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No. 0, pp.197-233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19
Received 08 Apr 2019 Revised 08 May 2019 Accepted 13 May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06.48.197

메타이야기로서의 성경과 연극적 접근의 신학적 이해
서민정
백석대학교, 기독교철학 (hi-day29@hanmail.net)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Bible as Meta Story and the Dramatic Approaches
Seo, Min Jeong

초록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은 하나님이신 저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내러티브로 구성된 초월적, 권위적 계시이다. 다양한 삶의 정황을 담은 내러티브들은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속에 흐르는 그분의 통일되고 일관된 메시지를 반영한다. 성경이 다양한 내러티브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관된 목표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적 분석 방식은 메타이야기로서의 성경의 구성(plot)과 내러티브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본고는 메타이야기로서의 성경을 연극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에 신학적 방향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밴후저의 삼위일체적 소통방식과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의 중심 개념들을 접목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삼위일체 소통원리를 통해 저자이신 성부 하나님의 발화(發話)에서 텍스트의 목적과 의도를 찾으며, 성자 하나님의 사역에서 텍스트를 관통하는 행동의 초목표를 찾는다. 또한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성령 하나님의 이끄심을 의지한다.

이러한 연극적 읽기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전체 플롯을 이해하며 성경 속 인물의 욕구를 분석하고 행동의 구현을 통해 사건을 경험할 수 있다. 연극이란 매체는 이성적 이해와 전인적 실천을 요구하는 성경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에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특히 성경에서 인물 행동의 동기를 찾는 과정은, 텍스트의 의미를 발견하는 이성적인 해석 과정이자 자신의 욕망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반응하도록 훈련하는 데에 기여하는 실천적 해석의 장(場)이 될 수 있다.

Abstract

As meta story, the Bible is a transcendental and authoritative revelation consisting of various narratives according to the intentions of the author, who is God. The various narratives, which contain various circumstances of life, are closely connected within the history of God and reflect his unified and consistent message flowing in them. The dramatic analysis method is effective in understanding the plot and narratives of the Bible containing God’s consistent objective and message.

As meta story, the Bible is a transcendental and authoritative revelation consisting of various narratives according to the intentions of the author, who is God. The various narratives, which contain various circumstances of life, are closely connected within the history of God and reflect his unified and consistent message flowing in them. The dramatic analysis method is effective in understanding the plot and narratives of the Bible containing God’s consistent objective and message.

Through this dramatic reading we could understand the plot of the Bible and analyze the desire of the characters in the text and experience accidents through the embodiment of action. A drama is an effective tool for interpreting the Bible that requires rational understanding and practice.


Keywords: Drama, Narratives, the Meta Story, the Bible, the Trinity, Stanislavski, Vanhoozer
키워드: 연극, 내러티브, 메타이야기, 성경, 삼위일체, 스타니슬랍스키, 밴후저

I. 들어가는 말

오랫동안 성경 해석은 이성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활발히 소개된 성경에 대한 이야기적 접근은 이성만이 아닌 감성과 의지를 동반한 성경 읽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는 진리 규명에 대해 이성을 중시했던 모더니즘적 태도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의 배경 안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명제적인 교리 중심이 아닌 이야기적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노력들은 감성이 중시되는 현대 포스트모던 사회에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필자는 이성 중심과 감성 중심 혹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대결 구도가 아닌 둘을 통합하는 성경적 모델로서 성경의 이야기적 접근과 연극적 해석을 다루고자 한다. 성경의 이야기적 분석은 성경 자체가 내러티브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을, 연극적 해석은 성경이 세상에서 실행되어야 할 삶의 원리를 담은 목적 지향적 텍스트란 점을 보여준다.

성경을 이야기로 접근하는 일은 기존의 성경 해석에서 중시했던 이성적 측면을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더불어 감성을 동반한 상상의 측면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성경 해석을 위한 연극적 접근은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이성적 분석을 토대로 성경의 이야기 현장을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의 입장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텍스트의 전인격적인 통찰을 돕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1)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이야기임을 믿고 전인격적으로 접근한다면 이성과 경험의 균형적 이해가 가능할 거라고 쉽게 결론 내리기엔 너무 성급하다. 성경의 권위를 잊어버리거나 축소하며 자기중심적 이해를 추구하려는 해석자의 내재된 욕망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야기’ 형식에 대한 이해와 연극 매체에 대해 신학적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성경이 이야기 형식을 담고 있다는 전제하에 성경의 내러티브성을 이해하고 연극적으로 해석하는 태도의 성경적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성경의 내러티브적 특성을 일반적인 이야기 형식과 구별되는 신적 저자이신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관점을 가지고 메타이야기 안에서 다룰 것이다. 또한 성경의 연극적 해석에 대한 신학적 접점을 케빈 밴후저(Kevin J. Vanhoozer)의 삼위일체적 소통과 해석에서 찾음으로써 연극적 접근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의 이해

흔히 ‘이야기’를 사실이 아닌 허구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이야기 형태인 전래 동화, 전설 및 민담 등이 구전되는 과정에서 전달자의 첨삭이 가능하기에 혹여 이야기가 실제 사건이라 하더라도 변형되거나 재창조된 문학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성경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것은, 성경을 신적 계시에서 인간의 창작으로 끌어내리거나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여지를 독자에게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꺼려질 수 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신앙 공동체의 이야기로 접근하는 내러티브 신학2)을 그런 관점에서 비판한다. 김병훈은 내러티브 신학을 비판하는 헨리(Carl F. Henry)의 입장을 소개한다. 헨리에 따르면 내러티브적 접근이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결과 “믿음과 이성, 믿음과 역사의 관계”는 완전히 분리될 뿐만 아니라 주관주의로 함몰될 수 있다. 그의 비판에 따르면 성경의 내러티브 해석학은 “내러티브라는 문학 형식에 갇혀 있으면서 내러티브 메시지의 신적 권위와 계시성을 분명히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3)

필자는 내러티브 신학이 성경의 신적 권위와 계시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성을 부인될 수 없는 성경의 중요한 특성으로 받아들인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인물)께서 세상(시간과 공간)에 있는 인간들(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행하신 일(사건)을 토대로 한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성경이 갖는 권위와 계시의 측면을 전제하면서도 성경의 내러티브적 성격을 담고자 성경 전체를 ‘메타이야기(the meta story)’4)로 부르고자 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메타이야기’는 인간 존재와 세상을 아우르는 우주적 의미의 “무시간적인 틀을 가진 이야기”5)라는 신화적 의미를 담지 않는다.

성경은 내러티브의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내러티브와 구별된다. 그러하기에 성경을 단순히 내러티브의 관점에서만 규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내러티브는 성경의 문학적 특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성경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성경 저자의 신적 권위에서 찾음으로써 기존의 내러티브와 차별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성경 전체를 역사적 사실을 담은 많은 내러티브들을 하나로 엮어내신 하나님의 메타이야기로 이해한다. 이에 필자는 성경의 내러티브성을 메타이야기의 의미 안에서 다루려 한다.

