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No. 0, pp.269-301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19
Received 10 Apr 2019 Revised 06 May 2019 Accepted 13 May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06.48.269

교회의 무용 실천: 성서적·역사적 바탕
박종석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jspark@stu.ac.kr)

The Practice of Dancing in the Church: Biblical and Historical Foundations
Park, Jong-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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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발생 시기로 보아 예술 중에서도 가장 앞서는 무용은 거의 인간 본성에 속하는 행위이다. 인간 영혼의 구원을 위한 교회가 이 같은 무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춤은 드물다. 물론 교회에도 무용이 있다. 대표적으로 교회학교에 율동이, 청소년이나 청년부에 워십댄스, 그리고 성인들에게 찬양 모임이나 예배에서의 소극적인 몸놀림이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무용들을 모두 인정할 수 있는가, 혹시 그 무용들에 세속적 요인은 없는가. 문제는 그처럼 ‘교회에서 행해지는 무용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와 같은 무용 동작들의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교회에는 무용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다. 이 논문은 그 관점이 성서적이고 전통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논문은 먼저 성서에서 무용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이 같은 무용들이 교회 목회의 목적인 신자들의 신앙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무용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교회의 역사 속에서 무용이 어떻게 행해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나아가 교회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무용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성서와 전통을 바탕으로 제안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교회의 경직성이 완화되면서 무용을 통해 신자들의 신앙이 일정한 정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view of the occurrence period, the dance is ahead of the arts. And it is an act belonging to human nature. The church for salvation of soul should have concerned such a dance. Dancing in the church is rare to observe. Of course, church also have kept dances as rhythm in church school, worship dance in adolescent or youth group, praise meeting in adult, and movement in worship. By the way, is there any secular factor in the dance? The Problem is the basis for dances in the church. What are the principles for such dance movements? Furthermore, where are the principles of such dance movements from? Now the church needs a perspective on dance.

In view of the occurrence period, the dance is ahead of the arts. And it is an act belonging to human nature. The church for salvation of soul should have concerned such a dance. Dancing in the church is rare to observe. Of course, church also have kept dances as rhythm in church school, worship dance in adolescent or youth group, praise meeting in adult, and movement in worship. By the way, is there any secular factor in the dance? The Problem is the basis for dances in the church. What are the principles for such dance movements? Furthermore, where are the principles of such dance movements from? Now the church needs a perspective on dance.

The essay takes biblical and church historical foundations for the dances in the church. First, it refers dances in the Bible and church history. Secondly, it handles the possibilities of the dances for the growth of the faith. Thirdly, it applies the contents from dances in the Bible and through the historical church to the church fields of nowadays. Through the work, the rigidity of the church on the dance will be eased, and the faith of believers will grow to a certain extent through dance.


Keywords: Dimensions of Faith, Elements of Dance, Dances in the Bible, Dances through the Church History, Dances in the Church
키워드: 신앙의 차원, 무용의 요소, 성서의 무용, 교회사의 무용, 교회의 무용

I. 들어가는 말

무용은 인간의 본성적 행위이다. 어린아이라도 박자에 반응하며 몸을 움직인다. 춤은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용을 하는 이유는 거기로부터 기쁨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춤을 출 때 기분을 좋게 만들고 통증을 줄여주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돕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한다.1)

이처럼 무용에 대한 인간 본성적 선호도에 비추어 교회에서는 무용이 활발하지 못하며 그것을 신자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교회에 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학교에서 율동은 빠질 수 없는 활동이고,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워십댄스에 열광한다. 하지만 교회의 무용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질문은 현재의 교회무용은 정당한가. 즉 교회의 무용은 세상의 무용과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교회의 무용은 어디서 어떻게 추어야 하는지 등이다. 우리는 이 같은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성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과연 교회에서 어떻게 무용을 수행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이 글은 무용이 무엇보다 신자들의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타진한다. 신앙은 교회 사역의 목적이고 내용이다. 교회의 활동이 신앙과 무관하고 신앙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성서적으로 교육적으로 신앙은 전인의 형성과 긴밀한데, 무용에 이 같은 차원이 있는지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성서와 교회의 역사를 살피게 될 것이다.

성서와 교회의 역사에 대한 탐구로부터 거두어들인 수확물은 현재의 교회 현장에서 유익하게 누려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여기서는 가능한 한 케리그마 등의 교회의 사명을 위해, 또는 그와 같은 사명들을 감당하기 위해 제한적이지만 무용의 구체적 활용 방안에 대해서 구상해볼 것이다.


II. 성서와 교회사에서의 무용
1. 성서의 무용

예배에서의 무용은 성서적인지에 대한 검토가 우선적으로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용은 허용될 수 있는가. 성서는 예배에서의 춤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예배의 중요한 요소인 찬양과의 관계에서 춤이 언급된다.

