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No. 0, pp.289-319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19
Received 09 Oct 2019 Revised 12 Nov 2019 Accepted 15 Nov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12.50.289

리만과 데네케의 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한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설교
심우진
서울장신대학교 조교수, 신약학 (predigt@naver.com)

Youngsan Yonggi Cho’s Sermon from the Analytical Perspective of Fritz Riemann’s and Axel Denecke’s Theory
Woo-Jin Shim
Dr. theol. Assistant Professor, New Testament Studies Seoul Jangsin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초록

1961년 발표된 리만의 이론은 심리학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의학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불안의 네 가지 근원 형태들에 주목하였고, 이에 따라서 인성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려는 성향인 ‘분열적 인성’, 자기 밖으로 벗어나려는 성향인 ‘디프레시브한 인성’,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성향인 ‘강박적 인성’,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면 안 된다는 성향인 ‘히스테리성 인성’이 그것이다.

1979년 데네케는 리만의 이론을 설교학에 도입하였다. 그는 리만의 구조를 따라서 설교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책임감이 강한 ‘질서의 설교자’, 변화에 능통한 ‘자유의 설교자’, 깊은 성찰력을 가진 ‘깨달음의 설교자’, 감정이입능력이 있는 ‘사랑의 설교자’가 그것이다. 그는 각 유형의 설교자 특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를 예로 든다. 목자들 이야기를 설교할 때 네 가지 강조점 중에서 어느 것을 강조했는지 살펴보면 자신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장점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만과 데네케의 이론으로 영산의 목자들 이야기 설교를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방법론은 독일 설교학에서는 잘 알려져 있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에서 영산의 설교를 연구한 것이 되었다. 본 논문은 영산의 설교 중에서 목자들 이야기 설교만을 분석한 것이므로 영산의 설교 전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지만, ‘영산의 설교는 좋다.’라는 명제에서, ‘무엇이 좋은지’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Riemann’s theory, published in 1961, has profoundly influenced not only psychology but also the field of psychiatry. According to his theory, the basic forms of personality is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a schizophrenic personality as an inclination to want to get into oneself; a depressive personality as an inclination to want to get out of oneself; an obsessive personality that thinks of a certain content to be continued; and a hysterical personality that thinks of a certain thing not to be continued.

In 1979, Denecke applied Riemann’s theory to homiletics. He divided preachers into four types according to Riemann’s four categories of personality: a responsible preacher of order, a chameleonic preacher of freedom, a profound preacher of knowledge, an empathetic preacher of love. Using the story of shepherds in the second chapter of Luke’s Gospel, Denecke discerns which type a preacher is. The shepherds’ story has four emphases. If a preacher looks at which of the four points of emphasis in the story, she/he has highlighted in her/his sermon, she/he will see her/his inclination of preaching and she/he can develop her/his strengths.

The main goal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Youngsan’s sermon on the story of shepherds in Luke’s Gospel based on theories of Riemann and Denecke. This analyzing can be a new attempt to investigate Youngsan’s sermons with a new homiletical method that is well known in German homiletics and has been studied a lot. However, this study has a limitation that it does not take all Youngsan’s sermons into account except the sermon of the shepherds. Nevertheless, it can be a proper contribution to explain why Youngsan’s sermon is good in terms of systematic detailed analysis.


Keywords: Yonggi Cho, Fritz Riemann, Axel Denecke, Personality, Preacher
키워드: 조용기, 프리츠 리만, 악셀 데네케, 인성, 설교자

I. 들어가는 말

영산의 설교는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가장 활발하게 연구된 분야는 구약학이다. 차준희의 연구1), 강소라의 연구2), 장석정의 연구3)가 있고, 최근에는 정일승의 비판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4) 민경구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에 관한 연구5)를 낸 바 있는데, 상대적으로 신약학에서 영산의 연구는 이영호의 연구6)를 제외하면 많지 않은 편이다. 설교학의 관점에서 영산의 설교가 연구되기도 했다. 영산 설교의 기반으로서 영산 신학의 실제적인 기반을 지적하는 최문홍의 연구7)가 있고, 조지훈은 영산 설교의 내러티브성과 설교 형식에 관하여 연구하였다.8) 기독교교육의 관점에서는 이미아의 연구9)와 최성훈의 연구10)가 있다. 한편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연구도 있다. 최광현은 영산의 설교를 긍정심리학과 내면아이 심리학의 관점에서 연구하였다.11)

본 연구는 리만(Fritz Riemann)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형성된 데네케(Axel Denecke)의 이론의 관점에서 영산의 설교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 방법론은 독일 설교학에서는 잘 알려져 있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본 논문은 방법론을 먼저 소개한 다음, 영산의 설교를 분석하도록 하겠다. 영산의 설교는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었으나, 독일 설교학의 관점에서 연구된 것은 거의 없기 때문에 본 연구가 영산의 설교를 조명하는 하나의 새로운 관점으로 기능하기를 바란다.