1. 역사와 이야기: 메타이야기로서의 성경 이해

근대 사회는 실제 사건에 대한 경험과 이 경험들을 이성적으로 연결하는 설명을 중시한다. 근대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역사도 당시 사람들이 목격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기록될 때 객관적인 지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한 사건의 기록인 성경은 이 관점에서 볼 때 높이 평가되지 못한다. 근대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한 사건이 경험으로 검증될 수 없거나 비이성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을 역사보다는 이야기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성경을 연대기적 기록을 담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보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비판적 눈을 통해 실제 사건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의 특성상 기록자의 자의성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성경에 따르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기록한 글로 인간 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를 쓴 내용이다. 성경의 이러한 전제에 따르면 성경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독자를 향한 발화(發話)로 볼 수 있다. 역사 기록자는 기록을 통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할 뿐 독자의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독자인 그리스도인들이 반응해야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성경을 독자의 반응을 요구하는 발화로 본다면 독자는 화자이신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하며 그 의도에 반응하도록 요구받는다.

성경을 하나님의 이야기로 보는 입장은 이미 여러 학자들을 통해 시도되었다. 바르톨로뮤(Craig G. Bartholomew)와 고힌(Michael W. Goheen)은『성경은 드라마다』에서 이야기 개념의 ‘극 구조’를 통해 성경의 내용을 설명한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이자 세상에 대한 참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가 “성경이 강력한 통일체로서 의존할 만하며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의 각자의 자리가 있음을 알 때 성경은 인간 삶의 토대가 될 수 있다.”6)

필자는 성경을 이야기로 보는 관점이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이어지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명제적 지식뿐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한 사건들을 담은 상황적 지식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건들을 하나님과 인간의 마음의 구체적인 역동의 결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독자가 성경을 현재에도 진행되는 연속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자신의 삶도 하나님의 이야기에 속해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독자는 성경 이야기 속에서 일상 삶의 의미와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며 삶을 평가하는 기준을 성경의 이야기에서 찾게 된다.

그 점에서 기독교인에게 성경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거대 이야기, 즉 메타이야기이다.7) 바르톨로뮤와 고힌은 거대 이야기의 특징과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다 똑같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야기들은 아주 다양하다. 어떤 이야기는 그저 우리를 즐겁게 하고, 어떤 이야기는 옳고 그름에 대해 가르치고, 어떤 이야기는 위험과 악에 대해 경고한다. 하지만 근본이자 토대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들은 세상 전체와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자리를 알게 해준다. 그러한 포괄적인 이야기들은 보편적인 역사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를 ‘거대 서사(grand narrative)’, ‘큰 이야기’, ‘메타내러티브’라고 부른다. 우리들 각자는 (그것을 알든 모르든) 한 가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리 인생의 틀을 잡고 인생 경험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는 모두 어떤 특정한 이야기에 의존한다.8)

바르톨로뮤와 고힌의 설명처럼,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의 의미를 세상과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토대가 되는 이야기로서 이해할 때, 이 용어는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인정하기 불편한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절대성과 보편성보다는 상대성과 개인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이야기’로서 이해하는 태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객관성을 중요시하는 근대적 진리 추구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 태도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감성을 존중하는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태도와 닮아 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토대가 되는 ‘메타이야기’로 성경을 이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성경을 절대적 권위를 가진 ‘메타이야기’로서 받아들이는 입장이 상대적 가치를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학자에게는 수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 포스트모던 사회의 메타이야기와 해석학적 담론

성경의 초월적 권위와 절대적 옳음의 문제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주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감성과 욕구, 다양한 문화와 감각적 경험을 소통의 주요 관심사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미스(James K. A. Smith)는 현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성경 이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메타이야기가 갖는 초월적 권위보다는 성경을 내러티브로 이해하고 경험적 지식을 강조함으로써 진리 규명에 대한 근대적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9) 스미스는 진리를 해석의 결과로 보는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입장과 진리 자체를 절대적 계시로 수용하는 카슨(David A. Carson)의 입장을 대비시키며 결과적으로 진리는 해석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카슨의 ‘전지(全知)’라는 특정한 진리는 객관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해석이라는 데리다의 주장과 상충될 수밖에 없다. 스미스는 인간이 ‘전지’라는 진리를 알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진리가 반드시 객관성을 기초해야 하는지 반문한다. 그는 ‘좋은 해석’을 전제로 한 진리 추구를 강조하면서 모든 것이 해석이라는 데리다의 의견에 힘을 싣는다.10) 그 입장의 근거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어떤 사물과 사건도 해석 없이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성경이 이미 사건을 증거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비록 좋은 해석과 그렇지 못한 해석이 있을 뿐 진리는 해석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11)

근대적 복음 이해의 문제는 신약성서의 증언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음서 서사를 보면 분명해지는데, 백부장이 본 것을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보지 못했다. 물론 군중은 십자가, 신체, 시신까지, 같은 물질적 실재를 대면한다. 그러나 이 물질적 현상은 해석되어야 할 텍스트다. 따라서 백부장과 대제사장은 같은 현상을 보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을 보았으므로 데리다의 논점이 증명되는 것 같다. 즉 사태 경험은 곧 해석의 문제다.12)

여기서 “백부장이 본 것”은 좋은 해석의 결과로 진리의 내용을 의미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군중들도 십자가의 사건을 목격했으나 잘못된 해석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십자가 사건을 해석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하며 좋은 해석과 그렇지 못한 해석을 구별한다.

스미스에게 모든 인식은 해석의 결과이다. 그는 진리 규명의 근거가 객관성이 아닌 ‘경험에 대한 해석’이어야 함을 강조하며 진리 선포의 탈근대적 패러다임을 선언한다. 즉 스미스에게 복음이란 진리는 명제에 대한 논증이 아닌 사건을 담은 이야기의 선포란 점에서 근대적 이성 중심의 진리관과 차이를 갖는다. 스미스가 주목하는 성경의 내러티브적 성격은 성경이 전하는 내용이 실천적 진리라는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정체성은 성경의 이야기를 “실제로 재연하는 성찬 공동체”로서 성경의 진리가 일상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13) 스미스는 이성적으로 전달되는 지식보다는 경험과 실천으로 일상의 내러티브를 통해 성경이 메타이야기임을 드러내려 한다.14)

성경의 실천적 선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경 내러티브의 일부를 이루어간다는 점에서 분명 메타이야기의 본질적 특성을 나타낸다. 성경이 전하는 진리의 실천적 규명은 예수님의 실천적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신 방법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이 언어로 선포한 계시의 측면을 드러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은 분명 중요한 소통수단인 언어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렇다면, 언어를 사용하는 이성적 해석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시도될 수 있다는 성경 해석의 전통적 접근의 중요성 또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백부장뿐 아니라 거기 모인 군중 앞에서도 일어났듯이, 복음은 그 해석과 관계없이 “눈먼 상태”의 사람에게도 선포되어야 한다. 성경이 언어로 인간에게 전달된 계시라고 할 때, 선포되는 계시의 객관성은 신적 저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서 찾아야 한다. 그 점에서 스미스가 메타이야기의 권위와 규모보다는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저자의 권위가 신앙 공동체에서만 인정되는 ‘거대담론’15)으로 축소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성경의 권위와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학자의 우려처럼 억압적 의미의 거대담론을 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세상의 거대담론들을 무너뜨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인류에게 계시된 메타이야기’이다. 실제로 복음의 메시지는 근대주의의 거대담론과 매우 달랐다. 신약성경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사역 또한 반(反)전체주의적”16)이었으며, 성경은 세상의 지배담론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 점에서 스미스가 제안한 진리 증명의 방법은 거대담론의 성격이 아닌 실천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는 성경적이다.