구약성서에서 무용에 대한 언급은 흔하지 않다. 언급은 하더라도(욥 21:11; 시 30:11, 68:3-4, 87:7, 149:3, 150:4; 전 3:4; 아 6:14; 렘 31:4, 13; 애 5:15; 겔 32:10; 호 9:1), 실제 춤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예배와 관련이 있다. 무용에 대한 언급이 드물다는 것은 어쩌면 이스라엘에서 무용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2)

구약에서 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들은 다음과 같다. 홍해의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미리암과 이스라엘 여인들의 춤(출 15:19-20), 금송아지 주위를 돌며 뛰노는 춤(출 32:19), 여호수아의 여리고 점령 행렬춤(수 6), 입다의 딸의 영접 춤(삿 11:34), 실로 여자들의 춤(삿 21:23), 다윗의 승리의 개선을 환영하는 이스라엘 여인들의 춤(삼상 18:6, 7), 아말렉이 이스라엘 약탈을 즐기는 춤(삼상 30:16), 다윗 성으로 옮기는 여호와의 궤 앞에서의 다윗의 춤(삼하 6:14, 16; 대상 15:29),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나올 때, 다윗과 이스라엘 무리의 뛰노는 춤(대상 13:8) 등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의 춤 말고도 시편의 예배 관련 춤(시 149:1-3), 결혼식 춤(아 7:1) 등도 있다.

구약성서에서 대표적 춤은 요단강을 건너 출애굽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능력을 찬양하는 미리암의 춤(출 15:1-21)과 기럇여아림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춘 다윗의 춤이다. 미리암은 소고를 치며 춤을 추고 다윗은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 추었다”(삼하 6:14).

시편에서는 춤을 명한다(시 149:3; 150:4). 전도자도 춤출 때가 있다고 한다(전 3:4). 바벨론 포로기가 끝난 후, 다시 건설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소고를 치면서 춤을 출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약속한다(렘 31:4). 성전에서 추는 춤은 성전이 파괴되면서 함께 끝났고, 엄격한 의미에서 종교적인 춤도 이스라엘 안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 종교적인 춤은 사라졌으나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도 축제에서의 춤, 장례식과 결혼식에서의 춤(참조. 아 7), 그리고 여러 다른 축제적인 계기에서 춤을 추는 것을 랍비 유대교에서는 한 번도 금지한 적이 없었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안식일에도 빈번하게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3) 구약성서에서 춤을 금지했다는 기록은 없다. 이를 근거로 W. O. E. 외스털리(W. O. E. Oesterley)는 이스라엘 예배에서 춤이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행위였다고 주장한다.4)

구약과 비교해서 신약에서 춤은 흔치 않으며 성격 역시 다르다. 신약에서는 구약에서처럼 춤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춤에 대해 반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약에서 무용에 대한 언급은 탕자의 귀향(눅 15:21-29), 헤로디아의 딸(마 14:6-8), 예수의 장터 비유(마 11:16-17; 눅 7:32), 복과 화의 선포(마 5:12; 눅 6:23) 정도이다.

이상의 예들 외에 춤과 유사한 동작이 등장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시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 펴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소리쳤다(눅 19:28-38).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식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마 9:15, 25:10; 막 2:19; 요 2:1-11; 마 25).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는 신부가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의 집에까지 가는 길에 친척들은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그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5) 신약에서 춤은 기쁜 소식에 대한 반응이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기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6) 이상의 예들을 통해서 볼 때 성서는 춤을 인정하고 즐겼으며 권한다고 할 수 있다.

2. 신앙과 무용

신앙은 지정의의 차원을 갖는다. 성서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창 15:6; 사 7:9, 28:16, 53:1). 구체적으로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신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고(출 4:31, 14:31; 시 106:12),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민 14:11; 시 106:24; 왕하 17:14). 신약성서에서 신앙은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신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다. 창세기 15:6과 이사야 28:16, 53:1과 연관된 이 신앙은 메시아를 보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7) 즉 구약성서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모든 이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으로 심화되면서 확장된다. 이와 같은 믿음 안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약속의 내용과 약속하신 분을 믿기로 결정하는 의지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신앙은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사랑·의뢰심을 갖는 일”이다.8) 성서적으로도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고(눅 18:8; 살후 1:4), 신뢰이며(마 6:30; 눅 8:48), 자신을 맡기는 위임이다. 나아가 신앙은 믿음(believing)의 표현이며(롬 6:8), 도리(doctrine believed)이다. 이는 집약된 교리를 믿는 것을 말한다(유 1:3).9)

신앙의 내용이 신학적 목회적으로 규정된 예는 조용기의 신앙 개념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신앙을 지적인 믿음, 일시적인 믿음, 구원받는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리고 기적을 낳는 믿음 등으로 말한다. 여기서 지적인 믿음에서 구원받는 믿음은 신앙의 지·정·의적인 차원과 나란히 상응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일종의 초월적 정서성을 의미한다.10) 신앙의 전인적 차원은 이와 같은 믿음의 바탕을 이루는 4차원 영성에서도 볼 수 있다. 4차원 영성의 요소는 생각, 믿음, 말, 그리고 꿈이다. 여기서 생각은 신앙의 지적인 차원과 상응하며, 믿음의 신뢰로서의 정서적 차원과, 말과 꿈은 신앙의 의지적 차원과 대응한다.11)

이제는 우리가 관심을 갖는 무용이 과연 이 지·정·의의 전인적 신앙 양육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검증의 문제가 남았다. 즉 무용은 지·정·의적인 면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3. 무용의 전인성

