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No. 0, pp.155-193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19
Received 03 Sep 2019 Revised 12 Nov 2019 Accepted 15 Nov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12.50.155

칼뱅의 하나님 나라

김선권
장로회신학대학교 초빙교수, 조직신학 ksk6490@gmail.com
Calvin and the Kingdom of God
Sun Kwon Kim
Th.D. Visiting Professor, Systematic Theology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초록

이 글은 칼뱅신학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어떻게 나타나며 그것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칼뱅의 하나님의 나라 사상은 성령의 조명, 예정, 중생, 성화, 종말, 신적 주권,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중 통치,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 등의 수많은 주제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칼뱅의 하나님의 나라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와 신자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원론적 이해이다. 구원은 용서하며 의롭다 하는 칭의의 은혜와 본성과 삶의 새로움인 성화의 은혜에 참여함이다. 둘째, 하나님 나라와 교회이다. 칼뱅의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이미”와 “아직 아니”의 특징을 가진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가시적 교회와 관계하며, 미래성은 비가시적 교회와 관계한다. 가시적 교회는 종말론적 완성을 기다린다. 칼뱅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과 밖 모두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보다 더 큰 개념이다. 셋째, 교회와 세상이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한다. 교회와 국가는 동일한 기원에서 나온 기관으로 둘 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수단이다. 교회와 국가는 대립되지도 국가 위에 교회가, 교회 위에 국가가 있지도 않다. 서로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교회는 국가의 영혼이며, 국가는 교회의 육체이다. 교회 밖에서의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는 육체 밖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육신하고, 부활 승천한 하나님 우편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이다. 칼뱅에게서 그리스도는 세상 나라로부터 배제되는 신자와 교회의 주만이 아니라, 두 통치·두 나라를 포함하는 만물의 주이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how the ideas of God’s Kingdom in Calvin’s theology appear and what its characteristics are. This study summarizes Calvin’s view of the Kingdom of God in three dimensions. They are: God’s Kingdom and believer, God’s Kingdom and church, and God’s Kingdom and the world. First, God’s Kingdom and believer is a soteriological level of God’s Kingdom. Salvation is to participate in the grace of justification which is to forgive and to justify and the grace of sanctification which is new in nature and life. Second is God’s Kingdom and church. Calvin’s concept of God’s Kingdom is characterized by “already” and “not yet.” God’s Kingdom’s present state is related to the visible church, and the future state is related to the invisible church. The visible church waits for eschatological achievement. According to Calvin, the Kingdom of God exists both inside and outside the church. Third is God’s Kingdom and the world. God’s Kingdom and the world defin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urch and the state. They are distinct but not separate. The church is the soul of the state, and the state is the body of the church. According to Calvin, Christ is not only the Lord of the Church and the believer excluded from the world, but the Lord of all things, including both reigns, and both states.

Keywords:

God’s Kingdom, Sanctification, Church, State, World

키워드:

하나님의 나라, 성화, 교회, 국가, 세상

I. 들어가는 말

성서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 사상은 “주의 날”이라고 불리는 미래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된다. 구약성경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신약성서 안에서 그리스도가 가져온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속에서 종말론적이며 미래적인 모습으로 표상되어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의 핵심 주제였다. 예수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고 그의 교육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육이었다.1) 바울 사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복음의 핵심 가르침으로 여겼다(행 19:8, 20:25, 28:23, 31).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기독론적인 특징을 반영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엡 5:5)라는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고 여기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새로운 삶의 방식(롬 14:17; 고전 4:20, 6:9, 15:24, 50; 갈 5:21; 살전 2:12)을 제안했다.2) 하나님 나라는 성서학에서 성서의 중심 메시지로 여겨지며 동시에 이 주제는 조직신학의 핵심 주제로도 다루어진다. 조직신학에서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에 대한 교의학적 진술이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하여 이해되며 선교의 차원 역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시행된다.3) 그렇다면 성경과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란 무엇인가? 첫째,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하나님의 통치 전체를 말한다. 모든 신앙과 신학을 포함해서 구원론, 교회론, 선교와 윤리, 정치, 사회, 경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복속되는 것이다.4) 둘째, 이것은 하나님의 현재적인 통치이지만 종말론적 기대 안에서의 미래적 통치를 뜻한다. 즉 하나님 나라는 개인과 교회와 사회와 우주를 포괄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통치로 이에 대한 미래적 완성의 기대(소망) 아래서 현재적 실재에 참여하고 변혁하는 것이다.

