 학문론의 근본 명제의 형식을 “피히테 체계의 원리”라고 지칭했다. 이 저술에서 그는 초기 피히테의 학문론이 이성과 순수의식을 동일하게 정립하여 유한한 형태의 이성을 철학의 최고 원리로 고양시켰다고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다시 말해 초기 피히테는 주-객관 양자 사이의 대립 모두를 지양하고 하나로 정립하는 참된 동일성과 무한성을 재구성하지 못했으며, “주관적인 주관-객관”이라는 선험론적 동일성의 직관을 연역하여 의식의 유한성과 대립이라는 제한적이고 추상적인 규정 형식(실제적이지 못한)을 일면적으로 취했다는 것이다.31)

이와 같은 논지에서 헤겔은 전기 피히테의 철학 체계가 제시한 순수자아의 동일성을 “주관과 객관의 주관적 동일성”으로 명시한다.32) 이는 자아의 인식 행위가 반성을 통해 주-객관의 단순한 분리와 대립을 어느 한쪽 측면으로부터 지양시킬 경우엔 절대적인 것 안에서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의 획일적 차이성만 드러나는, 상대적이고 우연적인 절대적 동일성 즉 형식적 동일성만 갖게 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지 안에는 모든 유한자가 무한자 속으로 남김없이 소멸되어 폐기되고 만다. 피히테의 불완전한 동일성 이해를 비판한 헤겔은 구별에 의한 대립된 비동일성과 동일성을 다시금 하나로 정립하여 동일화시킨 절대자(das Absolute. 절대적인 것)만이 자기의식에 있어서의 완전한 동일성으로 간주한다. 여기서의 절대자는 자신 스스로 양쪽의 대립물(Entgegensetzen)과 하나 됨(Einssein)을 자신 안에 낱낱이 함께 포괄해야만 한다. 결국 형식적이 아닌, 실제적 동일성을 이성에 의해 정립하기 위해서는 주관과 객관 모두가 실제적으로도 대립되어 있어야 한다. 진정하게 주관이 객관으로, 그리고 객관이 주관으로 이행될 수 있는 참된 동일성은 주관이 주관적 주-객관일 뿐만 아니라 객관 역시 절대자 안에서 ‘객관적 주-객관’으로 이중적 자기 분열의 형식을 동일하게 취할 때에서만 가능하다. 즉 양적인 범주 형식에 따라 주관과 객관 양자에게 대립의 양적 실재성이 주어질 경우에만, 관계의 대립을 절대자 안에서 종합할 수 있다.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상반되는 이해 충돌의 대립관계를 제삼자를 통해 화해시킬 수 있듯이, 인식 행위의 주관-객관 동일성은 대립된 쌍방 간의 자기 분열을 매개로 동등하게 성립된다. 그러므로 지성의 힘이 형식과 내용, 개념과 사물, 그리고 인식과 존재 사이의 차이와 한계만을 피상적으로 인식한다면, 이성의 힘은 이 양자의 차이와 대립 안에 있는 동일성을 인식하고 정립한다. 이 관점에서 헤겔은 전기 피히테의 동일성 이론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집약하여 논증한다.

피히테는 대립물의 한쪽만을 절대자 안에서 정립했거나, 혹은 이것을 절대자 자체로 정립한다. 그 권리와 필연성은 그에게 자기의식 속에 들어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이 자기의식만이 자기 자신의 정립, 주관-객관이기 때문이며, 이 자기의식은 무엇보다 더 높은 것인 절대자와 연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절대자이자 절대적 동일성으로 보고 있다. 절대자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그의 보다 높은 권리는 따라서 다음의 사실에 있다. 즉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는 것은, 오직 의식을 통해서만 정립된다는 객관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그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객관의 이러한 사정이 다만 우연적이라는 사실은 주관-객관의 우연성으로부터 밝혀지는데, 이것은 이 주관-객관 자체가 자기의식으로 정립되는 한에서, 자신을 하나의 조건적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객관의 입장은 가장 높은 상태의 것이 아니다. 이는 이성이 제한된 형식 속에서 정립된 것이며, 이러한 제한된 형식의 입장에서만 객관은 하나의 절대적으로 규정된 존재자인, 자기 스스로를 규정하는 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33)

이렇듯 헤겔이 파악한 피히테의 전기 학문론의 자아 동일성 이론은 인식의 객관을 주관에 대립한 상대자로만 분리시켜 ‘자아는 자아가 되어야 한다.’는 추상적 동일성 속에서 이념적 통일을 일면적으로 강요한 인식론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헤겔은 1813년『대논리학』의 본질론에서 본질적 동일성과 추상적 동일성 개념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만일 자기 관계성에 기초한 동일성이 자체 안에 자기와의 관계에서 부정성으로 생성된 구별과 상이성을 결핍하면 추상적 동일성이 되며, 그 반대를 본질적 동일성으로 명명한다. 이로부터 이성의 총체적 진리는 자신 안에 동일성과 비동일성 사이의 매개적 차이에 의한 통일성을 스스로 획득해야만 완전한 진리로서 정립된다. 예를 들어 ‘무한은 무한이다’, 혹은 ‘존재는 존재이다’라는 한낱 동어반복적인 명제는 그 자체로 어떤 내용상의 구체성과 차별성을 담지하지 못한 공허한 빈 명제일 뿐이다. 그 반대로 ‘참된 무한은 유한을 품은 무한이다’등의 명제는 분석적 명제가 아닌 종합적 명제로서 부정성과 대립을 자체 안에 포함한 본질적 동일성 명제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동일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절대적 구별을 자체의 본질적 계기이자 전체로서 내포해야 한다.34)

사물이나 인식이 자신의 구체적인 동일성을 확립했다는 것은 자기의 타자와 맺는 관계를 반성하고 규정했음을 뜻한다. 자기 동일성은 자신 안에서 구별과 차이성, 나아가 대립과 비동일성을 지양하고 최종적으로 통일시키는 작용이다. 무엇보다 구별(Unterschied)이라는 용어는 “부정성이나 무, 동일성 자체의 본질적 계기”로서 사용한다.35) 우리는 일상에서 구별이라는 단어를 어떤 두개의 상이한 사물들로부터 외적으로 비교하여 구분하는 용법으로 이해하지만, 헤겔의 구별 개념은 스스로가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반성으로, 자신을 분할하는 자기 활동이다. 자기 안에 내적 분할을 수행하는 구별작용은 ‘즉자적이고 대자적인 타자’로 동일성과 관계하는 활동이자, 동일성과 통일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구별이란 단순히 타자로부터의 형식적 구분, 혹은 외적인 분리 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자기의 타자를 정립하는 반성 활동이다. 자기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자기반성은 다름 아닌 자기 스스로의 내적 부정성이며, 자신의 구별에 의해 구별되어진다는 의미는 자기의 부정성을 매개로 그의 동일성을 다시금 회복하거나 복귀하는 과정의 운동을 말한다. 헤겔은 자기 자신의 반성적 구별을 구별 자체와 동일성이 결합된 동일성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동일성을 “구별의 자기반성”이자 그러한 구별의 계기로 이해한다.36) 정신이란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을 자기 자신의 대상으로 만들고, 자기를 타자로 만드는 운동”이며, 자기의 ‘타자됨(Anderessein)’을 지양하는 의식의 자기 생성과 그의 과정적 전개 활동이라고 일컬어진다.37)

우리는 자신 안의 내적 분열이나 이분화 작용 없이는, 한 사물의 동일성(사물은 자기 자신에게 동일하며 타자와 구별된다는 의미에서)을 실제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인간 역시 자신 안에 자기 구별의 반성의식이 없는 한, 스스로 자신이 동일하다는 자기의식을 실제로 형성하지 못한다. 구별과 동일성은 그런 점에서 자기의 반성을 통한 상호 의존의 관계적 계기를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성은 존재와 무의 통일이다’, ‘현존재는 직접적으로 존재뿐만 아니라 비존재(무)도 함께 통일되어 있다’는 규정은 존재와 무 사이의 관계적 타자성(곧 자기의 타자)과 구별의 계기를 통한 통일성이 전제된 명제이다.38) 헤겔의 표현대로, 부정성은 자신 안에 있는 대립된 자기와의 부정적인 관계를 의미하면서도 “모든 활동의, 생동하는, 정신적 자기 운동의 가장 내적인 원천”이자 “모든 참된 것을 자신 안에 갖고 있으면서도 오직 진리가 될 수 있게 만드는 변증법적 영혼”을 의미한다.39) 필자가 앞서 언급했듯이, 후에 셸링은 이 같은 헤겔의 부정철학을 사유와 개념을 우선시하는 이성 학문으로 평가했고, 이성 중심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긍정철학을 발전시켰다.