시간과 공간 등의 무용의 요소들은 신체를 중심으로 연관되어 있다. 신체 없는 무용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용은 우리 자신들이 재료가 되는 유일한 예술이다.”12)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무용은 신체 그 자체가 재료이고 작품이다. 신체는 몸이기도 하다. 현상학자인 에드문트 훗설(Edmund Husserl)은 몸의 의미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물리적인 사물로서의 ‘쾨르퍼’(körper)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를 대면하는 ‘라이프’(leib)이다. 라이프로서의 몸은 심리와 정신의 토대이자 그 셋은 서로 얽혀 있다. 신체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표현하는 전달매체라고 할 수 있는 동작어휘를 실현하는 전인이다.13)

몸은 어떤 것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게 되는 방식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미가 발전되고 다듬어지는 방식과 우리가 경험으로 이해하고 사고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의 의지적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실재이다. 인식은 이성의 단독적 기능이 아니다. 인식은 신체의 고유한 운동 방식과 시·공간적 특성들의 윤곽 내에 위치한 대상에 대한 상호작용의 형식들에 의해 형성된다.14)

나아가 신체는 감정과도 중첩되어 있다. 감정과 자극, 쾌, 고통 등의 정서는 그것을 경험하는 몸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정감은 기본적으로 몸에 의해 이루어지며,15)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말대로 “순수하게 체화되지 않은 인간의 감정은 허구적인 것이다.”16) 무용에서 신체는 의지를 지닌 하나의 주체로 기능한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공간에 어떤 표현을 할 것인지는 신체의 의지 안에 있다. 만일 의지 없는 신체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살아있는 신체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무용수는 신체운동적 차원에서 삶의 단면에 보이는 신성함으로 주의를 돌리도록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내면의 감정, 그 신체적 표현인 몸동작과 형태, 그리고 몸놀림의 리듬 등을 결합시킨다.17) 동일한 방식으로 무용수는 영성의 추상적인 형태까지도 인간 신체의 절묘함으로 리듬과 동작으로 드러낸다. 무용수는 몸과는 이질적인 정신과 영혼까지 몸과 일체가 됨으로써 표현한다. 이로써 우리는 무용을 전인을 추구하는 신앙과 유사한 차원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4. 교회 역사에서의 무용
1) 초대교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무용의 증거는 120년경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예수의 찬양’(Hymn of Jesus)이라는 외경이다. 이 문헌에서 예수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대신에 춤을 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서로 손을 잡고 당신을 둥글게 둘러싸게 한다. 그리고 돌면서 예수의 찬양에 대해 ‘아멘’으로 응답하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춤을 출 때 당신과 연합되어 당신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한다.18) 여기서 성만찬은 우주의 거룩한 춤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즉 성만찬에서의 떡과 잔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합일은 이제 원무를 통해 인간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 우주로까지 확장된다.19)

2) 초기교회

초대교회에는 춤에 대한 두 가지 전통이 있었다. 하나는 예루살렘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디아스포라적인 것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적 전통에서 춤은 규범적이다. 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었다. 그 섬김은 몸을 통한 것이었다. 무용은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춤은 천상의 기쁨으로 드리는 하나님 숭배였다.20) 130-150년경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에는 10편으로 된 비유 중 아홉 번째 비유에 헤르마스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 산에 가서 열두 명의 흰옷을 입은 천사들을 만나 춤을 추었다는 내용이 나온다.21)

나아가 춤은 성서적 선포와 교육의 한 가지 방식이었다.22) 춤은 교회생활의 일부(fabric of the church’s life)였다.23) 디아스포라적 헬라적 전통에서 교회는 이방인들의 춤을 허락했다.24) 하지만 히브리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이방인의 춤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중단시켰다.25)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춤을 수용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은『콰이스티오네스』(Quaestiones, 질문)에서 이렇게 썼다: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방울을 흔든다.”26)

처음 3세기 동안 교회는 이교도 배척, 유대교와의 구별, 그리고 성서적 토대 마련이라는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찾아나갔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교회는 그리스 극에서 분위기를 강조하거나 중요한 의미를 드러낼 때 사용한 합창무용인 코로스(chorόs)를 수용했다. 코로스는 그 조화로운 움직임으로 인해 뛰어난 아름다움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는데, 교회는 이 코로스를 예배 행위로 수용하였던 것이다.27)

초기교회 교부들은 춤의 긍정적인 면과 신학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교회 전례에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들 입장의 근거는 언약궤 앞에서의 다윗의 춤과 장터 아이들의 비유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규칙적이고 율동적이며 조화로운 것은 신성하다고 보면서 무용을 옹호했다.28) 그레고리 타우마투르거스(Gregory Thaumaturgus) 역시 코로스를 종교적인 즐거움을 표현하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방법이라고 하며, 천사들이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 주위를 돌며 춤추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땅 위의 평화를 선포한다고 하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찬미와 구원, 그리고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춤추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또한 순교를 통해 영생을 소유했다고 믿는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서도 춤을 추었다.29) 신약과 중세 사이의 기독교에서 무용은 자연스럽게 예배의 행위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무용은 고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세속 무용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이교 예식의 춤도 교회로 스며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춤에 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ea)는 개인과 단체의 춤을 구분했다. 개인 무용은 제재되었지만 미사와 관련하여서는 사제, 부제 및 성가대 소년들에게 무용이 허락되었다.30)

