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Current Issue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8, No. 0, pp.117-164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19
Received 06 Apr 2019 Revised 08 May 2019 Accepted 13 May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06.48.117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의 개혁파 정통 기독론 연구:‘예수 그리스도의 인격론’을 중심으로
김은수
백석대학교, 조직신학 (ekim62@hotmail.com)

A Study on Francis Turretin’s Reformed Orthodox Christology: Focusing on ‘the Doctrine of Jesus Christ’s Person’
Kim, Eunsoo
Funding Information ▼

초록

본 연구에서는 먼저,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신학’의 최전성기에 활약하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그 정수를 보여준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François Turrettini, 1623-1687)의 중요한 신학적 특징들과 공헌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논박신학 강요』(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를 통하여 그의 ‘기독론’에 있어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론”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집중 분석하면서 그 주요 핵심 사항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1) 튜레틴은 유대인들이 거부한 ‘나사렛 예수’가 언약을 통하여 구속자로 약속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약속과 성취’의 구속역사적 맥락에서 분명하게 논증함으로써, 참된 기독론 이해의 기초는 어떤 ‘신학적 사변’이나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 혹은 원리’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사실성’에 그 분명한 토대를 두고 진행되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튜레틴은 그의 기독론 논의 가운데, 특히 ‘성육신의 신비’와 관련한 모든 논의들과 관련하여 그것을 본질적으로 그의 삼위일체론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많은 신학적인 난제들을 명쾌하게 해명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와 같은 튜레틴의 논의를 통하여 기독교 신학에 있어, 삼위일체론 이해와 기독론 이해는 그 세밀한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분리 불가능한 상보적인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튜레틴은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한 고유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위격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사람의 아들’, 곧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고, 따라서 그는 참된 ‘신-인’(God-man/theanthrōpos)이심을 명료하게 잘 논증하고 있다. 그렇게 함에 있어, 튜레틴은 고대교회가 공의회를 통하여 기독론에 대한 ‘정통 신앙표준’을 제시하였던 ‘칼케돈 신경’(451)을 개혁파 기독론의 핵심 표준으로 수용하여 잘 논증하고 있다.

(4) 튜레틴은 16-17세기 루터파와의 ‘성찬 논쟁’과 관련하여,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 문제에 대한 개혁파 견해의 핵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잘 제시하고 있다: 각 본성들에 속한 속성들과 특성들의 교류는 항상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교류(교통/전달)되며, 따라서 한 본성에 속한 속성들은 ‘인격을 통하여’ 다른 본성에로 오직 ‘간접적으로’(indirectly)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성의 교류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위격적 연합의 결과(영향/효과)이며, 이로써 각 본성의 속성과 특성들이 ‘인격’을 매개로 공유되고 전유되는 것이다.

Abstract

In this study, at first, I briefly deal with some theological characteristics and contributions of Francis Turretin(1623-1687) who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eologians in the 17th century ‘Protestant Scholastic Theology.’ Especially, he synthesised the ‘Reformed Orthodox Theology’ as a most elaborated doctrinal form and a developed dogmatic system in his era. And then, I also more specifically analyzed some kernel factors of Turretin’s theological arguments on ‘the Doctrine of Jesus Christ’s Person’ in his dogmatic magnum opus,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1) First of all, Turretin well demonstrated that ‘Jesus of Nazareth’ rejected by Jews was the promised Redeemer, ‘Messiah’(Christ) who was the fulfillment of covenant in the redemptive history. In doing so, through his arguments, we clearly acknowledged that the true foundation of Christian Christology as well as our whole faith is not any metaphysical ideas, principles, or theological speculations, but the historical reality of ‘Jesus of Nazareth.’

(2) In the arguments on ‘the mystery of Incarnation,’ Turretin essentially related it with the understanding of the Trinity. By such an argument, he actually made clear many difficult doctrinal problems in Christology. In that respect, we can recognize very well that the doctrine of Christology is essentially inseparable relation with the doctrine of the Trinity.

(3) Turretin proved that, after the Incarnation, the two natures (the divine nature and the human nature) of the Christ, who is the eternal Logos, are in the ‘Hypostatical Union.’ In that union, he is ‘the Son of God’ and at the same time ‘the Son of man,’ and therefore he is our unique ‘Mediator’ as the ‘God-man’(theanthrōpos). Moreover, Turretin reaccepted the following statement of ‘the Creed of Chalcedon’( 451) as the standard of Christian Faith: “One and the same Christ, Son, Lord, Only-begotten, to be acknowledged in two natures, 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liter; the distinction of natures being by no means taken away by the union, but rather the property of each nature be preserved.”

(4) Finally, concerning the controversies on the Lord’s Supper and communicatio idiomatum with the Lutherans, Turretin well suggested an essential understanding in the Reformed perspective as follows: ‘the attributes and properties of each nature can be communicated into the person of Christ, and therefore the attributes and properties which belong to one nature could be communicated only indirectly to the other, not directly, through the person. Thus, communicatio idiomatum is none other than the effect of the Hypostatical Union of the two natures in one person of Christ.’


Keywords: Francis Turretin, Christology, Jesus Christ, Hypostatical Union, Communicatio Idiomatum, Reformed Orthodox Theology, Protestant Scholasticism
키워드: 프란시스 튜레틴,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 위격적 연합, 속성의 교류, 개혁파 정통주의 신 학, 개신교 스콜라신학

I. 들어가는 말
1. 프란시스 튜레틴의 간략한 생애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François Turrettini, 1623-1687)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이끌며 개혁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과 테오도레 베자(Theodore Beza, 1519-1605)의 뒤를 이어서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신학’(Protestant Scholastic Theology)의 최전성기에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Reformed Orthodox Theology)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신학자이다.1)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592년 제네바로 이주하여 개혁파 교회 목사이자 칼빈과 베자가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신학교수로 사역했던 베네딕트 튜레틴(Benedict Turretin, 1588-1631)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 역시 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레이던(Leyden)과 위트레흐트(Utrecht), 그리고 프랑스 파리(Paris)와 소뮈르(Saumur) 등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활동하던 개혁파 신학자들과 깊이 교류하며 신학연구를 통해 학문적인 견문을 크게 넓혔고, 1648년부터 제네바 교회의 목사로 섬기며 동시에 이탈리아계 개혁교회 총회의 설교자로 사역하였다. 그리고 1650년 레이던 대학교의 요청으로 철학부 교수로 잠깐 동안 사역하다가 제네바 아카데미의 신학교수로서 ‘도르트 총회’(the Synod of Dortrecht, 1618-1619)에서도 큰 역할을 감당하였던 존 디오다티(John Diodati, 1576-1649)와 테오도르 트론친(Theodore Tronchin, 1582-1657)의 뒤를 이어 1653년에 ‘제네바 아카데미’의 신학교수로 부름을 받아 평생 동안 그 교수직과 더불어 ‘제네바 시의 목사직’(City Pastor)을 신실하게 수행하였다. 튜레틴은 그러한 그의 모든 사역들을 통하여 당대에 가장 논리적으로 명징하고 체계적인 개혁파 신학을 종합적으로 완성하여 제시한 신학자임과 동시에 아주 경건하고 열정 어린 명설교자로서 제네바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충성된 말씀의 사역자였다. 이러한 그의 주요 저서들 가운데 그동안 영문으로 번역된 것으로는 가장 중요한 저작인 3권으로 구성된『논박신학 강요』(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와 더불어『그리스도의 속죄』(The Atonement of Christ), 그리고『칭의론』(Justification) 등이 있다.2)

2. 프란시스 튜레틴의 신학적 특징과 중요한 공헌들

개혁파 신학의 발전 역사에 있어 튜레틴의 신학적인 중요성과 더불어 그의 많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의 신학에 대한 연구가 아주 미진하였고, 동시에 현대의 신학적 논의에 있어 상대적으로 ‘잊혀진’ 신학자가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우리의 주제인 그의 ‘기독론’(Christology)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먼저 그의 전체적인 신학에 있어 중요한 몇 가지 특징들과 공헌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이끌며 개혁파 신학의 기초를 놓은 칼빈과 베자 이후 개혁주의 신학이 계속하여 발전하였고 또한 개혁파 교회가 유럽 여러 곳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특히 칼빈의 예정론에 반대한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와 그 추종자들인 “항론파”(the Remonstrance)가 일련의 심각한 교리적인 문제들을 제기하였고, 이로 인해 소집된 국제적인 개혁교회 대표자들의 모임인 “도르트 총회”(the Synod of Dortrecht, 1618-1619)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깊이 있는 신학적인 논의를 거쳐 그들의 주장을 논박하는『도르트 총회 신앙표준서(도르트 신경)』(The Canons of the Synod of Dort, 1619)을 채택하였다.3) 그러나 이후에도 이와 관련한 신학적 논쟁들이 계속되었으며 튜레틴은 그러한 논쟁들 속에서 특히 정통 칼빈주의 견해와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의 견해를 절충하고자 시도했던 아미랄디안니즘(‘가설적 보편속죄론’, Hypothetical Universalism)을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에 따라 철저하게 논박하며 “도르트 총회의 신앙표준서”가 천명했던 정통 교리들을 신학적으로 더욱 명료하게 변증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4) 또한 그와 연관된 여러 가지 교리적인 논쟁들에 있어, 먼저 칼빈주의자들 안에서 일어난 ‘예정론 논쟁’에서 신학자들의 견해가 크게 ‘타락전 선택설’(supra-lapsarianism)과 ‘타락후 선택설’(infra-lapsarianism)로 나누어졌는데, 튜레틴은 그 가운데 도르트 총회의 주류적 입장이었던 ‘타락후 선택설’을 주장하고 견지하였다.5)