이제 동일성 일반이 죽어 있는 존재, 혹은 단순히 직접적인 사태들을 규정한다면, 모순 개념은 “모든 운동과 생동성의 뿌리”이자 생명 자체의 충동과 활동의 추동력으로서 변화와 생성을 일으킨다.40) 정신의 자기 운동은 모든 관계를 규정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자신 안에 발생한 부정과 모순을 안고서, 끝까지 이를 견뎌내는 역동적 힘을 지녀야 한다. 즉 자기의 부정적인 규정성 자체를 간직할 때서야, 비로소 생동하는 본질의 동일성을 스스로 지닐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헤겔의 본질 개념은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것, 혹은 자신 속에 간직한 가상(Schein)인 비본질적인 것을 자체 안에 포섭한다.41)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자신 안에 갖고 있는 존재적 부정과 모순의 규정성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무화와 결합된다는 헤겔의 존재론은 찰스 테일러가 지적한 것처럼, 모호한 부정 개념에 기초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재하는 사물 각자는 자신의 유한성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사멸된다는 헤겔의 내재적 자기부정 개념은 현실적으로는 정반대로, 사물들이 스스로 자기를 유지하길 욕구하는 만큼 그의 부정성을 회피하길 원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42)

한편으로 피히테는 1798년『학문론 혹은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2판에서 자신의 학문론이 서술하는 인간 정신의 체계는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그 안에 근거된 모든 명제 역시 전적으로 참되다고 변증한다. 그는 동시에 학문론 서술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얼마만큼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는 엄밀하게 증명할 수 없고, 제시된 근거의 개연성만을 되물을 수 있다고 겸허하게 한계를 인정했다.43)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철학자의 겸손함에 대해서 피히테는 자신이 제시한 철학이 최종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받았을 경우에만 그의 진리를 소유할 수 있으며, 철학자들 자신이 “인간 정신의 입법자가 아니라 역사편찬자”로서 인류 정신에 대한 “실용적 역사서술가”로 자리매김할 때서야 진리 탐구의 확실성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더욱이 피히테는 1801년 자신에 대한 헤겔의 비판적 논점에 앞서서, 그의 학문론에서 근본 명제로 제시한 ‘나는 나다(A=A)’라는 명제는 형식과 내용 모두가 그 안에 이미 무제약적으로 정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하나의 A가 자아 속에 실제적이고 필연적으로 정립되어 있다면, 그 명제는 정립된 것이다. 만일 자아가 자아이어야만 한다면, 그 명제는 무모순적으로 참된 것으로 판명된다. 학문론의 명제가 적용될 수 있는 모든 내용은 자아 안에 놓여 있어야 하며, 동시에 자아 아래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44) 여기서의 자아는 개별적 경험자아가 아니라, 개인을 초월한 선험적 자아를 말한다.

나아가 그는 학문론의 첫 번째 근본 명제 ‘나는 곧 나다’ 안에는 인간의 지식 체계가 하나의 통합된 체계를 갖고 있다는 명제가 놓여 있다고 피력한다. 이 근본 명제 자체로부터 다른 모든 추론들과 명제들은 타당하게 연역되며, 인간 정신이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원환(Zirkel)” 운동이 필연적으로 펼쳐진다.45) 우리에게 단적으로, 그리고 무제한적으로 그 이상 다른 무엇을 통해서도 추론될 수 없는 근본 명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철학의 학문 목표를 상기시킨다. 곧 진정한 학문은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가져야 하며, 어떤 하나의 명제도 더는 추론될 수 없을 만큼 파헤쳐졌을 지점에 이르러 학문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전제된 근본 명제는 동시에 최종적 결과로 산출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이미 한 번 지나간 길을 다시 한 번 걸어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46) 다시 말해, 피히테는 제시된 학문의 첫 번째 출발점으로 다시 한 번 되돌아가서 현실적으로 이를 완성했을 때 정신활동의 기나긴 여정이 끝마칠 수 있다는, 자기복귀의 과정을 강조한다. 피히테가 자기의식의 정신적 원환 운동을 헤겔에 앞서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예나 시기의 헤겔 사상은 피히테로부터 빚을 지고 있다. 원환 용어는 1807년 예나 시기 헤겔의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실체 개념을 주체로 파악한 진리 이해에서 다시 언급된다. 이 저작에서 참된 진리는 자신의 부정성과 모순, 대립을 한 치도 용납할 수 없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부단히 정립하는 정신의 노동 운동, 또는 자기 자신을 타자로 대상화하여 분열과 대립된 자기를 다시 재부정하고 회복하는, 매개적 화해의 생동적 힘으로 이해된다. 이는 힘겨운 고통을 감내하면서 얻는 인내의 결과이자 동시에 그의 최종적 결말을 다시 목적으로 삼아 새롭게 출발하는, 진리를 향한 ‘무한한 점진적 추구’인 것이다.47)

지금까지 우리는 셸링과 헤겔이 피히테의 동일철학의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제시했던 관념론의 동일성 이해를 발생사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어서 필자는 피히테의 종교철학과 연관된 후기 저작과 학문론 강의들을 분석하여, 초기 사상에서 드러난 절대 자아와 주관적 동일성 이론의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고 새롭게 전개되었는지를 조명하겠다.


III. 피히테의 후기 종교철학 이해
1. 실천적 자아에서 종교적 이념으로의 전회

셸링과 헤겔이 튀빙겐 대학의 신학부 기숙사에서 동료 신학생으로 만나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던 것처럼, 그들보다 앞서 관념론의 체계적 기초를 마련한 피히테 역시 1780년 예나 대학의 신학부에 입학했으나 경제적 사정으로 학업을 끝내지 못한 채 철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가정교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1791년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인 칸트를 한 차례 방문하기도 했고 1794년 3월 예나 대학에서 철학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피히테는 1799년 예나 대학에서의 철학과 교수직을 상실한 직후, 1800년 베를린에서『인간의 사명』을 출간한다. 이 저서에서 그는 초감성적인 세계의 도덕적 이념에 관한 그의 철학적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인간 본성의 목적과 삶의 궁극적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자서전적 필체로 대중에게 호소했다. 실천철학적 의미로 선험론적인 관념론자란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한 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모든 감각적 가치들을 부정하고, 이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조차 부여하지 않는 자로, 자신의 근본 법칙에 따라 이 세계를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길 원하는 자, 곧 미래의 것을 추구하는 하늘의 시민권자로 묘사된다.48)

관념론자의 근본 법칙은 구체적으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이 자신의 인생 사명으로 결단할, 도덕 세계의 실천적 의지를 말한다.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산출해야 할 도덕적 왕국의 건설은 선한 의지와 양심의 소리에 복종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삶의 의무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이성 자체의 법칙이자 실천적 법칙은 하나의 “숭고한 의지”로서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을 촉구하고 촉진시키는 “영원한 의지”이기 때문이다.49) 이 의지는 “자기 활동적 이성과 초감성적 세계의 법칙”이자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에 의해 행동하는 모든 이성적 존재자와 이성세계 사이를 가교하는 “정신적 끈”이 된다.50) 이로부터 피히테는 감성적 세계인 지상에 머물고 있는 개인과 인류에게 필요한 삶의 목적과 사명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 한다.

인간은 감각세계로부터 나온 산물이 아니며, 그의 현존에 있어서 궁극 목적은 감각세계 안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그의 사명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며, 모든 감성적인 것으로부터도 넘어서 있다.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인간은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사명이 숭고한 것처럼, 그렇게 그의 생각 역시 단적으로 모든 감성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을 고양할 수 있어야 한다.51)