II. 리만의 이론: 네 가지 인성 유형

프리츠 리만(1902-1979)은 독일의 심리학자로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융(Carl Gustav Jung, 1875-1961)과 같은 대가의 명성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리만의 학설은 심리학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의학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의 사상은 1961년 출간한 대표작인 Grundformen der Angst 12)에 잘 드러나 있다.

리만은 어떤 사람도 불안(Angst) 없이 살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논지를 출발한다.13) 과거에 불안을 야기했던 것들은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극복되어 사라지기도 했지만, 소외, 고독, 새로운 질병, 교통사고와 같은 것들이 새로운 불안을 야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용기, 신뢰, 인식, 희망과 같은 불안에 맞서는 힘들을 개발하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불안과의 대결을 회피함으로써 그 불안이 장애물이 되어 그 지점에 어린이처럼 남아 있기도 한다.

불안을 좀 더 신중하게 바라보면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독이 심한 불안을 불러일으키는데,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불안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일정한 내용이 변화되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그 반대로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리만은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을 ‘불안의 근본 형태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러한 유형들이 갖고 있는 내적인 질서에 주목한다. 근원적으로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려는 힘, 자기 밖으로 벗어나려는 힘,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는 힘, 일정한 내용이 변하는 힘. 이 네 가지 힘은 두 개씩 짝을 이루며 상응한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려는 힘과 자기 밖으로 벗어나려는 힘이 대칭을 이루며,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는 힘과 변하는 힘이 대칭을 이룬다. 이러한 네 가지 힘은 유전과 성장환경 등에 영향을 받으며 한 인간의 인성(Persönlichkeit)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람마다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네 가지 힘 중에 하나가 주된 요구로 주어지며 그로부터 불안이 유발되는데, 이러한 불안에 대응하며 인성이 형성된다. 결국 네 가지 종류의 불안의 근본 형태들은 인성의 네 가지 형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네 가지 인성 구조 가운데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변형되어 왜곡된 형식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심층심리에서는 그와 같은 것을 분열증(Schyzoide), 우울증(Depression), 강박신경증(Zwangsneurose), 히스테리(Hysterie)라는 네 가지 신경증 형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신경증 형식들은 네 가지 종류의 불안과 관련 있다. 첫 번째 근원적인 힘이 우리의 삶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임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으며 개별적인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무더기 인간이 아니라 혼동될 수 없는 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요구는 소속과 공동체의 안정감에서 떨어져 나올 때 고독을 느끼게 하는 불안을 야기한다. 두 번째 근원적인 힘이 우리의 삶에서 요구하는 것은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을 신뢰하며 자신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낯선 것과 관계를 맺어야 하며, 우리 바깥에 있는 것과 교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요구는 자아 포기의 불안과 자아 되기의 불안을 야기한다. 세 번째 근원적인 힘이 우리의 삶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지속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요구는 어떠한 사람도 삶을 영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불안을 동반한다. 네 번째 근원적인 힘이 우리의 삶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늘 우리를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요구는 우리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야기한다. 이러한 불안들을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악화될 때 병으로 발전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병으로 발전하기 이전 상태에서 인성의 형태로 네 가지 유형 중에 어느 하나를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려는 성향인 분열적 인성(schizoide Persönlichkeit), 자기 밖으로 벗어나려는 성향인 디프레시브한 인성(depressive Persönlichkeit),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성향인 강박적 인성(zwanghafte Persönlichkeit),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면 안 된다는 성향인 히스테리성 인성(hysterische Persönlichkeit)이 그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네 가지 인성 중에 어느 하나를 가지고 있다. 네 가지 종류의 근본적인 불안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결과로서 개인 고유의 인성을 형성하게 된다.

리만은 자신의 저서 전체를 통해 네 가지 인성 유형에 대해서 자세히 분석하였다. 그는 이러한 성향이 극단화되어 병원에서 치료해야만 하는 상태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이러한 성향이 왜 출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평범한 삶에서 이러한 성향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균형을 이루어 가는지에 보다 중점을 두고 인성의 분석과 발생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 찾기에 관심을 두고 기술하였다.


