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No. 0, pp.223-252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19
Received 23 Sep 2019 Revised 12 Nov 2019 Accepted 15 Nov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12.50.223

최자실 목사의 교회론과 교회개척
최성훈
한세대학교 조교수, 기독교교육학 (choi.seonghun@gmail.com)

The Understanding of Church and the Church Planting Ministry of Reverend Jashil Choi
Seong-Hun Choi
Ph.D. Assistant Professor, Christian Education Hansei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Funding Information ▼

초록

본 연구는 최자실 목사의 목회를 교회 이해와 교회개척론의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현대 목회에 시사하는 바를 도출하였다. 교회에 대한 성경적 이해 및 교회개척론 연구의 흐름 점검은 최 목사의 교회론과 교회 개척의 실제를 조명하는 시각을 제공하였는데, 이는 교회관이 목회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교회개척 관련 국내외의 연구는 교회개척이 지역사회에 대하여 몸 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함을 통하여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 사역에 공헌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최 목사의 교회개척은 영혼 사랑과 섬김에 바탕을 둔 고아원 사역으로 시작하여, 영적인 고아를 돌보고 섬겨야 된다는 깨달음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으로 이어졌다. 최 목사는 또한, 복음전도 과정 중의 영적 대결을 통하여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에 대한 확고한 신뢰로,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성령과 동역함이 교회의 개척과 운영에 절대적인 요소라는 깨달음으로 고양되었다.

최 목사의 교회개척은 개척 모델에 의해 분류하면, 개척 자금과 인력 확보 및 개척 주체에 따라 교회개척자가 모든 개척의 과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선구자모델, 목회자 개인이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는 설립모델, 그리고 개인에 의한 개척모델에 해당하므로 개척 초기부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경험하는 중에 이간질하고 참소하는 무리들로 인한 어려움을 금식기도로 극복한 최 목사는 고난 앞에서 사람을 찾아다니며 인간적인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회고하였다. 교회 이전과 같은 내부적 과제는 물론, 복음전도와 같은 외부 사역에 대하여 최 목사는 기도만이 사역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조하였고, 사변적인 성경적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사역의 기반임을 피력하였다.

결국, 최 목사의 교회 이해와 교회개척 목회를 통해 교회개척을 정리하자면, 교회개척이란 인간의 뜻과 계획으로 진행되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부응하여 동참하는 사역이다. 따라서 교회의 개척은 첫째,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둘째, 개척에 헌신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열정으로 자신을 구비하며, 셋째,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뿌리를 내리는 사역인 것이다. 따라서 최 목사의 교회 이해와 교회개척은 이론적 측면에서는 삼위일체적 복음주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고, 실천적 차원에서는 기도에 기반한 사역의 전개를 보여준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도로 교회를 개척하여 기도를 통해 복음전도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최 목사의 교회개척 사역을 통해 볼 때, 교회개척의 이론적 토대를 이해하고 중요한 사항을 숙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본질을 온전히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를 세워 나간다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자연스럽게 이루게 될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understanding of church and the church planting ministry of Reverend Jashil Choi. Her church planting ministry began with serving local orphans, prompting the necessity to care for spiritual orphans as she watched over. She then planted a church with her son-in-law, Reverend Yonggi Cho based on a firm belief that only the sovereignty of God would enable them to build a church. As she preached the gospel and casted out demons from people in suffering, she reaffirmed the power of Jesus Christ over the devils and found that the cooperation with the Holy Spirit is an indispensable factor for both church planting and church growth.

The church planting of Rev. Choi can be classified as a pioneer model, self-establishing model, or an individual model, due to the fact that she and Rev. Cho bore every burden of planting the church. In the midst of church growth, she faced slander throughout her ministry, but she overcame with fasting prayer. She concluded that all human help is useless, while only the power of prayer resolves all issues that a minister faces. She particularl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prayer and stated that prayer is the only way to initiate church planting. In addition, she noted it was absolutely imperative to remind church planters of the genuine depth and meaning of the gospel.

According to Rev. Choi, church planting is the ministry of following God’s will, since a church planter should heed the call from God and fully commit. Thus, church planting begins with a clear call from God, equipping a church planter with the love and passion of preaching the gospel, and the required obedience to God. In other words, the first step of church planting is seeking God’s will through prayer. Upon receiving such willpower, a church planter will realize the will of God as they hold the essence of church, whose head is Christ and guidance is directed by the Holy Spirit.


Keywords: Reverend Jashil Choi, Ecclesiology, Church Planting, the Essence of Church, the Importance of Prayer,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
키워드: 최자실 목사, 교회론, 교회개척, 교회의 본질, 기도의 중요성, 성령의 인도