이 글은 칼뱅신학 안에 성서와 신학의 중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 사상이 어떻게 나타나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까지 칼뱅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주목받지 못한 주제였다. 피터 윌콕스(Peter Wilcox)는 “칼뱅의 예언서 주석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발전”이라는 소논문을 세계칼뱅학회에 기고하였다.5) 이 논문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떻게 구약에서부터 시작하여 진보하며 신약 시대로 연결되는지를 칼뱅의 예언서 주석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하지만 논문은 칼뱅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통전적 성격을 밝히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관점에서 한국의 칼뱅 연구자인 김요섭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라는 제목으로 연구를 하였다.6) 논문은 칼뱅의『기독교 강요』와 신약 주석에 의존하면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가진 특징과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박재은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읽는 존 칼빈의 영혼의 깨어있음에 관하여”라는 소논문을 작성했다.7) 이 논문은 칼뱅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칼뱅의『영혼의 깨어있음에 관하여』에 대한 작품을 최근 신학의 흐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신학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칼뱅의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어느 선에서 규명하긴 했지만『영혼의 깨어있음에 관하여』라는 작품에 한정하어 다루었다. 새로운 통찰이 있는 연구의 시도이지만 칼뱅 자신이 말한 하나님 나라의 통전적 성격을 종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밴 위크(Van Wyk)는 “칼뱅의 하나님 나라와 종말론”(John Calvin on the Kingdom of God and eschatology)이란 소논문을 작성하였다. 이 논문의 제목은 “하나님 나라와 종말론”이지만 하나님 나라보다는 종말론에 관한 연구가 많았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 나라는 칼뱅신학의 중심 주제로 발전하지 못하였다는 잘못된 평가를 내렸다.8) 칼뱅이『기독교 강요』나 그 외의 다른 저술에서 하나님 나라를 독립적인 주제로 취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 사상이 칼뱅신학에서 중심 신학적 주제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 글은 칼뱅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여러 차원에서 해명한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론적 원칙을 다루고 하나님 나라 개념 자체를 분석한다(II). 그 후 이 개념이 포함하는 개인적(III), 교회적(IV), 사회적(V) 차원들을 다룬다. 이분법적인 구별일 수 있지만, 진보 신학의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사회 참여와 사회정의에 보다 더 관계했다면, 보수 신학의 진영에서 하나님 나라는 개인 구원과 교회론 차원에 보다 더 관계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칼뱅의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개인 구원과 교회적 차원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차원까지 통전적이며 종합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

칼뱅은 한편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신자와 교회 중심으로 말하면서 거기에 제한된 것처럼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와 교회를 넘어서 국가와 세상을 포함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것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가져왔다. 칼뱅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국가와 세상을 포함하는가? 만약 포함한다면 국가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그리스도의 육체 밖(extra carnem)에서의 통치인가, 아니면 육체 안에서(intra carnem)의 통치인가? 이러한 문제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칼뱅의 하나님 나라 사상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것이다.


II. 하나님 나라의 개념

칼뱅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물리적인 실재보다는 영적 실재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이 영적이며 영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 있다.9) 하나님 나라가 영적이라는 것은 이 나라에 대한 이해 역시 영적 차원에서만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칼뱅은『기독교 강요』2권에서 초자연적 은사와 자연적 은사를 구별하고 타락한 인간에게는 초자연적 은사는 제거되고 자연적 은사는 부패되었다고 주장한다. 초자연적 은사에 관한 것은 영혼의 복된 생활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타락한 인간 본성의 한계를 넘어선다. 따라서 이것은 본유적인 지식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지식이다.10) 칼뱅에 따르면 인간의 지성이 아래에 있는 것들에 관해서 무능하거나 무가치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와 같은 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현격하게 무력하다.11) 따라서 칼뱅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나 신비는 인간 자신의 통찰에 의지하거나 세상 학문의 도움으로 알아낼 수 있는 그런 진리가 아님을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나 신비들은 인간의 판단이나 지각이나 총명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다.”12)

