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No. 0, pp.303-329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19
Received 09 Apr 2019 Revised 07 May 2019 Accepted 13 May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06.48.303

21세기 기독교윤리를 위한 사회생태적 창조정의 구상
박용범

A Conception of Socioecological Creation Justice for Christian Ethics in the 21st Century
Park, Yongbum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 (ybpark@htus.ac.kr)

초록

물질문명의 풍요에 젖어 정작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의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인류의 위기는 생태계의 붕괴라고 하는 글로벌 규모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급격한 온난화에 따른 기후 불안정의 위기에 직면하여 그동안 인류는 인간을 그 중심에 두고 자신들의 주변 환경의 오염과 자원의 고갈에 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사회정의적인 차원에서의 생태정의를 구축하는 데 강조점을 두어 왔다. 이는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따른 문명화와 편리함을 추구해 가는 데 일종의 걸림돌 역할을 하는 일에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며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정작 창조신학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 운행에 의한 창조세계 전체의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으로 강조하는 면에서는 부족했다. 본 논문은 이에 대한 21세기의 기독교윤리적인 하나의 응답으로 만물을 하나님의 창조 중심적인 의식으로 대하는 사회생태적 창조정의를 구상하여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라스무센(Larry L. Rasmussen)과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sustainable future)를 향한 21세기 기독교윤리학이 앞으로 나아갈 하나의 방향이기도 하다.

Abstract

The crisis of humanity drifting without proper consciousness due to the abundance of material civilization is heading toward a global collapse of the ecosystem. Faced with the recent crisis of climate instability that stems from rapid global warming, humankind has been at the center of it. Humans have been expressing serious concern about pollution and resource depletion of human environment, and are placing emphasis on building ecological justice on the level of social justice. This was an attempt to see human as a member of the ecosystem and feel a sense of crisis due to the fact that ecological destruction lies in the pursuit of civilization and convenience that followed the continued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However, in terms of Creation Theology, ecological justice did not properly emphasize God’s providence of history for the whole creation. In response to this, this paper puts forward socioecological creation justice which treats everything with God’s creation-centered consciousness as an alternative Christian ethics in the 21st century. This is also a sound direction for the 21st century Christian ethics toward a sustainable future that many scholars, including Larry L. Rasmussen and Alister E. McGrath, continue to assert.


Keywords: Social Justice, Ecological Justice, Creation Justice, Creation-Centered Consciousness, Sustainable Future, Integral Ecology, Socioecological Praxis Ethics
키워드: 사회정의, 생태정의, 창조정의, 창조 중심적 의식, 지속가능한 미래, 통합적 생태학, 사회 생태 실천윤리

I. 들어가는 말

지구 공동체를 위협하는 생태계 파괴의 위기는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여 상생과 공존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윤리의식을 요청한다. 생태계의 문제가 지구 전체의 이슈가 된 것은 그 파괴의 규모와 영향의 정도가 전 세계적으로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해법 또한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자각과 일치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사용한 플라스틱이 태평양 한가운데 거대한 규모로 섬들을 이루거나 또는 미세한 조각으로 분해되어 지구상의 모든 어패류에 유입되고 있으며,1)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과소비와 오염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예측을 불허하는 기록적인 폭염과 초특급 규모의 태풍, 그리고 각종 기후변화와 기후 불안정으로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지구 공동체가 더 이상 인간중심적이거나 또는 특정한 국가나 이념을 중심으로 하여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일종의 깨우침이기도 하며, 지구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두가 경각심과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여 반드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지구 전체가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실은 만일 지구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현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체의 임박한 종말을 예견할 수밖에 없다.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의 온난화는 인류가 해를 거듭할수록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이전과는 다른 기후의 이상 징후들을 유발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여 생존하기 위한 인류의 대응책은 여전히 과학기술의 진보를 추구하며 에너지와 자원의 대량 생산과 소비에 의존하는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쉬운 실정이다. 만일 기후변화가 점점 악화된다면 지구에 거주하는 전체 생물군(biota)의 생존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고 다수의 생물종은 결국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 여러 작용에 의해 멸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인류도 그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인류는 현재 물질문명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를 맞이하여 근대 자본주의의 선도자라고 할 수 있는 서구 문명의 물질 중심의 가치체계와 소비지향적 경제구조,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윤리의식에 대한 회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 구도는 지구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상업적인 공동의 영역으로 만들어 개인이나 단체로 하여금 원거리에 위치한 자원까지도 착취하게 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러한 구조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인류의 미래 세대와 다른 생물종에 대한 책임을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게 할 뿐더러 때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만든다.2)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와 같은 문제들은 어떤 특정한 지역이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에 모든 자연과 인류, 인류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반드시 함께 모색해야만 한다.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이미 1970년대 후반에 이 세 영역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들 각자를 새로운 생활양식(a new mode of life)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전체의 일부로 여기는 관계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3)