4세기 말에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그들의 이교적인 문화의 영향으로 교회와 순교자의 묘지에서 여자들이 무질서하여 비난받을 만한 춤과 비도덕적인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이런 일이 빌미가 되어 무용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싹트기 시작했으며,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무용의 이단적, 관능적인 면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31)

평신도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천국에 도착했을 때 보좌를 둘러싼 천사들과 춤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몸보다는 영혼으로 춤을 추도록 격려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춤을 멈추지 않았고, 춤에 대한 금지는 계속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된 한 가지 춤은 교회의 바닥 위에서 추는 미로 댄스였다. 춤을 추며 가운데로 들어갔다가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 춤이었다.

무용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수단이었다. 교회는 처음 5세기 동안 춤을 예배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32) 초대교회 시대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성자나 순교자의 축일에 춤을 추었는데 그때의 무용은 교인들의 결속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33)

3) 중세 교회

중세 시대에 무용은 음악, 건축, 연극 등의 예술에 비하여 무시되거나 금지되어 발전하지 못했다. 다만 교회에서 허락되었으나 그것도 교회의 예식이나 절기 중 사제들의 행위와 연관된 것이고, 여러 면에서 제약받았다.34) 중세 초기의 무용은 종교적 축일과 제일에 장지 등에서 추어졌다.35)

무용은 교회 예식과 축제와 연관되어 원무(round dance)나 고리무(ring dance), 행진무(processional dance) 등의 형식으로 행해졌다. 무용은 종교적 축제, 성인 축일, 결혼이나 장례식에서 교회에서나 교회 마당, 주변 마을에서 추었다. 무용은 보통 찬송이나 캐롤을 따라 했다. 캐롤을 부른다(to carol)는 것은 춤을 춘다(to dance)는 의미이다.36)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예배 의식이나 세례 예식에서의 로마의 이교적 전통에 의존한 무용을 타락이라 보고 이를 금지하였다. 교회는 영적인 무용은 좋게 평가했지만, 이교적인 무용은 근절시키고자 했다.37) 무용에도 위계가 정해지고 규제를 하게 되었다. 사제, 부제, 평민들이 언제 누구와 춤을 추어야 하는지 날짜를 지정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무용은 통제되었다.38)

그렇게 무용을 강력하게 탄압하게 된 데에는 기독교의 종교적 교리 외에도 형이상학적인 플라토니즘, 즉 이원론적 사고와 스토아 철학의 금욕주의가 작용했는데, 거기에 영지주의도 한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39) 그러므로 교회 밖으로는 무용에 대한 검열이 더욱더 강화되며 금지령이 선포되는 반면, 교회 내에서는 무용을 더욱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무용의 종교적 역할, 예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장려하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났다. 교회는 오히려 그 어느 시기보다도 예배에 드라마틱한 묘사와 표현 형태를 수용하면서 무용을 전례 형식의 하나로 사용했는데, 교회 축일에는 성직자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춤에 참여했다.40)

6-12세기에 교회는 더욱 권위적이 되어 모든 전례 형식들을 단속하고 법으로 특정한 무용들을 금지하는 강경책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안 성가에 맞춘 분명하고 규정대로 추는 상징적인 춤은 발전했다.41)

7-8세기에 치유를 위한 춤 전염병이 생겨났다. 그리고 8-9세기에 걸쳐 기독교적인 성격의 무용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유물을 가지고 행렬을 지어 나갈 때 춤을 추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 되어 교회 축제 속에 포함되었는데, 성직자들은 그러한 교회무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42)

중세기 교회가 그 권위를 강화하면서 춤에 대한 검열은 지속되었다. 춤은 여전히 예전적 형식으로는 수용되었다. 그러나 춤은 점차 더 공연적이고 연극적이 되었다. 사람들이 미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 교회는 성가, 행진, 심지어는 성가대에서 예식적 무용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용 중심의 예배 역시 평신도들의 관심을 돌이키지 못하면서 무용에 연극적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 평신도에 대한 호소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소극(short plays)이 예전에 도입되었다. 종교극이 대부분 문맹자였던 평신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그에 따라 무용의 사용도 증가했다.43) 즉 무용은 연극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연극은 예배라기보다 일종의 오락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그러다 보니 무용 또한 극적인 성격의 것이 되었다.44) 12세기 초에는 미사 중 종교극에서 성직자와 수녀, 그리고 성가대 소년들이 배우로서 음악에 맞춰 영창(chant)을 하며 춤을 추었다.45)

한편 ‘죽음의 춤’(dance of death)과 무도광(dancing mania)의 유행 때문에 무용에 대한 교회의 검열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대한 우려와 공포심 때문에 사람들은 공동묘지와 장지를 찾아 ‘죽음의 춤’을 추었다.46) 무도광은 유럽 전역에 걸쳐 재난, 전쟁, 화재, 질병 등이 그치지 않자 이 고통과 죽음의 비참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추었던 일종의 신들림의 한 형태로 해석되는 춤이다.47) 대중들은 이와 같은 무용에 무분별하게 광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후 무용에 대한 억압이 심해지면서 교회무용을 포함한 중세 무용이 전반적으로 통제당하면서 결국 전체적으로 무용이 쇠퇴하게 되었다.48)