결국 스미스가 주장하는 성경의 내러티브와 해석의 강조는, 메타이야기를 부정하기보다는 성경이 갖는 메타이야기의 본질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논증으로 보인다. 에릭슨(Millard J. Erickson)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한 성경적 대답을 “기독교 신앙이 거대담론에 뿌리박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어떤 종류의 거대담론을 포함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언급한다.17) 그는 기독교의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을 논증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을 성경의 본문에 굴복시켜”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이고 전체주의적이지 않는 삶”을 통해 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8) 이 점에서 에릭슨의 주장도 거대담론의 논의에서 성경의 진리를 권위와 규모로 접근하기보다 실천적 지식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스미스의 입장과 함께한다.

이에 비해 밴후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성경 해석의 근거가 이성인가 신앙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해를 추구하면서 ‘신앙 안에’ 있는지 자신을 살펴볼 것”19)을 제안하며 둘의 균형을 찾고자 한다. 스미스와 밴후저 모두 결과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강조한 성경 해석을 주장하고 있으나 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스미스는 성경 내러티브의 해석을 토대로 복음의 실천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메타이야기의 본질을 선포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밴후저는 ‘해석(interpretation)’보다는 ‘이해(understanding)’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인식하는 상황적 지식 이전에 저자가 전달하는 지식(의미)에 대한 이성적 수용의 태도가 신앙 안에서 필요함을 주장한다.

밴후저는 다양한 해석의 시도들이 상황(context)에 대한 수용자의 해석에 집중함으로써 성경(text)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음을 비판한다. 그는 현대의 해석이론과 실천에 대한 많은 시도들이 “의미에 대한 불신”20)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근대적 개념의 진리가 요구하는 증명은 사실과 해석을 분리하고 그 해석이 얼마나 맞는가에 치중해왔다면, 탈근대적 개념의 진리는 이미 해석을 포함한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즉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사실(fact)이 아닌 주관적 해석이 결합된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그리고 스미스가 언급했듯이, 탈근대적 개념의 진리 체계는 성경이 갖는 내러티브성과 연결된다.

본고에서는 성경의 진리 규명이 하나님이신 저자의 권위에 근거한 객관적 계시로서 텍스트인 사실(fact)의 선포와 주관적인 경험인 해석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식함과 동시에 성령께서 우리가 좋은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스미스가 다원주의 사회에서 성경의 고유한 가치를 선포하고자 텍스트의 권위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경험적 해석을 기초로 한 진리의 실재성을 강조했다면, 경험적 해석이 텍스트의 권위를 비추는 결과를 낳도록 방향을 잡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성경의 내러티브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상대적으로 메타이야기의 권위를 축소시키는 위험이나, 성경을 세상의 거대담론에 대항하는 동등한 위치의 담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21) 내러티브성이 강조될수록 다양한 내러티브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보편적 진리로서 성경의 계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메타이야기를 풍부하게 경험하는 자리로서 내러티브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미스가 말한 내러티브들의 좋은 해석을 위해, 그 기준과 검증의 근거로 메타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이다.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은 근대적 개념의 권위를 갖지 않는다. 성경은 이성으로 증명해야만 하는 권위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자의 이해를 전제해야 존재하는 지식도 아니라는 점에서 근대적 의미의 진리가 아니다. 또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생성되거나 실천되지 않으면 박제되거나 소멸되는, 독자의 소통을 전제해야 의미가 완성되는 탈근대적 의미의 진리도 아니다. 성경은 시대와 장소, 해석자의 태도와 상관없이 의미를 가지며 성경의 원리로만 인간과 세계가 바르게 해석되는, 인물과 사건, 시공간을 담는 이야기 형태의 진리라는 점에서 ‘메타이야기’이다.

필자는 스미스가 우려한 대로22) 교회의 예배마저도 쇼핑몰의 소비 행위처럼 일회적이고 고갈되어 계속 채워야 하는 문화적 행위와 사회적 상상의 행위 차원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성경의 바른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성경의 바람직한 이해는 성경을 삶의 원리와 기준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텍스트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통찰하는 일이자 교회 공동체의 경험적 해석을 통해서 의미를 실천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고백과 경험적 해석이 반영되는 내러티브의 원리는 시대, 사람, 장소와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 축소될 수 있으며 때로는 다른 내러티브의 원리로 대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읽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텍스트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의미의 제공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분명한 의미를 지닌 실재하는 메타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미 주어진 의미에 최대한 가깝게 해석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논의를 바탕으로 성경이 지닌 내러티브와 메타이야기의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 표와 같다.23)



내러티브 메타이야기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과 정황을 담는다. 저자가 내러티브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일관된 메시지와 의도를 담는다.
미시적 관점으로 본 복음의 실존적이며 구체적인 현장 거시적 관점으로 본 복음의 전체 줄거리이자 보편적 원리가 되는 이야기
성령이란 동일 저자에 의해 쓰여 유기적으로 연결된 각각의 이야기(앞뒤 사건들은 연속적 혹은 불연속적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내러티브들을 관통하는 중심 메시지로서의 이야기
일인칭 시점으로 경험될 수 있는 개별적 사건들을 묘사하거나 배경이되는 사건을 암시 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파악되는전체 사건들의 핵심 줄거리로 표현 해석의 기준을 제공
현재화된 시점으로 접근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을 포괄함
이성, 감정, 의지가 동원 이성적 통찰
믿음의 실체인 행위들의 기록 믿음의 내용, 행위들의 의미부여구체적 내러티브들 속에서 발견되는 동일 원리와 패턴, 질서를 포함. 윤리적, 도덕적 관점을 가짐
둘 다 이야기(인물, 사건, 배경) 구조를 가지며 언어로 표현된다. 메타이야기의 의미는 개별적 내러티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개별적 내러티브들은 메타이야기를 통해 그 현장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다. 메타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 되심의 의미를 부여함으로, 내러티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구체적 상황과 의미를 증거함으로 나타난다.


III.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과 연극적 해석 원리
1. 성경의 통전적 이해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은 많은 내러티브를 지닌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히 복음서와 역사서 등은 구체적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내러티브적 특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가서와 서신서, 지혜서와 같이 구체적인 사건을 명시하지 않지만 화자의 생각과 감정의 배경이 되는 내러티브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형태의 글들도 있다.

성경은 성령 충만한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글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저자는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이 성경의 통일성과 유기성의 근거가 된다.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한다는 점에서 통일성을 가지며, 성경 속 다양한 글들은 문학적 구성의 차원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 안에서도 유기성을 지닌다.