생태학은 지구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며, 역동적이고, 관계적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해에 기초한다. 이는 서구 근대 과학혁명의 사상적인 배경을 제공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주체와 객체를 이원화하여 구별하는 도식과는 달리 생태계를 하나의 체계로 인정한다고 할 때 모든 존재를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현식은 근대의 보편적인 휴머니즘의 오만함에 대항하여 반휴머니즘(anti-humanism)과의 긴장과 모순을 통한 포스트휴먼(the posthuman) 시대의 상호 변혁적인 역동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한 생태계 파괴의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좌표를 제시한다.4) 그의 분석에 의하면 포스트휴먼적 담론은 인간과 자연,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연계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며,5) 이는 생태적인 담론들의 역사적인 발전이 인간중심주의에서 생태중심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6) 그는 또한 생태 담론의 대표적인 세 가지 유형인 심층생태학(deep ecology),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 그리고 생태여성학(ecofeminism)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각각의 특징과 한계점을 고찰하고 이들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비판적인 포스트휴먼 생태 담론으로 에코페미니즘을 제시한다.

20세기에 접어들어 기독교윤리가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에서의 정의 실현과 관련한 인종과 성의 평등, 인간성 소외 등의 문제를 주된 관심으로 하는 사회정의(social justice)적인 차원에서의 주제에 집중하던 흐름이, 20세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각종 오염과 자원 남용에 의한 지구 생태 공동체의 구성원인 인간의 역할을 총체적인 관계 측면에서 인식하는 생태정의(ecological justice)적인 관점에 주목을 하게 되었다.7) 이제 21세기 기독교윤리학의 과제는 이를 넘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중심이 되는 창조정의(creation justice)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이룰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본 논문의 논지이다. 여기에서 “생태”(eco)나 “환경”(environment)이라는 단어 대신 “창조”(cre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창조신학을 기반으로 하되 창조 이후의 구속과 유지(redeem and sustain)의 사역을 지속하고 있는 창조주의 창조 질서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책임성과 역할을 고려하는 겸손한 자각에 강조점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최근 미국의 여러 대표적인 교단이나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한국의 교회적인 상황에서 적극 활용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며,8) 이를 위해 그 중간 단계로 사회윤리와 생태윤리가 만나 창조중심적인 의식(creation-centered consciousness)을 기초로 하는 사회생태윤리적인(socioecological) 아이디어가 기여할 것으로 본다.

본 논문에서는 첫 번째로 생태계 파괴의 문제를 단순한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간의 가치관과 의식, 그리고 신념에 의해 주로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을 논증하여 기술할 것이며, 두 번째로는 필수적이고도 통전적인 생태학(integral and wholistic ecology)으로서의 사회생태 실천윤리(socioecological praxis ethics)를 소개하고 이를 통한 창조중심적인 의식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세 번째로 지구 공동체(Earth community), 지구 윤리(Earth ethics)와 창조정의를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래리 라스무센(Larry Rasmussen)의 연구와, 생태계의 위기 상황에서 다시금 세계에 대한 창조신학적인 차원에서의 정의 회복을 강조하는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의 연구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본 논문은 21세기의 기독교윤리가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창조정의로 그 강조점을 전환할 필요성에 대해 제안하며 교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 실천 프로그램을 나가는 말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할 것이다.


II. 생태계 위기의 배경에 대한 고찰

근대의 과학기술을 개척한 서구의 인간중심적이고, 지배적이며, 소수에 의해 조정되는 산업사회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나 인종, 그리고 생물군을 지배하고, 정복하며, 그리고 착취해 왔다. 그 저변에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관점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승자독식에 의한 경쟁의 이분법과 갈등의 관계로 보는 폭력적인 이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물질적인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영적인 가치는 무시되고 배제되어 왔으며, 지속적으로 자연 세계를 파괴하고 개발과 진보라는 명목하에 지구상의 생명을 멸절시켜 왔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지적한 대로 결과적으로 이제 서구의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이데올로기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비판을 받으며 점차 거부되고 있으며, 새로운 가치체계를 수립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활발한 논의들이 부상하고 있다.9)