III. 데네케의 이론: 네 가지 설교자 유형

리만의 이론을 설교학으로 가져온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는 데네케(Axel Denecke)이다. 그는 1979년 출간한 Persönlich Predigen14)에서 리만의 네 가지 인성 구조를 바탕으로 설교자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우선 그는 독일에서 설교학의 중심 주제가 시대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바뀌었다고 보았다.15) 설교학이 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는 설교의 주제, 또는 텍스트가 중심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설교의 청자, 또는 수신자가 설교학의 중심 주제로 연구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설교자가 설교학의 중심 주제로 부각되었다. 이로써 설교의 3요소, 곧 설교, 청자, 설교자가 모두 학문적으로 연구 주제가 되었는데, 데네케는 새롭게 중심 주제로 부각된 설교자 연구에 리만의 이론을 접목시킨 것이다. 데네케는 리만의 네 가지 유형에 따라 설교자를 분류하였으므로, 데네케의 설교자 분류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리만의 강박적 인성(zwanghafte Persönlichkeit)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데네케는 이러한 인성을 가진 설교자를 ‘책임감이 강한 질서의 설교자’(Der verantwortungsvolle Prediger der Ordnung)라고 기술한다.16) 설교의 주제는 “확실하게 정해진 미래를 가져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늘 변화 없이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방랑하는 것을 피하라고 요구한다. 기본적인 두려움은 무가치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적 가치는 질서(Ordnung), 또는 율법이다. 이런 유형의 설교자의 장점은 믿을 만하고, 책임감 있고, 공정하다. 단점은 고지식하고, 지독하고, 교조적이다. 내용과 관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내용이 관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세상이 나에게 갖는 적대감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두 번째는 리만의 히스테리성 인성(hysterische Persönlichkeit)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데네케는 이러한 인성을 가진 설교자를 ‘변화에 능통한 자유의 설교자’(Der wandlungsfähige Prediger der Freiheit)라고 기술한다.17) 설교의 주제는 “방랑할 준비를 해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라고 요구한다. 또한 변함없는 것과 고지식함을 피하라고 요구한다. 기본적인 두려움은 확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적 가치는 자유이다. 이런 유형의 설교자의 장점은 기동성이 있고, 밝고, 판타지가 있다. 단점은 현실을 너무 모르거나, 너무 쉽게 일을 마치거나, 정신이 없다는 점이다. 내용과 관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관계가 내용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세상이 나에게 갖는 적대감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 번째는 리만의 분열적 인성(schizoide Persönlichkeit)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데네케는 이러한 인성을 가진 설교자를 ‘깊은 성찰력을 가진 깨달음의 설교자’(Der tiefsinnige Prediger der Erkenntnis)라고 기술한다.18) 설교의 주제는 “주체적인 개인이 돼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아를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종속되는 것을 피하라고 요구한다. 기본적인 두려움은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적 가치는 깨달음(Erkenntnis)이다. 이런 유형의 설교자의 장점은 자립적이고, 독립적이며, 깊이가 있다. 단점은 다른 사람과 교제가 적고,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며, 숨어서 생활하려고 한다. 내용과 관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내용이 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을 받아들이며, 세상이 나에게 갖는 적대감도 받아들인다.

네 번째는 리만의 디프레시브한 인성(depressive Persönlichkeit)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데네케는 이러한 인성을 가진 설교자를 ‘감정이입능력이 있는 사랑의 설교자’(Der einfühlsame Prediger der Liebe)라고 기술한다.19) 설교의 주제는 “세상에 자신을 열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고립되는 것을 피하라고 요구한다. 기본적인 두려움은 외로움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적 가치는 사랑이다. 이런 유형의 설교자의 장점은 감정이 풍부하고, 남을 잘 도우며, 따뜻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 단점은 너무 믿어달라고 한다거나, 감정적이거나, 의존적이다. 내용과 관계의 인식에 있어서는 관계가 내용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은 받아들이는데, 세상이 나에게 갖는 적대감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IV. 데네케 이후의 연구동향

리만의 이론을 데네케가 설교학으로 가져온 때는 공교롭게도 리만이 사망하던 1979년이었다. 시기적으로는 독일 설교학에서 설교자가 연구 주제로 부각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런 시기에 데네케가 설교자 연구에 리만의 이론을 도입한 것은 큰 영향을 끼쳤다.

1989년 보쿰 대학교의 교수인 미하엘 쉬빌스키(Michael Schibilsky)는 독일 상담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는 Trauerwege20)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헤어짐, 죽음, 불안, 삶, 존재 등과 관련된 슬픔에 대해 분석하였고, 슬픔에 처한 사람을 상담하는 기법을 제시하였다. 쉬빌스키는 슬픔에 처한 사람을 상담할 때 우선적으로 그가 어떤 유형에 속한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서 리만의 이론을 도입하였다. 그는 리만의 이론에 따라 슬픔에 처한 사람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21) 첫째, 자아중심적 유형(Egozentrik), 둘째, 이타주의적 유형(Altruismus), 셋째, 유지하려고 하는 유형(Bewahrung), 넷째, 변화하려는 유형(Flexibilität)이 그것이다. 이러한 유형분류는 리만의 유형분류와 일치한다. 쉬빌스키는 이러한 유형들이 혼합되어 나타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분류가 슬픔에 처한 사람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강조하였다.22)