이로써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은 자신의 숭고한 사명을 인식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도덕적 책임, 그리고 그의 전체 인격 안에 덕을 완전하게 표출하기 위해 자신을 “의무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자신의 생을 자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자연에 예속된 노예가 아니라 “자연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자신을 사유하는 주체이자 행위자로 만들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유하는 주체적 힘을 유지하고 산출하는 존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최선으로 만들어야 하며, 생에 엄습하는 불안과 슬픔, 악이 선을 이기는 가혹한 현실에서 선량한 이들을 향한 비난과 조소조차 공동선을 향한 미래의 개선을 담지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한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희망하는 자유의 체계를 의식하고, 모든 외적인 힘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지와 사고를 갖고 있다. 자신에게 뒤따르는 비참한 현실을 넘어서서 자기를 자립적 존재자로 규정하는 힘에는 존엄한 자신의 생을 끝까지 사랑하라는 용기가 주어진다. 즉 “오직 사랑 안에서만 생이 있으며, 사랑이 없으면 죽음과 파멸뿐이다.”52)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신과 주변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자연 안의 존재자로 동물과 전혀 다른 유의 영장류로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인 양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며 그에 복종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의 생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이다. 직관과 개념을 통해 표상할 수 있는 인간의 인식능력은 목적 없는 공허한 유희와 무지함, 착각과 불신이라는 그릇된 사념에 그칠 수도 있지만, 그의 사유가 직접적으로 행위와 연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감성세계 안에서 펼쳐져야 할 실천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모든 인간적 사유가 자신의 행위와 필연적으로 관계되어 실제적인 작용력을 가져야 한다면, 그의 사유 자체는 “행위를 위한 수단”으로 반성된다. 사유 법칙에 의해 형성된 산물을 그의 자연이라고 관념론에서 주장한다면, 산출된 자연은 자신의 사유 법칙과 일치할 수밖에 없다. 자신 바깥에 실재하는 자연에 관한 이해와 고찰은 사유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자기인식의 과정이자 자기실현을 위한 도약일 수 있다. 이리하여 “양심의 소리를 경청하고, 두려움과 궤변 없이 정직하게 그리고 선입견 없이 양심에 복종한다는 것은 나의 유일한 사명이자, 나의 현존에 있어서 전체 목적이다.”53)

그러므로 “실천적 이성은 모든 이성의 뿌리이다.”54)라는 전체 이성적 존재자를 향한 도덕 법칙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에게 생의 무상함과 육체의 소멸이 현존재의 최종적 국면이 아님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초감성 세계의 일원으로 자신의 사유와 행위를 일치시켜 규정할 수 있는 일련의 사람들에게는 우리 바깥에 현존하는 도덕적 실재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립적 존재자의 자연적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 실상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자연과 우주를 고찰했을 때, 자연 안에서의 현상적 죽음은 새로운 삶을 여는 시작이며, 육체적 죽음 안에서 생의 고양이 가시적으로 현시된다. 이러한 죽음의 통찰을 통해 피히테는 자연적 죽음을 가리켜 “모든 이성에게 공포되는 자연의 축제”이자 “죽음의 현상은 새로운 생으로 넘어가는 사다리”로 간주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적 믿음을 고백한다.55) 말년에 셸링은 베를린에서의 신화철학 강연을 통해 독일의 철학정신이라 일컫는 관념론에는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어떤 것이 존재하며 그 철학의 영향력들은 직접적으로 철학의 과제를 넘어서, 보다 멀리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56) 세계와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정신은 바로 피히테가 확신하고 이성의 명령에 의해 관철시키고자 한, “이성적 존재의 나라에서 실현해야 할 이성과 윤리성의 진보”를 통해서 발견된다.57) 이성과 도덕적 사명을 가진 자는 죽음의 원리조차 그의 생동적인 생을 가로막는 치명적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다. 생을 무화시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감성적인 물질세계를 생의 유일한 가치와 목적으로 삼아 자신을 자연의 힘 아래 맹목적으로 내맡겨 버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안일 뿐이다.

피히테는 이 책의 결론 부문에서 ‘하늘의 아버지’ 대신 “정신의 아버지”로 상징된 이성의 도덕적 사명을 확고하게 의식하면서, 기독교 복음을 이성적인 도덕법칙에 대한 신앙적 원칙으로 재해석한다. 우리가 확인해야 할 점은 복음에 대한 피히테의 도덕철학적 재해석은 기독교 신학의 주요 내용을 그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자의적으로 변질시키거나 왜곡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비록 사유를 통해서는 파악될 수 없다고 해도, 인간 본성 안에는 본질적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자연의 경향성이 있음을 간파한다. 이를 역으로 표현하면, 선을 악으로 도치시키고, 악한 행실로 개인과 인류에 큰 해악을 가져오는 인간일지라도 악을 그 자체로 악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만일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흉악한 자의 행동이 악이 가져다주는 이익과 향락을 사랑한다는 동기에서 유발된다면, 불의와 악덕에 대한 그 어떤 이익과 보상이 결코 뒤따르지 않고 그에 대한 희생적 책임을 자신이 마땅히 짊어져야 한다는 시민적 법률 제정, 국가적 헌법질서의 정착과 수호 노력에 의해 악의 자의적 사용을 예방할 수 있다고 피히테는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참된 도덕적 국가 안에는 이성적으로 악한 행위의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이성적 인간에게 필요한 궁극적 사명은 “그의 의지를 선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에 달려있다.58)

그럼에도 무한한 선의지는 반드시 행위를 통해 표출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에 관한 의식은 이성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을 절대자인 신이나 일자인 이성으로 고양시킬 수 없다. 그래서 피히테의 도덕철학적 종교 이해는 기독교 신앙을 전적으로 부정하거나 지양하지 않는다. 유한성을 본질로 한 이성적 존재자는 “무한한 상승과 고양을 통해서도 결코 무한한 것으로 바뀔 수 없다.”는 한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59) 다시 말해, 자신의 지상사명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현실의 감각적 행복과 안위를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성적 인간도, 그의 정신적 힘과 실천적 행동의 결과로는 자신을 신으로, 혹은 무한한 존재자로 만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질서의 세계와 감성적 질서의 세계 양쪽 모두에 발을 내딛고 있는 인간은 선을 향한 자신의 의지를 고양하여 초감성적 세계의 확실성과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자신의 의지를 정신적 세계의 질서에 정향시키는 이들은 모든 감성적인 것과 그 목적까지 포기하고 이에 대한 희생까지 감내하고자 할 때 “영원한 것에 대한 믿음”을 소유한다. 가시적인 현상세계라고 지칭된 감성적 질서의 모든 향락과 유익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삶의 태도야말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상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신앙인의 중생과 동일한 체험인 것이다.60) 그러므로 지상의 모든 물질적 행복에 대한 욕망을 끊고 해방된 이들의 유한한 생은 우주적 생의 거룩한 힘, 혹은 “생명의 근원적 흐름의 물결이 격동하는 생”으로 변화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오직 종교적 시선으로 참된 아름다움의 왕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61) 정신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2. 주관적 관념론에서 절대자를 향한 사랑과 합일의 철학으로

이번 절에서는 자아의 절대적 주체성과 동일성에 기초한 피히테의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이 어떻게 자아 바깥의 절대자인 무한한 존재자를 향한 종교철학으로 발전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1810년 이후의 마지막 후기 강연들에서 드러난 종교사상과의 연관성을 고찰한다. 필자가 이미 언급했듯이, 예나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한 피히테는 1800년『인간의 사명』을 출간하면서 자신의 실천철학이 갖고 있는 종교적 신념과 도덕적 믿음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확신을 대중적으로 호소했지만, 아직 이 시기에서도 선명하게 종교 신학적 내용이 전개되지는 못했다. 이제 그는 1806년에 출간한『복된 삶을 위한 지침』이라는 종교철학 저서를 통해 자신의 학문론 철학을 향해 퍼부었던 무신론적이고 허무주의라는 비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는 헤겔 사후인 1842년부터 1845년까지 베를린 대학에서 말년의 셸링이 신화철학을 강의하면서, 피히테의 종교철학 저서명과 그의 사상적 변화가 자신이 작성한 1804년 종교철학 저술『철학과 종교』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셸링은 스무 번째 신화철학 강의 각주에서 칸트의 관념론이 인식초월의 사물 자체를 전제하여 인간의 사유로서 파악 불가능한 예지적(이념적) 세계를 제시한 것처럼,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은 자아를 철학의 절대 원리로 상정하여 사물들의 관계에서 예지적인 모든 연관성을 지양시켰지만, 자신의 “철학과 종교” 논문을 통해 그러한 독단적 확신이 철회되었다고 상기한다.62) 그렇다면 셸링의 1804년 종교철학 논문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를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첫 번째 장인 “절대자의 이념”에서 철학자들이 절대자와 그 이념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이 절대자 이념에 대립한 비-절대적인 것을 서술함으로써 부정적으로 제한된 방식으로 절대자의 본질을 파악했다는 것이다.63) 이들 철학자들이 서술하는 절대자는 대립이라는 반성과 차이의 통일성에 의한 정신적 생산물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영원하다는 절대자에 관한 서술을 절대적 본질의 사태를 직접적으로 영혼 안에서 직관하지 않고 반성적 사유의 형식으로, 즉 주체나 이상, 객체나 실재를 대립시켜 그 대립의 부정으로서의 무차별적 동일성을 추론했다는 점이다. 헤겔에서도 개념은 모든 생명의 원리이자 공허한 것이 아닌, 항상 구체적인 개별자라고 주장한다. 개념 자체는 잠재적 가능성으로부터 필연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품고 있는 역동적 운동이기 때문이다.64) 이에 반하여 셸링은 “오직 직접적인 직관적 인식만이 개념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규정을 무한히 뛰어넘는다.”65)는 지성적 직관을 매개로 절대자 인식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절대성과 영원성에 관한 인식은 바로 “영혼 자체의 직관을 형성하는 인식”66)으로서, 직접적인 인식의 지성적 직관에 의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여기서의 지성적 직관은 이전 시기에 저술한 1800년 선험론적인 관념론 체계에서 주창된, 자아의 자기동일성을 인식하는 직관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절대자와 통일된 영혼이 자신의 참된 실체인 직관을 통해 신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종교적 직관을 지시한다. 우리는 절대자를 우리의 영혼을 매개로 직관하며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신앙의 힘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예감하거나, 또는 절대자는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의 대상으로서 비-철학적 방식을 통해 인식되어야 한다는 에셴마이어(Adam K.A. Eschenmayer)의 철학적 신 인식론을 셸링이 왜 단호하게 거부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초월적 존재를 고찰하는 학문은 오직 종교나 신학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셸링에게 역사는 다름 아닌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계시”이자, “신의 정신 속에 쓰여진 한편의 서사시”이기 때문이다.67) 신의 서사시라 일컫는 역사는 인류를 출발점으로 그 중심에서 가장 먼 지점으로 향하는 원심적 운동과, 또 한편으로 그 먼 지점으로부터 중심으로 인류가 복귀하는 구심적 운동의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이 “우주의 역사를 정신의 나라의 역사”68)로 파악한다면, 모든 정신의 최종 목표는 육체와 물질에 관한 온갖 관계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에 있다. 그리고 역사의 최종 목적은 인류의 타락으로부터의 화해와 구원의 성취이다. 유한성은 인류의 타락에 따른 필연적 숙명으로, 그의 구체적인 형벌로 해석된다. 하나님은 따라서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절대적 지복이며 절대적 도덕성”으로 간주됨으로써 두 가지의 무한한 신적 속성, 즉 지복과 도덕성 모두가 그분의 절대적 필연성과 자유 아래 정초된다. 신의 본질과 도덕성은 하나이기 때문에, 동일하신 존재자로서 전체 역사의 즉자존재이자 일자인 신은 “필연성과 자유의 절대적 조화”로서 표상된다.69) 그분 자신은 실체일 뿐만 아니라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로서 정신과 자연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신성을 이념으로 드러내신 만유의 초월자이다.