생태계 파괴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이나 자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최첨단의 기술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앞서 예시한 플라스틱에 의한 오염의 광범위함을 보더라도 글로벌 규모로 이미 진행된 현재의 상황을 회복시키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더구나 상업주의 경제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현재의 자본구조로는 어느 개인이나 국가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단기간에 어떤 결과물을 얻지 못하더라도 정의 차원에서 생태계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자각할 수 있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의식과 관점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즉, 다시 말해 우리의 생명에 대한 가치와 태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지극히 중대하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사고와 삶의 가치관에 대한 교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기독교윤리학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기를 의도한다면 최근의 정의와 연관된 이슈들과 관련한 사회정치적인 상황들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실제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의 상황에서 일부 교회가 제시하는 윤리와 실천이 사회와 정치 상황의 실제적인 삶과 분리되어 온 점을 주목할 때 기독교윤리학의 재편성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건설적인 작업은 향후 21세기의 기독교윤리학이 전반적으로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또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생태계의 문제에 대한 책임적인 존재로 헌신하도록 정의로운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이에 대해 창조와 관련하여 라스무센은 지금까지의 사회정의를 위한 인류의 노력이 인간 공동체를 제외한 다른 생명의 공동체나 자연계의 무생물을 고려하여 진행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일차적으로 인간의 웰빙만을 위한 사회정의였음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고찰하고 있다.10) 그러한 정의에 대한 편협한 시각은 인류의 생존 자체의 기초적인 단위가 인간 사회임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명백히 옳지 않은 판단이라고 그는 지적하며, 대신 동일한 창조주의 피조물인 지구의 토양, 공기, 에너지, 물 등이 고려되어야 할 진정한 일차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지구의 이러한 공유재가 없이는 인간의 모든 재화 또한 존재할 수 없음을 언급한다.11)

물론 라스무센의 이러한 지적은 기존의 기독교가 감당해온 사회정의와 관련한 이슈들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인종, 계급, 성, 그리고 문화적인 분석을 통해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의 해결을 시도해온 해방신학을 비롯한 지금까지 기독교의 신학적이고 사회윤리적인 방법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아울러 그는 제안하기를 이제는 이러한 고귀한 선물을 사회정의와 생태정의, 나아가 창조정의와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실제적으로 적용해 가자는 것이다.12)

반세기 전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어느 한 곳에서의 부정의는 모든 곳에서의 정의를 위협한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상호관계성에 놓여 있으며 단일한 운명체로 묶여 있다. 한 가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무엇이든 모두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창조세계에 존재하는 모두의 상호연관성과 의존성을 강조하며 시민 혁명을 주도했다.13) 창조정의는 이처럼 모든 피조물이 상호연결된(interconnected) 존재로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통찰력에 그 출발점이 있으며, 이러한 면에서 기존의 창조신학과는 구별된다. 킹이 “버밍햄 형무소에서의 편지”에서 기술한 내용은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신자들이 그들의 양심에 대해 그들의 본래적인 상호연관성을 인식하기를 요청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공동의 운명에 함께 묶여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장벽들을 넘어 차별과 제도적인 인종주의를 타파하자는 그의 주장은 수많은 흑인과 백인들로 하여금 버밍햄으로 찾아와 그들의 상호연결성을 증명하며 응답하도록 했다. 생태계 위기의 시기에 직면한 우리가 창조정의를 새로운 시대의 기독교윤리로 정립하려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인류와 비인류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창조하고 여전히 함께 유지하고 있는 창조주의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섭리에 더욱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III. 통합적 생태학(Integral Ecology)14)으로서의 사회생태 실천윤리(Socioecological Praxis Ethics)

정의와 관련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연구하며 학문적인 방향성을 구축해 가는 윤리학은 바른 행동과 실천을 위한 원칙들을 수립하여 우리에게 제시하는 학문이다. 존 하트(John Hart)에 의하면 생태학의 관점에서 이 원칙들은 “상호관계하며, 상호의존하고, 세대를 넘어서며(intergenerational), 그리고 통합적인 공동체(integral community)인” 지구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생물군, 그리고 인류 사회의 “정의와 공동선(common good)에서 기인한 사고와 행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다.15) 그에 의하면 윤리학은 “타협할 수 없거나 절대적인 핵심적인 가치들”과, 이전에는 접하거나 고려되지 않았지만 현재에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안적인 아이디어나 상황들에 직면했을 때 협상의 여지가 있는 “파생된 가치들”을 포함한다.16)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주장하는 통합적인 생태학은 환경과 경제,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17), 문화생태학(cultural ecology), 일상의 생태학(ecology of daily life), 공동선의 원칙(the principle of the common good), 그리고 세대 간의 정의(justice between the generations)를 기반으로 하여 정교하게 형성되는 것이다.18) 이러한 그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사회생태 실천윤리로 이어진다.