2002년 앵애만(Wilfried Engemann)은 Einführung in die Homiletik23)에서 리만과 데네케의 이론을 다루었다. 그는 설교자의 인성 분석을 위한 심리학적 자아(Ich) 이해를 위해서 프로이트, 융, 에릭 번(Eric Berne)의 이론을 비교 분석하였다.24) 앵애만은 자아에 대한 이해가 프로이트, 융, 에릭 번을 거치면서 발전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융을 통해 보다 체계화되었고, 융의 이론은 에릭 번에 의해 더욱 체계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앵애만은 에릭 번의 교류분석이론(Transactional Analysis)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아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네 가지 관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25) 첫째, ‘나는 괜찮지 않다 - 너도 괜찮지 않다’(Ich bin nicht okay-Du bist nicht okay), 둘째, ‘나는 괜찮지 않다 - 너는 괜찮다’(Ich bin nicht okay-Du bist okay), 셋째, ‘나는 괜찮다 - 너는 괜찮지 않다’(Ich bin okay-Du bist nicht okay), 넷째, ‘나는 괜찮다 - 너도 괜찮다’(Ich bin okay-Du bist okay). 앵애만은 이러한 네 가지 관계를 리만의 이론과 접목시켰다. 첫 번째 유형인 ‘나는 괜찮지 않다 - 너도 괜찮지 않다’는 분열적 인성, 두 번째 유형인 ‘나는 괜찮지 않다 - 너는 괜찮다’는 디프레시브한 인성, 세 번째 유형인 ‘나는 괜찮다 - 너는 괜찮지 않다’는 강박적 인성, 네 번째 유형인 ‘나는 괜찮다 - 너도 괜찮다’는 히스테리성 인성에 상응한다. 모든 설교자는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하는데, 자신이 속한 유형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장점은 발전시키고 단점은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각 유형에 속한 설교자의 장점과 단점을 상세히 제시하였다.26)

앵애만은 자신보다 앞서서 리만의 이론을 도입한 데네케의 선구자적인 업적을 존중하였고, 데네케의 설교학 이론을 받아들이기도 했는데,27) 데네케와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앵애만은 교류분석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므로, 네 가지 설교자 유형 가운데 네 번째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다.28) 그 이유는 네 번째 유형이 ‘나는 괜찮다 - 너도 괜찮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설교자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설교 청중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전제에서 상호교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자가 네 가지 성향 중 어느 하나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네 가지 설교 유형 모두를 잘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데네케와는 다른 입장이다. 독일 설교학에서는 데네케와 앵애만의 입장 중에서 어떤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여전히 논의 중이다. 어느 한쪽으로 쉽게 결론 나기 어려운 주제로 보인다. 이것은 한 설교자가 네 가지 설교 유형을 모두 잘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는가, 아니면 네 번째 유형의 설교만을 목표로 삼아서 훈련해야 하는가 하는 선택으로 요약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을 한국교회의 상황에 대입한다면 데네케의 입장이 앵애만보다 적합하고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교회에서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적응성이 매우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긍정적인 자세를 중요시하는 앵애만의 입장도 의미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V. 데네케의‘목자들 이야기’(눅 2장) 본문 분석

지금부터는 데네케의 이론으로 돌아와서 그의 이론을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네 가지 유형의 설교자 성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특정한 성경본문을 선택하여 분석하였다. 그는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를 한 예로 들었는데, 이 본문은 성탄절마다 설교되어서 잘 알려져 있고 내용도 친숙하기 때문에 네 가지 성향을 분석하는데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데네케는 이 본문을 설교하는 설교자가 어떤 점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설교자의 인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목자들 이야기에 대한 분석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였는데, 이 분석을 설교자의 인성을 파악하는 데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이 본문을 설교할 때 강조할 수 있는 포인트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의 신실하심(Die Treue Gottes)이다.29) 설교의 중심에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시한 약속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본문은 예수가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보도한다(2:1). 이것은 예수의 탄생이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즉 이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셨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설교에서는 본문에서 연속성과 변함없음을 강조한다. 예수의 탄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가 성취되었다고 하는 연속성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둘째, 하나님의 자유하심(Die Freiheit Gottes)이다.30) 이 강조점은 첫 번째의 강조점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설교의 중심에는 기존의 모든 것들을 부수고 새롭게 출발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고 하는 것은 기존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개념을 붕괴시키는 파격이다. 이러한 설교에서는 본문에서 비연속성을 강조한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을 때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으므로”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눕혀야 했다(2:7). 천사는 “땅에서의 평화”를 언급했지만, 정반대의 상황이었던 땅에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새로운 방법을 취해야 했다. 스스로 인간이 되신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과의 비연속성을 드러낸다. 결국 유대인들이 이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예수를 처형하도록 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즉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자유가 있다.31)