다음으로 17세기 ‘정통주의 시대’(신앙고백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로마가톨릭, 루터파, 개혁파 등 기독교의 다양한 진영들 간에 신학적으로 심화된 논쟁들이 더욱 격화되었고, 심지어 개혁파 안에서도 여러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들에 있어 견해가 다양하게 서로 나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개혁파 진영 안에서 ‘도르트 총회’ 이후에 프랑스 ‘소뮈르 아카데미’(the Academy of Saumur)에서 페트루스 라무스(Petrus Ramus, 1515-1572)의 신학적 영향을 받은 일군의 신학자들이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견해들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카펠(Louis Cappel, 1585-1658)은 성경의 영감론과 관련하여 ‘히브리어 맛소라 성경 본문의 오류 가능성’을, 라 플레이스(Josué de La Place, 1596-1655)는 아담의 원죄로 인한 죄책이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전가된다는 ‘간접 전가설’을,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아미로(Moise Amyraut/Amyraldus, 아미랄두스, 1596-1664)는 ‘제한속죄론’을 보다 유화시킨 ‘가설적 보편속죄론’(Amyraldianism)을 주장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심각한 논쟁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신학적 주장들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급속하게 번져 갔고, 심지어 개혁파 신학교육의 요람이었던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수진 가운데 많은 이들도 그들의 주장에 점차 동조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위스 정통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반박하며 칼빈으로부터 도르트 총회까지 이어온 개혁신학의 교리적 정통성을 보존함과 동시에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네바의 튜레틴의 요청으로 취리히의 하이데거(John H. Heidegger, 1633-1698)의 주도하에 바젤의 게른러(Lucas Gernler, 1625-1675)와 함께 “스위스 일치신조”(The Helvetic Consensus Formula, 1675)를 작성하여, 이후 개혁파 신학의 근간이 되는 “성경의 축자영감”(verbal inspiration), “원죄의 직접적인 전가”, 그리고 “타락후 선택”, “제한속죄”, “유효적 소명”, “인간의 본성적 무능력”, “이중적 언약(행위언약/은혜언약)” 등의 교리들을 보다 명확하게 재천명하였다.6)

다음으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을 특징짓는 소위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 혹은 ‘개혁파 스콜라주의’(Reformed Scholasticism)로 명명되는 신학방법론(theological met-hodology)과 관련된 것이다.7)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초기에 유럽 전역의 역사를 휘몰아쳤던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간들이 지나고 점차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1세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보다 명확하게 구체화하여 계승함과 동시에 종교개혁을 통하여 제기된 여러 핵심 교리적인 요소들을 이제 기독교 신학 전체의 주제들과 서로 조화시키고 논리적으로도 더욱 체계화하여 종합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엄밀한 중세 스콜라신학 방법론에 기초한 로마가톨릭의 ‘반종교개혁운동’(Counter-Reformation)에 의한 신학적인 도전과 더불어 루터파, 급진주의자들 등 여러 종교개혁 진영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들과 함께 상호 경쟁적인 신학적 체계화 작업들과 신앙고백서 작성 운동, 그리고 개혁파 자체 안에서 촉발된 다양한 신학적 논쟁들이 그 중요한 촉매제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개혁파 안에서는 먼저 칼빈의 신학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베자가 ‘제네바 아카데미’를 이끌면서 칼빈의 예정론을 논리적으로 더욱 엄밀하게 신학적인 체계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이미 그러한 ‘개신교 스콜라적 신학’(‘학문적 신학/학교의 신학’)의 경향이 나타났다. 이후 계속하여 이어진 여러 개혁파 신학자들이 신학적 논쟁들과 그들의 신학 저술 작업들 속에서 총체적으로 ‘개혁된 기독교 신학’의 핵심 교리적인 요소들을 새로운 성경 주석적 기초 위에서 더욱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하고, 또한 그러한 교리들을 통합하여 신학 전반에 걸쳐 전체적으로 체계화된 신학적인 종합을 위하여 ‘스콜라적 학문방법론’을 본격적으로 차용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그 초기에 당대에 널리 통용되던 엄밀한 학문방법론이었던 그러한 ‘스콜라적 방법’(Scholastic Methodology)을 적극 수용하여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체계화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신학자들이 곧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Heidelberg Catechism, 1563)와 그 해설서를 저술한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Zacharius Ursinus, 1534-1583)와 그의 후계자 제롬 잔키우스(Jerome Zanchius, 1516-1590), 그리고 유니우스(Franciscus Junius, 1545-1602)와 폴라누스(Amandus Polanus, 1561-1610) 등이다.8)

이러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Reformed Orthodox Theology)은 17세기 후반 그 전성기에 이르러 튜레틴에 의하여 가장 완성된 형태로 체계적으로 종합되었으며, 특히 그의 생애에 있어 신학적인 최고의 완숙기에 저술된『논박신학 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1679-1686)는 이 시대 ‘개혁파 정통주의 교의학’(Reformed Orthodox Dogmatics)의 정점을 보여주었다.9) 보다 특징적인 것은, 튜레틴이 이 저서에서 중세 로마가톨릭 스콜라신학의 정점을 보여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의『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저술 방식을 의도적으로 차용하여 종교개혁 이후 ‘개혁된 신학’에 대한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의 전체적인 신학체계를 다시 종합하여 재정립하고자 시도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저간의 여러 상황들을 살펴볼 때 필자가 짐작하기로는, 튜레틴이 이 저서를 통하여 하나의 ‘개혁파 신학의 신학대전’(Reformed Summa Theologiae)을 완성하여 제시하기를 의도하였다고 본다. 그리하여 튜레틴의 이 저서는 당시 정통주의 개혁파 신학을 대표하는 가장 표준적인 교의학 저서로 널리 수용되어 읽히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와 더불어 여기에서 튜레틴의 신학과 관련하여 우리가 새롭게 바로잡아야 할 큰 오해 가운데 한 가지는 그동안 흔히 이 시기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단순하게 아주 무미건조한 ‘사변적 이론신학’(speculative theoretical theology)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며 폄훼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적인 견해가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는 ‘신학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튜레틴의 다음과 같은 언명을 통하여 간단하게 논박된다.

신학은 본질적으로 이론-실천적이다(Theologia ita est Theoretico-Practica). 신학은 단순히 실천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또는 이론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신비로운 것들에 대한 지식이 신학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사변적(speculativam)이라기보다는 더욱 실천적(practicam)인 것인데, 이것은 신학의 궁극적인 목적(fine ultimo)이 실천(praxis)이라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모든 신비가 작용(operation)을 규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비는 작용을 촉구한다. 이는 신비가 너무도 이론적이어서 실천으로 이끌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배도 유발하지 않는 그러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천으로 인도하지 않는 그 어떤 이론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nec Theoria salutaris est nisi ad praxim revocetur).10)

이러한 튜레틴의『논박신학 강요』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당대에도 널리 수용되어 읽히며 큰 영향을 미쳤지만, 18세기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이성주의(rationalism)의 거친 회오리가 신학계 전반을 초토화시키며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다음, 특히 19세기 칼빈주의 개혁신학의 부흥을 이끌었던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는 그 자신의『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3 Vols.)을 저술하기 이전에 그의 강의에서 튜레틴의 이 저서를 교의학 교과서로 사용하였고, 또한 이 시기에 네덜란드의 개혁파 신학을 다시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재정립한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개혁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 4 Vols.) 저술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11)

3. 프란시스 튜레틴의‘기독론’의 논의 구조

튜레틴은 개혁파 신학에 대한 하나의 표준적인 교의학적 저술로서 그의『논박신학 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1679-1686)의 구조를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그리고 ‘종말론’ 등의 교의학 각론에 대하여 각기 구별된 명칭으로 아직 뚜렷하게 구분하여 나누지는 않고 개혁신학의 전체 교의학적 주제들(loci theologiae, topics of theology)을 단순하게 총 20개로 나누어 차례로 나열하면서 다루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이미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그러한 개혁파 교의학의 각론적 구조와 순서를 명확하게 갖추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볼 ‘기독론’과 관련된 주제들을 특히 제2권의 “제13주제. 그리스도의 인격과 상태”(The Person and State of Christ), 그리고 “제14주제. 그리스도의 중보적 직무”(The Mediatorial Office of Christ)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12)

그러한 그의 기독론의 논의 구조와 관련하여 먼저 언급할 것은 튜레틴 역시 개혁파 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언약신학’(Covenant/Federal Theology)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그 자신의 기독론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3) 또한 튜레틴이 칼빈의 신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더욱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서로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칼빈이 그의 교의학적인 저술인『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59)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14) 튜레틴도 기독론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제11주제. 하나님의 율법”과 “제12주제. 은혜의 언약”에 대하여 먼저 논하고 있다.15) 나아가 칼빈은 전체적으로 삼위일체론적인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 그의『기독교 강요』를 4개의 대주제로 나눈 다음 그 각각에서 세부적인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데,16) 특히 사도신경의 두 번째 항목인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부분인 “제2권, 그리스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먼저 ‘인간의 타락과 부패한 상태’(제1장-제6장), 그리고 ‘율법과 복음’(제7장-제11장)에 대하여 다룬 연후에 곧바로 이어서 본격적으로 ‘기독론’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차례로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제12장-제14장),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삼중직무’(제15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두 상태론과 은혜의 공로’(제16장-제17장)의 순서로 논하고 있다.17) 이에 반하여, 튜레틴은 해당 부분에 대한 칼빈의 그러한 논의 구조를 더욱 체계화하고 순서를 다소 변경하여 ‘타락 이전의 인간과 자연언약’(제8주제), ‘죄론’(제9주제), ‘자유의지와 인간의 부패한 상태’(제10주제), 그리고 ‘율법’(제11주제)과 ‘은혜언약’(제12주제)을 아예 서로 독립된 주제 항목으로 다루고, 그다음 ‘기독론’에 대한 주제를 다음과 같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 제13주제. 그리스도의 인격과 상태(The Person and State of Christ)
  • 1. 약속의 메시아: 나사렛 예수 (Q.1-2)
  • 2.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Q.3-5)
  • 3. 위격적 연합과 속성의 교류 문제 (Q.6-8)
  • 4. 그리스도의 이중상태: 낮아지심[비하] & 높아지심[승귀] (Q.9-19)
  • 제14주제. 그리스도의 중보적 직무(The Mediatorial Office of Christ)
  • 1. 그리스도의 중보자 되심과 삼중직무 (Q.1-6)
  • 2.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직무 (Q.7)
  • 3.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 (Q.8-15)
  • 4. 그리스도의 왕국 (Q.16-18)18)