우리는 먼저 성경이 가진 이야기 형식의 풍부함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다양한 문학적 형식만큼 다양한 정황 가운데 있는 인물들과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다. 성경에는 현재 우리 삶에서도 충분히 공감되는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성과의 갈등, 좌절, 공포, 소망 등 다양한 감정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 즉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 다른 사건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일된 메시지와 그분의 성품이 담겨 있다. 다양한 삶의 정황을 담은 다양한 내러티브들은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속에 흐르는 그분의 통일되고 일관된 메시지를 반영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진 ‘다양성 속의 통일성(unity in diversity)’24)이다. 성경 내러티브의 다양성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하신 배려의 장치이기도 하다.

다양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높이에 맞게 몸을 낮추시는 겸손의 소통방식인 내러티브들로, 통일성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고자 하시는 주된 목적, 방향성이 담긴 메타이야기로 나타난다. 성경의 내러티브들은 긴밀하고 복잡하게 나열 혹은 교차되고, 때로는 단절되거나 독립된 듯이 보이지만 인간 저자를 통한 동일 저자(성령)의 목적에 따라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성경의 내러티브들은 다양한 사건 속에서도 저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전체 메시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통일성과 유기성을 갖는다.

바르톨로뮤와 고힌은 이러한 특성을 잘 반영한 6막 구조의 드라마로 성경을 이해하면서, 통일성을 무시한 성경 읽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우리는 대부분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작은 조각들, 즉 신학적인 조각, 도덕적인 조각, 역사비평적인 조각, 설교 조각, 경건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인 것처럼 읽는다. 하지만 성경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읽는 것은, 성경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을 형성해 가고자 하는 신적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는 것이다.25)

여기서 비판하는 ‘조각’으로 성경을 접근하는 행위는, 성경의 통일성과 유기성을 간과한 채 텍스트의 부분적인 의미에 집중하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그림 안에서 각 부분의 위치와 의미를 파악할 때라야 하나님의 일관된 의도와 목적이 반영된 읽기가 가능하다.

특히 비교적 완결된 구성을 지닌 복음서를 읽을 때 텍스트를 독립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복음서 자체를 독립적으로 해석하고 각 에피소드를 접근하는 경향에 대해 페닝톤(Jonathan T. Pennington)은 성경이 가진 개별성이 전체성 안에서 분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개별적인 복음서 이야기들은 항상 보다 큰 전체의 일부라는 점이다. 개별적인 복음서 이야기들은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을 지닌 자체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단위를 지니고 있지만, 이것들은 보다 큰 문학적 문맥 내에서 우리에게 온다. 이런 점에서, 개별적인 복음서 내러티브 에피소드를 분석할 때, 우리는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유래한 원래의 전체(the whole)에 대해 지속적으로 민감해야 하며 에피소드보다 큰 차원에서 구성 전개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26)

페닝톤의 언급처럼 복음서를 메타이야기의 일부로서 성경 전체의 흐름 안에서 읽어낼 때 성경 안에서 복음서가 향하는 방향성과 그 위치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때 독자는 복음서의 에피소드가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으로서 실재했다는 사실과, 각 에피소드의 다양한 성격은 성경 전체의 의미를 보다 강화시키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정경 전체가 지닌 이러한 메타-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복음서 읽기를 가능케 하며, 동시에 복음서 읽기를 증진시키는가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서들의 초점은 성경 모두의 경우 이례적이거나 독특한 측면이 아니라 일관된 요소이다. 성경이 하나님 나라-구속사(the kingdom-redemptive-history)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복음서 읽기는 단순히 영화 음악을 듣는 것에서 내러티브 전체를 경험하는 것으로 향상된다.27)

페닝톤의 언급처럼 성경을 “메타-이야기”로 이해하며 복음서를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구속이라는 절정의 단계를 지나고 있음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메타이야기의 전체 구성 안에서 성경의 각 텍스트를 읽는 것은 저자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풍부하게 묵상하도록 돕는다.

성경의 개별적인 내러티브가 이야기 전체의 정황과 문맥 안에서 의미를 갖고 각각의 특수성을 드러낼 때, 하나님의 메타이야기는 개별성과 다양성을 가진 “통일체”28)로서 우리 삶의 원리가 된다. 즉 우리 삶의 사건들이 성경의 문맥적 흐름과 방향 아래서 해석되고 의미를 찾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에 속해 있음을 확신할 수 있고 그 이야기 안에 우리의 자리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믿게 된다.

페닝톤은 “전체-정경 문맥(whole-canon context)의 중요성”을 2세기의 비정경인 도마복음과 정경복음서와의 차이를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악한 소작인들의 비유’(마 21:3-46; 막 12:1-12; 눅 20:9-19)가 그 배경이 포도원의 노래로 알려진 이사야서(사 5:1-7)임을 이해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비유의 의미는 훨씬 풍성하게 전달된다.29)

예수님은 이사야의 원래 이야기를 수정해서 이야기의 요점을 강화시키고, 포도원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러한 변화는 창세기 22:2, 시편 2:7, 이사야 42:1과 같은 본문들을 가리킴으로써 구약에 대한 환기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 정경복음서들의 비유와 달리, 도마복음의 비유는 조직적으로 구약 암시들과 언급들을 모두 제거해 버리고 있다. ... 정경복음서들의 비유와 비-정경복음서인 도마복음의 비유 사이의 차이가 놀랍도록 두드러지는데 이 차이는 중요성을 지닌다. 구약의 암시와 언급들이 완전히 제거된 도마복음의 비유는 색깔이 없고 수수께끼 같으며, 구약 연결들을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이야기와도 완전히 결별되어 있다. 도마복음의 경우 이것은 도마복음 저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영지주의 전통의 메시지로 바꾸어버린 것이다.30)

헤이스(Richard Hays)에 따르면 복음서의 포도원 비유는 그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 안에서 분석되어야 한다.31)

정경 공관복음서들은 악한 소작인들의 비유를 보다 큰 이야기의 문맥에 위치시키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정경적인 문맥이 해석학적인 지침과 신학적인 깊이 모두를 제공하고 있다.32)

도마복음의 비유는 이사야 등의 구약에서 제공하는 통시적 의미가 배제되어 해석자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로서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는 공시적인 읽기에만 머물게 된다. 이에 비해 공관복음의 비유는 단어의 묵시적 연결이 제공하는 구약의 반향(echo)을 통해 역사성에 기초한 해석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중심 메시지를 반영함으로써 신학적 의미가 명확하고 풍부하게 전달한다.

이와 같은 통일성과 유기성에 기초한 본문 분석의 원리는 해석학적인 지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연극적 읽기의 본문 분석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지침이다. 희곡의 각 장면은 작가의 의도 아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중심 메시지를 향해 다양한 모습으로 기여한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각 장도 따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앞뒤의 장과 책들, 성경해석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책내 본문성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책간 연계성(특히, 그 텍스트가 에피소드처럼 구성된 경우라면)을 고려해야만 그 의미가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에 기초하여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다.