III. 교회에서의 무용
1. 예배와 무용

오늘날 무용은 크게 기독교 무용과 교회무용으로 나뉘어 행해지고 있다. 전자는 예술로서의 무용 성격이 강하다.49) 교회무용은 교회 현장에서 행해지는 무용이다. 교회무용은 일정한 지침이 없으며 교회무용을 공부한 사람들이 소속 교회에서 취향대로 종종 행하고 있을 뿐이다.50) 기독교 무용은 소위 예술로서의 무용이다. 그것은 여기서 다룰 분야가 아니다. 여기서의 논의는 교회 현장에서 행해지는 교회무용에 한정한다. 이하에서는 교회가 할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케리그마(Kerygma),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 레이투르기아(Leitourgia), 가르치는 디다케(Didache), 신자들과의 사귐인 코이노니아(Koinonia), 그리고 이웃을 향한 봉사인 디아코니아(Diakonia)를 염두에 두고 성서적, 역사적 무용 실천을 중심으로 언급할 것이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교회에서 어떤 무용을 실시할 것인지는 각기 사정이 다른 개교회에 위임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일 텐데, 성서적, 역사적 근거와 오늘의 교회 상황의 조화를 꾀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결합하고, 바꾸고, 비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춤을 기독교 의식의 일부로서 말한다. 2세기 후반에는 무용이 예배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무용의 지위 변화에 따라, 주교 등 고위성직자들까지 직접 무용에 참여하면서 교회에서의 무용은 공식적이 되어 확대되었다. 4세기에는 예배에서 춤과 반주가 따랐다.

교회무용에서 우선적으로 무용을 활용할 영역은 예배이다. 예배는 그 자체가 전인적 교육이다. 예배는 어떤 외적인 동기나 목적이 아닌 예배 자체이지만, 그리고 예배가 의도적이고 체계적 교육은 아니지만 의식적 경험의 결과로서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예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영성의 중심에 있는 감정, 경험 및 태도의 모든 범위에 걸쳐 있다.51) 앤 E. 스트리티 윔벌리(Anne E. Streaty Wimberly)는 예배가 교회교육의 중심이 되는 문맥으로 본다.52) 예배 안의 설교와 음악과 기도의 요소들을 통해 신앙과 소망이 양육된다고 말한다.

성서에서 춤은 예배와 경배, 기쁨과 감사, 예언, 절기와 축제, 그리고 유희와 여흥을 위해 추었다.53) 예배와 연관해서 구약성서에서는 네 종류의 춤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행진무용(시 26:6; 68:24 등), 원무(round the sacred object dance, 시 30:11, 149:3, 150:4; 렘 31:4, 13; 출 15:20, 32:19; 삿 11:34, 21:12; 삼상 18:6, 21:11, 29:5; 아 6:14 등), 예언무(ecstatic dance, 삼상 10:5 6 등), 그리고 승전무(victory dance, 출 15:19-21; 신 20:1-4 등)이다.54) 이 중에서 행진과 원무가 두드러진다. 교육에 활용하기에 적합한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살펴본다.

행진무용은 구약성서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행진무용은 또 다른 대표적 유형인 원무와 더불어 기독교적 의식이나 축제 행사의 주요 표현 수단이었다. 행진무용은 일반적인 종교의식이나 행사에 대체로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55)

원형 춤, 즉 원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나 감사, 축제, 그리고 절기를 지킬 때 추었던 무용이다.56) 예배와 경배에서의 무용은 기쁨에 넘쳐 뛰고 도약하는 형식이었다. 때로 행진을 하며 둥근 대형을 이루어 빙빙 돌면서 추기도 했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표현하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히는 동작도 했다.57)

예배 무용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배타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제의 영역에 속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부활절 이브에 행한 본래 춤을 가리키는 부활절 캐롤(carol)이나 원무와 유사한 고리무58)의 경우, 대주교가 부활의 노래를 부르면서 교역자들은 둘씩 짝을 지어 둥글게 움직이고, 그 뒤를 유력 인사들이 같은 방식으로 따랐다. 캐롤의 경우에는 보통 성당·수도원 등의 지붕이 덮인 회랑(cloister)에서 교회로 이동하고 성가대 주위로 해서 교회 중앙부의 회중석(nave)으로 나아갔다. 그동안 모든 사람은 ‘세상의 구주’(Salvator Mundi, Savior of the World)라는 찬송을 불렀다.59) 오늘날 예배 시 춤의 예는 다음과 같다.