그럼 이제 우리는 다음에서 그러한 논의 구조와 순서로 이루어진 튜레틴의 ‘기독론’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그 소주제별로 나누어 차례로 분석하면서 그 중요한 특징적인 요소들을 간략하게 요약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데, 다만 여기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인하여 ‘제13주제’에서 특히 “그리스도의 인격”(The Person of Christ, Q.1-8)에 대한 튜레틴의 논의만을 한정하여 다루고자 한다.


II. 약속의 메시아: 나사렛 예수(XIII.Q.1-2)
1.‘약속의 메시아’는 이미 오셨는가?

튜레틴은 그의 기독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이에 앞서 그가 논한 ‘은혜의 언약’(the covenant of grace)과 연관된 맥락에서 그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약성경의 중보자이시고 은혜의 언약으로부터 우리에게 흘러넘치는 모든 복들의 원인과 기원이기 때문에, 그러한 언약에 대한 교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결코 올바로 이해될 수가 없다.19)

따라서 그는 가장 먼저 과연 그렇게 언약을 통하여 약속된 ‘메시아’(Messiah)가 이미 도래했는지(Q.1), 그리고 그 약속의 메시아가 바로 ‘마리아의 아들,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 the son of Mary)인지에 대한 질문(Q.2)을 제기하면서, 이것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많은 성경적인 증거들과 역사적 사실들을 통하여 논박하며 입증한다.

이 부분의 상세한 그의 논증들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비록 우리의 구속자이신 ‘메시아’는 인류 역사 초기의 타락 사건 직후에 유일한 구원의 방편으로 즉각적으로 약속되었지만, 그가 오시기까지는 많은 이유로 인해 긴 시간의 간격이 있었다. 그리고 비록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와 악이 온 땅에 번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오래 참으시며 ‘그 정하신 때’(kairos)를 비밀로 남겨 놓으셨지만, 이미 구약성경에서 성령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렇게 약속된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믿는 자들이 분명히 알 수 있고 또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명백한 수많은 ‘표지’(marks)들을 알려주셨다.20) 따라서 비록 유대인들은 그 사실을 부인하지만, 그러한 성경의 수많은 증거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차매(pleroma kairon, in the fullness of times), 그 약속된 메시아께서 이미 오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21)

2.‘나사렛 예수’는 참된 메시아인가?

그렇다면 바로 이어서 제기되는 질문은 ‘그와 같이 약속의 메시아가 이미 오셨다면, 과연 그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진정 참된 메시아인가?”(Q.2) 튜레틴은 이 질문이야말로 바로 기독교의 근본 토대이며, 우리 신앙의 지렛목에 해당하는 것임을 올바로 강조하고 있다.22) 따라서 그는 유대인들이 거부한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약속의 참 메시아이심’을 다음의 여러 사실들을 통하여 철저하게 논증한다: (1) 그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에 나타난 증거가 이미 예언된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함(Q.2.4-8); (2) 그리스도의 특수한 인격(person)과 상태(state)에 나타난 부인할 수 없는 메시아로서의 분명한 표지들(9-11); (3)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포와 가르침 및 그가 행하신 구속의 사역들(12-20); (4)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예언된 바와 같이 온 세상으로부터 이방인들을 부르시고 기독교[교회]를 세우신 명백한 사실(21) 등 이러한 모든 증거들에 근거한 논증은 많은 신앙의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참 메시아이심’을 거부할 수 없도록 확증한다(22-28).23)

이와 같이 튜레틴은 그의 기독론 논의에 대한 기초로서 개혁파 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언약신학’의 맥락 가운데서 진행함과 동시에, 또한 오늘날 현대 신학의 기독론 논의들과의 연관 속에서 보자면, 그의 기독론 이해의 기초는 어떤 ‘신학적 사변’(theological speculation)이나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 혹은 원리’(metaphysical ideas or principles)가 아니라, 가장 우선적으로 성경의 구체적인 ‘구속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역사적 예수’, 즉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사실성(historical reality)에 그 토대를 두고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특히 현대 신학에서 많이 논의된 기독론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소위 ‘위로부터의 방법론’(Christology from Above)과 ‘아래로부터의 방법론’(Christology from Below) 모두를 지양할 수 있는 개혁파 기독론을 위한 좋은 방법의 한 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4)


III.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XIII.Q.3-5)
1.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

먼저, 튜레틴은 ‘영원한 말씀’(λογος)이신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사실, 곧 ‘성육신의 신비’(the mystery of incarnation)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중요한 신학적인 질문들을 제기한다(Q.3): “(1) 만일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은 필연적인 것인가?; (2) 우리를 위하여 성자의 성육신의 불가피성 외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구원의 방법이 가능하지 않은가?; (3)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신-인’(God-man/theanthrōpon)이 되셔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인가?”25)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비록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 가운데 몇 사람들(Alexander of Hales, Occam, Bonaventur, etc), 그리고 루터파 오시안더(Os-iander)와 소시니안주의자(Socinians)들이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도 성자께서 성육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튜레틴은 그러한 견해가 ‘가장 치명적인 이단적 사상’이라고 논박한다. 성경의 증거들에 따르면, 인간의 타락 사건 이후에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구속자가 약속되었고(참조. 창 3:15), 바로 그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죄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성육하셨다(참조. 마 1:21; 요 1:29; 마 9:13; 20:28, 갈 4:4-5 등).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직무들은 오직 죄인들과 관계된 것이다. 즉, 그는 ‘선지자’(Prophet)로서 죄인들을 가르치시고 믿음과 회개로 이끄시며, ‘제사장’(Priest)으로서 죄 값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실 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왕’(King)으로서 사탄과 세상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지키시며 다스리신다.26) 따라서 성경이 가르치는 그러한 모든 사실들에 근거하여, 튜레틴은 말하기를 “단언컨대, 그는 중보자(Mediator)가 되시기 위하여 성육하셨으며, 만일 죄가 없었더라면 그러한 중보자는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27)

다음으로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튜레틴은 그러한 질문이 함축하는 바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작정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이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수단이 있을 수 있는지, 혹은 반드시 둘째 위격인 성자께서 성육하셔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죄와 인간의 구속과 관련한 하나님의 작정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성자께서 성육하셔야 하는 것은 적절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28) 그 이유는,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justice)를 부인하시지 못하며, 또한 그것이 만족됨이 없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실 수 없다. 나아가 무한한 보상이 없이는 무한한 공의는 만족될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은 무한한 보상을 찾을 방법이 없다. (2) 그리고 만일 혹여 그러한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에 대하여 결코 신뢰할 만한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29)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구속사역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을 끊을 수 없는 결합으로 자신의 것으로 취하신 ‘신-인’(God-man)을 제외하고는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즉, 죄로 말미암아 죽은 바 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다음 두 가지가 동시에 요구되는데, “구원의 획득과 그것의 적용, 그리고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견디고 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의 중보자는 반드시 ‘신-인’(God-man/theanthrōpon)이 되셔야만 했다.”30) 나아가 튜레틴은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표현으로 추가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고통당하시고 하나님으로서는 극복하시며; 인간으로서는 우리가 당해야 할 형벌을 받으시고 하나님으로서는 그것을 이기시고 쓰레기로 던지시며; 인간으로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구원을 획득하시고 하나님으로서는 그것을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적용하시며; 인간으로서는 육신을 취하심으로 우리들 가운데 하나가 되시고 하나님으로서는 성령의 수여로 우리를 자기 자신처럼 만드신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으로서만(mere man) 혹은 하나님으로서만(God alone) 하실 수 없는 것이다. 신성만으로는(God alone) 죽음에 넘겨지실 수 없고, 또한 인성만으로는(man alone) 그것을 이기실 수 없다. 인간만이(man alone)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수 있고, 또한 하나님만이(God alone) 그것을 정복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본성이 모두 함께 연합하여 결합되셔야 하며, 그러한 결합 안에서 동시에 인성의 최고의 약점으로는 고통당하시고 신성의 최고 권능과 위엄으로는 승리하신다.31)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제나 “그는 참으로 ‘신-인’(God-man/theanthrōpon)”이시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신-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화해시키기 위하여 중보자로서 그의 모든 사역들을 수행하신다.32)

2. 왜 오직‘성자 하나님’(the Son of God)께서 성육하셨는가?