2. 성경의 연극적 이해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은 하나님이신 저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내러티브로 구성된 초월적, 권위적 계시이다. 성경이 다양한 내러티브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관된 목표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적 분석 방식은 메타이야기로서의 성경의 구성(plot)과 내러티브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동안 연극의 은유를 통해 성경의 서사성과 연극적 특성을 조망해보는 시도들이 있었다. 칼빈(John Calvin)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극장”에 비유한 것 외에도, 많은 기독교 학자들은 기독교 교리와 윤리를 설명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연출자이자 극작가로, 세상을 무대로, 그리스도인들을 배우로 비유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앞서 언급된 바르톨로뮤와 고힌뿐 아니라 라이트(N. T. Wright)도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와 구속, 완성을 향하는 대서사극으로 설명한다. 곰비스(Timothy Gombis)는『이렇게 승리하라』에서 에베소서가 현재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촉구하는 삶의 원리를 담고 있음을 연극적으로 제시한다.33) 밴후저는『교리의 드라마』(The Drama of Doctrine)와『이해를 말하는 신앙』(Faith Speaking Understanding)에서 성경의 진리를 연극적 모델로 이해하고 실천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연극적 통찰은 단순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세상을 통치하는 원리를 담은 텍스트임을 알고 그 원리에 근거하여 삶의 자리와 방향을 결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거시적 의미의 연극적 통찰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에 매우 유익하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연극적 통찰이 성경을 우리 삶의 메타이야기로서 발견하게 할 뿐만 아니라 탈근대적 읽기의 요구처럼 성경의 진리를 전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진리에 따른 삶을 살게 하는 구체적 훈련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34)

텍스트 속 인물의 행동 안에 숨겨진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의 동기가 행동으로 연결될 때 연극의 문법이 성립된다. 인물의 행동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상호연관성 있게 구체화될 때 인물은 사건 속에서 연극적으로 구현된다. 우리는 연극의 이러한 문법을 기독교 신앙에 차용할 수 있다. 밴후저에 따르면 신앙이 삶의 정황 가운데 행동과 실천으로 수행될 때 그것은 “믿음의 공연”이 되며,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성경의 “살아 있는 주석”이 된다.35) 그리스도인(배우)은 각자 적합한 행동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의 동기를 관찰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연출자)의 의도와 맞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연극의 문법을 통해 텍스트에 참여할 때, 삼인칭 관찰자의 시점은 허용되지 않는다. 연극적 해석에서 각 역할은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이야기 전체에 기여하므로 배우는 각자 일인칭 시점으로 텍스트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연극적 해석은 실천적이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연극적 통찰은, 메타이야기인 성경이 우리의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내용을 변형시켜서는 안되는 ‘절대적 텍스트’임을 전제한다. 성경의 연극적 읽기는 각자 극중 인물로서 텍스트의 상황 안에서 적합한 마음의 동기를 찾아 움직이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메타이야기로 읽는 것은 근대적 의미의 진리와 탈근대적 의미의 진리가 주장하는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동시에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밴후저는 “구속의 드라마라는 모델(a Drama-of-Redemption Model)”을 제시하며, 성경을 지성적 이해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실천의 차원에서도 접근한다.

우리는 성경 너머로 이동하여 정경(cannon)에 근거하여 양육된 생각(mind)을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이 함축하는 세상의 신실한 공연자가 된다. 구속의 드라마 접근의 목표는 믿는 자가 예수님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reality)을 생각하고 갈망하고 바라보고 그리고 나서 행동할 수 있는 이성, 마음, 상상을 훈련하고 제자화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페이지 “너머(beyond)”로 이동하는 것은 그것을 적용하는 것 이상을 포함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보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의 습관을 새롭게 하고 변혁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성경은 단지 정보를 나르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적 소통 행위의 매체이며 그 목적은 단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비전, 올바른 태도, 올바른 행동을 양육하도록 변형시키는 것이다.36)

밴후저는 드라마(연극)37)란 프레임(frame) 안에 신학적 내용을 적용하여 메타이야기인 성경에 대한 지성적 이해를 넘어 신앙적 실천 및 훈련을 동반한 성경 해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밴후저가 지향하는 “성스러운 페이지 너머”의 실천적 삶의 이동은, 스미스가 주장하는 성례전적 삶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스미스는 일상이 성례전적 삶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습관과 행동의 훈련을 통해 삶의 목적과 방향을 분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연극적 해석의 소통적 이해: 삼위일체적 소통과 텍스트 해석

일반적으로 연극은 작가와 독자, 텍스트와 배우, 인물과 배우, 배우와 관객, 연출과 관객 등의 소통을 염두에 둔 예술 매체이다. 그 점에서 텍스트를 연극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다른 방법보다 역동적인 해석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성경이란 텍스트를 역사적, 현재적, 미래적 사건을 토대로 한 계시와 증거를 담은 이야기 형태인 신적 발화로 이해한다면 그 해석은 좀더 역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연극적 해석은 성경의 내용이 개념적이고 지적 지식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정서와 의지를 담은 실천적, 행위적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이 있다.

밴후저는 삼중적 소통이론을 토대로 삼위일체적 해석 태도를 제시한다. 그는 언어소통이론을 토대로 “저자-텍스트-독자라는 문학적 삼중성”을 통해 성경으로 드러나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해석하고자 한다.38) 밴후저는 성부 하나님을 발화자로, 성자 하나님을 의미수반발화로서 하나님의 말씀이자 “메시지의 실체적 내용”으로, 성령 하나님을 “발신자의 메시지를 수용하는 조건과 능력”으로서 효과수반발화자로 설명한다.39) 밴후저의 이와 같은 삼위일체적 해석 태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해석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제공한다.

그는 성경을 저자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발화한 것으로서 보고 텍스트의 저자성을 하나님께 찾으며 신적 권위의 근거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텍스트는 하나의 참된, 따라서 통일된 해석을 가지고 있다.”40) 따라서 성경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와 목적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성자 하나님은 텍스트의 내용 자체이면서 동시에 텍스트의 목적을 실현하고 구현하는 분이기에 텍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메시지로 이해된다. 성령 하나님은 텍스트의 의미가 독자에게 수용되도록 하는 분이기에 텍스트가 의미하는 바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찾도록 협력하신다.

이와 같이 삼위 하나님은 한 분으로 성경의 해석을 소통행위로 이끌어가신다. 필자는 성경의 연극적 해석을 삼위일체적 소통행위에 비추어 접근하고자 러시아 사실주의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i)의 주요 개념들을 교차하여 사용한다. 성부 하나님은 텍스트의 의미를 제공하는 저자로서 저자에 대한 이해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에 가장 기본적 전제가 된다. 성자 하나님은 성경 텍스트를 관통하는 메시지, 즉 인류의 창조와 구원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중심 메시지를 구현하는 메시지 자체의 현현이시다. 따라서 연극적 해석에서 성부 하나님은 스타니슬랍스키가 언급하는 텍스트를 관통하는 초목표(the super objective)를 찾고 그 역동적 의미를 밝히는 데에 핵심 열쇠가 된다. 우리는 성자 하나님의 삶과 사역을 통해 텍스트 전체의 초목표와 각 장면의 목표들을 찾고 장면 안에서 일어나는 인물 간의 역동을 이해할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배우로서 인물과 소통하고, 텍스트와 소통하는 데에 사건의 의미와 정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이끌어가신다. 우리가 텍스트 안에서 구체적 행동을 찾고 대화 속에서 반응할 때의 마음의 움직임을 경험하면서 해당 장면의 의미가 현실적 언어로 이해되고 마음 깊이 수용하는 데에는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이끄심이 필요하다.41)

4. 성경 속 행동의 동기: 구속사적 초목표와 종말론적 의미

앞서 밴후저의 주장을 통해 드라마라는 프레임에 신학적 통찰을 적용하여 성경에 대한 지성적 이해를 넘어 전인격적인 인식의 변화와 신앙적 실천 및 훈련을 동반한 성경 해석이 되어야 함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의 사건을 내러티브적 상황, 즉 구체적 상황과 인물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 개개인의 마음의 움직임과 하나님의 마음에 주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극적으로 성경을 통찰하는 목적은 결국 인간이 갈망하는 대상과 행동의 중심 동기를 파악하고 분별하며 교정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는 행동의 목적을 분별하는 기준을 찾기 위해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와 방식대로 성경 텍스트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언급하고자 한다.