사회생태 실천윤리는 하트가 2013년도에 출판한 Cosmic Commons: Spirit, Science, & Space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이후로 발전시켜 가고 있는 비교적 신생 개념으로 “컨텍스트 내의 윤리(ethics-in-context)”라고 할 수 있다.19) 그것은 공동선을 전망하면서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하는데, 하트에 의하면 사회생태 실천윤리는 사회, 생태, 그리고 환경의 웰빙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음과 같은 네 단계의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특정한 컨텍스트에 대한 사회생태적 분석(socioecological analy-sis)으로, 인종적(racially)으로, 성적(sexually)으로, 민족적(ethnically)으로, 종교적(religiously)으로, 경제적(economically)으로, 그리고 정치적(po-litically)으로 억압받는 인류와 멸종의 위기에 처한 생물종들, 그리고 위협을 받는 지구와 그곳에 거하는 생물군 개체들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위의 분석과 관련한 사회적이고 영적인 반영(social and spiritual reÀection)으로, 다양한 컨텍스트에서의 인간과 다른 생물군, 그리고 지구를 해롭게 하는 일을 조장하거나 허용하는 정의롭지 못한 컨텍스트적인 편재한 관점들에 대항하는 정의의 원리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회적인 비전(social vision)으로 이러한 모순되고 상반되는 컨텍스트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가치들에 상응하는 사회생태적인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사회적인 프로젝트(social project)로 새로운 컨텍스트로부터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여 사회생태적인 비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20)

이와 같은 단계로 구성되는 사회생태 실천윤리는 하트에 의하면 컨텍스트에 표현된 하나의 의식과 사회생태적인 변혁과 보존을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다. 이것은 지구와 모든 생물들의 웰빙을 동반한 인간 공동체에서의 사회정의의 통합이라고 그는 표현한다.21) 하트의 이러한 접근법은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생태계 붕괴의 위협에 직면한 지구 공동체의 위기를 단지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남용이 가져온 물리적인 세계의 파멸과 붕괴의 문제로만 보기보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한 고도의 산업화에 따른 인간성 소외의 문제와 경제적인 불평등에 따른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사회윤리적인 이슈”로 보고 있는 것이다.22)

하트는 또한 신적인 창조성의 공유재(commons)로서의 지구에 대한 비전과 모든 생물과 무생물 간의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인간의 반응과 관련한 주목할 만한 비전을 제공한다. 하트는 성례전(sacrament)을 정의하기를 “인간을 신적 현존과 참여의 고양된 인식에 의해 스며든 은혜로 채워진 순간”으로 이끄는 일종의 “창조의 영의 표식”이라고 규정한다.23) 그러므로 그에 의하면 “자연의 성례전은 동시에 인간을 성령과 생물 및 무생물 창조와 관계를 맺는 자리로 인도하는 자연에서의 ‘장소, 사건들, 혹은 피조물’”이라고 표현한다.24) 이런 의미에서 지구는 은혜의 도구인 성례전적 공유재(sacramental commons)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며, 이것은 이후 그의 연구에서 지구 밖의 존재들에 대한 관심인 우주적 공유재(cosmic commons)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25) 하트의 이러한 성례전에 대한 집중은 창조세계의 창조주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창조정의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것이다.

하트는 성례전적 공유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통해 창조세계를 더욱 책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적인 지배의 입장과 구도에서 벗어나 “창조세계와의 관계적 상호의존성으로의 의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6) 이를 위해 우주에 존재하는 생물계뿐만 아니라 무생물계의 모든 구성원에게서 추구해야 할 “내재적 가치”에 대해 그는 강조하고 있으며,27) 그들을 단지 인간을 위한 도구적인 용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적인 측면28)에서의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접근법”을 개발하자고 하트는 제안한다. 그의 성례전적인 공유재와 관련하여 이의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 중심적인 의식”은 이처럼 과학과 철학, 성서와 역사신학, 사회학과 정치학, 그리고 다양한 종교 전통 등을 통합하면서도,29) 성서의 창조신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철저히 창조주 하나님과 관련시켜 전개되는 기독교윤리적인 중점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공유재의 성례전적인 성격의 근거에 대해 설명하면서 “만일 인간이 공유재를 성령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성례전적인 것”으로 본다면, 생태계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이를 더욱 절실한 책임감을 갖고 돌봐야 하고, 그 안에서 성령, 즉 창조주의 표식과 흔적을 찾아야 하며, 나아가 “그 모든 산물을 창조세계 전체에 정의롭게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0)

사실 이러한 사상은 최근에 새롭게 연구된 내용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31) 성서의 시작이 물질계의 기원을 의미하는 창세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우주에 대한 기독교적인 전통의 기원은 결코 성과 속의 이분법을 강조하거나 “저 세상”만을 추구하는 내세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32)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성례전적 공유재의 관점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바라본다면 그동안 인간 사회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전개되어 온 사회정의와 관련한 이슈가 생태정의의 차원을 넘어 창조정의의 영역으로 전환되어 확장될 수 있음을 우리는 전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하트가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있는 우주적 공유재의 개념은 어떤 통합적인 패러다임과 지역적인 관심을 결코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열려 있는 패러다임적인 접근법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33) 그에 의하면 우주적 공유재는 “상호연관적이고, 그러면서도 서로 구별되며, 다양한 우주의 통합적 존재(integral being)34)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공간적, 지역적인 컨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35) 우주적 공유재에 관한 그의 이해는 이처럼 생명의 영인 우주의 영을 통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신성한 상호연관성을 나타내며 통합적 생태학으로서의 기반을 형성해 간다.