하나님 나라는 세상 안에 있어, 세상과 무관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속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식은 육체들에게는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13)『요한복음 주석』(18:36)에서 칼뱅은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낯선 것(étranger)이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현세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아 육신을 따라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처지와 형편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늘에 속한 나라이기에 심령이 요동치지 않고 평안을 보장해 주는 그런 나라이다.14) 즉,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차원을 가지지만, 이 세상을 넘어선다(par-dessus le monde).15)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의 육적 감각을 넘어서는 육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것을 영적인 방식으로(en espirt)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6)

칼뱅은 모든 하나님의 참 지식은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성서의 진리를 성서를 대면하는 자의 지성과 마음 안에 현재화시키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지성에 대한 조명과 마음에 대한 감화의 사역을 통해 일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가 영적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데에 성령의 역사가 필수적임을 말한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영적인 은사들이 쌓여 있는 보물창고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고,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열쇠와 같다.”17) 즉,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마음이 성령의 조명을 받아 새롭게 된 자에게만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은 물론,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 역시 영적인 사건이기에, 이 모든 것에는 성령의 역사가 필수적이다.

칼뱅은 하나님 나라의 용어를 위해 regnum Dei를 사용했다. 그는 이 용어를 프랑스어로 royaume de Dieu와 règne de Dieu로 번역하였다. 똑같은 라틴어 regnum Dei를 프랑스어로 표현할 때, 하나님의 나라(royaume de Dieu)와 하나님의 통치(règne de Dieu)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칼뱅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를 동의어처럼 사용하고 있음을 말한다.18) 또한 칼뱅은 하나님의 나라(regnum Dei)의 동의어로 그리스도의 나라(regnum Christi) 혹은 주의 나라(Domini regnum, royaume du Seigneur), 하늘나라(regnum caelorum, royaume des cieux), 천상의 나라(regnum caeleste Dei, royaume celeste de Dieu) 등을 또한 함께 사용하였다. regnum Dei, regnum Christi, regnum caelorum, regnum caeleste는 서로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모두 다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용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19)

칼뱅이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처럼 사용하고 있는 “하늘나라”와 “천상의 나라”는 지상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나라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 나라가 신자 안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신자들은 하늘나라(caeleste regnum, royaume celeste)를 목표로 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하였다.20) 즉, regnum caeleste(royaume celeste), regnum caelorum(royaume des cieux)은 주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초월적 왕국을 지시하는 데 사용된다. 칼뱅은 이들 용어들을 죽음 후 신자들이 도달하는 장소로서 사용한다.21) 이 용어들 외에 자주는 아니지만 또 다른 하나님 나라의 유사어로 메시아의 나라(regnum messiae),22) 자유의 나라(regnum libertatis),23) 의의 나라(regnum iustitiae),24) 영적인 나라(regnum spirituale)25) 등을 사용한다.

하나님 나라와 가장 가까운 용어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영적인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이며 역사적 차원과 관계했을 때, 칼뱅은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26) 토란스(T. F. Torrance)는 칼뱅이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칼뱅이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한 주권과 통치를 생각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로 말했지만 그가 나라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로 생각했거나 새 하늘과 새 땅이 현시하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지배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생각했다.”27)