I.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최자실 목사의 목회사역을 교회론의 측면에서 조명하여 교회개척의 기반이 되는 신학적 성찰을 제공함으로써 개척목회의 원리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최자실 목사에 대한 연구는 그녀의 삶과 사역을 금식기도와 철야예배의 영성 및 여성 리더십의 측면에서 주로 조명하였고,1) 최근 수행된 임승안의 연구2) 역시 인간의 정신을 중심으로 영적 측면만을 다루었다. 최 목사의 목회에 대한 신학적 조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자서전적 간증집인『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와 금식기도를 주제로 하는 일부 설교집 외에 그녀가 남긴 저술이 많지 않으며, 최 목사 생전의 미디어 기술 수준이 일천하여 육성설교 역시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아직 최자실 목사의 사역에 대한 신학적 점검이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본 연구는 최자실 목사의 사역을 교회론적 측면에서 조명하고, 오늘날의 목회에 시사하는 바를 도출하여 귀감을 삼음으로써 최 목사 관련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그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본 연구는 최자실 목사의 교회 이해와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그녀의 교회개척 사역을 점검하는 선구적인 연구의 특성상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였다. 따라서 최 목사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교회개척과 관련한 소명, 목회철학, 비전을 교회운영 및 갈등과 위기관리의 실제적인 측면과 연결하여 점검함으로써 현대 교회개척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이 연구의 주된 방법론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최 목사의 교회개척의 기반이 되는 신학적 성찰을 점검함으로써 현대목회가 지향해야 할 교회개척의 목표의식과 방향성 및 사역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지침이 되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II. 교회개척론 연구의 역사

최자실 목사의 교회 이해를 조명하기 위한 선행과제는 교회에 대한 이해를 성경적으로 조명하고, 교회개척론 관련 연구의 역사를 점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복음주의적 교회론의 관점과 교회개척론 연구의 흐름 점검은 최 목사의 교회론 이해 및 교회개척의 실제를 조명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것이고, 이에 더하여 교회개척론 연구의 어제와 오늘을 넘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관이 목회의 방향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교회 이해는 교회개척은 물론, 이후 영위할 건전한 목회의 토대가 되는 의의를 지닌다.

1. 교회에 대한 이해3)

구약성경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카할”( )인데, 이는 “회중”(느 5:13; 시 107:32; 렘 26:17; 44:15; 욜 2:16) 혹은 “총회”(신 9:10; 10:4; 18:16)라는 뜻으로서 “불러 모으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할”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에다”( )라는 용어도 사용되었는데 이 역시 모임을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동일하게 “회중”(출 12:3; 민 16:2; 왕상 8:5; 시 111:1; 호 7:12), “만민”(시 7:8), “모임”(시 1:5; 82:1), “무리”(민 26:10; 27:3; 욥 15:4; 잠 5:14) 등으로 번역된다.

신약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의미의 단어는 “슈나고게”(συναγωγή)인데 이는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슌”(σύν)과 “인도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고”(ἄγω)가 합하여 “함께 인도하다”, “함께 오다”라는 뜻을 갖게 된 동사 “슈나고”(συνάγω)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회당”으로 번역되었다. 신약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단어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가 있는데, 이는 “~로, ~로부터”라는 의미의 전치사 “에크”(ἐκκ)와 “불러내다”는 의미의 “칼레오”(καλέω)라는 동사가 합성된 단어로서 죄악 된 세상에서 구별하여 “밖으로 불러낸 구별된 공동체”라는 의미이며, 이는 “부르심을 받은 회중”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 규모나 형태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그리스도)으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모임의 행위에 강조점을 둔 반면, 신약성경은 모임을 구성하는 구성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적 의미에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그의 몸인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엡 1:22-23)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정의에 따르면 교회는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을 뜻하며, 따라서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벧전 2:9), “그리스도의 몸”(엡 1:23), “성령의 전”(고전 3:16; 엡 2:21-22)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의 충만이라는 기능적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에 기반한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과 번성을 통해 실현되었고, 이는 또한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 교회의 성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교회는 지대한 의의를 지닌다.

2. 교회개척론의 시초

현대적인 의미에서 교회개척론은 미국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세계선교대학원 소속 교회성장학 교수인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에 의해 시작되었다. 맥가브란이 1970년에 출간한『교회성장의 이해』(Understanding Church Growth)라는 저서가 교회성장운동을 일으켰고, 이는 또한 교회개척론의 지평을 열었다.4) 뒤를 이어 맥가브란의 제자인 피터 와그너(Peter C. Wagner)가 1979년에 미국 내 민족적 배경을 중심으로 교회성장을 조명하며, 교회개척 전반에 관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교회개척론의 발전이 시작되었다.5) 그러나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맥가브란이 주장한 교회성장운동은 신학적 토대가 일천함과 영적 측면을 간과함을 지적하였고,6) 같은 교회성장론자인 앨런 티펫(Alan R. Tippet) 역시 맥가브란과 와그너의 교회개척론이 양적인 성장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춤으로 인하여 교회 자체의 유기적 성장을 도외시하였다고 일침을 놓았다.7) 또한, 교회성장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적 근거가 성경 본문의 가르침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사례 연구에 치중하였고, 문화와 종교가 다른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접근성이 경직되어 선교적 과제 수행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내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성장론과 더불어 교회개척은 지역사회에 대한 몸 된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 사역에 공헌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9)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개척론은 기존 교회가 새로운 교회의 개척을 책임지고 양육하는 양육모델, 선교사와 같은 교회개척자가 모든 개척의 과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선구자모델, 기존 교회들과 새로운 교회가 연합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동역모델, 지도자 훈련 또는 교회개척운동을 통해 교회를 설립하는 번식모델, 그리고 다양한 인종별로 구분하여 특화하는 종족그룹모델로 교회개척의 형태를 구분하였다.10) 이러한 구분을 활용하여 교회개척의 각 모델별 특징들을 숙지하는 한편, 적합한 모델을 선정하기 위하여 교회개척자의 은사와 비전, 가용자원 및 지역사회에 대한 연구 작업을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3. 국내의 교회개척 관련 연구