이처럼 사회생태 실천윤리의 개념을 확립해 가면서 박용범의 지적에 의하면 하트는 “사회생태학과 사회생태적,36) 그리고 실천윤리(praxis ethics)37)라는 용어들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사회적 상호작용은 어느 한 분야에만 치우쳐서 고립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히 서로의 관계 가운데 발생한다는 점을 요약하여 강조한다.38) 이러한 관계성에 의해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웰빙, 생물권의 웰빙, 그리고 [물리적 세계] 전체의 웰빙에 관심을 두고 창조 보존을 향한 정의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회생태 실천윤리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트가 규정하고 있는 점에 그는 주목한다.39) 그리하여 사회생태 실천윤리는 사회와 지구의 웰빙을 위해 인간의 정의롭고 책임적인 실천을 통한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대화체로서의 통합적이고도 역동적인 이론과 실천을 제공”하면서40) 궁극적으로 이러한 조망을 넘어 창조정의로 향하게 한다. 또한 이것은 “관계적이고, 이론적이며, 은유적인 기초”를 인간의 정의로운 행위에 제공하는데, 이는 인간 공동체와 모든 생물권을 위한 생태정의, 그리고 지구의 생태 웰빙을 위한 사회정의 실현을 돕는 일이라고 하트는 강조한다.41) 이를 통해 그는 사회정의에서 생태정의로, 나아가 점차 창조정의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톨릭의 전통들 가운데 역사적으로 생태신학적인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제공해 온 성례전적 공유재와 그로부터 출발하여 하트가 전개하고 있는 우주적 공유재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박용범에 의하면 하트의 사회생태 실천윤리는 “생태, 정의, 영성, 실천, 대화 등의 개념을 하나로 아우르며 생태윤리의 실천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서의 사회학적인 분석과 역동성을 더하는 독특한 기독교윤리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2)

이러한 학문적인 배경과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태 실천윤리라는 용어가 아직은 생소하고 다양한 윤리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한계성이 있음을 인정하며 이는 향후 해결해야 할 연구과제이다. 더구나 사회적인 배경과 문화적인 차이를 초월하여 특정한 컨텍스트에서 일반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윤리적인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을 통하여 보편적인 학문성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IV. 사회정의와 생태정의에서 창조정의로

라스무센은 미국 인디언을 비롯한 다양한 원주민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선언문들을 연구하는 중에 그들의 의견들 가운데 존재하는 몇 가지의 일치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지는 그들의 함축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선언문에 “신성한(sacred)”, “신성함(sacredness)”, 그리고 “성스러움(sanctity)” 등의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점은 창조세계의 각 피조물에 대한 권리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43) 그는 특히 “모든 창조물은 이 성스러운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생존할 권리가 있으며 창조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거주하게 하신 곳에서 그들의 가족들을 양육할 권리가 있다.”는 미국인디언연구소(American Indian Institute)의 선언문에 주목하여 그들이 이제는 지금까지의 사회정의와 생태정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창조정의에 대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에게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도록 만들었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정의에 입각한 생태정의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인가? 나아가 이것은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들이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는 현세대의 실태를 표현하는 단어인 인류세(Anthropocene)를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만일 사회정의에 대한 그동안의 노력이 지나치게 인간만을 위한 것이 되어 왔다고 한다면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변화가 요청된다. 또한 생태계의 한 구성 요소로 인간의 위치를 간주하여 시스템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생태정의의 관점에도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인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면 무엇인가 획기적인 변화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스무센이 인용했듯이 매리 에블린 터커(Mary Evelyn Tucker)의 말처럼 “우리의 모든 관심은 바로 이곳이 신성한 우주라는 것이다. 생태학이 없는 우주학은 공허하다. 우리의 미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44) 인류를 중심으로 한 문명화의 과정에 심화되어 가는 급격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전체의 불안정은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상이라는 점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멸이 아닌 상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잡이로서의 새로운 21세기의 기독교윤리가 요청된다.

라스무센은 또한 인류세의 시대에 정의에 대한 하나의 시금석으로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과연 어떠한 규범과 관례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연의 상황 아래에서 미래의 인류와 다른 생명체의 세대를 초월한 사랑과 정의를 제시할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규범과 관례가 다음의 일들을 정의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수월하게 구별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서식지의 협소화, 생물종의 감소, 토양의 유실, 조작된 유전자 풀(pool), 어장의 붕괴, 바다의 산패, 환경 관련 질병들, 산림의 쇠퇴, 빙하가 녹는 일, 삼각주의 황폐화, 해충과 질병의 이동, 해수면 상승, 환경 난민들, 생물종 다양성의 상실, 습지의 감소와 산호초의 붕괴, 온실가스의 증가, 표토 온도의 상승, 더 강력한 태풍과 홍수, 심화되는 기근, 기후의 불안정 등이다.45)