이제 필자는 피히테의 종교철학 강연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셸링의 종교사상이 어떻게 피히테의 후기 종교사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그가 어떻게주관적 관념론에서 절대자에 관한 철학적 종교사상으로 발전시켰는지를 확인하겠다. 열한 개의 강연으로 구성된 종교철학 저술에서 피히테는 첫 번째 강의 시작에서부터 생의 개념을 진실과 거짓된 삶의 유형으로 구분하여 청강생들에게 설명한다. 진실한 삶이란 단순하며 변화하지 않고 항상 일관적으로 동일한 반면에, 죽음과 무로 귀착하는 가상적 삶은 끊임없이 교체적이고 과정과 소멸 사이에서 늘 부동하고 있는 실존 상황이다. 불완전한 삶의 형식은 이처럼 중단 없는 변화들 속에서 죽음을 향해 요동치고 있지만, 진실한 삶은 고요하며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생의 힘을 얻고 추동한다. 무엇보다 피히테에게 “진실한 삶은 그래서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진실하지 않은 삶은 다만 이 세상 안에서 사는 것이며 이 세상을 사랑하는 생을 추구한다.”70) 일상의 현실에서 한 사람이 이중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며 불가능한 일이라면, 하나님 사랑과 개인적으로 자기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모순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는 자신에 대한 자기사랑을 전적으로 포기할 때 가능하다.71) 영원하고 불변적인 것을 추구하는, 절대자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은 그 자체로 복된 것이며 “영원한 것을 동경하는” 신앙적 자세를 취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참되고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피히테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자기의식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오직 그리고 전적으로 사유를 통해 파악될 수 있다.”72)고 말한다. 지복한 정신적 삶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 스스로가 영원한 것과 영혼의 지복이 무엇인지를 의식하거나 지각해야만 한다. 인간은 자기의식으로 분명하고 구체적인 통찰 속에서 자신과 세계, 그리고 진실한 삶과 그 지복을 깨달아 향유하고자 하는 대상을 직관할 수 있다. 초월자의 신성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지복한 생은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의 “고유하고, 순수한 그리고 참된 사유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으므로, “참된 하나님과 참된 종교는 순수 사유에 의해 포착될 것이다.”73) 신을 인식하는 정신적 기관으로 언급한 순수 사유는 “신적인 현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피히테에게 현존재 개념은 존재와 어떻게 구분 가능한가? 참된 존재, 절대적 존재는 “자기 자신에 의해,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통해” 자기의 존재됨을 정립할 수 있으며, 절대적으로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일자로서 인식된다. 현존재는 이에 따라 일자인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불변한 존재자부터 나온 언설이나 계시로 규정된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절대적 존재는 단적으로 그분 자신이며 직접적으로 자신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에 의해서 그의 현존재를 언표하고 계시하는 분이다.74) 존재 자체를 직접적으로 의식하는 “존재의 의식이나 표상”, 또는 존재라는 주어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계사는 바로 그분의 현존재를 의미한다.75) 절대자인 일자를 인식하는 순수 사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절대적 본성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있음을 의식하게 만드는 정신적 기관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셸링이 1804년의 철학과 종교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지성적 직관 개념이 피히테의 순수 사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강연에서 피히테는 사유 개념을 설명하면서 “본질적이고 보다 높은 사유는 외적인 감각으로부터 모든 조력을 받지 않으며, 또한 이 감각들과의 모든 연관성도 없는, 순수한 정신적 객체”로서,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산출하는 힘으로 규정한다.76) 뿐만 아니라 그가 절대자 하나님의 생명과 영원 안에 기초한 순수 사유를 정신적인 삶의 진정한 행복뿐만 아니라 일자이신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는 유일무이한 영혼의 수단(혹은 정신의 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순수 사유가 셸링의 종교적 직관 용어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후에 셸링이 인간 본성의 종교적 성향에 관해서 언급했듯이, 인간만이 자신의 근원적인 본질에 있어서 신을 정립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존립하는 본성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게 향해진, 말하자면 신에게 도취된 본성인 것이다.”77)

하나님과 하나 된 삶, 영원한 일자인 절대자를 사랑하는 생을 지복한 삶으로 규정한 피히테는 다섯 번째 강연에서 절대자 존재로부터 현시된 현존재의 양태를 철학의 반성을 통해 오중의 세계관으로 분화시켜 설명한다. 무한성 안에 있는 하나의 세계는 다섯 개의 상이한 세계들의 모형으로 분할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상위의 보다 높은 세계관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 속에서 실제적으로 생성될 수 없다. 우리가 단지 사고를 통해서는 그러한 세계관들을 만들어 내거나 산출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세계관은 신적인 현존재의 통일성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존재하기 때문에 결코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들과 그 점차적인 진보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우리의 것으로 획득할 수는 있다.78) 가장 낮은 단계의 첫 번째 세계관은 실재적으로 현존하는 세계로서, 최상의 세계의 관점에선 혐오스럽고 천박한 현실의 세상으로 비교된다. 두 번째 세계는 “질서의 법칙”이 통용되는 세계관으로, 이성적 본질을 갖는 체계 아래 작용하는 법적인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계관은 자유의 내적 필연성을 가진 도덕법칙을 통해 자립성과 자유에 기초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한다.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제시한 것처럼, 인간의 실재성과 자립성이 오직 그 이성적 존재자의 내적 심정 안에서 지배하는 도덕법칙을 통해서 증명된다면, 이러한 세계관은 최고의 도덕법과 법률학을 확정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다음으로 세 번째 모형은 “참되고 더 높은 도덕성”으로 구성된 세계관을 말한다. 여기서의 세계관은 인류에게 도덕법칙을 창출하는 실제적 이념을 창출한다. 이같이 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종교(특히 기독교)는 지혜와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네 번째 세계관적 모형은 종교로서, 종교적 세계관을 통해 우리는 거룩함과 선,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내적 본질이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현시된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피히테의 신 인식론적 관점이다. 그는 인간의 지성과 사유에 의해 하나님을 파악할 수 있다는 신에 관한 관념을 “내용 없는 그림자 개념”이라고 거부한다.79) 하나님은 우리 지성의 힘으로 인식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신적인 생명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내적 본질에 대해서도 해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신앙고백은 진리일 수밖에 없다. 절대자를 향한 믿음의 확신 속에는 ‘우리 자신은 자신의 존재가 아니다.’라는 인생관이 포함되어 있다.80) 마지막 다섯 번째 세계관은 학문(Wissenschaft)이다. 세계관으로 언급한 학문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특정 대상을 연구하는,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틀어서 말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 학문 개념은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통일성으로, 그의 질서 안에 있는 모든 관계들을 법칙에 따라 완결시키는 철학의 학문론을 가리킨다. 학문은 “다양한 것들과 상대적인 것들 안에서 일자, 절대자로 변용하는 지점을 파악하는” 세계관으로서, 따라서 학문이 결여된 종교는 단순하고 광신적이라고 간주된다. 그렇다면 피히테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참된 내용과 종교의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하에서 인용한 문장에서 그의 종교관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참된 종교는, 비록 그로부터 파악된 자신의 영역에 대한 눈이 고양된다 하더라도, 행위와 순수한 도덕적 행위의 영역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고착한다. 실제적이고 참된 종교성은 성찰하는 것이 전혀 아니고, 명상적이지도 않으며. 그리고 경건한 생각들을 단순히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활동적이다. 참된 종교성은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참으로 거하시고, 그리고 활동적이시며 그의 사역을 실행하신다는 내적인 의식 가운데 존속한다. 이제 우리 안에는 결코 진정한 생이 없으며 활동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부터는 결코 드러난 작업도 없으며, 그래서 또한 하나님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우리의 의식은 그러한 점에서 거짓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는 하나의 공허한 그림자의 상을 가진 상태로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주 적게나마 관계하고 있는 이러한 상태는 가능할 수 있고, 다른 이에게 아마 실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은 일반적일 수 있긴 하지만, 이것은 고루한 통찰이다. 우리는 실재성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다시 공허한 그림자 개념 속으로 쫓겨나 있다. 후자는 광신주의자이며 공상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실재성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 같은 광신주의자는 신비주의의 하나의 흔적이다. ... 종교는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영위하는 사업이 아니다. 이는 어떤 정해진 하루와 시간들 속에서 작업하는 다른 사업들로부터 분리된다. 오히려 종교는 모든 우리의 내적인 정신으로, 그 밖에 다른 자신의 길을 중단 없이 개진하는, 사유와 행동을 관통하는, 그에 활력을 주고, 그리고 자신 안으로 잠긴다.81)