국내의 교회개척 관련 연구는 1995년,『월간목회』기고를 통한 이광희의 도시, 신도시, 신도시 주변, 농어촌, 특수지 등 교회의 양태별 조사가 최초이며, 1996년에 노치준이 월간『목회와 신학』의 특집 기고를 통하여 개척교회의 교파별 분포, 연도별 개척현황, 건물의 소유형태, 교역자의 연령과 사례비를 다룬 연구가 선구적이다.11) 이를 발판으로 국내 개신교 각 교단들은 개척교회 활성화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성장연구소는 전통적인 문헌연구를 비롯하여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활용한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를 혼합한 형태의 연구를 수행하여 우리나라 개척교회의 현황 및 특성, 그리고 성장요인을 점검하였다.12) 이후의 연구는 개척교회의 체험 및 사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국내 사례는 분당우리교회의 이찬수,13) 미국 이민교회는 가정교회 운동을 일으킨 휴스턴침례교회의 최영기의 연구가 대표적이다.14)

국내 교회개척론 연구 역시 북미의 교회개척론과 유사하게 기존 교회가 교회개척을 지원하여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기존모델, 아예 기존 교회가 재정은 물론 인력까지 나누어 파송하는 분립모델,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와 같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여 개척하는 기념모델, 한 교회 또는 여러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개척교회를 입양하여 정상화시키는 입양모델, 여러 교회가 협력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협력모델, 그리고 목회자 개인이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는 설립모델로 분류한다.15) 이를 개척의 주체로 분류하여 목회자 또는 특정 교인들이 지원하여 교회를 설립하는 개인에 의한 개척모델과 기존의 분립모델, 지교회모델, 협력모델, 입양모델, 기타 특수한 형태의 개척모델 등 기성교회의 지원에 의한 개척모델로 양분하는 경우도 있다.16) 이와 같이 교회개척론 연구는 교회개척의 다양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만, 개교회의 상황에 부합되는 가장 적합한 모델의 형태는 개척 준비의 과정이 탄탄할수록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개척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과정에서 목회자 자신의 소명과 은사를 점검하는 한편, 설립 멤버와 재정상황을 목회철학과 연계하여 교회의 기반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4. 한국교회의 교회개척 지원 현황

국내외의 교회개척 관련 연구는 모두 남성 목회자의 사례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여성 목회자인 최자실 목사의 소명과 목회철학, 갈등관리 등을 조명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최 목사가 소속하였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여의도순복음 교단의 연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에 수행한 연구17)로 시작하여, 지난 1999년 12월, 여의도순복음교회 내에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교회개척국”을 설치하였고, 2019년 현재 교육과 기도원 담당자와 더불어 수석부목사 두 명 중에 한 사람을 교무 및 교회개척 담당자로 배치하며 교회개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교회개척국은 2019년 현재 23기 교회개척학교를 운영하였으며, 2019년 8월말 부로 507개 교회를 개척하였다. 교회개척국은 홈페이지(http://cp.fgtv.com)를 통하여 전략적 비전, 계획, 개척팀 개발, 복음전도, 소그룹사역, 사역의 기초, 설립예배 등에 대한 지침과 점검사항들을 제공하고 있다.18)

교회개척의 정체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위기 가운데 나사렛성결교단이 최근 교단 차원에서 교회개척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발간하는 등,19) 개교단 차원에서 교회개척을 새로이 조명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http://new.pck.or.kr)는 국내선교부에서 “총회교회개척훈련”을 운영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http://www.gapck.org)은 2000년 11월, “1만교회운동본부”를 출범했다가 2005년 예장 개혁측과의 통합을 통해 1만 교회를 달성한 이후, 2005년 8월부터는 “2만교회운동본부”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http://www.kosin.org)은 2002년 9월, 교단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개척사업을 전개하였고, 2007년 9월에 개최된 제57회 총회를 통해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의하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https://kmc.or.kr)는 2017년 3월, 전명구 감독회장의 공약에 따라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던 미국 북감리교회의 교육, 남감리교회의 영혼구원, 조지 오글(George E. Ogle) 선교사의 사회참여 정신을 통합한 감리교 DNA를 기반으로 “100만 전도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며 교회개척과 성장을 도모하였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성측(http://www.kehc.org)은 2007년 교단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사중복음의 확산과 “3천 교회, 1백만 성결인운동”, “2027년 1천 선교사 파송” 등을 골자로 하는 비전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예성측(http://www.sungkyul.org)은 타 교단에 비하여 다소 늦은 2010년에, 2020년까지 3천 교회(국내 2천 교회, 해외 1천 교회), 1백만 성도를 목표로 삼는 “예성비전 2020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편, 기독교한국침례회(http://www.koreabaptist.or.kr)는 국내선교회(http://www.kmb.or.kr)를 통하여 교회개척 및 국내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III. 최자실 목사의 교회 이해

기독교 신학은 미사여구를 붙여서 설명해야 할 만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핵심으로 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단순히 정리하여,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교회를 정의하고 그 역할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논하는 교회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목회자들의 본질적 이해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폐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바른 교회론과 목회철학을 정립한다면 개척교회일지라도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건전한 신학의 기초 위에 건강한 교회를 세우느냐 하는 것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최 목사의 교회 이해를 살펴봄으로써 오순절 신학을 뛰어넘는 건전한 복음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올바른 교회론의 중요성을 점검하고자 한다.