다음으로 튜레틴이 제기하는 질문은 “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 가운데 제2위격이신 성자께서만 성육신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Q.4). 그리고 이 ‘놀라운 성육신의 신비’에 대한 바로 그 질문과 관련하여 즉각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의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 가운데 어느 위격이 인성을 취하시는가?; (2) 그가 취하신 본성은 과연 무엇인가?; 또한 (3) 인성을 취하시는 방식인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은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4) 그것의 영향들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33)

튜레틴에 의하면, 먼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위격들(the whole Trinity)께서 이 ‘성육신의 신비’에 관계하시는데, 고대 교부들로부터 수납된 신학적 명제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외적 사역들(external works)은 결코 나뉘지 않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 전체가 이 성육신 사건에 있어 모두 공동으로 하나가 되시어 역사하시는 것에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성부께서는 성자를 보내셨으며, 성령께서는 그를 동정녀의 자궁에 잉태케 하셨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격 모두 이 성육신 사역에 필연적으로 관계하신다. 첫 번째 위격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최고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유지하시기 위하여; 둘째 위격께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서 일하시며 우리를 위해 만족을 드리시기 위하여; 그리고 셋째 위격께서는 우리 안에서 구원의 사역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그리하신다. 그러므로 첫째 위격께는 구원의 최종적인 운명이, 둘째 위격께는 그것의 획득이, 셋째 위격께는 그것의 적용과 완성이 각각 속하게 된다.34)

따라서 튜레틴에 의하면, 이 질문이 제기하는 주된 논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격 가운데 과연 어느 위격께서 성육하는가 하는 것이며, 또한 삼위격 가운데 누구라도 가능한지 아니면 오직 두 번째 위격께서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질문에 대하여 튜레틴의 대답은 ‘오직 두 번째 위격께서만 성육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35) 왜냐하면 성경은 이 성육신의 신비와 관련하여 성부나 성령이 아니라 오직 성자께만 이를 돌리고 있는데, ‘영원한 말씀(λογος)이 육신이 되셨고’(요 1:14),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신 성자께서 종의 형체를 취하셨으며’(빌 2:6-7),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있어 우리와 같이 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36)

그렇다면 그러한 신학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튜레틴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 가운데, ‘성부’(the Father)께서는 결코 성육하실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는 첫 번째 위격으로서 그 누구에게서도 보내심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며, 또한 성자와 성령에 대하여 중보자의 역할을 행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성에 있어 성부이신 그가 동정녀에게서 출생하시는 인성에서의 성자가 되실 수는 없다. 나아가 성령(the Holy Spirit)께서도 역시 그렇게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중보자에 의하여 교회에 보내심을 받는 분이신데(요 16:7), 그 자신을 보내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결국 ‘두 아들’이 존재하게 되는 바, 하나는 영원 출생(eternal generation)에 의한 아들(성자), 그리고 시간 안에서 동정녀에게서 성육하신 또 다른 아들(성령)이 되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아주 불합리한 것이다.37)

결과적으로, 오직 성자 하나님(the Son of God)께서만이 다음의 기능을 수행하실 수 있다: (1) 오직 그만이 성부와 성령 사이에,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2) 우리를 은혜로 그의 자녀(양자) 삼으시고 또한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공동 상속자로 만드시는 것은 그 본성상 성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다. (3) 첫 번째 창조에서 모든 것을 그 자신이신 영원한 말씀(the Word)을 통하여 창조하신 분, 곧 성자께서는 두 번째 창조에서 그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재창조하신다. (4) 성부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마 3:17), 곧 성자 이외에 우리를 하나님과 진정으로 화해케 하실 수 있는 더 적절하신 분은 없다.38)

다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의 신비’에 대하여 고찰하면서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비록 ‘성자 안에서 신성(divine nature)이 온전히 성육하셨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결코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의 성육신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신성이 성육신했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성자의 인격 안에서 매개된 것, 혹은 성자의 위격 안에서 구별되고 특정화된 신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결코 본성(nature)에 따른 사역이 아니라 위격(person)에 따른 사역이며, 본성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위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39)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레틴에 의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신성 전체(the whole divine nature)가 참으로 성육하셨지만,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위격들이 아니라, 성자의 완전한 신성에 따라서 그러한 것이다. 또한 동시에 나머지 위격들을 제외한 특별히 한 위격의 성육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 있어 위격들 사이의 관계나 위격(the person)과 본질(the essence)의 관계에 있어 그 어떠한 방해도 초래하지 않는다.”40) 이러한 논의의 결과, 성자에 의하여 취해진 인간의 본성(the human nature)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른 구별된 위격들(성부와 성령)에 의해서는 취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인성은 전체 삼위일체 하나님께 위격적으로 연합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신성과 연합하는 것이긴 하지만, 성부와 성령께 속한 범위까지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자의 위격(인격) 안에서 특정화되고 한정된다.41)

튜레틴의 이러한 ‘성육신의 신비’와 관련한 모든 논의들은 어떻게 보면 다소 사변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와 같은 그의 주도면밀한 논의와 명료한 논증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신학적인 유익들 또한 참으로 많으며 또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함을 잘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앞서 살펴본 ‘성육신의 신비’와 관련한 그의 모든 논의들에 있어 튜레틴은 그것을 본질적으로 삼위일체론 이해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하여 볼 것은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이 철저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사역이라는 것과 그 가운데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격들 사이에 서로 구별되는 독특한 역할과 기능들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모든 위격적인 사역들이 그 존재론적 본질에서 그러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서로 나누일 수 없도록 ‘하나’(Unity)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러한 튜레틴의 기독론 이해를 통하여 역으로 또 한 가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삼위일체론 이해에 있어 애초에 ‘양태론’이나 ‘역동적 단일신론’과 같은 이단사상이 자리할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튜레틴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 번째 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과 그의 구속사역에 대한 이해는 전체적으로 삼위일체론 이해와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부합되어야 함을 그의 깊이 있는 신학적 논의들을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42)

3. 성자 하나님에 의해 취해진‘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튜레틴의 기독론에 대한 논의는 이제 ‘그리스께서 취하신 인성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먼저, 그는 기독교 교리사를 통하여 제기된 다양한 이단적인 사상들을 소개한다.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나타난 ‘가현설’은 그리스도께서 참된 인성을 취하셨음을 전혀 부정하며(Manichaeans & Marcionites), 또한 발렌티누스주의자들(Valentinians)은 하늘로부터 온 육체를 취하셨다고 하거나 혹은 마리아로부터 취한 육체는 단지 그리스도의 육체가 지나온 통로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아폴리나리우스주의자들(Apollinarists)은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육체를 가지긴 하셨지만 그것은 마리아로부터 취한 것이 아니라 성육신 때에 말씀(the Word)의 어떤 부분이 육체로 변하였고, 또한 그의 신성이 영혼의 자리를 취하였다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종교개혁 이후에도 재세례파들(Anabaptists)을 비롯한 어떤 개신교 교회들 역시 그러한 오류의 전철을 되밟으면서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본질로부터 그의 육신과 피를 취하셨음을 부인하였다.43)

그러므로 이 질문과 관련된 핵심 사항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우리와 진정 동일한 인간이셨는지 그리고 그의 육체를 진정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취하셨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재료로부터 그리하셨는지에 관한 것’이다.44)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튜레틴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외하고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진정으로 동일한 ‘참된 인간’(true man)이셨음을 다음과 같은 성경의 증거들을 통하여 논증한다: (1) 성경은 그리스도를 ‘사람’(man) 혹은 ‘인자’(the Son of man)라고 칭하는데, 그가 참으로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이 ‘여자의 후손’(창 3:15), ‘아브라함의 자손’(창 12:3, 22:18; 행 3:25), 혹은 ‘다윗의 자손’(눅 1:32; 롬 1:3), ‘마리아의 아들’, ‘그 복중의 아이’(눅 1:31, 42), ‘여자에게서 나셨다’(갈 4:4)고 표현하는 것은 모두 그의 완전한 ‘참된 인성’을 증거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살과 피를 취하심으로 ‘우리의 형제’(히 2:10, 14, 16)라 불리우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 형제들과 같이 되시고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고난받으셨다’(히 2:17)고 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와 같은 ‘육체와 피’, 즉 동일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셨음을 증거한다. (4)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드시며’(히 2:16), 그리고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히 2:14)고 하는 것은 그가 우리와 완전히 동일한 육체와 피에 동참하심으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 우리와 실제로 “동일본질”(consubstantiality, homoousion)이심과 동시에 ‘참된 인성’을 가지심을 확증하는 것이다. (5)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계보들(마 1; 눅 3; 롬 1:3)은 모두 육신의 조상을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이며, 만일 그의 ‘인성’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취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재료로부터 취한 것이라면 그것은 부인되어야 할 것이다. (6) 마지막으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본성에 있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지 않으시다면, 그는 우리를 참으로 구속하실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반드시 그 죄를 범한 것과 동일한 본질 안에서만 속하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45)

또한 튜레틴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일본질’(homoousion)이라고 함은 그 본성(nature)과 본질적 특성들(essential properties)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단지 어떤 존재론적 관계(the relation of subsistence)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개별적 인성은 완전한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그 실체적 존재에 있어 물리적으로(physically) 성취된 것이며, 단지 존재의 방식에 있어서 형이상학적으로(metaphysically) 그러한 것이 아니다.46)