성경은 다양한 문학 형태를 사용한 내러티브들을 관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 곧 하나님의 목적을 담은 글이다. 이 점에서 사실주의 연극의 연출가인 스타니슬랍스키의 초목표(the super-objective) 개념은 성경의 구속사적 메시지와 현재 우리 삶의 종말론적 의미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법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모든 텍스트에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가 있다. 연극 분석에서는 주제를 동적으로 표현하는데, 스타니슬랍스키는 이처럼 텍스트를 관통하는 중심 메시지를 ‘초목표’라고 부른다.42) 안민수는 “연극에서 주제란 연극을 이끌어가는 객관적인 실체로서 연극의 목표”라고 정의한다.43) 연극에서 극중 인물은 인물 자신의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행동한다. 실제로 행동은 의미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표현된다. 연극은 마음의 움직임을 행동으로 표현한 예술이란 점에서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마음은 특정한 목표를 향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 스미스는『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라』44)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대상을 갈망하고 숭배하는(예배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갈망하고 예배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욕구를 강화시킨다. 배우는 극중에서 연기하는 갈망의 대상을 실제로는 사랑하지도 숭배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목적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사고하고 갈망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느끼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이다.

연극의 희곡 분석에서 등장인물의 행동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이때 갈망은 단순히 막연한 감성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인물은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행동의 동기는 구체적인 욕구로 표현된다. 배우는 텍스트에 나와 있는 인물의 행동을 근거로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바탕으로 내적 동기를 분석하여 텍스트의 행동을 구현시킨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훈련에서는 배우가 주어진 상황에서 목적을 가지고 자극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반응하도록 즉흥연기를 사용한다. 연극에서 ‘즉흥’의 의미는 단지 배우가 즉석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즉흥’의 의미는 “만약~라면의 마법(magic if)”을 사용하여 마치 ‘지금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행위’를 뜻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만약~라면의 마법”이 “배우에게 내적이고 외적인 능동성을 불러오면서도 이것을 강제적이지 않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하도록” 이끈다고 설명한다.45)

배우가 텍스트의 인물로서 진실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극의 상황을 철저하게 믿고 이에 진실하게 반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대에서 배우의 믿을 법한 연기는 상황을 믿으려는 배우의 최면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 상상46)에서 시작된다. 배우가 자극의 상황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붙잡고 움직이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며 그 목표는 행동의 주된 동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각기 다른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그것을 관통하는 텍스트 전체의 초목표가 있다. 성경의 초목표는 결국 ‘죄된 인간의 구속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그 내용으로 담는다. 그러기에 성경의 초목표는 우리에게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며 그 초목표를 좇는 삶의 내러티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종말론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의 각 내러티브와 마찬가지로 일상 삶의 각 부분들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체의 초목표를 향해 협력하고 있다. 즉 행동의 동기를 초목표와 같은 방향으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메타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모습대로 초목표에 기여하고 있다.

동기부여(motivation)는 “연극에서 인물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는 질문과 탐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과 생각은 인물 행동의 원천(source)”이 된다.47) 일반적으로 인물 행동의 원인이 되는 동기들은 텍스트에 드러나 있기보다는 이야기 안에서 숨겨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사와 대사 사이에, 행과 행 사이에서 대사로 드러나 있지 않는 인물의 마음의 변화와 동기를 잘 읽어내야 하는데, 이를 두고 연극에서는 ‘숨겨진 뜻 찾기 혹은 행간(subtext) 읽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행동의 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행동의 원인은 선택이며, 선택의 원인은 어떤 결과(end)에 향해져 있는 갈망이나 이성이다. ... 따라서 선택은 지성과 사고, 어떤 인물의 기질 모두를 포함한다. 어떤 것은 우연히,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해 행해진다. ... 바람은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소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이성적인 관심은 화와 욕망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일곱 가지 원인인 우연, 본성, 힘, 습관, 이성, 열정, 욕망 중의 하나를 가진다.48)

여기서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비이성적 관심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좋은 것에 관심을 갖고 소망하며 갈망이 선택의 원인이며 행동의 동기가 되는데 화와 욕망은 비이성적인 관심이다. 선택은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내포한다. 심지어 범죄자도 범죄 행동이 자신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범죄 행동은 욕망하는 ‘좋은 것―도덕적 판단과는 구별되는―’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기초로 발생한다.

이처럼 도덕적인 선에 대한 판단 없이 일어나는 비이성적 관심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화와 욕망이라면, 그것을 성경적으로는 잘못된 욕구로 부를 수 있다. 야고보서(4:3)에 따르면 잘못 구하는 욕구는 정욕에서 온다. 배우 훈련에 집중했던 스타니슬랍스키도 연극의 형상화에 있어 이성의 역할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무대 밖의 삶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삶도 연속적인 일련의 목적과 그것의 달성들로 구성된다. ... 신체적 그리고 심리학적 목적은 특정한 내적 연결, 연속성, 점진성과 감정의 논리로 결합되어 있다. 인간은 때때로 감정의 논리 안에서 비논리적인 것을 찾게 된다. ...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그것이 논리적이고 그 논리가 일관될 필요가 있다.49)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 위의 행동은 목적을 위해 일어나며 목적은 논리적이고 일관되어야 함을 언급한다. 행동을 발생시키는 요소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을, 스타니슬랍스키는 논리와 비논리에 대해 언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인 욕망을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 위 행동의 동기가 논리적으로 일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타니슬랍스키 모두 행동의 동기를 통찰하는 데에 있어 논리적인 이성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행동하는 이유를 언제나 논리적으로 찾지는 않는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언급처럼 여러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부분이 뒤엉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사건을 재현할 때에는 논리적인 연결과 타당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배우는 가상의 현실에서 자신의 행동이 실제 일어나는 것처럼 배우 자신과 관객에게 믿어지도록 움직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동의 동기를 의식하지 못할 때에도 실제로는 숨겨진 욕구의 질서가 있다는 점에서 내적 동기의 논리적 요인을 부인할 수 없다.