셋째, 하나님의 지식(Die Erkenntnis Gottes)이다.32) 이 강조점은 구유에 누인 아기에게 비추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밝은 빛에 있다. 이 빛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높든지 낮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목자든지 왕이든지 구분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기 예수께 나오도록 인도한다. 이 빛은 그동안 숨겨져 있었으나 하나님의 지식을 깨달음으로써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설교는 본문에서 지식을 발견하는 것을 강조한다. 한 천사는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영광의 빛을 비추면서 등장한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목자들은 급히 달려가서, 구유에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신들에게 말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듣는 자들은 모두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이러한 설교에서는 지식을 찾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참된 지식은 왕궁이 아니라 들판에 있었다. 어두운 밤에 방향도 모르는 들판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지식을 발견했을 때는 기쁨이 크다. 모든 세상이 어둠에 잠겨 있을 때, 참된 지식은 밝은 빛을 비추어 내리쬐고 있었다. 이 빛은 진정한 구원자인 예수께로 이끄는 유일한 빛이다. 이 빛까지 가는 것은 수고스럽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넷째, 하나님의 사랑(Die Liebe Gottes)이다.33) 이 설교는 본문에서 따뜻함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차갑고 모든 것을 뛰어넘는 빛보다는 사람도 살고 가축도 사는 친근한 공간인 “집”에 주목한다. 왕궁이 아닌 집에서, 아니 집에 딸려 있는 마구간에서 예수가 탄생했다고 하는 사실은 하나님이 얼마나 겸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조차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겸손한 하나님의 모습은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설교에서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것”을 따뜻하게 보호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한 아기가 태어날 때는 부모의 애정 어린 노력이 필요한데, 마리아와 요셉이 부모로서 기울인 바로 이러한 분주하고도 애정 어린 노력을 상세히 묘사한다.

데네케는 종합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34) 어느 한 본문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다양하고 깊다. 그래서 어느 한 측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네 가지 강조점 중에 어느 하나를 강조점으로 선택하여 설교할 때는 이 점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설교를 듣는 청자만 해도 네 가지 인성 중 어느 하나를 소유한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어느 하나의 강조점만이 유일하거나, 또는 우월하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들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설교자가 자신이 어느 성향에 속해 있는지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장점으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리고 만일 설교자가 매년 성탄절마다 같은 본문으로 설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네 가지 강조점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설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설교자가 목자들 이야기를 설교할 때, 같은 방식으로 각기 다른 강조점에 따라서 설교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35)


VI. 영산의‘목자들 이야기’설교에 대한 분석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에 대한 영산의 설교는『신약성경 강해전집』의 제6권『누가복음 강해 I』에 수록되어 있다. 세 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탄생”(2:1-7), “천사가 전해 준 기쁜 소식”(2:8-14), “목자들의 경배”(2:15-20)가 그것이다.36) 이 세 편의 설교를 리만과 데네케의 이론의 관점으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영산은 요셉과 마리아가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에 따라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를 낳게 된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이유와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요셉과 마리아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기 약 7백 년 전에 말씀하신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마리아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요셉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37)

영산은 예수의 부모가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에 따라 고향으로 가게 된 것을 “그 이유와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만 했는데,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미가가 예언한 내용이었고, 그 예언이 성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영산은 이 예언이 예수께서 탄생하기 약 7백 년 전에 선포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 예언하셨습니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이 예언의 주체, 곧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밝힌다. 7백 년 전에 주신 약속이 실현되는 모습을 영산은 “말씀하신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라고 표현하면서, 마리아는 만삭의 몸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데네케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38) 데네케는 이러한 유형의 설교가 갖는 특징으로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시한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본문에서 예수가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난 것, 예수의 탄생이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에 의해서 예언되었고 그것이 실현된 것,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이 이러한 유형의 설교가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 설교의 위 인용문은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7백 년 전에 하나님이 예언자 미가를 통해서 약속을 주셨는데, 이 약속은 ‘그 이유와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영산은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표현은 데네케의 설명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서 보다 진전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섭리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과정을 지칭하고 있는데, 성경이 보도하는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데네케는 이 유형의 신학적 주제어로서 질서(Ordnung)를 꼽고 있지만, 이 단어는 구약시대의 예언과 예수의 성취를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섭리란 표현은 데네케의 질서 개념은 물론, 리만의 강박 개념을 바탕으로 하면서, 성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은 위 인용문에 이어지는 단락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인 로마 황제가 전국에 호적령을 내린 것도 엄밀히 보면 예수님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배후에서 막강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39)

영산에 따르면 로마 황제가 호적령을 내린 것과 구약시대에 예언한 바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로 포괄된다. 모두 다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구조는 형식적으로는 로마 황제가 호적령을 내린 것,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구약시대에 예언한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신실한 분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의미를 제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가 이 세상의 역사와 질서를 통괄한다는 의미도 제시한다. 이 세상의 역사와 질서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연결되는 것이다. 영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숨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그렇거든 하물며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우리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겉으로 보기엔 우연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때로는 이끄시고 때로는 보내시며 조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며, 때로는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다 아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40)

이 인용문에서 영산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숨어서 역사하시는’, ‘배후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며’, ‘때로는 갈 바를 알지 못하여’와 같은 표현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음을 묘사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만드시고, ... 조정하시는 것입니다’와 같은 표현들은 신실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묘사한다. 영산은 하나님의 섭리를 창세전으로 위치시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다 아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아신 바이고, 또한 창세전에 우리의 발걸음이 정해졌고 그것이 신실한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산의 언급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다음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데네케의 질서 개념보다 영산의 하나님의 섭리가 형식적인 것과 내용적인 것, 즉 세상의 역사와 질서를 무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이루신다는 것을 포괄하기 때문에 더욱 진전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신앙에 따라 생활하는 데도 유용한 실천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설교 유형을 파악하고자 하는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언급되었거나 강조되었는지를 보고 자신이 책임감이 강한 질서의 설교자인가, 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하는 설교자인가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리만에 따르면 강박적 성향의 반대에 위치한 것은 히스테리적 성향이다.41) 강박적 성향은 일정한 내용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성향이고, 히스테리적 성향은 일정한 내용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성향이다. 이에 따라서 데네케는 강박적 성향이 질서를 추구하는 것으로, 그리고 히스테리적 성향이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수렴하였다. 따라서 전자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자유하심을 강조한다.42)