1. 성부에 대한 절대적 믿음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기독교는 부침을 거듭하였다. 서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하여 선교사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웠고, 겨우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 등의 박해를 겪었으며, 해방을 통해 이를 겨우 극복하는가 했더니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하에서 개인적인 가정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던 최 목사는 처음부터 교회개척을 꿈꾸지는 못했다. 그녀는 신학교 졸업을 앞둔 1958년 초에 오랫동안 별거했던 남편이 찾아와 이혼을 종용하는 와중에 사역지조차 없어서 막막하였다.20)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 중에 최 목사가 출석하였던 성결교회 권사로부터 약수동의 고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아 70여 명의 고아들을 돌보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앞두고 북한이 공산화가 되자 월남한 한 가정에게 방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그 가정의 부인 동생이 불하받은 대조동 땅 3천 평을 고아원 부지로 지원받은 덕분에 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총무일을 보던 이 장로에게 속아 그 땅을 모두 빼앗기는 일을 당한 최 목사는 모든 기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21)

하지만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계속 기도하다가 육적인 고아만 고아가 아니라 영적인 고아를 돌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을 깨달은 그녀는 동네 아이들의 영적 어머니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시작한 사역에 며칠 사이에 스무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모이게 되었고, 곧 60여 명의 아이들이 모이는 규모로 발전하였다.22) 어린이 사역은 본격적인 교회개척의 밑거름이 되었고, 1958년 5월 18일 대조동의 자택 거실에서 당시 전도사였던 그녀의 가족과 조용기 전도사, 이렇게 다섯 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개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가족 외에는 교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매일 10시간 이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최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날들이 쌓이며 기도가 심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며 교회의 영적 기반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갔다. 최 목사가 기도의 과정에서 체득한 성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은 교회개척 사역 가운데 철저한 순종과 헌신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교회 부흥을 통하여 삶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찬 선포로 연결되어 더욱 큰 부흥을 경험하게 하는 선순환의 밑거름을 이루었다.

2. 머리 되신 성자의 권세

최 목사의 사역은 추상적인 구원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이었고,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그러한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되었다.23) 특히 그녀가 교회개척 초기에 경험한 목회사역이 최 목사로 하여금 교회의 머리로서, 목회사역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게 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기독교의 본질, 즉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믿음의 정수를 개척 초기의 영적 대결을 통하여 실감하였다. 일례로 최 목사는 7년 동안 중풍을 앓으며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던 무성이 엄마의 집을 방문하여 쌓여있는 빨래를 대신하고, 설거지를 하여 집안을 정리하였으며, 일곱 살 된 무성이와 두 살 된 어린 딸을 씻기고 돌보는 한편, 신유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 지 나흘 만에 무성이 엄마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게 되었고, 열흘이 더 지나자 집안일을 맡아서 할 수 있었다.24)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통한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1년에 한두 번씩 무성이네 집에서 굿을 하던, 칠성신을 섬기는 무당 노파가 최 목사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도 복음을 담대히 전하자, 어느 날 이 노인은 노름에 빠진 아들을 온전케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노파의 아들이 술에 취한 채로 뒷간에 빠졌을 때에 아무도 의지할 이가 없었던 무당 노파는 최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최 목사가 그 집에 가서 술 취한 아들을 꺼내어 돕는 일이 있은 후에 노인 역시 비로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25) 사흘이 지나서 무당 노파의 집에 똬리를 튼, 40년 묵은 구렁이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꾸짖고 잡아 죽인 후에, 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능력에 대하여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교회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1959년 9월 어느 수요일, 무당이 되기 위한 내림굿을 준비하는 여성이 근처 교회의 부인회 회장인 친구를 통하여 도움을 청해왔다. 비록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던 개척교회의 목회자에 불과했지만, 최 목사는 담대한 마음으로 당시 조용기 전도사와 함께 그 여성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내림굿을 준비하던 그 여성은 독기를 품고 성난 눈초리로 대항하였다. 그래서 당시 최 전도사와 조 전도사 두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자, 이 여성은 목을 길게 빼고 손을 휘저으며 도망가는 모습을 하고는 일본어로 “돌아가자, 돌아가자, 현해탄을 건너 빨리 돌아가자.”라고 소리쳤다.26) 잠시 후, 정신이 든 그 여성은 자신이 일본 유학 중에 남묘호렌게쿄라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었고, 이후 귀국하여 금강산에서 비구니가 되었지만 주지승과 깊은 관계에 빠져 자녀 셋을 낳고 속세로 돌아왔으며,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연주창이라는 병에 들었다고 말했다. 병을 앓던 그녀가 인왕산에 있는 무당을 찾았더니 이제는 그녀가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최 전도사와 조 전도사는 더욱 힘을 내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꾸짖어 남묘호렌게쿄 귀신 들린 여성으로부터 악한 영을 축출하였다. 이후 그녀가 사용하던 무당 섬기는 모든 물건들을 불태워버린 후에 이 여성은 병이 낫게 되었다. 이러한 영적 대결과 승리의 경험들이 지속되며 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더욱 확신하며 교회 공동체에게 임하는 능력의 근원이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3. 성령 공동체