흰 예복을 입은 여인들이 회중의 찬송에 맞추어 흰 유리잔에 담긴 촛불을 양손에 들고 춤추며 회중석 뒤에서부터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와 강대상 아랫 부분에서 계속 춤을 추었다. 회중 찬송이 끝날 즈음에 그들은 다시 통로를 따라 퇴장했다.60)

초기교회에서 기도를 마칠 때는 지상의 몸이 하늘로 들어올려지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발을 구르며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무용이 경배에서 기도로 인식되어가는 변화로 보인다.61)

2. 성가대와 무용

성가대(choir)는 2세기부터 예배 시에 어린이들의 노래와 춤을 포함시켰다. 후에는 어린이들이 소년들로 대체되고, 중세에는 성직자들이 성가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성가대는 가슴 높이의 칸막이로 둘러쳐진 제단으로부터 분리된 높은 위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상징적인 움직임들을 보여주는 춤을 추었다.62)

10-15세 연령으로 구성된 성가대는 성체축일 축제(Corpus Christi) 등에서 제단 앞에서 캐스터네츠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63)

3. 예전과 무용

교회는 춤을 예배에서뿐만 아니라 성찬식이나 세례식에서도 활용했다. 중세에는 성찬식에서의 춤을 차례로 순서가 이어지거나 바뀌는 로테이션 방식으로 추기도 하였다. 분명한 동작은 알 수 없으나 성찬식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앞에서 ‘예수의 찬양’ 문헌에 나온 예를 성찬식에 응용할 수도 있겠다. 성찬식에 참여한 신자들이 손을 잡고 주례자를 둘러싸고, 주례자는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동작과 함께 나눌 때, 참여자들은 거기에 따르는 동작을 하며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식이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성찬식에서의 예전춤은 다음과 같다. 회중의 찬송에 맞춰 춤추는 신자들이 성찬 용구들을 들고 두 줄로 입장한다. 맨 앞에는 십자가, 그다음 두 사람은 촛불 점화기, 그다음 둘은 “떡상, 그다음 둘씩 두 줄은 포도주잔을 들고” 들어와 성찬상에 진설한다. “진설이 끝나면 그들은 회중 앞에서 회중 찬송에 맞춰 예전 춤을 추며 회중 찬송이 끝날 무렵 찬송에” 맞추어 퇴장한다.64)

초기교회의 세례식에서 사람들은 세례를 받을 때 춤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관습에 따라 팔을 서쪽을 향해 뻗어 악마와 결별하고, 다시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며 신앙고백을 한 후에, 세례를 할 때 사용되는 물을 보관하는 세례대(또는 세례반)을 향해 빠른 발걸음으로 춤추며 나아갔다.65) 남성과 여성들이 원 대형으로 돌며 행진하는 종교적 합창인 코로이(choroi)에 참여했다.66)

성서의 예언서들을 봉독할 때도, 성가대는 찬송을 하며 춤을 추었다.67) 가톨릭의 중심지였던 스페인의 여러 도시들, 세비야(Seville), 톨레도(Toledo), 헤레스(Jeres), 발렌시아(Valencia) 등지의 교회들에서는 성체와 성혈 앞에서 춤추는 것이 관습이었다.68)

4. 절기와 무용
1) 주요 절기

성서는 절기를 축하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사 30:29; 레 23:41; 출 23:14-16; 삿 21:21, 23; 시 149:3 등). 절기와 축제에서의 춤은 대체로 행진이나 둥근 대열을 지어 원형이나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도는(to whirl) 형태였다.69)

부활절에 무용 활용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에 베르게레트(Bergerette)가 있다. 베르게레트는 프랑스 여러 지역에서 추었던 전통적인 부활절 무용이다. 그 무용은 은총과 구원으로서의 부활에 관한 가사에 서정적 가락의 독창인 영창에 맞추어 행렬을 지어 추었다.70)

성령강림절에 주로 수도원에서 춘 베르게레트는 설교가 끝난 후, 교구나 수도회에서 주교나 수도원장의 자문에 응하여 행정에 관한 모든 안건을 심의하는 참사회 위원들과 성가대 소년들, 그리고 성직자들 최연소자와 최연장자가 인도한 무용이다. 처음에 서로 손을 잡고 원형을 이루어 같은 동작으로 줄을 맞추어 방향을 바꾸며 추는 라인댄스(line dance)나 원무, 또는 뱀이나 미로(labyrinth) 형태를 따라가는 행진춤으로 구성되었다.71) 무용이 끝난 후에는 천상에서의 만찬을 상징하는 식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적포도주를 마셨다.72)

추수감사절의 춤은 악기를 연주하며 추었다. 기쁨과 감사를 위한 이와 같은 춤은 발을 구르고 뛰어오르고 빠르게 도는 활기찬 동작들로 구성되었다.73)

무용을 포함해 의식(rite)은 인간의 전인적 차원에서 변형을 가져온다. 의식은 의미 있는 전인적 존재나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적, 인격적 경험들을 재조직하거나 재해석함으로써 변형을 수행한다.74)

2) 성탄절

성탄절 하면 캐롤이 떠오른다. 하지만 부활절과 장례 캐롤 등도 있다. 캐롤은 원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카롤라”(carola)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11-14세기경 북부 프랑스의 음유 시인인 트루베르(trouvère)들이 천천히 둥글게 돌아가며 노래하던 형태를 일컫던 말이었다.75) 캐롤 무용은 1223년 성탄절에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가 예수상 주위를 돌며 추었던 춤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천사들의 원무를 상징하는 캐롤 무용은 대주교와 사제 등 성직자들이 교회 예배당 또는 마당에서 추었다. 때로 그 지역 유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 추는 무용은 대개 깡충 뛰는 호핑(hopping) 스텝이 포함된 원무 형태였다.