그는 이어서 비록 이러한 생태계 파괴의 이슈들이나 문제들이 심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현재의 위치에서 법리학적으로나 현대의 도덕률을 기준으로 하여 자연의 파괴에 대하여 그 자체로 정의에 대한 요구를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즉, 라스무센은 여전히 유일하게 인간의 생명만이 정의에 대한 법적인 보호 가운데 놓여 있음을 구별하고 있다.46) 이는 윤리적인 시각에서 생태정의를 수립하는 일이 생태계의 조화를 강조하거나 인간의 책임성을 부각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한계성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적인 창조신학과 기독교윤리로 환원하여 성서의 창세기에 기초한 청지기와 정원사로서의 인간의 책임적인 역할과 창조주에 대한 섬김과 봉사로서의 창조정의에 대한 강조의 필요성을 다시금 피력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하트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가 다른 우주진(宇宙塵, stardust)이나 별들과 함께 우주의 신성함(sacrality)을 태초부터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의 창조가 성령의 사역이라면 우주에 스며든 내재하는 신성성(sacredness)은 우주를 성령의 전(temple)으로 이해하는 종교적인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47) 그러므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창조 사역에 있어 성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며, 이에 따라 하트는 생물과 무생물 모두가 서로 관계되어 있고 우주적인 의미에서 확장된 가족으로서의 모든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48) 그는 이와 관련하여 라코타(Lakota)를 비롯한 아메리칸 인디언 지도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미타쿠예 오야신(Mitakuye Oyasin)”49)이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있다. 하트는 또한 열왕기상 8:2750)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를 인용하여 성령의 전으로서의 우주가 아닌 오히려 성령 안에 존재하는 우주진으로서의 창조세계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창조정의를 위한 성령의 포괄적이고도 광범위한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51)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자신의 책 The Reenchantment of Nature: The Denial of Religion and the Ecological Crisis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자연 세계와의 교감을 잃어 온 점과 거기에 우리 자신의 세상을 건설해 온 점에 대해 한탄한다.52) 그는 하나님의 창조로서의 자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되찾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일이 중요하며, 믿음을 갖고 같은 어조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면서 창조정의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맥그라스는 창조세계가 존중되고 갱신되는 미래의 변화를 추구하는데,53)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현재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여 그들에게 창조의 영광을 보여주는 일이며, 만일 자연의 경이로움을 잃어가고 있다면(disenchanted) 다시금 그 놀라움을 회복하는 것(reenchantment)이 창조세계에 대한 바른 태도라고 강조한다.54)

맥그라스는 또한 린 화이트(Lynn White, Jr.)의 생태계 파괴의 주요 책임을 기독교 신앙에 전가하는 주장에 대응하여 계몽주의 이후 서구 문화의 무책임한 지배주의에서 그 주요 원인을 찾고 있다. 이와 비슷한 논점에서 세이드 후세인 나스르(Seyyed Hossein Nasr)도 서구 사상의 역사적인 기원을 묘사하면서 자연이 종교의 도움을 통해 인간의 사상에서 다시금 신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55) 이를 통해 그는 인간만이 아닌 자연계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며 이는 또한 생태계 전체를 보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처럼 맥그라스나 나스르는 비슷한 관점에서 창조세계에서의 신성성과 정의로움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창조세계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또한 만물에 스며든 성령의 현존을 언급하면서 전통적인 창조 신앙의 회복을 통한 창조정의를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전통적인 창조신학의 이론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되 상호관계성과 상호작용, 역동성을 강조하여 인간의 책임성과 실천을 부각하는 창조정의를 향한 발전적인 방향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V. 나가는 말