한창 천막교회가 성장하는 와중에 조용기 전도사에게 입대 영장이 나왔는데, 이는 서로 위로하며 마음을 합해 기도하던 최 목사에게는 크나큰 시련이었다. 20일 가량 남은 일정을 앞두고 3년간의 군 복무 기간 동안 강단을 맡을 교역자를 구하려는데 당시 천막교회가 병자들을 고치는 과정에서 교단 내 다른 목회자들의 시기와 의심 어린 비난이 있었으므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말씀 사역은 조 전도사가 담당하고, 전도 사역은 최 전도사가 담당하던 터라 이 일을 놓고 매일 밤마다 철야와 금식으로 기도하던 두 사람에게 부산에서 존 허스톤 선교사가 찾아왔다. 그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천막교회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깨달음을 주셨다는 말로 방문의 첫 운을 뗀 허스톤 선교사는, 조 전도사의 입대 소식을 들은 후에 교회 강단을 맡기로 하였고, 서울 근교 미군 부대에 배치된 조 전도사가 주말마다 외출을 나와 목회를 돕기로 하였다. 성령과의 인격적인 연합을 강조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밑거름이 개척 초기부터 기도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기도를 통한 성령과의 끈끈한 동역에 대한 중요성은 이후 조 전도사가 침례식 이후에 탈장이 되어 육군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게 되며 더욱 강조되었다. 3일 동안 최 목사는 천막교회 교인들과 함께 기도하였고, 그 결과 조 전도사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더욱이 입대한 지 7개월 만에 의병 제대를 하게 되어 천막교회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재적 5백여 명, 출석 3백 명 가량의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27) 이를 체험한 최 목사는 기독론과 성령론을 통합적으로 조명하여 설명하며,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에만 역사하며, 성령이 역사할 때에 개인의 심령이 변화하기 시작한다고 고백하였다.28)

최 목사는 1981년 10월 10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너무 성장하여 지성전을 분리할 때에, 기도 중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막내아들 김성광 목사를 담임으로 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남성전으로 이동하였다. 강남성전은 이후 강남교회로 명칭을 바꾸었고, 강남교회에서 활발한 사역을 지속하던 최 목사는 1989년 11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금식기도원 입당예배를 인도한 이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소천하였다. 2015년 4월 14일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재정난을 겪던 강남교회를 인수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직속 지교회인 여의도순복음 강남교회로 편입시켰다. 이는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 등, 이단들이 인수에 눈독을 들이던 상황 하에서 대승적 차원의 뜻깊은 인수 사례가 되는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으로 성령운동을 전개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통을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는 최 목사의 마지막 사역이 다시 그녀가 개척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마무리되는 마침표가 됨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강남교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개척 목회를 시작했던 그녀의 사역이 성령의 보호하심을 통해 마무리됨을 의미하였다.


IV. 최자실 목사의 교회개척과 시사점

최 목사의 교회 이해는 성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 교회의 머리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체험, 기도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삼위일체적 체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실천적 차원에서 최 목사의 교회개척은 철저히 기도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최 목사의 교회개척은 개척 자금과 인력 확보 및 개척 주체에 따라 교회개척자가 모든 개척의 과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선구자모델, 목회자 개인이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는 설립모델, 그리고 개인에 의한 개척모델에 해당하므로 그녀는 개척 초기 단계부터 목회의 모든 일을 도맡아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개척의 어려움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교회 이해처럼, 그녀의 개척 목회의 사역 역시 믿음과 연단의 상호작용 가운데 기도 사역을 통한 기반이 확고히 마련되어, 결국 세계 최대 교회를 이루는 결실을 맺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의 교회개척은 철저히 기도 사역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29)

1. 교회개척과 기도

최 목사의 교회개척 과정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개척의 모든 과정 중에 경험한 다양한 도전의 과제들을 그녀가 기도로 이겨내었기 때문이다. 최 목사는 대조동에서 천막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그랬지만 이후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무수한 어려움들을 만났다. 개척 3년 만에 교인의 수가 많아져서 서대문으로 교회를 이전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에 천막교회 교인들은 애원과 간청을 통해 이를 반대하였다. 당시 최 전도사와 조 전도사가 이를 사명으로 여기고 강행하자, 일부 교인들은 이번에는 갖가지 모략을 통해 이를 막으려 하였다. 특히 1961년 9월 1일에 샘 토트 목사를 강사로 초빙하고 조 전도사가 통역을 맡았던 천막 대부흥성회 집회 이후 최 전도사와 조 전도사 두 사람은 부흥회가 개최된 장소에 교회를 개척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겠다는 다짐을 한 터라 사명의식을 가지고 개척을 강행하였다. 결국 1961년 10월 15일 부흥회가 개최된 자리에 서대문교회를 세웠고, 이를 순복음부흥회관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재적 교인 5백여 명 중에서 새로운 교회로 따라 나온 교인은 단 두 가정뿐이었고, 교단 선교부 역시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30) 1962년 4월 26일 조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5월 13일에는 교회 명칭을 순복음중앙교회로 변경하였고, 그 무렵 교인 수는 5백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개척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전 교세를 회복한 것이다. 결국 최 목사와 조 목사 두 사람의 기도가 열매를 맺어서, 3년 후인 1964년에는 교인 수가 3천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서대문으로 교회를 옮겨 개척하고 교회가 성장하는 와중에도 참소하는 무리를 통한 시험은 계속되었다. 부인회 임원들이 최 목사에게 전도와 심방에만 집중하고 다른 사역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한편, 조 목사를 찾아가 최 목사의 사역을 비난하며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였다. 때로는 최 목사를 찾아와 젊은 조 목사를 떼어버리고 자신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자고 부추겼다. 그러한 유혹과 참소에 대하여 최 목사는 교회가 부흥한 것은 자신과 조 목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이를 뿌리쳤다. 다행히 조 목사도 그러한 유혹을 알아차림에 따라, 참소와 이간질을 통한 분란은 두 사람이 더욱 중심을 새롭게 하여 함께 기도하며 동역하는 기반으로 승화되었다.