영산은 하나님의 자유하심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낮고 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초라한 환경에서 외롭게 태어나신 것은 상상 밖의 사건이요, 망극한 일이었습니다.43)

예수의 탄생은 ‘상상 밖의 사건’이다. 데네케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의 설교가 갖는 특성은 기존의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롭게 출발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다.44)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개념을 붕괴시키는 파격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고자 하신 그분의 자유를 드러낸다. 영산은 하나님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낮고 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버리시고’, ‘내려오셔서’, ‘시작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자유를 표현하고 있다.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출발을 이 동사들의 능동태 형식이 힘차게 드러내고 있다. 만일 고정관념에 따른다면,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으로 오셔서 하늘과 땅을 초월적인 능력으로 제압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히려고 하셨다면, 또는 적어도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모습에 맞추어 그대로 오셨다면, 아마도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되는 구원 사역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구원 사역을 이루셨다. 영산은 이것을 “상상 밖의 사건”이요, “망극한 일”이라고 표현한다.45)

리만에 따르면 강박적 성향과 히스테리적 성향이 대칭적으로 짝을 이루는 것과 별도로, 분열적 성향과 디프레시브적 성향이 대칭적으로 짝을 이룬다.46) 분열적 성향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는 성향이고, 디프레시브적 성향은 자기 밖으로 벗어나려는 성향이다. 이에 따라서 데네케는 분열적 성향이 깨달음(Erkenntnis, 우리말로 ‘깨달음’ 또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그리고 디프레시브적 성향이 사랑을 추구하는 것으로 수렴하였다. 따라서 전자가 하나님의 지식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47)

데네케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설교의 특징으로서 목자들 이야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밝은 빛을 강조하는 것을 들었다.48) 또한 이러한 유형의 설교는 성경본문에서 “보게 될”, “찾아냈다”, “놀랐다” 등과 같은 단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보았다. 영산은 목자들 이야기 설교에서 빛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처럼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너무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 복된 소식은 천사에 의해 가난하고 비천한 목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날씨가 포근하여 교대로 양 떼를 지키며 들에서 밤을 보내고 있던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임하고 그들 주위에 온통 찬란한 주의 영광이 비추어 대낮같이 밝아졌습니다.49)

영산의 설교에서 주목을 끄는 점은 빛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는 것이다. 위 인용문은 “대낮같이 밝아졌습니다.”로 마무리된다. 성경본문은 “그들을 두루 비추매”(2:9)로 보도하고 있는데 영산은 이 빛을 “대낮같이 밝아졌다”고 묘사함으로써 이 빛의 밝기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 인용문의 도입은 매우 어둡다. 예수의 탄생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화려하게 빛남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다. 이 소식은 가난하고 비천한 목자들에게 알려졌다. 그들은 양 떼를 지키기 위해서 들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어두운 도입부는 후반부의 대낮같이 밝아짐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이 빛의 밝음을 강조하고 있다.50)

영산은 이 빛을 만나게 된 목자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고 찬양을 한 후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에 목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천사가 일러 준 일을 보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급히 갔습니다.
(중략)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자 난데없이 생면부지의 목자들이 찾아와서 그 아기가 메시아라고 말하므로 깜짝 놀랐습니다.51)

이러한 묘사에는 데네케가 언급한 요소들을 모두 발견할 수 있는데, “갔습니다”, “찾아와서”, “놀랐습니다”와 같은 단어들은 이러한 유형의 설교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영산은 이런 단어들을 더욱 강조하며 사용한다. “급히”, “깜짝”과 같은 부사가 추가되어 “갔습니다”와 “놀랐습니다”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신을 차리고”, “난데없이”, “생면부지의”와 같은 표현들은 장면의 생생함을 더하고 있다. 이것은 영산의 설교의 생동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생동감은 빛, 곧 참된 지식을 얻기 전과 후의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설교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데네케의 깨달음 개념을 영산은 ‘계시’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에서 기인한 것은 일방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언제나 짝이 맞습니다. 내게 하나님의 계시가 오면 상대편에게도 같은 계시가 오는 것입니다.
(중략)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것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계시로 주어졌으며 목자들을 통해, 또 동방 박사들을 통해(마 2:1-11) 외적인 증거가 나타나 확증되었습니다.52)