그러므로 피히테는 정신의 역사적 단계의 발전과정을 다섯 개의 세계관적 시기들로 구분하여, 절대자의 현존재로 파악된 우리 의식의 계기들, 그 구조의 특징을 설명했다. 특히 지복의 세 가지 단계들인 “보다 높은 도덕성, 종교, 학문(론)”의 세계관들은 현존하는 현실세계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지복의 목표가 아님을 분명하게 확증한다. 당위의 의무론적 도덕철학보다 상위에 위치한 ‘보다 높은 도덕성’의 세계관은 네 번째 단계의 세계관인 종교성 안에서 스스로를 확고하게 견지하며 자신을 고양시킨다.82) 진실하게 생을 살고 있는 이들은 절대자를 사랑하는 신앙과 그 진리 아래에서 자신의 현존재를 규정한다. 도덕적 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만 그 참된 가치를 지니며, 도덕세계라는 목적 이념은 하나님 없이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증명한다. 세계와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만을 진정 사랑해야 한다는 신앙적 태도는 우리가 현상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도덕적으로 행위하며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반성적으로 일깨운다. 이를 다시 역으로 표현하면, “도덕적인 종교인은 도덕성과 종교 일반을 확산시키길 원한다.”83) 더불어 피히테는 이 강연을 통해 기독교가 순수하고 완성되어진 이성과 일치해야만 한다고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피력한다.84) 그는 여섯 번째 강연에서 요한복음 1장 서두에서 언급된 태초의 로고스인 말씀을 이성으로 번역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직접적인 현존재인 “영원하고 순수한 지”, 혹은 “파악되고 의식된 개념”이 하나님의 아들 되신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을 통해 합일되었음을 설명하기도 했다.85) 하지만 셸링이 피히테의 종교철학 강연집이 출간된 이후에 저술한『인간 자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에서 지적했듯이, 스피노자를 비롯하여 피히테의 관념론적 신 개념은 실재론과 마찬가지로 “비인격적인 존재”를 필연적으로 내포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86)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악의 현상과 죄의 기원 문제는 절대자를 표상하는 신 개념에서 간과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이 아닌 하나님의 인격성 개념과 사랑의 신적 의지를 신의 내적 본질과 연관시킬 필요가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는 악과 죄의 힘에 무기력한 인류역사와 인간 정신 안에 그분의 신성과 구원을 현실화시키는 계시의 존재적 근거이다.

3. 1810년 이후 후기 베를린 강의에서의 절대자 사상

1810년은 피히테가 새로 설립된 베를린 대학교의 철학과 교수로 다시 부임한 해이다. 1808년 7월부터 그는 신체의 마비 증상과 단기적인 실명 증세로 연구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휴식을 가졌지만, 1809/1810년 겨울 학기부터 자신의 학문론을 지속적으로 강의하면서 새롭게 수정해 나갔다.87) 이미 언급했듯이, 피히테는 무신론 논쟁으로 1799년 예나 대학의 철학교수직을 잃게 된 이후로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을 지속했었다. 하지만 그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1810부터 1813년까지의 마지막 시기는 자신의 후기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강의와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이 마련됨으로써, 그에게 절대자 신론을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시간이었다.