1968년 교인 수가 8천여 명에 이르게 되어 주일예배를 3부로 드리고, 교회 마당에 비닐을 깔고 거기에 교인들이 앉아 스피커로 설교를 듣게 했지만,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에서는 더 이상 밀려드는 교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 목사는 조 목사와 함께 교회를 신축하기 위한 대지를 물색하다가 한 사람의 재직이 추천한 여의도로 시선을 옮겼다. 당시 여의도는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모래섬이었기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불리하였으나 다른 장소들은 장소가 협소하거나 너무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도 중에 최 목사는 자신이나 조 목사로 인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우셔서 세우신다는 깨달음을 얻고 대지를 구입하기로 결정하였다.31) 하지만 공사비는 8억 원이 필요한 데 비하여, 당시 교회의 재정은 공사비의 800분의 1에 불과한 1백만 원뿐이었다. 급기야 조 목사가 미국으로 선교여행을 떠난 이후 최 목사는 강단을 지키며 기도하다가 독감과 몸살로 몸져눕게 되었다. 6개월 동안이나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차만 마시며 거의 금식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이를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전에 강권적으로 시키신 금식기도라고 해석하며 차분히 받아들였다.32) 결국 200여 일 동안 기도를 쌓은 후, 한 달이 지나서 여의도에 교회 신축 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공사 착공은 다음 해 여름에야 시작되었는데, 당회에서 장로 한 사람이 낸, 아파트를 먼저 건축하여 재정을 확보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임에 따라 우선 아파트부터 완공하였다. 그러나 당시 여의도는 아직 제대로 거주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한 탓에 입주자는 10%도 되지 않았고, 따라서 아파트 건축 수입으로 교회를 건축하고자 했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더욱이 중동 오일쇼크의 여파로 달러에 대한 원화의 가격이 하락하여 건축 자재의 가격이 상승하였고, 경기 악화로 교회 헌금도 감소하게 되었다. 수많은 교인들이 불경기로 일자리를 잃으며 헌금이 감소되었고, 은행 역시 불경기 탓에 교회의 신용한도를 줄임으로 인하여 부채의 압박은 더욱 가중되어, 결국 교회의 건축이 완전히 중단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최 목사는 조 목사가 매일 밤, 공사 도중 멈춘 녹슨 쇠기둥을 움켜잡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도 조 목사와 최 목사 사이를 이간질하는 시험 역시 지속되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한편, 최 목사는 조 목사와 1천여 명의 교인들과 함께 교회 건축을 위해 철야기도를 진행하는 중이던 1973년 8월 10일, 일본 하나님의성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수 이후 최 목사는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였는데, 여의도의 약한 지반과 관련한 건축공법에 대한 우려 및 재정난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겪는 중에도 철야기도를 통해 최 목사는 교회 건축에 대한 확신을 얻고 담대히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과로로 쓰러진 그녀는 병상에서 링거를 뽑아버리고 기도원으로 들어가서 기도굴에서 회개기도를 드렸다. 목회 10년 만에 1만여 명이 모인 것을 자신의 공로로 알았던 일, 교회 건축 과정에서 아파트를 먼저 건축하여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한 일, 1968년 대만부흥회에 다녀온 이후에 조 목사가 그녀를 일본과 독일에 선교사로 파송하려 했을 때에 조 목사가 교인 1만 명이 되니까 자신을 쫓아내려 한다고 오해하여 앓아 누워 시험에 들었던 일 등,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회개하였다.33)

기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최 목사는 기도원 건축을 준비했지만 3천 평 땅의 계약금 150만 원을 사기로 잃어버리는 어려움을 또 한 번 경험한 끝에 1972년, 경기도 파주 오산리에 금식기도원을 설립하였다.34) 목회를 포함한 세상만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있음을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만 부르짖은 이후, 1973년 9월 23일 드디어 여의도순복음교회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교인 수는 6년 만에 10만 명을 넘어서며 성장하였다. 최 목사는 교회 건축의 과정을 회고하며 고난을 만났을 때에 사람을 찾아다니며 인간적인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그 시간에 금식하여 간구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라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35)