IV.‘위격적 연합’과 그에 따른 두 본성의 관계와 영향들(XIII.Q.6-8)
1. 그리스도의 성육신과‘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약속의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말씀(the Word), 곧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성자 하나님(the Son of God)이시며, 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심으로 우리와 동일한 ‘완전한 인성’을 취하셨음이 성육신의 신비를 통하여 분명하게 논증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신성(divine nature)에 있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른 위격들과 완전하게 ‘동일본질’(homoous-ion)이심과 동시에 인성(human nature)에 있어서는 우리와 완전하게 ‘동일본질’(homoousion)이심이 밝혀졌다. 바로 그러한 성육신의 진리와 관련하여 다시 제기되는 질문은 이제 그러한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며, 정통신학에서는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의 결합’(the union of two natures in one person)을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이라고 불러왔다. 이러한 위격적 연합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심과 동시에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 되셨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이 연합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튜레틴은 먼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에 있어 많은 어려운 질문들 가운데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본질(one essence) 안에 세 위격들의 연합(the unity of the three persons)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육신에 있어 한 인격(one person) 안에 두 본성의 연합(the union of the two natures)에 관한 것이다. 비록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전자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과 본질의 연합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하나의 인격에 서로 다른 두 본성의 연합에 대한 것이기에), 그러나 그중 하나에 대한 이해는 또 다른 것의 이해에 있어 큰 도움을 준다. 즉, 삼위일체에 있어 본질의 연합이 각 위격들에 있어 서로 간에 상호 구별과 함께 각각의 속성들과 사역들이 전달되지 않음으로써(incommunicable) 전혀 침해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본성들의 연합에 있어서도 두 본성과 그 특성들이 혼동되지 않고 그 구별됨이 방해받지 않는다.47)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유일 독특하게 이루어진 두 본성(신성/인성)의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은 도대체 어떤 성격의 것인가? 튜레틴은 우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아주 치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1) 그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결합되어 제3의 무엇을 구성하는 어떤 ‘물리적/본질적 연합’(physical/essential union)이 아니다(참조. 영혼이 육체에 연합하여 한 인간을 구성하는 것). (2) 또한 그것은 어떤 ‘구성적/관계적 연합’(schetic/relative union)이 아니다(참조. 영혼들 혹은 의지들의 동의에 의하여 여러 친구들이 서로 하나로 연합하는 것). (3) 그것은 단순히 나란히 함께 서 있는 것처럼 어떤 ‘병렬적 연합’(parastatic union)도 아니다(참조. 천사들이 어떤 육체에 빙의하는 것). (4) 그것은 일반적인 효능이나 유지에 의한 어떤 ‘효과적 연합’(e൶cient union)이 아니다(참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들과 더불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행 17:28). (5) 그것은 어떤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이 아니다(참조. 성도들이 은혜로 그리스도와 함께 결합하는 것). 마지막으로, (6) 그것은 어떤 ‘본질적 연합’(substantial/essential union)이 아니다(참조. 삼위일체의 각 위격들이 하나의 본질 안에서 연합하는 것).48)

그러므로 튜레틴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위격적 연합’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말씀의 인격 안으로 인성이 취해짐(획득됨, assumption)으로써 일어난 연합이며, 또한 이것이 그렇게 불리는 것(참조.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은 그 형식(form, 그것은 말씀의 인격 안에서 일어난 것임)과 경계(term, 그것은 그 안에서 한계 지워진 것임)의 두 측면에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합은 인격들(persons)의 연합이 아니라 위격[인격]적(personal) 연합이며, 본질적(natural) 연합이 아니라 본성들(natures)의

연합이다.”49) 즉, 이 연합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따른 전이적 행위로 말미암아 영원한 말씀(the Logos)의 인격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결합하시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오직 그 말씀(성자)의 인격의 경계 안에서 완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어떤 절대적인 의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이 성육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의미에서 오직 둘째 위격이신 말씀의 인격이 성육하는 것임을 의미한다.50)

좀더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그렇다면 영원한 말씀(the Logos)에 의하여 취함을 받은 것은 정확하게 말해서 무엇인가? 튜레틴의 설명에 따르자면, 영원한 말씀이신 성자께서 취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human nature)이며, 전유불가의 진정한 존재론적 실재로서의 ‘인격’(person)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비록 단일한 지적인 실체이긴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부분적인 존재로서 하나의 ‘인격’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적인 인격성(proper personality)의 결핍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어 진실성이나 완전성을 결코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성의 진실성은 그것의 질료와 형상 및 본질적인 특성들에 의한 것이지, 그것의 ‘인격성’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성’(nature)에 대한 정의는 ‘존재’(실체적 실재, subsistence)와는 다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격성(personality)은 본성에 있어 완전성이라거나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의 경계(terminus)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께서 취하신 것은 하나의 완전하고 전유불가의 존재론적 실재로서의 ‘인격’(person)이 아니라 바로 ‘인성’(human nature)이다.51)

그러므로 이 ‘위격적 연합’은 영원한 말씀의 고유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들이 아주 친밀하고 영속적으로 결합됨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위격적 연합에 의하여 그 자체로서는 고유한 인격성(personality)과 존재론적 실재성(subsistence)이 결여된(anyhostatos, 참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자체로서 또 다른 하나의 인격이 되기 때문에) 인성이 영원한 말씀(the Logos)의 인격 안으로 취해짐으로써 그러한 위격적 연합 안에서(in the unity of person) 그와 더불어 결합(conjoined) 혹은 연결(adjoined)되어, 이제 말씀의 인격(enypostatos Logō)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 되었다.52) 따라서 우리는 이제 ‘신-인’(God-man/theanthrōpō)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있어 그의 인성을 어떤 측면에서는 ‘부가물’(adjunct) 혹은 ‘부분’(part)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부가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원 속에서 육신이 없으신 말씀(the Logos)이 시간 속에서 위격적 연합에 의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결합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들이 서로 본질적으로 완전히 부합하여 일치하기 때문이다.53)

결론적으로, 이러한 ‘위격적 연합’에 대한 깊이 있는 신학적 논의들은 다시금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참된 성육신의 진리’를 확증해준다. 즉, 거룩하고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의 위격이신 성자께서는 ‘위격적 연합’ 안에서 하나의 인격(a person)이 아니라 인성(a human nature)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결합시키셨다. 또한 그것은 신성이 인성에로의 어떤 ‘전환’(conversion)이나 ‘변형’(transmutation)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영원한 말씀의 인격 안에서 인성을 ‘획득’(assumption)하시고 ‘보존’(유지, sustentation)하시는 방식에 의해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동시에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곧 우리의 중보자(the Mediator)가 되셨기 때문에, 그는 참으로 ‘신-인’(God-man/theanthrōpos)이시다.54)

2.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에 있어‘두 본성의 관계’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이 위격적으로 연합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다음 질문은 ‘그의 인격과 본성들 간의 관계, 그리고 두 본성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튜레틴은 바로 그러한 질문들을 다루기 위해 먼저 고대교회의 교리 논쟁사 속에서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잘못된 이해 두 가지를 소환하는데, 그것은 바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와 ‘유티키아니즘’(Eutychianism)이다.55)

1)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의‘두 인격론’비판

먼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 ca. 381-450/ 51)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두 인격으로 나누어졌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그는 동정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n)로 부르는 것을 반대하며, 그녀는 단지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kon)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그리스도는 ‘하나님’(θεος)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인간’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튜레틴에 따르면, 네스토리우스는 결과적으로 ‘두 그리스도’(two Christs)를 주장하는 바, 하나는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스토리우스는 그 어떠한 ‘본성의 연합’도 부인하며, 영원한 말씀(the Word)이신 성자께서 마치 그가 성전에 임재하시는 것과 같이 인간 그리스도(the man Christ)에게 임재하심에 의해 양자는 서로 나란히 함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양자는 그 은혜와, 선한 의지, 행위의 능력, 의지에 따른 효과들, 가치와 영광에서 동일하며 그리고 그 엄위하심이 육신에도 동일하게 배분되었다고 주장하였다.56)

네스토리우스의 그러한 주장들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였던 키릴루스(Cyrillus, ca. 370/80-444)에 의하여 즉각적으로 반박되었고, 논쟁 끝에 에베소 공의회(the Council of Ephesus, 431)에서 정죄되었다.57) 이때 에베소 공의회에서 활약한 레린의 빈켄티우스(Vincentius of Lérins, d. ca. 445)는 그의 저작인『기억하기 위하여』(Commonitories)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58) “네스토리우스는 아폴리나리우스의 그것과는 정반대되는 부적절한 거짓된 주장을 하였는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질을 구별하다가 갑작스레 두 인격(two persons)과 더불어 전대미문의 사악한 주장을 제시하여 두 하나님의 아들(two Sons of God), 두 그리스도(two Christs)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또 다른 하나는 인간(one God, the other man)이라고 하였다.”59) 따라서 공교회의 공의회뿐만 아니라 정통신학은 그러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비성경적인 것으로 거부하였으며,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많은 증거들은 그리스도의 하나의 인격 속에 두 본성이 있음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참조. 롬 1:3-4; 딤전 3:16; 빌 2:6-7 등).60)

2) 유티키아니즘(Eutychianism)의‘단성론’비판

다음으로, 콘스탄티노플의 대수도원장이었던 유티케스(Eutyches, ca. 370/ 78-454)는 네스토리우스의 ‘두 본성에 따른 두 인격론’(two natures and two persons)을 반대하기 위하여 아폴리나리우스의 견해의 영향하에 있었던 그는 네스토리우스를 논박했던 키릴루스의 견해를 극단화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이 연합한 이후 신성이 인성을 흡수하거나 혹은 서로 혼합되어서 제3의 성질의 것으로 변화하여 ‘하나의 인격 안에 오직 하나의 본성’(one nature in one person)만이 존재한다는 ‘단성론’(Monophysitism)을 주장하였다.61) 결국, 이러한 그의 잘못된 신학적인 주장은 ‘칼케돈 공의회’(the Council of Chalcedon, 451)에서 정죄되었다.62)

3) 고대‘기독론 정통교의’의 완성: 칼케돈 공의회의‘신앙표준’