피히테는 1794년의 학문론을 시작으로 초기 철학에서 종교철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1813년 베를린 대학에서 강연한『국가론』에서는 ‘옛 세계’의 종교로 지칭된 이집트 종교와 유대교를 국가적 법률의 강제성과 자의성에 의해 주도되는 비도덕적인 종교로 설명했으며, 그 반대로 기독교를 ‘새로운 세계’의 종교 형식으로서 신의 내적인 본질인 자유로부터 기초한 “자유와 평등의 종교”로 구분하기도 했다.88) 그리고 그는 1812년의『도덕론의 체계』강연에서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를 가리켜서는 불과 칼을 갖고 “신의 통일성 개념”을 관철시킨 열광자로 평가한다.89) 무엇보다 1810년 이후의 베를린 강의 문헌에서는 신의 직관과 형상, 종교와 종교성 개념이 빈번하게 언급되었다.90) 이러한 일련의 후기 강의 저술들은 우리가 후기 피히테의 철학적 종교사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종교관을 제시한다. 즉 종교는 무엇보다 현상세계를 초월한, 초감각적인 하나님, 혹은 절대자 개념이나 그 이념을 보편적인 종교적 의식의 대상으로 추구한다는 것과, 종교를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실재성 안에서 초감각적인 것(Übersinnlichen)의 실현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현상(즉 초감각적 세계의 근거인 하나님 관념)으로부터 사로잡힌, 그리고 이를 통해 행위 가운데 실행되는 심정을 우리는 종교적 심정이라고 지칭하며, 이 전체의 현상을 우리는 종교라고 말한다.”91) 우리가 그의 학문론에서 말하는 절대지가 자신의 즉자 대자적 이해 형식에 근거하여 창조적 생산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선험철학의 절대자 이론(인식론적 측면)은 인식의 실재 내용과 지의 형식 사이의 구분이 절대자 자체의 통일성에서부터 산출된다는 관념론적 사유 구조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현상(Erscheinung)은 지의 절대적 통일성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존재(Sein)’와 대립하는 차이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그래서 하나님 자신과 같이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92) 이 같은 절대지의 현상 개념은 피히테에게 절대자의 신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절대자인 하나님 바깥에 존재하는 지성 역시 신 자신과 같이 절대적이며, 그의 현상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존재자인 지성 자체 안에 내재한다. 피히테는 절대자 하나님과 그분의 존재적 현상을 철저하게 구분함으로써 신을 사유되어진 존재로 반성하여 현상을 존재와 연관시킨 스피노자의 잘못된 신 인식의 전철을 되밟지 않는다. “하나님은 현상과 다시 혼합될 수 없다.”93) 1812년 학문론 강연에서도 현상 개념은 비록 그 자체로 자유하고 하나의 생 자체로 이해될 수 있어도, 자신에 의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통해서” 그 실존이 해명된다.94) 인식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주관과 이해된 객관이 동일하다는 지성의 자기동일성은 “자기이해의 형상” 안에 있다.95) 여기서의 형상(Bild)은 “현상의 형상”인 자아를 말한다.96) 초기 그의 학문론에서 말하는 자아의 자기 정립 활동과 동일성 이론은 마지막 1813년『의식의 사실』강연에서도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자아 정립의 절대성이 자신의 인식능력으로 산출될 수 없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정립 작용은 오히려 “절대적으로 주어진 존재”로서의 형상 존재, 즉 “자아의 존재에 있어서의 우유성과 그의 일부분”인 파생 능력으로 간주된다.97) 자기 이해를 근원적 형식으로 취한 지성, 혹은 자아라는 형상은 스스로를 직관하거나 그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현상의 존재 자체인 절대자 하나님을 통해서만 자아의 형상이 정립될 뿐이다. 따라서 “형상의 형상”인 자아는98)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의 실체이자 담지자”99)라 하더라도 자신의 형상을 절대자의 형상에 대한 “모상(Nachbild)”으로 인식한다.100) 절대자 형상 자체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에 의해, 자신을 통한” 형상으로, 생동적이며 자신을 스스로 산출하는 존재자이며, 우리 인간의 지성과 경험적 자아의 참된 근원자로 자신을 유한자 안에서 현시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정립하는 지성과 자아는 비록 자체 안에 선험적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초월자인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될 뿐만 아니라, 절대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어서 필자는 1810/11년 겨울 학기『의식의 사실』강의에서 설명한 ‘선험론적인 종교의식의 현상학’, 다시 말해 종교를 종교적으로 규정된 의식의 ‘경험적인 사실(Faktum)’로 규정하여 도덕적 의식과 결합시킨 그의 종교론을 살펴보겠다. 먼저 질료적으로 규정된 종교적 의식은 그 내용과 행위를 명시적 혹은 함축적인 의미로 파악할 때, 인간 존재의 포괄적인 자기 이해와 세계 인식을 담고 있다. 1813년 초에 강의한『의식의 사실』에서도 피히테가 밝혔듯이 “모든 지에 관한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의 원칙과 근거”를 산출하는 이 사실은 “주어진 사실적 지를 역사적으로 개관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101) 따라서 의식의 사실 강의는 철학의 근원인 “지 자신에 대한 입문과 예비”102)에 무게중심을 잡은, 전체 학문론의 체계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지에 관한 철학서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10/11년의『의식의 사실』은 내용적으로 분석적 방법과 종합적 방법 사이의 결합을 매개로 전개한다. 질료적으로 규정된 첫 번째 의식은 그 일부의 계기들을 분석하여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 의식의 가능성에 관한 조건들을 고찰한다. 질료적으로 규정된 두 번째 의식은 첫 번째 의식과의 종합을 통해 산출된다. 모든 개별적 의식 자체는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의 지도 아래 “예술적으로 다뤄지는 하나의 실험”103)에 의해 밝혀져야만 한다. 즉 의식은 철학의 선험론적인 사유 실험을 통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 현상적으로 관찰됨으로써 직관된다. 이때 철학적 반성은 의식의 여러 규정들을 상이한 개별적 규정들로 구분하여 파악하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 의식의 통일체로 발견한다. 따라서 의식의 사실은 의식 자체의 전체성을 유기적 통일성으로 증명해내는 “사실적인 지”이자 하나의 “자유하고 자립적인 생”으로 간주된다.104) 의식의 선험론적인 현상학은 달리 말하면 “이 생명의 발전에 관한 자연의 역사”로 표명될 수 있다.105) 우리가 의식을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체로 파악한다면, 그 최종적인 사유의 실험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 안에 모순과 대립이 전혀 있을 수 없는, 이성적인 생명을 의식의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피히테는 베를린 시기인 1801/02년에 수정한 학문론 §11에서 학문론이 말하는 ‘지’를 절대자로 언급하지 않고 “절대지”로 설명했다.106)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인식하는 철학의 ‘지’는 자기 외부에서 지의 근원을 발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적인 자기 생성, 자유로운 빛”을 바라보는 지성적 직관의 절대적 자유를 통해 수행하는 지는 자기 자신을 내적으로 “순수 행위”로 바라본다. 모든 지는 자기를 직관하는(Selbstanschauung) 자유로운 지성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형식과 내용을 구성하고 체계화한다. 이에 따라 학문론은 절대지를 단적으로 모든 직관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통일성의 직관”으로 규정한다.107) 정신적인 직관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유를 통해서 규정되기 때문에, 모든 지는 자유 안에서 그의 행위가 수행되어야 하며, 그래서 자유는 지의 절대적 형식이 된다.108)

피히테의 의식의 사실 강의에서 종교는 분석과 종합의 단계적 고찰 방법을 수단으로 도덕성 안에서 그의 근거를 확정하고 규명된다. 도덕적 세계와 지의 자기 이해에 관한 의식 현상학은 도덕적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선험론적인 반성을 통해 발견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보다 높은 도덕적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은 종교적 의식에 있다. ‘종교의 뿌리는 도덕성에 있다.’는 도덕적 의식의 종교 현상학은 의식과 생의 통일성 개념이 “감각세계와 자연세계”109), 그리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다수”110) 속에서 이미 현존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감각적인 현존 세계와 다수로 군집된 개인들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 개념은 “생의 의식”을 작동시키는 조건이다.111) 생의 의식은 한편으로 하나의 존립하고 불변하는 자연을 전제하며, 이에 대한 작용이 자연 안에서 발생한다.112) 또 한편으로 생의 의식이 자유를 통해 자연 속에서 작용한다는 것은 하나의 반성적 자기의식과 자유로운 개인을 전제한다. 개인은 자신을 자연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로 자각하고, 그 활동의 작용을 자기 자신의 활동으로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자기의식이 동반된 반성의 작용(Reflexivitt)을 필요로 한다.113) 자연세계와 개인의 자기의식은 자유를 외적으로 표출해야 할 무대인 생 속에서 단적으로 “형식의 이중성”114)으로 직관된다. 이를 통해 생의 이중성은 실천적 능력을 산출하고, 그 활동하는 작용을 스스로 직관할 수 있기 위해 자신만이 가져야 할 고유한 생을 가정한다. 이로부터 우리 자신이 실현시켜야 할 개별적 생은 처음 시작한 “가능한 삶”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참된 삶”을 합일시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115) 그렇다면 생의 이중적 형식을 반성으로 직관하는 의식의 통일성은 어떤 활동의 추진력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으며 정립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피히테는 삶의 “절대적 자유와 자기 활동”에 기인한다고 대답한다. 도덕적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인 절대적 자유는“도덕법칙의 도구이자 수단”이다. 즉 자유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은 도덕법칙을 감각세계 안에서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자유의 생이란 근본적으로 도덕성의 직관 형식 이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116) 자신 스스로가 산출하는 절대적 자유가 도덕성을 현실세계에서 펼치기 위한 절대적 수단이자 추동력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 삶은 도덕법칙을 자연계와 감각세계 안에서 표출시켜 생의 원리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정신적 활동을 포함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 목적은 도덕적 의지의 실현과 도덕성의 자기 전개이다. 이 관점에서 생은 궁극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조건이 되며, 궁극 목적은 생이라는 실재성의 근거가 된다. 우리에게 생이란 그 자체로 절대적이진 않지만, 이 삶의 실제적 토대는 자신 안에 정초한다. 생 자체는 “생명, 활동 그리고 절대적이고 창조적”인 면을 갖고 있음에도, 일반적으로 개인의 형식적 생의 관점에선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으며 자유롭지 못하다.”117) 이런 까닭에 생은 궁극 목적을 자신 안에서 산출할 수 없다. 오히려 궁극 목적이 생을 창조하고 이를 규정해야만 한다.118) 생을 이끌어 내는 근원적 힘은 궁극 목적 안에 있으며, 우리 안의 절대적 자유를 통해 생의 궁극 목적을 실현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피히테는 의식의 사실 강의에서 의식의 현상학을 지와 도덕성에 연관시킬 뿐만 아니라 종교적 영역을 마지막 후반부에 포괄하여 도덕성이 최종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장소를 제시한다. 도덕의 이성적 힘은 개인과 사회 공동체, 그리고 종교에서도 그의 절대적 원칙이 적용된다. 자유로운 이성적 존재자에게 도덕법칙의 원리, 혹은 궁극 목적은 “하나님의 직관”으로, 도덕법칙 자체는 “신의 직관에 대한 외화”로 규정된다.119) 종교를 통해 철학의 대상인 “지의 생”은 완전하게 실현되며, 지 자신이 최고 정점에 이른다.120) 도덕법칙의 원리를 하나님의 직관으로 주제화한 피히테는 종교를 의식의 현상학 안에 종합한다. 생의 궁극 목적이 “삶의 단순한 형식”으로서121)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안에 있다면, 형식으로 규정된 삶은 “자유의 무대”122)로서 도덕적 사명을 성취해야 할 실제적 공간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 생의 근거이자 힘인 궁극 목적이 도덕성에서 직관된다면, 도덕성은 종교 안에서도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직관되어야 한다. 문제는 일련의 도덕적 궁극 목적을 완성하는 과정(Werden)이라는 존재 개념은 그 자체로 비완결성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의 통일된 형식적인 생을 존재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절대적 존재”인 궁극 목적과 “절대적 과정”인 형식적 생이 하나로 통일된 생으로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도덕적 견지에서 생의 통일성과 연속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삶은 직관될 수 없는 무의미한 시간 계열의 연장일 뿐이다. 따라서 존재와 과정이 합일되어 가는 생의 여정은 우리에게 삶의 “유일하고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도덕적인 궁극 목적과 연결된다.123) 생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설명하자면, 선험론적인 철학적 반성을 통해 직관은 존재 개념의 변함없는 성격을 견인한다. 하나의 고유한 생이 갖는 존재 의미는 “하나의 고정된 형상이자 현상”으로서, 총괄적으로 직관되는 전체 생은 절대적 존재로, 절대적 직관, 절대적 형상으로 간주된다. 이 절대적 직관을 피히테는 “절대자의 직관”으로 파악한다. “자신으로부터, 자신에 의해서, 자신을 통한 존재는 절대적 직관이다. 이것이 하나님이다.”124) 도덕적 의식과 의지를 생성하는 선험적 조건을 찾는 철학적 반성은 도덕의 선험적 조건이 하나님(또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음을 예시한다. 그러므로 도덕의 궁극 목적은 신학적 의미에서 하나님 형상의 외화 혹은 그의 현상으로 직관된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는 우리 인간의 지성과 개념을 갖고서는 전혀 파악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바깥에 존재하는 직관, 형상, 지는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론은 칸트의 예지체 개념, 곧 경험 가능한 현상을 초월한 대상 없는 부정 개념과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125) 후기 학문론에서 다뤄지는 지의 이론, 하나님 개념은 관념적 의미에서 지 그 자체를 말한다. 지는 자신 안에 죽음을 전적으로 배제한, 살아 있는 생의 여정과 생명력 자체를 뜻한다. 그리고 생은 의식과 정신에게 지의 형식인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직관되어야 한다는 것이 피히테의 요지이다. 하나님 개념은 신에 관한 “직관의 절대적 대상”, “모든 개념의 계보학”이자 “지의 생을 완성하고 그 지의 최고 정점”126)을 가리키는 철학적 지의 근원적 출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피히테는 하나님을 절대자로 파악한다. 하나님과 절대자라는 단어는 그 용법의 사용이 구별되지 않고 언급된다.127) 절대자 용어는 철학적으로 존재의 즉자적 자립성을 의미하는, “자신을 통해, 자신에 의한, 자신으로부터”128) 존재하는 자기생성의 초월적 근원자로 설명된다. 신의 ‘즉자성(Aseität)’은 인과성의 지성적 범주 안에서 분류되는 자기 원인자(causa sui)가 아니라, 절대적 자기 동일성과 자기 규정성의 해석학적 범례로서 규정된다.129) 그의 본질은 자신의 존재와 상응할 뿐만 아니라 일치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존재하는 그대로 있는, 단적으로 이를 통해 그분은 존재한다.”130) 자신의 존재함이 자기에 의해서, 자기로부터 존재의 근거를 마련하는 초월자 하나님은 그의 존재적 절대 형식을 통해 자신의 전체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자 자신이다. 자신의 현실적 존재함에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절대자의 자기 동일성은 부정성을 배제하고 자기 존재의 필연성을 자신 안에 갖는다.131) 신적 존재의 자기 필연성은 관념론에서 “개념 자체의 필연성”132)을 의미하기에, 절대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최고 존재자 개념인 지에 현시되며 유한한 생과 의식에 직접적으로 직관된다.