급격한 온난화에 따른 기후 붕괴와 생태계 파괴의 위기에 직면하여 그동안 인류는 이기적으로 인간만을 그 중심에 두고 자신의 주변 환경의 오염과 소비할 자원의 고갈에 더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사회정의적인 차원에서의 생태정의를 우선적으로 주장해 왔다.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따른 문명화와 편리함을 추구해 가는 데 일종의 걸림돌 역할을 하는 일에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정도의 수준에서만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막상 창조세계 전체의 정의를 창조주를 중심으로 구현하는 차원으로까지는 사고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는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인간의 지극히 작음과 창조주의 무한한 광대하심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인류가 여전히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는 자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윤리학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고 특히 정의와 연관된 다양한 이슈들과 관련하여 사회정치적인 상황들을 해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차원에서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요청된다. 예를 들어 이는 21세기의 기독교윤리가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이웃으로 대변되는 각종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생태계의 문제에 대한 책임적인 존재로 헌신하도록 하나의 실제적인 변화와 도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와도 밀접하게 연결이 된다. 이는 나아가 위기와 변화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의 교회론 갱신과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만물을 생태계의 균형이라고 하는 동등한 시각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 중심적인 의식으로 대하며, 반면에 인간 자신은 철저한 피조물 의식과 청지기 사명을 갖고 겸손해지는 게 지금의 인류에게는 시급히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생태정의에서 강조한 우주의 구성원 모두를 비교적 동등하게 여기고 모두의 상호작용과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강조하는 관점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이제는 더욱 창조주를 중심으로 하는 구체적인 기독교윤리적인 지향점을 찾고자 하는 구상이기도 하다. 맥그라스와 라스무센, 나스르, 그리고 하트가 지적한 대로 이는 결코 새로운 영역이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의 초기부터 강조해 온 원래의 창조신학적인 관점을 생태계 위기의 급변하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여 책임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정의적인 차원에서 다시금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장과 진보에 도취되어 시대적인 과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어두워졌던 지금까지의 과오를 반성하고 작지만 확실한 생명의 기쁨을 주는 것들이 때로는 더 아름다울 수 있고 거기에 참된 행복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발견이 지속적으로 교회 현장과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는 라스무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sustainable future)를 향한 21세기 기독교윤리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교회에서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로 미국에서 운영되는 단체인 창조정의목회(Creation Justice Ministries)의 웹 사이트(creationjustice.org)에서 제공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교회교육의 현장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해마다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며, 보다 정당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신앙 공동체를 갖추기 위한 기독교교육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의 2019년도 주제는 “차세대의 부상(Next Generation Rising)”이며, 창조정의를 향한 길을 이끄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자료집에는 정부를 상대로 “우리 어린이들의 신뢰가 담긴 기후변화(Our Children’s Trust Climate Change)” 소송을 제기한 청소년들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56)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이미 알고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생태계 문제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표현하도록 격려하고 그 편지들을 예배 중에 공유하도록 하는 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촉구하는 교회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하는 비디오 만들기, 각자의 집의 뒷마당에 나무를 심거나 자신이 속한 교회를 둘러싼 공동체를 위한 나무심기 의식을 구상하기, 그리고 아이를 캠프에 보내 정원 가꾸기와 동물 돌봄을 통해 지구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일 등을 제시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풍요롭게 하시며, 풍성하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시려고 우주를 창조하셨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 우리의 밭에서 생산되는 생산물, 그리고 바다의 풍요로움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아 왔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생태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남기고 싶은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막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금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그들의 에너지와 창조적 정신, 그리고 모든 창조주의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희망의 미래를 향한 길을 보여줄 수 있다.57) 정의로운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길은 아직 멀지만 우리 모두가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기독교윤리적인 과제이다.