여기에서 튜레틴의 기독론 논의를 조금 더 보완하기 위하여, 325년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451년 칼케돈 공의회까지 고대교회 공의회에서의 핵심 결정 내용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그 특징을 간략하게 다시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를 창조된 피조물로 해석하여 그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한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정죄했던 니케아 공의회(325)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참된 신성’(true divinity)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심(vere θeos)이, (2) 성육신한 로고스의 신성이 그의 영혼을 대체하였다고 주장한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를 정죄했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참된 인성’(true humanity)을 가지신 참 인간이심(vere homo)이, (3)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키릴루스(Cyrillus)의 논쟁 때문에 소집되었던 에베소 공의회(431)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인격(one person) 안에서 두 본성(two natures)이 서로 ‘위격적 연합’에 의하여 결합되어 하나의 통일성(unity)을 이루고 있음이 각각 강조되어 고백되었다. (4) 그리고 유티케스(Eutyches)가 제기한 그리스도의 두 본성들이 위격적 연합 후에 혼합 혹은 변화되어 결국 하나의 본성만이 존재한다는 ‘단성론’의 주장을 정죄한 칼케돈 공의회(451)에서는 마침내 “이 두 본성은 혼합이 없고(inconfuse), 변화도 없으며(immutabiliter), 분할될 수도 없고(indivise), 분리될 수도 없다(inseperabiliter). 이 구별된 두 본성은 이 위격적 연합으로 인하여 결코 없어질 수 없으며, 각 본성의 속성들은 한 인격(unam personam)과 한 실체적 존재(subsistentiam)안에서 둘 다 온전히 보존되고 함께 역사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두 인격으로 나뉘시거나 분리되실 수 없다.”는 ‘공교회의 신앙표준’을 도출하였다.

이와 같이 참으로 ‘칼케돈 신경’의 선언은 기독론에 대한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에 따라 수백 년에 걸친 고대교회의 신학적 논쟁을 종식시킨 것으로써, 오고 오는 세대들에 있어 모든 기독론 논의에 대한 하나의 표준적인 신앙 원칙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독론에 대한 “칼케돈 명제 혹은 원칙”(Chalcedonian Axiom/Principle)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서 고대 정통 기독론의 표준적인 준거가 된 “칼케돈 신앙표준”(칼케돈 신경, 451)의 전문을 그 원문에서 번역하여 인용하였으며,63) 또한 각 핵심 표현에 담긴 교리적인 논쟁의 역사적 배경과 그 신학적 의의에 대하여 간략한 설명을 각주에 표기해 두었다.

우리들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도록 만장일치로 가르치는 바이다. 그는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고(Deum verum et hominem verum),64) 이성적 영혼과 몸(anima rationali et corpore)을 가지셨다.65) 그는 신성에 따라서 성부와 동일본질이시고, 인성에 따라서 우리와 동일본질이시며, 모든 것에 있어 우리와 같으시나 오히려 죄는 없으시다.66) 그는 신성에 따라서 창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67) 인성에 따라서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68) 그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주님이시요, 독생하신 분이신데, 우리에게 두 본성으로 되어 있으심이 알려진 바, 이 두 본성은 혼합 없이(inconfuse), 변화 없이(immutabiliter), 분할 없이(indivise), 분리 없이(inseperabiliter) 연합되셨다. 이 연합으로 인하여 두 본성의 구별이 결코 없어지지 않으며, 각 본성의 속성들은 한 인격(unam personam)과 한 실체적 존재(subsistentiam) 안에서 둘 다 온전히 보존되고 함께 역사한다.69) 그는 두 인격으로 나뉘시거나 분리되실 수 없으시니,70) 동일하신 한 분 아들, 독생자, 하나님의 말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에 관하여는 옛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가르치셨고, 교부들의 신조(patrium nobis sybolum)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이다.71)

3.‘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에 따른 영향들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이 서로 혼합이나 변화 없이 또한 서로 나뉘거나 분리됨이 없이 온전히 보존되며 서로 위격적 연합을 이루고 있음’이 공교회 정통신앙의 표준으로 고백되어 왔고(칼케돈 신경, 451), 또한 성경적으로 잘 논증되어 확증되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본성들 사이에’, 그리고 또한 ‘두 본성들 사이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튜레틴은 먼저 위격적 연합에 의한 영향(효과/결과, e൵ects)들을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하여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1) ‘인성(human nature)에 있어서의 영향들’과 (2) ‘인격(person)에 있어서의 영향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영향들에 대한 튜레틴의 상세한 구분과 설명은 다음과 같다.72)

1) 인성(human nature)에 있어서의 영향들

튜레틴에 의하면, 위격적 연합으로 인하여 먼저 영원한 말씀(the Logos)께서 취하신 그리스도의 ‘인성’(human nature)에 나타나는 영향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시 ‘탁월성의 은혜’(the grace of eminence)와 ‘지속적인 은혜’(habitual graces)로 구분된다. 먼저, (1) ‘탁월성의 은혜’는 신성과 연합함으로써 그의 육신(인성)이 성자 하나님의 한 특성이 됨으로써, 그의 인성의 엄위성이 다른 모든 피조물들보다 탁월한 것으로 끌어올려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2) ‘지속적인 은혜’는 그의 신성으로부터 인성으로 분여되는 ‘놀라운 은혜’들을 의미하는데, 그의 인성은 비록 그 자체로서 가장 고귀하고 완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혜의 지속적인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질서 안에서 존재의 고귀함이나 완전성의 정도에 있어 그 어떤 천사들이나 성인들보다도 탁월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참조. 눅 2:40)고 말하는 것의 의미이다.73) 여기서 튜레틴이 이러한 ‘은혜의 교통’을 위격적 연합으로 인해 특별히 그의 ‘인성’에 주어지는 영향으로 따로 구분하여 논하는 이유는 아마도 루터파와의 ‘속성의 교류에 대한 논쟁’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에 나타나는 그러한 ‘탁월성과 고귀함’이 그의 신성에 따른 속성들이나 특성들이 여하한 방식으로든 ‘직접적으로’(directly) 그의 인성에 전달되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속적이고도 탁월한 은혜의 분여’에 따른 것임을 특히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 인격(person)에 있어서의 영향들

튜레틴은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들이 위격적으로 연합함으로써 그의 ‘인격’(person)에 미치는 영향들을 또다시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1) 각 본성들의 ‘속성들’(attributes)과 ‘특성들’(properties)이 그의 인격으로 교류(교통/전달, communication)된다. (2) 또한 각 본성들에 따라 각기 이루어진 ‘직무’(사역, o൶ce)와 ‘효과들’(e൵ects)이 인격으로 교류됨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모든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들이 오직 한 인격의 행위로 돌려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3) 모든 영예(honor)와 경배(worship)가 교류되어 그 모든 것이 ‘신-인’(God-man/theanthrōpō)이신 그리스도의 한 인격에게 돌려진다.74) 이와 같이 두 본성이 위격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격에 나타나는 영향들에 대한 튜레틴의 논의는 ‘속성의 교류’에 대한 개혁파의 일반적인 이해와 잘 부합하며, 그것을 더욱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속성의 교류’에 대한 개혁파의 이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튜레틴은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들의 ‘위격적 연합’에 따른 영향들을 구분하여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한 이후, 이제 특별히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에 대한 문제를 더욱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그것은 특별히 종교개혁 시대 때부터 루터파(the Lutherans)와의 계속된 ‘성찬 논쟁’과 연관된 ‘속성의 교류’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심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하여 튜레틴이 제시하고 있는 ‘속성의 교류’에 대한 개혁파의 본질적인 이해의 요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그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 ‘속성의 교류는 연합에 따른 영향(효과, e൵ect)으로서 두 본성의 특성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공유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른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성경의 서술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먼저 ‘직접적’(directly)인 표현 방식은 신성에 속한 것들을 신성에 따른 인격에 명시할 때, 혹은 인성에 속한 것들을 인성에 따른 인격에 명시할 경우에 그러하다(참조. 요 1:1; 눅 9:22). 다음으로 ‘간접적’(indirectly)인 표현 방식은 신성에 속한 것을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의 인성에 따라 명시하거나(참조. 행 20:28), 혹은 편재성을 인자(the Son of man)에게 돌릴 경우에 그러하다(참조. 요 3:13).75)

(2) 이러한 속성의 교류는 ‘본성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오직 ‘인격의 측면’에서 ‘축자적’(verbal)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real)으로 그러하다. 따라서 그러한 교류가 한 본성에 속한 특성들이 실제로(really) 직접적인(directly) 방식으로 다른 본성으로 전달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며, 오직 두 본성들이 실제로 연합함으로써 양 본성의 특성들이 그리스도의 ‘인격’ 그 자체에 속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성들의 연합이 실제적(real)이라고 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두 본성의 특성들이 직접적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각 본성들의 특성들이 그러한 위격적 연합에 근거하여 ‘전체적인 실체적 존재’(the whole subsisting substance)에로 교류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76)

(3) 이러한 속성의 교류는 본성의 측면에서 ‘추상적인 것’(the abstract)으로나, 혹은 인격의 측면에서 ‘구체적인 것’(the concrete)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추상적’/‘구체적’이라는 표현을 루터파는 아주 오용하고 있는 바, 그들은 인성이 신성으로부터는 ‘추상화’(abstracted) 혹은 분리되었다(separated)고 말함과 동시에, 또한 인성이 말씀(the Logos)에 연합되어 ‘구체화’(concrete)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성은 결코 말씀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동시에 참으로 ‘구체적’인 것은 그러한 형식이나 본성을 가진 한 ‘인격’(person)이며, 그것은 ‘하나님’(God) 혹은 ‘인간’(man)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들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속성의 교류는 ‘추상적(abstract)’인 본성으로부터 또 다른 본성으로 ‘추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체적(실제적, concrete)’인 인격 안에서 ‘구체적(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77)