IV. 나가는 말

우리는 후기 피히테의 종교론을 비롯하여 선험론적인 자기의식과 자아 동일성 이론이 전개한 철학의 근본 원리를 셸링과 헤겔의 주관적 관념론 비판과 연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초기 학문론에서 주창된 절대 자아의 주관성 이론은 후기 학문론 강의와 종교철학에서 초월자 하나님의 존재론적 현상학으로 발전되어 도덕적 의식과 절대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자의 직관 개념을 산출했다. 1800년 인간의 사명, 1804년 수정된 그의 학문론 강의에서 사유 불가능한 절대성의 존재 형식 안에 있는 ‘신의 발현’ 개념을 시작으로 1806년 종교철학 강연과 1810년부터 3년간의 마지막 베를린 강의 내용들을 우리가 확인했듯이, 그의 철학은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 사상이 아니었다.133) 비록 피히테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 성서가 증언하는 삼위일체론, 신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대변하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자기의식과 현실의 삶을 추동하는 정신적 실체는 자아 혹은 이성의 흔들림 없는 자율성에 있지 않고, 절대자인 일자에게 있다는 철학적 신념을 확고하게 견지한다. 인간의 실존 방식과 인식의 본질, 이성의 실천적 힘은 하나님 없이 가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이 온 우주와 생의 중심이 아니라는 신앙적 입장을 관념론적인 사변의 언어로 그는 역설했다.

독일의 현대 개신교 신학에서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받는 판넨베르크는 후기 피히테의 철학적 신론이 “절대자의 무한성”을 이성적으로 사유할 수 없다는 철학 사유의 길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더 나아가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에서 종교적 의식의 기초가 사유가 아닌 경건한 감정에 있다는 신학적 관점은 후기 피히테의 철학적 신론과 연관되었다고 시사했다.134) 피히테의 학문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첫 번째 인물은 횔덜린(F. Hölderlin, 1770-1843)이었다. 1795년 4월『존재와 판단』에서 그는 자기의식으로부터 대상에 관한 의식이 산출된다는 피히테의 사상을 반박했다. 존재는 주관과 객관의 통일성, 생명이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135) 1804년 뮌헨의 학술원 원장이었던 야코비(F.H. Jacobi, 1743-1819)도 1799년 3월 2일 피히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히테의 철학 정신을 요약하면서, 그가 자아와 비아의 통일성을 산출하여 결국 형이상학을 유물론으로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136) 칸트와 피히테를 비롯한 관념론이 허무주의로 귀착한다는 당시 야코비의 예단은 역사적으로 입증될 수 없는 편견이라 사료된다. 절대적으로 홀로 자존하시고,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은 “생동하는 빛”으로 자신을 일자, 한 분으로 계시하신 분이며, 스피노자처럼 사유를 통해 개념화시킨 죽은 신이 아니라고 피히테는 강조한다.137)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의지가 개인과 인류의 도덕성을 실현시키는 초월적 근거이고, 그분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믿음의 삶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 땅에서 선을 촉진시키는 우리의 실천적 노력에 달려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후기 피히테의 학문론과 종교론은 유한한 자아와 이성을 절대자로 환원시키지 않았으며, 현재의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와 신학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도덕적 실천의지와 노력을 부단히 촉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