칼뱅에게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간접적 현재화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보내면서 그리스도가 그들 자녀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대리적 통치를 하게 하였다. 실제로 칼뱅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기에 모든 (나라의) 권세가 그리스도에게 양도됐다는 것이다.”28) 하나님 나라가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총체적 통치를 가리킨다면, 그 나라가 먼저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서 세워지며 하나님의 통치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나기에, 그리스도의 나라라 불렸던 것이다. 칼뱅에게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의 간접적 차원인 것이다.29) 그리스도를 통한 간접적 통치에 대해 개혁자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말하자면 간접적으로 교회를 다스리고 보호하려고 하신다.”라고 말하였다.30) 또한 칼뱅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진 후에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통치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시킨 후에 아버지 하나님께 나를 바쳐 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로서 그 어떤 대리자 없이 하늘과 땅을 친히 다스리실 것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 마침내 하나님은 단지 모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 안에도 계셔서, 만유 안에 계시게 될 것이다.”31)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간접적 측면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그리스도의 나라로 사용할 때는 통치 사역을 주로 구원론적 사역에 관계시킨다.32)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좌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그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까지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통치이다.33) 그러므로 칼뱅이 하나님 나라를 직접 사용하는 것은 구원론적 통치를 포함하여 교회 밖에서의 하나님의 통치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말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말할 때는 주로 신자와 교회 안에서의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보다 더 포괄적인 성부의 이중적 통치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성령의 성화시키는 능력에 의해서 악마와 모든 악인들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그들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통치는 오직 교회의 통치이다. 여기서만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순종하도록 굽혀 놓으신다. 그리하여 인간은 교회에서만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기꺼이 순종한다. 안으로는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밖으로는 그 말씀의 가르침을 통하여 배우면서 하나님을 따라간다.34)

위의 미가서 6장 3절 주석에서 칼뱅은 이중적 통치의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한다. 그것은 교회(신자) 안에서의 특별한 통치일 뿐만 아니라, 교회 밖(비신자들 안)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통치를 포함한다. 후자는 하나님의 영을 통한 적극적 통치는 아니더라도 마귀와 악인들의 활동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칼뱅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서 영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통치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의 좌정 이후, 성부의 대리자로서 세계의 통치 역시 수행하고 있기에,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의 보편적 세계 통치를 포함한다. 즉, 칼뱅에게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주로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 자신의 구속적 통치를 말하지만, 승귀된 그리스도에게서는 성부의 대리적 통치를 하고 있기에, 교회 밖 통치의 의미로도 이 용어가 사용된다.35) 승귀된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성령을 보내시면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워간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신자에게는 더 강력한 현존의 방식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세상에 대해서 통치하는 방식으로 세워진다.


III. 하나님 나라와 신자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차원은 다양하다. 신자, 교회, 세상이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개인적 차원인 신자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살펴본다. 신자 안에서 임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점에서 칼뱅의 하나님 나라는 구원론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구원론적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차원을 포함한다.

하나님 나라와 신자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구원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하기에 칼뱅의 거의 모든 신학적 논의는 예정과 맞물려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 역시 예정의 주제와 연결되어 다루어진다. 칼뱅은 하나님 나라를 신적 선택과 신적 의지의 실현을 통하여 임하는 나라임을 주장한다.36) 즉, 하나님 나라란 처음부터 “선택된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나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몸의 머리와 같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왕국)의 수에 들게 하시기 위해서, 이 백성은 그분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창세 전에 선택되었다.”37)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모든 사람들을 그의 나라로 인도한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 거룩한 복음의 교리가 온 세상에 받아들여졌을 때,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에게 왕국을 주셨다.”38) 이 점에서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란 선택된 자들의 나라 즉, 신자들의 나라(le règne des fidèles)이다.39) 즉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닫혀 있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자가 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칼뱅에 따르면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자연적 인간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참여할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타락한 인간 영혼과 그의 본성이 전적으로 새롭게 되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도 접근되지 않는다.40) 그래서 칼뱅은 하나님 나라를 말하면서 먼저 중생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중생(regeneration)이며 그것의 목적과 완성은 복된 불멸성이다. 시작부터 끝에 이르는 중간 과정은 중생을 완성시켜 가는 여정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생명으로 다시 빚어 주실 때까지는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41) 이 텍스트는 중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외인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며, 그것의 완성은 복된 불멸성, 말하자면 영생이다.