인물의 내적 동기를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연극적 해석은 우리 내면의 부정적인 욕구 안에 왜곡된 인과관계가 있음을 깨닫도록 돕는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이성의 이상적인 모델은 로고스인 말씀이며 예수님이다. 로고스는 인격이시기에,50)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 내면의 잘못된 욕구와 동기를 분별할 수 있다. 연극을 사용한 성경 읽기는 텍스트 속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의 이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정되도록 기여한다. 또 성경 해석에서 사용되는 연극적 접근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감성, 의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성 중심적 태도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이성적 분석과 판단, 통찰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통한 전인격적 해석을 위해 이성은 역동적이고 통합적으로 작용될 필요가 있다. 결국 이성의 판단과 통찰을 비추는 기준은 전체 텍스트를 관통하는 초목표가 될 것이다. 해석자는 전체 초목표에 비추어 각 내러티브와 인물에서 드러나는 행동의 동기를 분별함으로써 성경이 전하는 상황적 지식을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때때로 극중에서 예수님을 배반하는 유다나 예수님을 증오하는 바리새인의 역할을 할 경우, 배우는 자신 내면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성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역할을 통해 하나님을 거부하고 성령님의 근심을 외면하는 자신을 직면하고 불순종의 뿌리가 자신이 믿고 있는 왜곡된 인과관계51)에 있다는 이성적 통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반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긍정적인 인물을 연기한다면, 우리는 현실의 자신과는 다르지만 좇고 싶은 인물의 생각과 마음을 모방하며 그 소망을 보다 공고하게 갖도록 도전받을 수 있다.

연극에서 사건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욕구의 충돌이다. 이 점에서 마음의 동기를 찾고 그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성경의 내러티브를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읽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극적으로 읽는 것은 먼저 메타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목적을 발견하고 각 내러티브의 인물이 추구하는 목표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처럼 연극적 읽기는 성경 속 행동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초목표를 통해 우리 삶이 성경이 말하는 메타이야기 안에 속해 있음을 전인격적으로 깨달으며 종말론적 삶을 사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만들어가는 구속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IV.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성경이 지닌 내러티브적 성격을 메타이야기 안에서 다룸으로써 신학적인 이해를 시도하였다. 성경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동일 저자가 제공하는 통일성을 갖는 동시에 그 권위에서 성경의 객관성을 확보한다. 또한 성경 속 다양한 내러티브들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되고 일관된 메시지 안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을 보여준다. 성경은 메타이야기로서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핵심 줄거리를 담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메타이야기로서 처음과 끝의 구조를 가진 완결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통일성을 지니며 성경의 내러티브들은 메타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를 반영하도록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성경의 연극적 접근은 텍스트의 분석에서 시작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초목표는 저자이신 하나님의 중심 메시지로서 메타이야기 안에서 찾아지며 각 내러티브들을 담은 장면들은 하나님의 목적, 즉 초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협력한다. 성경의 연극적 해석은 성경의 사건을 단순히 몸으로 표현해보는 시도가 아니라 성경의 움직임이 극적 행동으로 표현되도록 인물의 숨겨진 핵심 동기를 찾음으로써 텍스트의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이다. 성경의 연극적 이해는 텍스트의 전체 내용 안에서 각 인물의 마음의 동선을 통해 사건의 문맥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해석된 의미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극이 지닌 체험의 원리는, 성경의 의미를 알고 삶에서 실천하라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나 반대로 실천하면서 의미를 통찰하는 작업에도 적용된다. 즉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실제로 체험함으로써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사건의 체험을 위해서는 텍스트에 근거한 구체적 상황화가 필요하다. 여기서 스타니슬랍스키가 말한 “만약~라면의 마법(magic if)”을 통한 진실한 재현이 이루어진다. 진실한 재현은 “만약에”라는 가정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기보다는 실제로 인물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쪽을 선택함으로써 마음의 숨겨진 동기를 발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연극적 읽기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전체 플롯을 이해하며 성경 속 인물의 욕구를 분석하고 행동의 구현을 통해 사건을 경험할 수 있다. 독자는 성경의 계시를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된 전체 플롯을 통해 이해하고 그 내용을 인물의 극적 행동으로 재현함으로써 실천적 지식으로 삼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연극이란 매체는 이성적 이해와 전인적 실천을 요구하는 성경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에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특히 성경에서 인물 행동의 동기를 찾는 과정은, 텍스트의 의미를 발견하는 이성적인 해석 과정이자 자신의 욕망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반응하도록 훈련하는 데에 기여하는 실천적 해석의 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연극적 해석을 통해 일상 삶의 내러티브가 하나님의 메타이야기에 속해 있음을 전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피터 브룩(Peter Brook)에 따르면, 성스러운 연극은 “보이지 않는 것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을 제공한다.52) 내러티브들로 구성된 메타이야기로서 성경을 연극적으로 해석하고 재현하는 일은 계시된 성경의 진리를 드러낼 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다.