Notes
1) F.W.J. Schellng, Erster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1799), in Sämtliche Werke III, hrg. von K.F.A. Schelling (Stuttgart/Augusburg: Cotta, 1859), 14. 이하의 각주에서 인용된 셸링전집은 1856년부터 그의 셋째 아들이 편집한 초기판본으로 SW로 약칭하며, 이 전집의 권수는 로마 숫자로 표기한다.
4) F.W.J. Schelling, System des transzendentalen Idealismus(1800) (Hamburg: Felix Meiner Verlag, 1957), 9. 최근 한국칸트학회에서는 칸트의 철학용어인 transzendental을 “선험적”으로 a priori를 “아프리오리”로 음역하여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칸트 전공자인 백종현의 칸트전집 번역에서 사용한 “초월적” 용어와 한국칸트학회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참작한다면, 필자는 양쪽에서 제안한 번역 모두 칸트의 ‘트란스첸덴탈’과 ‘아프리오리’ 단어 사이에 나타난 의미 차이를 충분하게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트란스첸덴탈’은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그 ‘선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가리키는, 대상인식 가능의 방식과 조건을 지시하는 단어이며, a priori는 a posteriori 단어와 반대되는 한 쌍의 용어로 ‘감각적 경험에 선행하거나 그 경험 이후’라는 의미에서 기존의 ‘선험적-후험적’ 번역이 타당하다. 이러한 이유로 트란스첸덴탈을 ‘선험적’으로 번역할 경우, a priori 단어의 번역어인 ‘선험적’ 용례와 충돌하기 때문에 칸트학회에서는 ‘아프리오리’로 결정했지만, 다수의 철학자와 신학자 모두가 수긍할 만한 타협점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양측의 견해 차이 속에서 헤겔 전공자인 백훈승은 선험적 인식의 경험을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정험적’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는 트란스첸덴탈이 관념론 단어와 결합될 경우, ‘선험론적인 관념론’으로 표기한다. a priori는 그동안 국내학자 대다수가 사용한 ‘선험적’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며(‘선천적’으로 번역한 사례는 의미에 적합하지 않다), 이에 대응하여 트란스첸덴탈을 ‘선험론적인’으로 표기하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더불어 transzendental philosophie 단어는 ‘선험철학’으로 번역하겠다. 이는 셸링의 경우처럼, 자연철학과 대비하여 선험철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관성과 적합성에 있어 한결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학술용어의 번역은 일차적으로 국어 번역의 표준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른 개별 연구자들의 고유한 이해 관점과 해석의 다양성을 배제해서도 안 된다.
5) Ibid., 118.
6) F.W.J. Schelling, Über die Möglichkeit einer Form der Philosophie überhaupt (1794), SW I, 96f. 셸링은 첫 번째 자신의 철학 저서인 이 논문에서 피히테의 학문론에서 주창된 철학의 최고원칙인, 정립하는 자아와 정립된 자아의 근원적 동일성을 주장한다.
7) 피히테의 Tathandlung 용어의 번역은 백훈승이 제안한 “실행(實行)”으로 옮긴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이 단어를 “사행, 사실행위, 실행행위”로 번역했으나, 자아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실을 함께 함의하는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백훈승, “피히테와 Tathandlung,” 『철학연구』제124집(2012): 103-27 참조. 나아가 실행개념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의식의사실들에 맞서서 주체 자체의 비대상성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한 목표와 더불어, 사물과 산출자의 과정상의 동일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중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고 백훈승은 설명한다. 백훈승,『서양 근대철학』(전주: 전북대학교출판부, 2017), 369.
9) Ibid., 182.
10) Ibid., 192.
11) Ibid., 191.
12) Ibid., 187.
13) W. Pannenberg, Anthropologie in theologischer Perspektiv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e, 1983), 195f. 판넨베르크는 피히테가 후기에 자기정립을 자아의식의 토대로 더 이상 간주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즉 자아가 자기 자신의 근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W. Pannenberg, Theologie und Philosophi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e, 1996), 220;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신학과 철학 II』오희천 역 (서울: 종문화사, 2019), 98 참조.
16) Ibid., 186, 190f.
17) Ibid., 177f.
18) Ibid., 208.
20) Ibid., 56.
21) Ibid., 72.
24) Ibid., 32.
29) Ibid., 146f.
30) Ibid., 161.
32) Ibid., 38.
33) Ibid., 77.
35) Ibid., 46.
36) Ibid., 47.
40) Ibid., 75.
42) C. Taylor, Hege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5), 236ff. 풀다는 헤겔의 사변적 관념론 논제의 특징은 유한한 모든 것이 일자 안에서, 참된 것 안에서 지양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 일자가 이념이라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절대자의 관념론의 인식방식인 사변은 절대자를 무차별적인 유일자가 아니라, 자신 안에 대립들을 포함하는 일자로 서술함에 있다. 여기서 관념론의 사변용어는 “거울 속의 한 형상을 보는 것”으로 비유된다. 이는 맞은편 표면들에서 비춰진 빛에 의한 반사에 지각되는 것 전체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철학적 사변은 “사고의 반성(Reflexion)으로 인해 절대적 통일을 비감성적으로 직각(Intuition)하는 것”을 뜻한다. 한스 프리디히 풀다,『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남기호 역 (서울: 용의 숲, 2010), 95ff.
44) Ibid., 70.
45) Ibid., 61.
46) Ibid., 59.
49) Ibid., 302.
50) Ibid., 297f.
51) Ibid., 308.
52) Ibid., 196.
53) Ibid., 259.
54) Ibid., 263.
55) Ibid., 318.
58) Ibid., 276.
59) Ibid., 304.
60) Ibid., 292.
61) Ibid., 315.
66) Ibid.
67) Ibid., 57.
68) Ibid., 60.
69) Ibid., 56f.
71) Ibid., 519f.
72) Ibid., 410.
73) Ibid., 418.
74) Ibid., 452.
75) Ibid., 439f, 452ff.
76) Ibid., 436.
79) Ibid., 470.
80) Ibid., 471.
81) Ibid., 473.
82) Ibid., 534.
83) Ibid., 545.
84) Ibid., 476.
85) Ibid., 480ff.
93) Ibid., 448.
96) Ibid., 428.
97) Ibid., 429.
99) Ibid., 86.
100) Ibid., 26.
101) Fichte, Die Thatsachen des Bewußtseins(1813), 404. 한편으로 1788년 출간된『실천이성비판』§7에서 칸트는 실천이성의 원칙인 정언명령을 설명하면서 “이성의 사실”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순수의지를 경험이나 외적 조건으로부터가 아닌, 순전히 법칙의 객관적 형식에 의해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규칙이 근본법칙(보편적인 객관법칙)이며, 이 근본법칙에 대한 의식을 가리켜 이성의 사실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칸트의 이성의 사실과 더불어 피히테의 의식의 사실 용어는 모두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자신에 의해 법칙이 수립되는 선험적 보편성을 함축한다. 참조. I. Kant,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 Ph.B. Bd. 506 (Hamburg: Felix Meiner Verlag, 2003), A 56.
102) Ibid., 405.
103) Fichte, Die Thatsachen des Bewusstseyns(1810/11), 542.
105) Ibid., 689.
107) Ibid., 9.
108) Ibid., 31. 1804년 베를린 대학 강연 원고인 학문론 수정판에서 피히테는 “자신 안에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정립된 살아 있는 정신의 “빛” 혹은 이성 자체를 “자아의 자기생성” 개념으로 이해한다. J.G. Fichte, Die Wissenschaftslehre. Zweiter Vortrag im Jahre(1804), Ph.B. 284 hrg. von Reinhard Lauth und Joachim Widmann (Hamburg: Felix Meiner Verlag, 1986), 259f. 더불어 그는 이 절대적 이성의 빛으로부터 현시된 현상을 “계시 그리고 하나님의 외적 표시”로 설명한다(Ibid., 222). 이성 안에서 수행되는 자아의 자기 생성적 활동을 계시로 규정한 피히테의 학문론 입장은 하나님의 계시적 초월 차원의 영역 안으로 고착된다. 초기 학문론에서 다뤄진 자아의 자기정립이론이 “정립과 반정립의 종합을 완전히 성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립과 반정립이 대립과 결합을 통해 양자의 종합을 점차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있다면”(권기환, “피히테에 있어서 관념론과 실재론의 논쟁,”『헤겔연구』36호[2014]: 198), 그 절대적 종합의 마지막 종착지는 절대자에 대한 종교철학적 관점이다. 게르하르트 감(Gerhard Gamm)은 “후기 피히테가 이성을 더 이상 인간론 안에 정초시키지 않고, 본질적으로 참된 존재와 생명으로 이해된 절대자의 선험적인 현상론 지평 안으로 정초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G. Gamm, Der Deutsche Idealismus. Eine 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von Fichte, Hegel und Schelling (Stuttgart: Reclam, 2015), 68. 하르트만도 지적하듯이, 1804년의 학문론은 이미 절대자의 사상 속에서 자신의 근거를 확립한다. 모든 지, 모든 현실성, 그리고 모든 자유를 절대자의 자기 전개로 설명한 것처럼, 철학은 학문론에서 절대자 자신의 자기 서술로 표명된다. 이에 관해서는, N. Hartmann, Die Philosophie des deutschen Idealis-mus (Berlin: Walter de Gruyter, 1960), 73.
109) Fichte, Die Thatsachen des Bewusstseyns(1810/11), 615-28.
110) Ibid., 600-15, 628-34.
111) Ibid., 643.
112) Ibid., 644.
113) Ibid., 639, 646f.
114) Ibid., 653.
115) Ibid., 654f.
116) Ibid., 656.
117) Ibid., 664.
118) Ibid., 659.
119) Ibid., 680.
120) Ibid., 686.
121) Ibid., 681.
122) Ibid., 656.
123) Ibid., 683.
124) Ibid., 684.
125)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1787), B343=A287. 예지체 또는 사물자체 개념은 칸트에게는 감성적 직관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감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지성적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서 “감성을 제한하는 한계 개념”으로 정의된다(B311). 피히테의 신 개념도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실재성을 전혀 갖지 못한 ‘아무것도 아닌 것’의 부정개념에 크게 의존한다.
126) Fichte, Die Thatsachen des Bewusstseyns(1810/11), 686.
130) Ibid., 343.
131) Ibid., 333.
132) Ibid., 327.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7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1A5B5A0102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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