이러한 튜레틴의 설명을 다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개혁파적 ‘속성의 교류’ 이해에 있어 각 본성들에 속한 속성들과 특성들의 교류는 하나의 본성에서 또 다른 본성으로 ‘직접적으로’(directly)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각 본성의 속성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into the person) 교류(교통/전달, communicatio)되며, 따라서 한 본성에 속한 속성들은 ‘인격을 통하여’(through the person) 다른 본성에로 오직 ‘간접적으로’(indirectly)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성의 교류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위격적 연합의 결과(영향/효과, e൵ect)이며, 이로써 각 본성의 속성들이 ‘인격’을 매개로 공유되고 전유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속성의 교류는 ‘실제적(real)이고 또한 구체적(concrete)인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두 본성의 위격적 연합이 ‘실제적이고 또한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V. 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칼빈과 베자의 뒤를 이어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신학’의 최전성기에 많은 활약을 한 신학자로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하여 그 정수를 보여준 프란시스 튜레틴의 전체적인 신학의 특징과 더불어 그의 중요한 신학적인 공헌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특히 그의 대표작(magnum opus)이라고 할 수 있는『논박신학 강요』를 통하여 그의 ‘기독론’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론”에 대한 논의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분석하면서, 그 주요 핵심 사항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여기에서 그렇게 분석한 내용들 가운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핵심 사항들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1) 가장 먼저, 튜레틴은 그의 기독론 논의에 대한 기초로서 개혁파 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인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의 맥락 가운데서 논의를 진행하며, 성경과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여 유대인들이 거부한 ‘나사렛 예수’가 바로 옛 언약에서 구속자로 약속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약속과 성취’의 구속역사적 맥락에서 분명하게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모든 기독교 기독론 논의에 있어 그 참된 토대가 어떤 ‘신학적 사변’(theological speculation)이나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 혹은 원리’(metaphysical ideas or principles)가 아니라, 가장 우선적으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구체적인 ‘구속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역사적 예수’, 즉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사실성(historical reality)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특히 현대 신학에서 많이 논의된 기독론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소위 ‘위로부터의 방법론’(Christology from Above)과 ‘아래로부터의 방법론’(Christology from Below) 모두를 지양할 수 있는 개혁신학의 기독론을 위한 좋은 방법의 한 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튜레틴은 그의 기독론 논의 가운데, 특히 영원한 말씀이 육신을 취하신 성육신 사건의 ‘역사적 실제성’을 성경을 통하여 명확하게 논증함과 동시에 그 신학적인 구조와 의의들을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명료한 신학적인 논리로 명확하게 잘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성육신의 신비’와 관련한 모든 논의들에 있어, 튜레틴은 그것을 본질적으로 그의 삼위일체론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어려운 많은 신학적인 난제들을 명쾌하게 해명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와 같은 튜레틴의 논의를 통하여 기독교 신학에 있어, 삼위일체론 이해와 기독론 이해는 그 세밀한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분리 불가능한 상보적인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3) 튜레틴은 영원한 말씀(the Logos)이신 그리스도의 한 고유한 인격 안에서 신성(divine nature)과 인성(human nature)이 어떻게 연합되는지를, 특히 그의 ‘위격적 연합’(hypostatical union) 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신학적 논의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참된 성육신의 진리’를 명쾌하게 논증하여 해명해주고 있다. 즉, 거룩하고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의 위격이신 성자께서는 ‘위격적 연합’ 안에서 하나의 인격(a person)이 아니라 인성(a human nature)을 온전히 자신의 본질적인 것으로 결합시키셨다. 또한 그것은 신성이 인성에로의 어떤 ‘전환’(conversion)이나 ‘변형’(transmutation)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영원한 말씀의 인격 안에서 인성을 ‘획득’(assumption)하시고 ‘보존’(유지, sustentation)하시는 방식에 의해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동시에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곧 우리의 중보자(Mediator)가 되셨고 참으로 ‘신-인’(God-man/theanthrōpos)이심을 아주 세세한 신학적인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명징하게 잘 논증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튜레틴은 바로 그러한 위격적 연합 속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관계’를 논구하는 가운데, 다시금 고대 공교회의 기독론에 대한 ‘정통신앙 표준’을 제시하였던 ‘칼케돈 신경’(451)의 핵심 내용을 개혁파 기독론의 핵심 표준으로 다시 잘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결국에는 개신교 진영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있어 마지막 걸림돌로 작용했었던 ‘성찬 논쟁’과 더불어 17세기 튜레틴 자신의 당대에도 계속하여 루터파와 더불어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었던 신학적인 논쟁의 핵심적인 사항들 가운데 하나인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그가 요약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는 개혁파의 이해에 있어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 본성들에 속한 속성들과 특성들의 교류는 하나의 본성에서 또 다른 본성으로 ‘직접적으로’(directly)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각 본성의 속성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into the person) 교류(교통/전달, communicatio)되며, 따라서 한 본성에 속한 속성들은 ‘인격을 통하여’(through the person) 다른 본성에로 오직 ‘간접적으로’(indirectly)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성의 교류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위격적 연합의 결과(영향/효과, e൵ect)이며, 이로써 각 본성의 속성과 특성들이 ‘인격’을 매개로 공유되고 전유되는 것이다.

(5) 이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는, 현대의 신학적 논의에 있어 그동안 특히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는 2000년 기독교 신학의 전체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어둡게 퇴색되어 박제된 채로 연구의 불모지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그 풍성한 신학적 보고(寶庫)들은 깊이 있게 탐구되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들쳐보지 않아 케케묵은 먼지만 두껍게 내려앉아 방치된 고서점 책장 속의 색 바랜 장서와 같은 신세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여기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프란시스 튜레틴은 그 신학적 중요성과 함께 당대에 그가 이룩한 많은 공헌들과 더불어 그가 미쳤던 큰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도 그 이름조차 생경한 ‘잊혀진’ 신학자로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이들이 남겨놓은 유산들을 재발굴하고 더욱 깊이 있는 연구들을 통하여 그들의 귀중한 신학적 유산들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우리 자신의 신학함의 풍성한 자산으로 활용함으로써 패스트푸드 형태의 가볍고 파편화되어 얼뜬 신학들이 난무하는 오늘날, 온 교회가 다시금 그러한 아름답고 풍요로운 신학의 열매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신학 작업들이 더욱 시급하고 긴요하다 할 것이다.

Soli Deo gloria!!