‘캐롤’은 ‘서 있다’나 ‘정지하다’를 뜻하는 스탄자(stanza)와 ‘춤’을 의미하는 코러스로 나뉘었다. 그래서 코러스 부분에서 춤을 추었고, 스탄자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코러스 동안의 가장 평범한 스텝은 ‘세 걸음’이라는 뜻의 트리푸디움(tripúdĭum)이다. 이것은 앞으로 세 걸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동작을 반복하며 추는 춤이다. 박자는 보통 4/4박자, 또는 2/4박자였다. 보통 다섯 명이나 열 명의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거리나 교회 근처로 나가 다른 사람과 함께 줄을 지어 행진하는 대중적 춤이었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연합과 평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직자들은 여름을 환영하는 축제인 성 요한의 날(Sant Joan)에도 춤을 추었고, 부제들은 성 스데반의 날(St. Stephen’s Day)과 할례축제(1월 11일)와 현현절에 춤을 추었다. 후자는 나중에 바보제(Festival of Fools)가 되었다. 순교축일(Innocents’ Day)에 추는 성가대 소년들의 무용은 나중에 어린이 축제(Children’s Festival)가 되었다.76)

무용과 관련해서 선교 무용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전도를 위한 무용을 가리키는데, 조규청의 예수 찬양 댄스가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는 성서의 주요 주제인 Jesus(예수), Love(사랑), Faith(믿음), Hope(소망), Praise(찬양) 등에 대해 신학적 의미를 담아 구체적 동작을 개발하였다.77) 무용을 통한 노방전도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탄절기 등에 플래쉬몹(Àash mob)을 시도해 볼 수 있다.

5. 생애와 무용

기독교 교회는 신자들의 생애 주기, 특히 죽음과 연결시켜 활용할 수 있는 춤도 추었는데 순교자 축일 무용이 그렇다.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순교자 축일 무용을 추었다. 공간이 좁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타콤(catacomb)에서도 순교자를 기리는 축제에서 원무를 추었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78)

초기교회에서 순교자는 존중을 받았는데, 춤이 이것과 연결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순교자들과 천사들이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과 춤을 추러 내려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신념을 갖고 그들은 묘지에서 춤을 추었다.79) 바실리우스(Basilius)는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애도의 본질이 바뀌었다. 우리는 더는 성인들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통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성인들의 무덤 주변에서 신적인 원무를 춘다.80)

4세기 이후에는 순교자 축일 무용이 일상적이었다. 이 무용은 신자들이 순교자의 묘지나 유적지 또는 예배 의식의 일부로 순교자들의 믿음을 기리며 도움을 청하는 춤이었다.81) 무용은 사제가 인도했으며, 독창이나 합창에 맞추어 추었다. 한 명 이상의 원무나 행진 형태로 추었는데, 주교들과 고위성직자들이 성물 앞에서 추기도 하였다. 순교축일 무용은 대부분 찬송가나 시편에 맞추어 합창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며 하는82) 합창무용이었다. 동작들에는 한 발로 뛰거나 깡충 뛰는 호핑(hopping), 껑충 뛰거나 뛰어오르는 리핑(leaping), 그리고 빙글빙글 도는 것들이 있었다. 때로 성찬식을 하는 것처럼 일정한 순서에 따라 교대하는 로테이션(rotation)을 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했다.83)

6. 교육과 무용
1) 성경공부

교회의 과거의 무용을 현재의 교회에서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무용을 성경공부와 연결시킬 수 있다. 예컨대 디모데성경연구원은 신약의 흐름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기억시키기 위해 무용적인 움직임을 사용한다. 구약 역시 흐름을 익히기 위해 77개의 모션을 활용한다.84)

2) 프로그램과 무용

중세 시대의 무용 중에는 교회학교의 부서 수련회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중세 시대에는 두 가지 특별한 축제가 있었다. 하나는 ‘바보제’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 축제’이다. 바보제는 절대 권력인 교황과 신부 등을 바보로 만들어 조롱하고 비판하는 행사였다. 어린이 축제는 학교와 학생들의 후원자였던 그레고리 교황을 추모하기 위한 축제였다. 그러나 바보제는 무분별한 집단 참여와 이교적인 요소들의 침투로 633년 이후 금지되었다.85)