하나님 나라 밖에 있던 자들이 신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칼뱅은 한 가지 전제 조건을 단다. “자기 자신의 부정”(abnegatio)과 “세상의 경멸”(comtemptio mundi)이다. 칼뱅은 기독교인의 삶의 첫 번째 방식을 자기 부정이라고 말하였다.42) 그리고 이 자기 부정, 자기로부터 “떠남”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출발점임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본성에서 나와야 한다는 결과가 뒤따른다.”43)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의 구절을 주석하면서 칼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의 육체를 멍에 아래 두고 그들의 바라는 것들을 포기한 채로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통치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44) 칼뱅은 누구나 자신이 잘났다고 우쭐대면서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왕국(royaume)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기 왕국에서 나오는 자기 부정이 필수적이다.45)

칼뱅은 기독교인의 삶의 세 번째 방식을 “미래 삶의 묵상”(meditatio futurae vitae)이라고 하였다. 이 미래 삶의 묵상은 세상 경멸(contemptio mundi)과 함께한다.46)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지상의 애착을 포기하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늘의 삶을 갈망하는 것은 합당하다.”47) “우리가 항상 바라봐야 할 목표는 현재의 삶을 경멸(contemnement de la vie presente)하는 데 익숙해져서 이를 통해 미래의 삶을 묵상하는 데로 부추겨져야 한다는 것이다.”48) 칼뱅의 세상 경멸은 세상을 부정하면서 세상 자체에 대한 허무와 무의미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 삶의 묵상에서 오는 능력으로 세상에 참여하여 세상을 변혁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당시 기독교 영성에서 강조한 “세상의 경멸”의 개념을 가져와 거기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대표적인 저술은『그리스도를 본받아』이다. 책의 전체 제목은『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이 세상의 경멸에 대하여』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세상의 경멸을 세상을 기피하고 회피하고 배척하는 것으로서, 문자 그대로 사용하였다. 리처드(L. Richard)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이러한 이해를 비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이 세상의 경멸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투사하고 있는 상은 자기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영원한 내세에 자신의 모든 관심을 쏟는 것이다.”49) 하지만 칼뱅의 “세상 경멸”의 사용은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경멸에 대한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지상의 생활에 대한 감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생활이 무수한 불행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이 역시 하나님의 축복이며 그 안에서 신자는 이미 하나님의 달콤한 관용을 맛봄으로써 이것이 완전하게 나타남을 바라고 소망해야 함을 주장한다.50) 데이비드 홀워다(David E. Holwerda)가 잘 지적하였듯이, 세상 경멸은 악한 것에 대한 배척뿐 아니라 참된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것이다.51) 칼뱅은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의 구절을 해설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자기 부정, 세상 경멸을 서로 다음과 같이 적합하게 연결하였다. “이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른 곳에서 설명하고 정의를 내렸을지라도, 나는 여기서 간단하게 반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세상과 이 지상의 삶을 경멸하면서 하나님의 의에 헌신함으로써 하늘의 생명을 열망할 때, 하나님은 왕으로서 세워진다.”52) 즉, 칼뱅에게서 기독교인의 삶이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의 실천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어 우리를 통치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기 부정과 세상 경멸을 전제로 한다.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구원론적 특징을 가진다고 하였다. 이 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주어지는 이중 은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오갑이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과의 연합,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주장한 것은 타당하다.53)『기독교 강요』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그들을 믿음으로 초대한다. 왜냐하면 그는 임박했다고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죄 사함과 구원과 생명,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모든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5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모든 것은 칭의와 성화의 은혜가 그 핵심이다. 그래서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그리스도와 신자가 연합할 때 주어지는 이중 은혜라고 불렀다.55) 그가 칭의와 성화를 이중 은혜라 부른 것은 말 그대로, 구별은 되지만 나눠질 수 없는 이중적 은혜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 어떤 사람도 동시에 성화를 시키지 않을 사람은 칭의를 시키지 않는다.”56)『로마서 주석』에서는 더 강력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 둘(칭의와 성화)을 분리시키는 것은 그리스도를 둘로 찢어버리는 것과 같다.”57)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고, 그와 연합된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중 은혜는 죄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로 구성된 칭의와 본성과 삶의 새로움이 계속적으로 동반되는 성화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는 이 이중 은혜를 가지고 있는가? 칼뱅은 그리스도의 삼중직(munus triplex)을 말할 때, 특히 제사장직과 왕직의 중요성을 언급한다.58) 이중 은혜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왕직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칭의의 근거이며,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성화의 원인이다. 제사장이시며, 스스로 제사물이 되신 그리스도는 속죄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의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화해시켰다. 그럼으로써 그들을 의롭게 하신다.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그들의 영혼과 본성을 새롭게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을 거룩하게 한다.