Notes
1)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한 리처드 멀러(Richard A. Muller)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정통주의 시대까지 개혁파 신학 발전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 종교개혁 시대(ca. 1517-1565); (2) 초기 정통주의(ca. 1565-1640); (3) 전성기 정통주의(ca. 1640-1700); 그리고 (4) 후기 정통주의(ca. 1700-1790).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르면, 프란시스 튜레틴은 제3기 ‘전성기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 활약한 가장 중요한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이 시기에 함께 활약한 주요 개혁파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스테펜 차르녹(Stephen Charnock, 1628-1680), 요하네스 콕케이우스(Johannnes Cocceius, 1603-1669), 요한 하인리히 하이데거(Johann Heinrich Heiddeger, 1633-1698), 존 오웬(John Owen, 1618-1683), 기스베르트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d. ca. 1689), 헤르만 비치우스(Hermann Witsius, 1636-1708), etc. Cf. Richard A. Muller,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Vol. 1: Prolegomena to Theology, 1st ed.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7), 40-52; [한역]『종교개혁 후 개혁주의 교의학: 신학 서론』이은선 역 (서울: 이레서원, 2002), 52-72.
2) Cf.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3 Vols, George Musgrave Giger, trans., James T. Dennison, Jr., ed.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1992); idem, The Atonement of Christ, James R. Willson, trans.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1999 Reprinted); idem, Justification, George Musgrave Giger, trans., James T. Den-nison, Jr., ed.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4). 이러한 저서들 가운데 The Atonement of Christ는 이태복 역,『개혁주의 속죄론: 그리스도의 속죄』(서울: 개혁된신앙사, 2002), 그리고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제1권이 박문재, 한병수 역,『변증신학 강요 1』(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또한 프란시스 튜레틴의 모든 라틴어 원전 저서들은 종교개혁 이후 정통주의 시대의 거의 모든 신학 저술들에 대한 원문 자료들을 전문 분야로 하여 디지털 문서 형태로 제공하고 있는 Post-Reformation Digital Library, http://www.prdl.org/author_view.php?a_id=50 (PRDL의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이때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Arminians)인 “항변파”가 주장한 것은, “(1) 인간의 부분적인 타락, (2) 조건적 선택, (3) 비한정적(보편적) 속죄, (4) 항거할 수 있는 은혜, (5) 상실 가능한 구원의 은혜”로 요약된다. 이에 대하여 “도르트 총회”에서 채택한『도르트 총회 신앙표준서(도르트 신경)』은 흔히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으로 불리는 다음의 5가지 신학적 선언으로 대답하였다: “(1) 전적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이와 관련하여 Edwin H. Palmer,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Enlarged ed.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2); James M. Boice and Philip G. Ryken, The Doctrines of Grace: Rediscovering the Evangelical Gospel (Wheaton, IL: Crossway, 2009 Reprinted); [한역]『개혁주의 핵심』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을 참조하라.
4) 이 속죄론 논쟁과 관련하여 ‘도르트 총회’에서의 아르미니안주의자들과 논쟁, 그리고 그 이후 계속 이어진 신학적 논쟁에 있어 아미랄두스주의와 튜레틴의 논박에 대하여는 김은수, “개혁주의 속죄론 이해: 도르트 신앙표준의 ‘형벌대속적 제한속죄론’,”『삼위일체 하나님과 신학』(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 477-519를 참조하라.
9) 이 저서는 다음과 같이 라틴어로 초판이 출판되었고, Francis Turretin, 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3 Vols. (Geneva: Samuel de Tournes, 1679-1686), 이후 개정판이 그의 사후 1688-1690년에 동일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어 널리 보급되어 읽혔다.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튜레틴의 신학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연구하고 다루는 경우가 극히 부족하며, 그러한 가운데 튜레틴의 신학적 특징에 대한 아주 간략한 소개와 평가를 제공하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The Full Development of Reformed Scholasticism: Francis Turretin,” Jack B. Rogers and Donald K. McKim,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 Historical Approach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79): 172-87.
10) Turretin, 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Vol.1, I.vii.14-15. 여기서 튜레틴의『논박신학 강요』의 인용 표시는 학계의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 ‘주제번호’(I).‘질문번호’(vii).‘논의번호’(14-15)의 순서로 표기하였고,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12) 여기에서 우리는 주로 다음의 영어 번역문을 통하여 내용을 분석할 것이다: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2, 271-499. 다만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만 다음의 라틴어 본문을 참조할 것이다: Turretin, 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Vol. 2, 295-544.
16) 칼빈은 그의『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59) 최종판에서 공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의 삼위일체론적 구조’에 따라 기독교 신학이 다루어야 하는 본질적인 내용을 전체적으로 4권으로 나누어 재구성하고 있는데, ‘제1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성부)’, ‘제2권,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성자)’, ‘제3권, 성령 하나님과 구원의 은혜(성령)’,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사역의 결과로서 ‘제4권, 교회’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현대 개혁파 교의학의 논의 구조에 있어 지나치게 각론 중심으로 치우쳐 그 유기적인 신학적 통일성을 놓치는 위험성을 매우 경계해야 하며, 따라서 그러한 칼빈의 견해를 아주 중요하게 참조하면서 이것을 보다 발전적으로 회복할 필요성이 있음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더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18)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2, XIII-XIV (pp. 271-499). 여기서 각 주제의 내용을 이렇게 각각 ‘4가지 소주제’로 나눈 것은 원저자인 튜레틴의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논의를 보다 요약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진행하기 위한 필자의 편의적인 견해임을 밝혀 둔다.
19) Ibid., XIII.i.1 (p.271).
20) Cf. Ibid., XIII.i.2-5 (p.271-72).
21) Cf. Ibid., XIII.i.7-38 (p.273-87).
22) Cf. Ibid., XIII.ii.1 (p.287).
23) Cf. Ibid., XIII.ii.4-28 (p.288-99).
24) 특히 이러한 현대 신학에 있어 ‘기독론의 방법론’과 관련한 논쟁과 더불어 그것에 대한 개혁신학적인 대안에 대하여는 다음을 참조하라: 김은수, “개혁주의 기독론 이해: 연구방법론적 소묘―언약론적/성령론적/삼위일체론적 접근방법,”『삼위일체 하나님과 신학』, 369-476.
26) Cf. Ibid., XIII.iii.1-5 (p.299-300).
27) Ibid., XIII.iii.5 (p.300).
28) Ibid., XIII.iii.14 (p.301).
29) Cf. Ibid., XIII.iii.16-17 (p.302).
30) Ibid., XIII.iii.19 (p.302).
31) Ibid., XIII.iii.19 (p.302f).
32) Cf. Ibid., XIII.iii.20-22 (p.302).
33) Ibid., XIII.iv.1 (p.304).
34) Ibid., XIII.iv.2 (p.304).
35) Ibid., XIII.iv.3 (p.304).
36) Cf. Ibid., XIII.iv.4 (p.304).
37) Cf. Ibid., XIII.iv.5 (p.304f).
38) Cf. Ibid., XIII.iv.6 (p.305).
39) Ibid., XIII.iv.7 (p.305).
40) Ibid.
41) Cf. Ibid., XIII.iv.8-11 (p.305f).
42) 특히 ‘삼위일체론’과 관련된 튜레틴의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Third Topic: The One and Triune God,”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III.i-iii, xxiii-xxxi (p.169-82; 253-310).
44) Ibid., XIII.v.3 (p.307).
45) Cf. Ibid., XIII.v.4-10 (p.307-309).
46) Cf. Ibid., XIII.v.13 (p.309).
47) Ibid., XIII.vi.1 (p.310).
48) Cf. Ibid., XIII.vi.3 (p.311).
49) Ibid., XIII.vi.3 (p.311).
50) Cf. Ibid., XIII.vi.4 (p.311).
51) Cf. Ibid., XIII.vi.18-19 (p.316).
52) Cf. Ibid., XIII.vi.5 (p.311).
53) Cf. Ibid., XIII.vi.6 (p.312).
54) Cf. Ibid., XIII.vi.10 (p.313).
55) Cf. Ibid., XIII.vii.1 (p.317).
56) Cf. Ibid., XIII.vii.3 (p.318).
58) 레린의 빈켄티우스(Vincentius of Lérins, d. ca. 445)는 그의 시대까지 고대교회사에 출현한 다양한 이단적인 신학 사상들을 논박하고 공교회 신앙(the Catholic Faith)의 보편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쓴『기억하기 위하여(An Aid to Memory)』(Commonitories)라는 저작을 남겼다. 여기에서 그는 ‘공교회의 보편적 신앙’(the universal faith of the Catholic Church)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유명한 정의(definition)를 제시하고 있다: “공교회에서 우리가 모든 가능한 주의를 기울여 취하여야 할 신앙은 반드시 모든 곳에서, 항상, 그리고 모두에 의하여 믿어져 온 것이어야 한다.”(Moreover, in the Catholic Church itself, all possible care must be taken, that we hold that faith which has been believed everywhere, always, by all). Vincentius of Lérins, A Commonitory,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ed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2nd Series, Vol. 11 (Peabody, MA: Hendrickson Publishers, 2004 Reprinted), ii.6 (p.132).
61) Cf. Ibid., XIII.vii.13 (p.320).
62) Cf. Ibid., XIII.vii.2, 13 (p.317f, 320). 이러한 유티케스의 주장에 따른 기독론 논쟁과 더불어 마침내 고대 공교회의 기독론 관련 “정통 신앙표준”(Definition of the Faith)을 산출한 ‘칼케돈 공의회’(451)의 배경 역사에 대한 보다 상세한 자료들과 관련하여 다음을 참조하라: Grillmeier,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Vol. 1, 520-57; Davis, The First Seven Ecumenical Councils (325-787), 170-206, Richard A. Norris, Jr. ed., The Christological Controvers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0), 123-59, etc.
64) 이 구절은 양태론(Modalism)과 가현설(Docetism), 그리고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sm) 등을 동시에 배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true God)과 동시에 참 사람(true man)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65) 이것은 아폴리나리우스주의(Apollinarianism)에 반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와 더불어 “이성적 영혼”을 가지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전하고 참된 인성(true humanity)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다.
66) 이 구절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본질”(homoousia)을 가지셨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창세 전에 창조되어 성부와 단지 “유사본질”(homoiousia)을 가지셨다고 주장한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와 “동일본질”(homoousia)을 가지셨음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참된 인성을 부인하였던 아폴리나리우스주의(Apollinarianism)를 반박하는 것이기도 하다.
67)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셨으나 하나님의 아들로 승격되었다는 에비온파(Ebionism) 혹은 양자론(Adoptionism)을 반박하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영원 속에서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나셨음을 언명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의 구별을 부인하는 양태론(Modalism) 또는 사벨리안주의(Sabellianism)를 반박하는 것이다.
68) 여기에서는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에 반대하며 키릴루스의 견해를 수용하여 동정녀 마리아를 “데오토코스”(theotokos)―“하나님의 어머니”(the Bearer of God, 혹은 ‘하나님을 낳으신 자’)라고 분명히 언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리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성육신의 실제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에 대하여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고자 마리아를 단지 “안드로포토코스”(anthropotokos, ‘인간의 어머니’, ‘사람을 낳은 자’) 혹은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에 있어 심각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함께 담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인간이 되셨지만 결코 신성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두 본성을 동시에 가지신다. 이러한 견해로 인해 네스토리우스는 결국 그리스도의 ‘두 인격론’(two persons)으로 나아갔다.
69) 이 구절은 유티키아니즘(Eutychianism)에 반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이 혼동되거나 변화되거나 하지 않고 두 본성이 서로 구별되게 온전히 보존되고 동시에 실재한다는 사실을 언명하고 있다. 또한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에 반대하여 한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이 서로 나뉘거나 분리됨이 없이 “위격적 연합”(hyp-ostatic union)을 이루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선언적 고백에는 기독론 이해에 있어 ‘고대 공교회 정통 신앙표준’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70) 이것은 네스토리우스가 한 인격 안에서의 두 본성의 ‘위격적 연합’을 거부하며 제기하였던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따른 두 인격론(two persons)’을 정죄한 ‘에베소 공의회’(431)의 결정을 분명하게 계승하여 재확인하는 것이다.
71) 이 부분의 전체적인 내용은 김은수, “개혁주의 기독론 이해,” 401f에서 약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인용한 것임을 밝혀 둔다.
73) Cf. Ibid.
74) Cf. Ibid., XIII.viii.2 (p.322).
75) Cf. Ibid., XIII.viii.3 (p.322).
76) Cf. Ibid., XIII.viii.4 (p.322).
77) Cf. Ibid., XIII.viii.5 (p.322).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5S1A5B5A0201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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