15세기에 들어와서는 어린이 축제만 허락되었다. 어린이 축제의 경우 로스 세이세스(Los Seises) 무용을 포함하는 모자라베(mozárabes) 의식을 장려하기도 했다. 모자라베는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에서 산 기독교인들을 말하며, 이들은 서고트(Visigoths) 풍의 전례 양식을 고수했다. 이들은 아랍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특히 채식수사본의 경우에, 화려한 색상이나 표현 방법에서 동시대 다른 필사본과 구별된다.86) 로스 세이세스 무용은 일년에 두 차례, 성심축제(Feast of the Sacred Heart)와 그리스도의 성체축일(Octave of Corpus Christi)에 추는 ‘세이세스(Seises)’라고 하는 소년들이 깃털 모자와 홍색과 황색 줄이 있는 의상을 입고 성당 제단 앞에서 여섯 명에서 시작해 16명까지 늘었으나 지금은 10명의 소년들이 노래와 리본으로 꾸민 캐스터네츠에 맞추어 추는 춤이었다. 음악이 시작되면 두 줄이 전진하고 후퇴하고 겹친다. 돌아서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87) 하지만 이마저도 곧 교회의 비난 대상이 되었다. 어린이 축제마저 교회가 통제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에는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미로에서 하는 무용도 활동 프로그램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미로 무용은 대성당의 본당 회중석 바닥에 그린 미로를 따라 나선형으로 행렬하는 무용이다.88) 교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손을 잡고 인도자를 따라 미로의 중심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형식으로 행해졌다. 미로 무용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지하세계로 내려가 사탄을 이기고 영혼들을 구원하여 돌아오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치유를 위해 하늘로 갔다가 지상으로 돌아오는 여행이기도 했다.89)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는 장엄한 미로 무용도 있다. 그 무용에서는 성가의 마지막 음절과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중심에 도착하는 것이 일치하도록 윤무를 했다.90) 특히 팔레스타인을 잃었을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무용을 통해 예루살렘 순례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럴 경우에 순례자들은 무릎을 꿇고 기어서 미로의 중심까지 도달하기도 했다.91)

미로에서 하는 무용 중에는 펠로타(pelota 또는 pilota)라는 공을 가지고 추는 무용도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놀이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놀이와 함께 구현되며 춤추는 자에게는 만족과 기쁨이 주어진다.92) 그 무용은 주교와 대주교, 참사회 의원, 그리고 아랫사람에 이르기까지 함께 원 대형으로 서서 손을 잡고 영창하며 노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것으로서, 먼저 수석사제나 그의 대리인이 새로 취임한 대성당 참사회 의원으로부터 공을 받아 한 팔로는 공을 안고 다른 손은 바로 옆 사제의 손을 잡은 형태로 시작했다. 그리고 반주에 맞추어 부활절 노래를 부르면서 미로를 따라 도는데 그때 트리푸디움을 추었다. 그리고는 서쪽 끝에서 수석사제가 춤추는 사람들 중 한 명, 또는 여러 명에게 공을 번갈아 던져주었는데, 그렇게 무용과 노래를 마치면 함께 식사를 하고 마지막에 저녁기도를 드렸다.93)

무용의 기능 중에는 친교의 기능이 있다. 즉 유희와 여흥으로서의 춤이다. 성서에서 이 성격의 춤은 우상 주위를 돌며 추는 춤이거나 유희, 오락적인 성격의 춤으로(출 32:6, 19; 왕상 18:26; 삿 16:25 등) 신성하고 종교적인 춤과는 거리가 있어 부정적이다. 또한 즉흥적이면서 다듬어지지 않아 교회에서 권장할 만하지 않다. 이들 춤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발로 장단을 맞추거나 구르기도 하며, 건너뛰는 스키핑(skipping), 한 발로 뛰거나 깡충 뛰는 호핑(hopping), 껑충 뛰어오르는 리핑(leaping) 등 뛰놀며 재주를 부리는 아주 자유스러운 움직임과 리드믹한 발동작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94)

그밖에 오늘날 교회에서의 무용은 ‘리듬 합창’, ‘동작 합창’, ‘상징 운동’, ‘움직임의 예배’, ‘제의 무용’, 그리고 최근에는 ‘성무 합창’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드물게 행해지고 있다.


IV. 나가는 말

우리는 앞에서 무용이 인간 본성에 부합하여 교회에서 잘 활용할 경우 신앙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성서와 교회사에 나타난 무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성서에서 무용은 예배 등에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교회는 초기에서부터 중세까지 무용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에서 사용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의 무용은 이 같은 성서와 교회사의 무용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교회와 교회사에서의 무용의 원리들을 추려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 내용들을 오늘날 교회에서 교회의 사명과 교육의 영역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식으로 제시했다. 무용 자체가 시간예술인 까닭에 지나가버린 과거 당시의 무용의 모양새를 건져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는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복원하는 것은 차후의 과제가 될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교회는 새로운 유형의 무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 몸동작들을 꾸며 내는 일은 창의력이 요구될 터인데, 이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오늘날 무용의 큰 갈래인 발레와 한국 무용, 그리고 현대 무용에 대해 교회의 입장에서 살펴보지 못한 것은 이 글의 한계이다. 이 또한 추후 과제가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무용이 서로 부대끼며 하나를 이루어 가는 곳에 신앙의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는 교회의 무용이 탄생할 것이다.


Notes
6) Ibid., 66.
23) Ibid., 11.
27) Ibid., 46.
28) Ibid., 46-47.
44) Ibid.
49)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무용과 교회 무용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기독교무용협회(CDFK)의 활동 참조.
56) Ibid.
57) Ibid., 33.
62) Ibid., 93.
68) Ibid., 50.
79) Backman, Religious Dances in the Christian Church and in Popular Medicine, 17.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년도 서울신학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의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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