Notes
1) 실제로 유엔의 cleanseas.org 사이트를 참고하여 발표한 국회입법조사처의 지표로 보는 이슈에서의 2017년 12월 27일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바다에 크고 작은 5조 개 이상(무게로는 26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해양에 떠다니고 있으며 북태평양의 경우 약 1조 9천억 개 이상 플라스틱 조각(무게는 약 9만 6,400톤)이 있고, 이 중 4.75mm 이하의 미세플라스틱 조각은 1조 8천억 개 이상(무게는 약 1만 2천 톤 가량)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해양의 미세플라스틱(5mm 이하)은 상당 부분 육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주요 오염원은 타이어, 합성섬유, 선박도색, 도로표시,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한 세정제나 화장품, 플라스틱 알갱이, 도시 먼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합성섬유의 세탁 중에 유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의 비중이 아시아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어, 천연섬유의 소비를 증진하고 세탁기의 필터 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가운데 운전 중 마모되는 타이어 분말로 인한 미세플라스틱의 해양 유입 비중은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 “플라스틱 오염 현황과 시사점(지표로 보는 이슈 103호-20171227),”https://www.nars.go.kr/brdView.do?brd_Seq=22231&category=c2 (2019년 3월 17일 검색).
5) Ibid., 131-32.
6) Ibid., 137.
7) Ibid., 141. 이러한 자각은 실제로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레이첼 칼슨(Rachel Car-son)의 저서인『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첼 칼슨,『침묵의 봄』김은령 역 (서울: 에코리브로, 2002)를 참조하라.
8) 최근 미국의 연합그리스도교(United Church of Christ, UCC)나 미국침례교(American Baptist, AB) 교단에서는 “창조정의 교회(Creation Justice Churches, UCC)”나 “창조정의 네트워크(Creation Justice Network, AB)”를 구축하여 창조정의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교단의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여 활발하게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활용하고 있다.
11) Ibid.
12) Ibid., 246.
14)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시대적인 위기 상황에 대한 가르침으로 특히 집중하여 강조하고 있는 내용과 관련한 용어이다. 그는 “우리의 몸이 우리가 환경과 다른 피조물들과 직접적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피조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 몸을 받아들이며 돌보고 그 의미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라고 하며『찬미 받으소서』제155항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글로벌 이슈들의 위기 상황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고려할 것을 이 문서에서는 요구한다.
15) John Hart, “Laudato Si in the Earth Commons,” John Hart, ed., The Wiley Blackwell Companion to Religion and Ecology, 50. 하트의 이 글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 받으소서’에 대한 자신의 신학을 접목하여 재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16) Ibid.
17) 전현식에 의하면 사회생태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머레이 북친(Murry Bo-okchin) 또한 사회생태학의 목적으로 전일성(wholeness)을 강조한다. 이는 생태학의 원리인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인간의 지배의식에 반하여 생태계의 원리를 통해 증진시켜야 하는 중요한 현상으로 그는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박용범은 북친의 생태정의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면서 이는 사회적인 연대와 지속가능성, 그리고 나아가 가난 및 경제정의 등의 문제와 구분하여 고려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를 결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현식, “포스트휴먼 시대와 환경운동의 좌표,” 140-41Yongbum Park, “Liberation Perspective in Ecological Ethics: Focusing on Leonardo Boff’s ‘Liberation Ecojustice,’” Madang: Journal of Contextual Theology, Vol. 27 (2017): 8-9을 참조하시오.
18) Hart, “Laudato Si in the Earth Commons,” 46.
19) Ibid., 51.
20) Ibid.
21) Ibid., 50.
24) Ibid., xxiii.
26) Ibid., 117.
27) Ibid., 181.
28) 하트는 다른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성을 구별하기 위해 관계적 의식(relational cosciousnes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모든 피조물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흘러나온다고 설명한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신성한 본질과 모든 생명체와 공유하고 있는 장소로서의 지구에 대한 공감 인식을 증진시킴으로 이러한 관계적 의식은 개발”된다고 보았다(Sacramental Commons, 203). 박용범,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기독교 사회생태윤리 모색,”『기독교사회윤리』제41집 (2018): 114.
29) Ibid., 112-13.
30) Ibid., 115.
31) Ibid.
32) Ibid.
33) Ibid., 117.
34) 하트에 의하면 통합적 존재(integral being)는 모든 우주의 실존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절대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신자에게는 신적인 존재(divine Being)가 포함되어 있지만, 반면에 인문주의자는 우주에 이러한 신적인 존재가 현존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점에 주목하여, 더욱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 용어를 채택하여 사용한다. 박용범,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기독교 사회생태윤리 모색,” 117-18.
35) Ibid., 117.
36) 하트에 의하면 형용사로서의 사회생태적(socioecological)이라는 단어는 인간 공동체와 창조세계와의 친밀한 관계성을 지시하는 용어로 인간 사회의 공동선(common good)과 창조세계의 공동선 상호 간의 대화체적인 관계성(dialogic relationship)을 증진하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이는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를 동시에 증진하기 위한 하나의 역할을 감당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Hart, Cosmic Commons, 185-86.
37) 하트에 의하면 praxis는 단순히 실천(action) 또는 실행(practice)만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그리고 사회생태적 정의와 웰빙을 위한 원리들과 프로젝트들에 맥락적인 참여(contextual engagement)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실천윤리(praxis ethics)는 역동적이고 공동체와 깊이 관련이 있으며 다양한 사회 및 생태적인 환경들을 통합하여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다. Hart, Cosmic Commons, 186-87.
39) Hart, Cosmic Commons, 120.
40) Ibid.
41) Ibid.
44) Ibid., 239.
45) Ibid., 242.
46) Ibid.
47) Hart, Cosmic Commons, 370.
48) Ibid., 371,
49) 미국의 원주민들이 기도와 가르침, 인사 등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로, ‘우리는 모두 관련이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Ibid. 참조.
50)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개역개정 4판).
51) Hart, Cosmic Commons, 371.
53) Ibid., 184.
54) Ibid., 186.
56) 이와 관련하여 최근의 자료와 캠페인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다음의 웹사이트를 참조하시오. “Next Generation Rising,” Creation Justice Ministries, http://www.creationjustice.org/nextgeneration.html (2019년 3월 18일 검색).
57) 위의 자료집 중에서 발췌 번역 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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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국회입법조사처, “플라스틱 오염 현황과 시사점(지표로 보는 이슈 103호-20171227).”, https://www.nars.go.kr/brdView.do?brd_Seq=22231&category=c2, 2019년 3월 17일.
17. King, Martin Luther, Jr, 1963, Apr, 16, “Letter from Birmingham Jail.”, https://www.africa.upenn.edu/Articles_Gen/Letter_Birmingham.html, 2019년 3월 17일.
18. “Next Generation Rising”, Creation Justice Ministries, http://www.creationjustice.org/nextgeneration.html, 2019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