이 인용문은 앞 인용문에 이어지는 단락이다. 빛을 만나게 된 목자들이 찾아와서 그 아기가 메시아라고 말하므로 예수의 부모가 깜짝 놀랐다는 내용에 대한 신학적 해석인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산이 그 빛을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인용문에 따르면 영산의 계시 이해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의 생각은 일방적이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짝이 맞는다. 하나님의 계시는 내게 오는 한편 상대편에게도 온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계시는 예수의 부모에게, 목자들에게, 동방 박사들에게 왔고 모두 짝이 맞으며 외적인 증거로 확증되었다. 이러한 계시 이해는 데네케의 깨달음 개념보다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본문에서 빛이라고 표현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에게 도달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은 이것을 깨닫는 것을 포착한 표현이라면,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의 방향과 메시지를 담은 내용 두 가지 모두를 포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은 인간이 뭔가를 깨닫는 행동 그 자체에 주안을 둔 표현이라면, 계시는 인간이 뭔가를 깨닫게 만든 하나님으로부터의 메시지를 주목하게 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성경본문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 준다. 위 인용문에서는 예수의 부모, 목자들, 동방 박사가 각자의 방법대로 계시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태어난 아기 예수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것이다. 깨달음은 각자 깨닫는 행동에 주목하게 하는 한편, 계시는 예수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점과 이것을 각자의 방법대로 깨달은 점 모두를 포괄하기 때문에 깨달음보다 계시가 더욱 발전된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데네케에 따르면 깨달음을 추구하는 성향과 대칭적으로 짝을 이루며 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은 사랑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전자가 하나님의 지식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이러한 성향의 설교 특징은 다음과 같다.53) 성경본문에서 따뜻함을 강조한다. 초월적이고 차가운 빛이 아니라, 사람도 살고 가축도 사는 친근한 공간인 집에 주목한다. 마구간에서 예수가 탄생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겸손을 보여준다. 인간조차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겸손한 하나님의 모습은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 드러낸다. 또한 아기를 낳기 위해서 분주하게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다.

영산은 예수의 부모가 아기를 낳는 모습을 매우 상세히 묘사한다.

마리아가 만삭의 몸이라서 요셉과 마리아는 빨리 갈 수 없었습니다. 무리하지 않게 천천히 가는 요셉과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뒤쳐져서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여관마다 손님이 꽉 들어차서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빈 방을 찾아다니고 사정을 해도 초라한 촌사람 행색의 요셉과 마리아에게 방을 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별도리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동리 밖 짐승 우리에서 묶게 되었습니다. 어디 한 군데 편히 누울 자리도 없고, 바람은 술술 들어오고, 짐승 냄새와 짐승의 분뇨 냄새가 배어서 숨쉬기도 괴로운 허술한 우리에서 여장을 푼 요셉과 마리아는 피곤하고 지친 몸을 쉴 겨를도 없었습니다. 마침 마리아가 산기를 느끼고 진통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허술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짐승 우리에서 진통으로 몸부림치는 마리아의 출산을 도와줄 사람은 요셉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첫 출산의 어려움을 겪고, 요셉은 요셉대로 혼자 아기를 받느라 애쓰고 고생하는 중에 무사히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더럽고 냄새 나는 허술한 짐승 우리에서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세상의 구주가 탄생하신 것입니다.54)

이 인용문에서는 예수의 부모가 아기를 낳는 과정이 매우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서 설교의 청자는 친근함과 자상함을 느끼게 된다. 예수의 부모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첫아기를 낳느라 분주하게 노력하는데, 이것을 통해서 아기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설교자가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부모의 수고스러운 사랑과 따뜻함이 설교의 청자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이것은 성경본문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시각화를 시도하는 영산의 설교 기법과도 연관이 있지만, 또한 설교의 청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따뜻함과 위로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설교 철학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55) 한편 데네케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을 강조하는 설교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기를 낳기 위해서 분주하게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되는데, 영산은 예수의 탄생 자체를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이 다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아버지와 자녀 사이가 되어 완전한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사람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시인함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56)

영산은 아기 예수의 탄생, 곧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원수 된 것이 사라지도록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시인함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서 예수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한 언급은 하나님의 겸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겸손을 드러내는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은 인간조차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겸손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 역시 데네케의 분류에 따른다면 사랑을 추구하는 설교 유형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VII. 나가는 말