2. 교회성장과 기도

최 목사의 개척 이후 복음전도를 통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 역시 기도로 점철되었다. 기독교 역사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8-19)는 지상명령(至上命令)을 수행하는 교회개척의 역사이다.36) 따라서 개척교회가 성장함에 있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관건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론을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최 목사는 “살면 전도요, 죽으면 천당”의 자세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동시에 책임이라고 역설하였다.37) 그녀는 성경적 의미에서 복음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로서 그리스도인의 최대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전도를 통하여 영적 성장이 일어나고 큰 상급을 받는다고 강조하였다.38) 하지만 전도란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의 빚을 진 자가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주장하며 이론과 실천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였다.39)

따라서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삼아야 할 것은 단순히 전도의 방법이나 전도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복음의 빚진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예수님을 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도 축제 등의 행사를 통하여 단순히 사람들을 교회 공동체로 데려와서 자리를 채우기만 하고, 이후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능력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도록 섬기고 양육하는 수고를 감당하지 않는 것은 옳은 전도가 아니다. 결국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활용하는 복음전도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굳건한 교회의 정체성 위에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에 온전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 목사는 전도에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신앙의 기반 위에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만이 필요할 뿐이라며 전도의 방법론을 간단히 정리하였다.40)

이는 역으로 말하면 아무리 성경 지식에 대하여 박식하고 신앙생활의 경험이 많다고 해도 개인의 마음 중심이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전도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선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딤후 3:5). 그러므로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자의 마음 자세이다.41) 이를 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확실한 구원의 체험과 말씀 충만, 그리고 성령 충만으로 요약하였다.42) 그러한 마음 자세에 뜨거운 기도와 열심, 인내와 희생, 기대하는 마음과 긍정적 입술의 선포, 그리고 감사와 겸손의 태도가 합쳐질 때에 전도의 열매가 맺혀진다고 그녀는 강조하였다.43)

최 목사는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기도, 특히 금식기도만 한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단언하며 복음전도의 기초를 기도로서 정리하였다.44) 그녀는 전도가 실패하는 이유는 충분한 기도 없이 암송한 단편적 성경 구절만을 가지고 성급히 전도의 현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때로는 전도자의 간증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기도로 마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간증 중에 자칫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개인 자신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45) 따라서 기도를 통해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로 중심을 잡고 전도하는 것이 온전한 자세이다. 더욱이 최 목사는 금식기도에 대하여도 단순히 음식만 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인간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만 매어 달리는 것이 온전한 금식기도라고 지적하였다.46) 또한, 그녀는 전도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아직 신앙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새가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하되, 이를 지원하고 악한 세력의 궤계를 방어하는 수단으로서도 중보기도를 활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장기적 차원의 복음전도에 매진할 것을 권면하였다.47)


V. 나가는 말

최 목사의 교회 이해와 교회개척은 이론적 측면에서는 삼위일체적 복음주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고, 실천적 차원에서는 기도에 기반한 사역의 전개를 보여준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도로 교회를 개척하여 기도를 통해 복음전도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또한, 최 목사의 사역은 교육목회의 다섯 가지 커리큘럼 모두를 골고루 반영하며 균형을 이루는데, 그 근간은 철저한 기도이다. 일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타인을 향한 영혼구령의 열정으로 승화된 면은 코이노니아, 고아들을 돌보는 사역으로 시작하여 영적인 고아, 잃은 양들을 찾았던 그녀의 사역은 디아코니아,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 것은 케리그마와 디다케, 항상 기도원과 예배의 자리를 찾았던 모습은 레이투르기아를 반영한다.48)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지체 된 성도들로 이루어지며, 지체 되었다는 말은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성과 상호책임성을 나타낸다. 몸 전체는 성령이라는 공통의 생명에 의해 활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성령 공동체이며(엡 4:4),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개척은 인간의 뜻과 계획으로 진행되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부응하여 동참하는 사역이다. 요약하면, 교회의 개척은 첫째,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둘째, 개척에 헌신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구비하며, 셋째,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뿌리를 내리는 사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개척의 이론적 토대를 이해하고 중요한 사항을 숙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본질을 온전히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자연스럽게 이루게 된다.

최 목사는 교회개척의 과정에서 무수한 어려움을 경험하며 하나님 말씀의 기반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초점을 맞춘 것은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방편으로서의 금식기도이다. 하지만 최 목사는 단순히 음식을 금하는 외적 행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경계하며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강조하였다. 교회개척뿐만 아니라 이후 교회를 꾸려가는 목회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확고히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최 목사는 조용기 목사와 함께 개척한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어려운 시험과 환란이 많았고 사탄이 절망, 낙심, 실의, 가난과 질병으로 대적했지만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를 물리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룰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49)

결국 기도를 통해 교회를 개척하고, 기도를 통해 개척 과정의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고, 기도를 통하여 오늘날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기반을 이룬 것이다. 최 목사는 금식기도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하였는데, 특히 공적인 차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신음할 때에 하나님께 매달려 금식하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였음을 지적하였다.50) 그녀는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00년 만에 눈부신 교회의 성장을 경험하였음을 지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교회 안에 자리 잡은 교권다툼, 시기와 질투 분열과 갈등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운동이 필요하고 그 밑거름이 바로 금식기도라고 역설하였다.51) 또한, 한국교회 모든 교인들이 함께 기도하면 민족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임으로써 그러한 공적 문제의 해결은 사적 차원의 기도에 근거한 것임을 증명하였다.52) 최 목사의 그러한 일침은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조언이다.