Notes
1) 박종석은 성경 공부가 지성적 차원에 치우치지 않고 지, 정, 의의 차원에서 경험되고 교육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양한 연극의 형태를 도입시킬 수 있음을 소개한다. 박종석, “기독교 신앙교육과 연극,”『영산신학저널』Vol. 43 (2018): 285-86.
2) 김병훈은 내러티브 신학을 “신학적 관심, 곧 종교적 주장을 종교 공동체의 이야기에서 찾아내고 설명하는 신학”으로 설명하며 ‘순수 내러티브 신학자들’과 ‘비순수 내러티브 신학자들’로 나누어 내러티브에 대한 신학적 입장의 차이를 소개한다. 김병훈, “내러티브 신학과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헤르메네이나 투데이』제51호 (2011): 83.
3) Ibid., 89-90.
4) 많은 내러티브들을 담은 큰 이야기로서 메타내러티브라는 용어가 더 통일되고 자연스러운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영화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 단순히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보다는 상황을 드러내는 다양한 단서들―소리, 짤막한 장면들, 소품 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내러티브는 다양한 문학 형태를 통해 당시의 사건을 증거하고 전달하는 성경 속 텍스트들을 지칭하는 데에 적합하다. 반면 메타내러티브는 리오타르(Jean F. Lyotard)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메타내러티브의 불신”으로 정의하고자 지배적 담론이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용어인 만큼 그 의미와 차별하기 위해 이를 메타이야기로 부르고자 한다. 본고에서 쓰인 메타이야기는 성경을 통해 전달되며 성경에 근거한 처음과 끝의 완결된 구조를 가진, 인간과 피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구체적으로 행하신 일, 그리고 실존적 전망을 담고 있는 ‘큰 이야기’를 의미한다.
6) Craig G. Bartholomew and Michael W. Goheen,『성경은 드라마다』김명희 역 (서울: IVP, 2011), 13. 고힌과 바르톨로뮤가 성경의 내용을 설명할 때, 그들은 라이트의 5막 구조에 만족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귀환으로 말미암는 완성을 덧붙여서 6막의 구성을 제시한다.
7) 이야기로서 성경은 일상의 무료함을 덜어주는 소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큰 이야기’이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하는 기능을 하며, 세상에 대한 개인을 세우는 데에 기여한다.
8) Bartholomew and Goheen,『성경은 드라마다』, 25. 필자는 직접 인용 외에는 ‘메타내러티브’ 대신 ‘메타이야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메타내러티브와 내러티브의 차이를 좀더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건을 토대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메타이야기’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 안의 작은 이야기들은 사건을 뚜렷하게 전달하는 이야기 형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성에 초점을 둔 ‘내러티브’의 용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본 논의에서는 성경 전체를 가리킬 때는 메타이야기로 표현하고 성경에 기록된 각각의 글들은 내러티브성을 지닌 글로 이해하고 ‘내러티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9) 스미스는 리오타르의 주장을 빌어 메타이야기가 아닌 내러티브로서 진리를 다루고자 하며, 내러티브의 규모가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자고 주장한다. 그래서 어떠한 주장을 보편적 이성으로 입증하거나 주장하기보다 메타이야기의 기초가 이성이 아닌 이야기에 근거함을 초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메타내러티브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한 것은 모든 지식이 본래 내러티브를 기초로 삼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을 근대적 지식 개념인 보편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로서의 지식을 회복하여 그리스도 이야기를 변증하지 않으면서 더 확고하게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 Ibid., 74.
12) Ibid., 75-76.
13) Ibid., 117.
14) 스미스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 이전에 “상상하고 욕망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 역시 이성적 통찰을 근거로 한 “기독교세계관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기독교의 사회적 상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James K. A. Smith,『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박세혁 역 (서울: IVP, 2016), 199. 스미스의 인간관과 예배관은 복음을 내러티브로서 이해함으로써 일상의 삶이 복음의 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이성이 아닌 감성과 의지를 동반한 신앙훈련으로 자리 잡아야 함을 역설한다. 이 점에서 스미스는 복음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메타이야기’로 수용하고 있으나 그것을 인류의 메타이야기로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지향하는 다른 우상을 향한 예배에 대항하는 문화적 언어로 내러티브성과 사회적 상상력을 동반한 예전적 삶을 강조하고 있다.
15) 본 논의를 위해 거대담론과 메타이야기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거대담론(me-tadiscourse)은 어떠한 현상이나 분야에 대해 원리를 제공하는 규범적 의미를 지닌 이야기로, 논리적인 성격을 지니며 분야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거대담론이 수정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필자가 성경을 명명하는 ‘메타이야기’(the meta story)는 인류와 세상에 원리가 되는 이야기로, 가장 상위 개념으로서 유일한 권위를 지니며 다른 이야기로 대체되거나 수정될 수 없다. 또한 ‘이야기’는 대화(discourse)라는 의미보다는 사건을 토대로 한 많은 내러티브들을 포함함을 의미한다.
17) Ibid., 169.
18) Ibid., 173.
20) Ibid.
21) 스미스가 인간을 사랑하는 대상을 욕망하고 예배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모든 일상의 삶을 구체적으로 통찰하는 것은, 기독교세계관을 삶의 원리로 삼는 데에 매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이 세상의 가치와의 영적 전쟁임을 밝힌다는 점에서도 성경적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세상이 사망으로 이끄는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의 거대담론이 자칫 성경의 메타이야기에 대항하는 경쟁적이고 동등한 지위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즉 세상이 이끄는 여러 욕망의 거대담론을 성경의 메타이야기 아래에 두고 본 논의를 진행시키려 한다.
22) 스미스는 현대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소비주의 담론이 사람들에게 매일의 일상에서 욕망을 채우는 소비 행위와 결합한 예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소비주의 예전’이란 표현으로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소비주의 예전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은 비참할 정도로 부적절한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일종의 쇼핑몰 흉내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소비의 복음―획득이 행복과 성취감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문제 삼기보다는 무엇이 팔리는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복음주의 공동체는 상품만 ‘예수’ 물건으로 바꾸어 소비의 복음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Smith,『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154.
23) 메타이야기와 내러티브에 대한 용어 정리는 2016년 3월 논문 지도를 위해 이루어진 질의와 대답의 과정(지도교수: 이경직)을 통해 보완되었다.
24) “하나님의 행위들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 속에 내재하는 통일성과 다양성에서 비롯되며 또한 그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동시에 그의 인격에 있어서, 그의 계시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에 있어서 삼중적이다(threefold).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모두가 깨어짐이 없는 전체를 이루며, 그러면서도 풍성한 다양성과 변화를 지닌다.” Herman Bavinck,『바빙크의 개혁교의학 개요』원광연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3), 169.
25) Bartholomew and Goheen,『성경은 드라마다』, 14.
27) Ibid., 447-48.
28) Bartholomew and Goheen,『성경은 드라마다』, 15.
29) Pennington,『복음서 읽기』, 448.
30) Ibid,, 448-51.
31) Ibid,, 449.
33) 이 책의 원제목이『에베소서의 드라마: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하기』(The Drama of Ep-hesians: Participating in the Triumph of God)인 점은 곰비스가 메타이야기에 대한 연극적 관점에서 에베소서를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4) 박종석은 연극이 행위적 차원과 지적 정서적 차원에서 참여자들의 신앙 성장에 전인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성경 교육의 측면에서 고찰한 바 있다. 박종석, “기독교 신앙교육과 연극,” 281.
37) 드라마(drama)와 연극(theater)은 개념에 있어서 서로 다르지만, 여기서는 넓은 의미로 이해하며 ‘연극’으로 지칭한다.
39) Ibid., 730-31.
40) Ibid., 671.
41) 필자는 삼위일체적 해석 원리를 토대로 한 연극적 해석을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 용어인 ‘만약에라는 마법’, ‘초목표’와 ‘배역을 생활한다’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 서민정, “스타니슬랍스키의 ‘인물 구축’으로 접근한 성경 읽기의 신학적 조망: 케빈 밴후저의 삼위일체 소통 원리를 중심으로,”『기독교철학』제24권 (2017): 73-103 참조.
44) 역자는 ‘desire’를 ‘욕망하다’로 번역했으나 필자는 ‘갈망하다’로 번역한다. ‘욕망’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가 성경적 문맥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욕망’ 대신에 ‘갈망’ 혹은 ‘욕구’로 사용한다.
46) 스타니슬랍스키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모든 생각은 반드시 정확한 근거를 가져야 하며 견고하게 구축”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연극적 상상을 위해 육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의 질문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구축하라고 조언한다. Ibid., 56-57.
48) Ibid.
49) Ibid., 300.
50) 내쉬(Ronald H. Nash)는 성경의 로고스는 우주적 원리를 의미하는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유대 철학자 필론(Philon)이 “플라톤의 형상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해석한 점을 비판하면서 로고스의 인격적 의미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Ronald H. Nash,『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마음』이경직 역 (서울: CLC, 2001), 80-81.
51) 예를 들어,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한 동기에는 그 행위가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상황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유다의 역할로서 인물의 욕구를 섬세히 관찰하고 분석할 때, 그 안에는 다양한 인과관계의 생각과 신념들이 왜곡된 채로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성경의 연극적 읽기” (박사학위논문, 백석대학교, 2017)의 일부를 수정, 보완하여 제35회 기독교학문학회(2018.11.3) 철학분과에서 발표된 “성경의 내러티브성 이해와 연극적 해석 원리”를 수정한 것임.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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