지금까지 리만과 데네케의 이론으로 영산의 설교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영산의 목자들 이야기 설교에는 데네케의 분류에 따른 네 가지 설교 유형, 곧 질서, 자유, 지식, 사랑을 강조하는 유형 모두가 포함되어있다. 데네케는 한 설교 안에서 네 가지 강조점이 모두 등장하는 것이 설교의 모범적인 형태라고 하였는데, 이에 따른다면 영산의 설교는 모범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데네케의 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계시와 같은 개념은 데네케의 질서, 깨달음이란 개념보다 더욱 정교하게 내용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영산은 목자들 이야기 설교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설교철학에 기반하여 따뜻함과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자세가 목자들 이야기 설교 전반에 배어있는데, 이러한 점은 앵애만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설교 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영산의 설교가 수많은 사람들과 목회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논문은 영산의 설교가 독일 설교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설교로 평가할 수 있음을 고찰하였다. 물론 본 논문은 영산의 설교 중에서 목자들 이야기 설교만을 분석한 것이므로 영산의 설교 전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지만, ‘영산의 설교는 좋다.’라는 명제에서, ‘무엇이 좋은지’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Notes
12) 책 제목을 직역하면 ‘불안의 근본 형태들’이고 ‘심층심리학 연구’(eine tiefenpsychologische Studie)라는 부제가 있다. 이 책은 2007년 서울대학교 독문과 전영애 교수에 의해서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불안의 심리”라는 제목으로 부제 없이 출간되었다. 심리학 용어와 의학 용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의 흔적을 남긴 이 번역서는 내용 전달을 비교적 훌륭하게 하고 있고, 이 논문의 독자들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 번역서를 사용하되 일부 용어의 경우 논문의 필자가 우리말로 다르게 표현한 경우도 있다. Fritz Riemann, Grundformen der Angst (München, Basel: Reinhardt, 1961)프리츠 리만,『불안의 심리』전영애 역 (서울: 문예출판사, 2007) 참조.
14) Axel Denecke, Persönlich Predigen (Münster: LIT Verlag, 1979; 2nd ed, 2001). 1979년 출간된 초판은 독일 설교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1년에 2판을 발간했는데, 초판의 기본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부분적으로 보다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2판을 참조하기로 한다.
15) Ibid., 172-74.
16) Ibid., 71-81.
17) Ibid., 82-95.
18) Ibid., 95-109.
19) Ibid., 109-24.
20) Michael Schibilsky, Trauerwege: Beratung für helfende Berufe (Düsseldorf: Patmos Verlag, 1989). 이 책의 제목은 ‘슬픔의 길들’이란 뜻이고, ‘도움을 주는 직업들을 위한 조언’ 곧 상담사들을 위한 조언이란 의미의 부제를 갖고 있다.
21) Ibid., 224-25.
22) Ibid., 226.
23) Wilfried Engemann, Einführung in die Homiletik (Tübingen/Basel: Francke, 2002), 175-237. 이 책의 제목은 ‘설교학 개론서’라고 번역할 수 있고, UTB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UTB는 Uni-Taschen Bücher의 약자인데 독일에서 대학의 교과서급으로 제작된 시리즈로서, 대부분의 독일 대학에서 UTB 시리즈를 교과서로 채택하고 있다.
24) Ibid., 190-204.
25) Ibid., 209-11.
26) Ibid., 212-22.
27) Ibid., 232-37.
28) Ibid., 220. 앵애만은 네 번째 유형을 가리켜서 ‘ideal’(이상적인)이라고 표현한다.
30) Ibid., 156-58.
31) 그 외에도 과거와의 비연속성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도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왕궁이 아닌, 말 구유에서 태어났다. 탄생의 소식이 왕들이 아닌,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졌다. Ibid., 157.
32) Ibid., 158-59.
33) Ibid., 159-61.
34) Ibid., 161-63.
35) 데네케는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가 1958년에 한 목자들 이야기 설교를 예로 들면서, 이 설교에서는 네 가지 강조점이 모두 등장하기 때문에 설교의 모범적인 형태로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Ibid., 162-63.
36) 조용기,『누가복음 강해 I』(서울: 서울말씀사, 2013), 58-72. 누가복음 2장의 나머지 단락인 “할례와 정결 예식을 받으신 아기 예수”(2:21-40)에 대한 설교는 본 논문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제외하였다.
37) Ibid., 62.
40) Ibid.
45) 영산은 설교에서 자유라는 가치가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설교자가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 인식함으로써 스스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설교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공포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전에 여의도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교통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지금도 겨울에는 거센 강바람이 불어와 다른 곳보다 훨씬 춥습니다. ... 한강변에 위치한 교회라 경치가 좋아서 성도들이 모여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이 크기 때문에 몰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조직이나 교구 편성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눈이나 비가 와도 마다 않고 두 번, 세 번 버스를 갈아타고 우리 교회까지 오는 이유는 자유케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용기,『설교는 나의 인생』(서울: 서울말씀사, 2005), 251-52.
48) Ibid., 158-59.
50) 영산은 설교를 할 때 시각화와 극적인 대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설교에서 효과적인 표현을 위한 여덟 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 그중에서 세 번째는 언어를 그림으로 그려서 감각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시각화이고, 다섯 번째는 극적인 대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조용기,『설교는 나의 인생』, 310-11.
52) Ibid., 71-72.
55) 영산의 설교는 질책하는 설교가 아닌, 따뜻함과 위로를 주는 설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목회 초기에 지독히도 가난한 교인들에게 천국 복음과 더불어 하나님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임을 증거해야겠다고 결심하는데, 이것은 그가 평생토록 따뜻함과 위로의 설교를 하게끔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목회를 하자니 교회는 성장할 리가 없었고 내 자신의 생활 또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내게 서서히 설교 철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천국의 복음과 더불어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즉 삶의 현장에서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임을 증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조용기,『설교는 나의 인생』,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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