100만 명 이상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 중, 24%는 목회자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으며, 19%는 다른 교인들에 대한 불만이었다.53) 43%의 가나안 성도들이 기성교회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고 답한 것인데, 가나안 교인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성교회가 회복되는 일이 급선무이고, 또한 기성교회와 차별화된 개척교회들이 이들의 다양한 필요를 흡수해야 할 것이다.54) 그 첫 걸음은 하나님 말씀을 강조하는 목회 원리의 회복이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하며 시대적 필요를 식별하는 것이 그다음 단계가 된다.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는 방향성을 상실하여 허공을 치지 않으며(고전 9:26), 그러한 말씀과 기도의 균형을 통해 지역사회를 섬기고 더 나아가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는 정체되거나 도태되지 않는다. 그러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불만이 아닌, 기쁨과 감사, 그리고 영적 만족감을 제공하며 부흥할 것이다(행 9:31).


Notes
3) 교회의 개념에 대한 정의는 최성훈,『성경으로 본 이단이야기』(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8), 55-57에서 인용 및 참조하였다. 교회의 개념에 대하여 심도 깊은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본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간단히 성경적 교회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에 국한한다.
13) 이찬수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에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리수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것과 기다림이라는 두 가지 테스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러한 신앙고백을 자신뿐만 아니라 창립멤버들에게도 적용하여 섬김과 헌신을 먼저 요구하였고, 이에 더하여 고학력 중산층 인구가 모여 사는 분당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상식이 통하는 목회,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목회를 영위하여 건강한 교회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Cf. 이찬수,『세상에 없는 것』(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3), 58.
18) 교회개척학교 커리큘럼은 교회개척 준비 10강, 개척현장의 이해 17강, 목회개발 17강, 행정실무 7강, 개척성공 사례발표 8강 등 총 59강 및 부흥성장 교회탐방 3회로 구성된다. 교회개척 준비에서는 교회개척의 원리와 전략, 개척자의 자세, 지역사회 분석, 개척교회의 성장 동력, 교단헌법, 개척비전 세우기(조별토론), 탐방희망교회 선정을 다루며, 개척현장의 이해는 지방회와 개척목회자, 교회개척 해결방안, 새가족 정착 전략, 개척과 소그룹, 이단 상담 훈련의 필요성과 이단 대처법, 특수목회, 개척교회 교회음향 설치, 전도훈련학교 등으로 구성된다. 목회개발 강의는 개척교회의 경영과 리더십, 목회자의 구약 및 신약 성경 연구, 설교개발, 인문학, 목회자의 재정, 재무관리, 개척목회와 상담, 목회자의 언어, 스피치, 개척교회와 시니어 사역 등의 과목을 포함하고, 개척행정실무는 교회 홈페이지 운영, 교회건축, 부동산 실무, 개척행정 실무 등을 다룬다. 교회개척의 순서는 우선 개척지의 토지와 건물 선정이 완료되면 교회개척 신청서, (교회개척국 담당자) 현지답사 신청서, 자필이력서, 교회개척 준비계획서, 교회개척 동의서, 지적도, 공시지가 확인원, 토지이용 계획확인원,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등기부등본(토지, 건물), 해당 개척지 사진, 차용증(교회개척국 지원금에 대한) 등의 구비서류를 제출한다. 제출된 서류는 매주 열리는 개척분과위원회에서 심의하여 통과될 경우, 교역자 1명, 장로 1명 이상이 참가하는 답사 일정을 결정한다. 개척분과위원회의 담당자들은 개척자, 부동산 임대인, 중개인 등과 함께 현장을 답사하여 설정과 시설물 등 개척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하여 협의하고 문제가 없을 시에 계약을 결정한다. 본계약을 체결할 때에 지정 법무사를 통하여 지원금에 대하여 설정하고, 지방회와 협의하여 설립일정 및 진행사항을 확정한다.
21) Ibid., 150-61.
22) Ibid., 163-66.
25) Ibid., 185-86.
26) Ibid., 257-58.
27) Ibid., 295.
29) 최문홍은 최자실 목사의 성령운동 사역 전체의 원동력이 최 목사의 강력한 기도 사역이라고 단언하였다. Cf. 최문홍, “한국교회와 성령운동,”『성령, 기도, 그리고 여성』(군포: 한세대학교출판부, 2018), 219.
31) Ibid., 343.
32) Ibid., 344.
33) Ibid., 355.
35) Ibid., 39.
38) Ibid., 16-24.
39) Ibid., 24-26, 81.
40) Ibid., 85.
41) Ibid., 63.
42) Ibid., 64-73.
43) Ibid., 73-83.
44) Ibid., 102.
45) Ibid., 105-106.
51) Ibid., 45-47.
54) “안 나가”를 거꾸로 발음한 “가나안” 교인이란 목회자의 독재적 운영, 재정의 불투명성 등, 기성교회의 문제로 인하여 교회를 떠난 교인을 의미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한세대학교 영산신학연구소에서 주최한 제33회 영산신학세미나(2019년 11월 8일)에서 발표한 원고를 다듬은 것이며, 2018년도 한세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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