칼뱅은『요한복음 주석』(3:3)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어서 믿음의 진보를 따라 날마다 점점 더 성장해가는 영적인 삶”이라고 규정하였다.59) 바로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가 성화의 삶 즉, 믿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기독교인의 삶 전체 안에서 나타나는 성결한 삶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다”(요 3:3)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칼뱅은 그것을 인간 본성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본성 전체가 전 삶을 통해서 새로워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60)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인의 전 인격과 삶을 포괄하며, 이 삶은 다름 아닌 회심의 순간부터 믿음에 의해서 시작된 삶의 갱신과 계속해서 뒤따르는 성화의 삶에 있다.

칼뱅에게서 신자의 개인적 차원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신자의 성화적 차원을 담고 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의 성화로 바꾸어 놓으신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에 우리 자신이 성화에 참여하게 된다.”61)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영혼의 내적이며 영적인 갱신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택함 받은 자들을 살아나게 하셔서 하늘의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심으로써, 그들 가운데 그의 나라를 세우시기 때문이다.”62)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신자 안에 새롭게 지어져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의 완전한 새로워짐과 세계의 새로워짐을 목표로 한다. 신자의 성화의 측면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신자들 안에서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며 이러한 통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자들의 자발적 순종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화가 그러한 것처럼 점진성을 특징으로 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리스도가 가르친 기도는 바로 이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세상 끝 날까지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보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나라가 임하기를 날마다 기도하여야 한다.”6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신자 안에 성화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택함을 받은 자들 안에 세워지는 방식은 무엇일까? 칼뱅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와 그 말씀의 선포에 대한 성령의 역사에 있다고 말하였다.64) “이 일은 말씀이 전파됨으로써 이루어지고, 일부는 성령의 은밀한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말씀으로 사람들을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내면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말씀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65)

이상의 전체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칼뱅은 하나님 나라를 구원론적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이 구원은 용서하며 의롭다 하는 구속 은혜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 되는 주권적 은혜를 포함한다. 자신의 뜻으로 만사를 결정하는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을 구속으로 불러, 그들 안에서 의와 거룩으로 다스리고 자신의 뜻에 복종하게 함으로써 그의 나라를 증진시킨다.


IV. 하나님 나라와 교회

칼뱅은 하나님 나라를 개별적 차원에 있어서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해하였다. 그리스도가 신자와 연합할 때, 거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그리스도가 신자와 연합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또한 그의 몸인 교회와 연합한다. 칼뱅은 수직적 차원에서의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영적 연합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66)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그들의 연합 가운데서 세워진다.67) 따라서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와의 개별적 연합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연합을 포함한다. 칼뱅은『사도행전 주석』의 헌사에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이 두 측면을 동시에 강조한다. 신자 개인이 수직적 차원에서 “복음의 교훈”(doctrine de l’Evangile)을 수용하는 것이며 수평적 차원에서 “신자들의 교제”(compagnie des fidèles)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칼뱅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권속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하나님 나라가 있지 않는 곳에는 교회도 없다고 하였다.68)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서 칼뱅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밀접하게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헤셀링크(John Hesselink)에 따르면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교체 사용이 가능한 용어였다.69)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투이닝가(Matthew J. Tuininga)는 칼뱅이 교회와 하나님(그리스도)의 나라를 동일시했다고 주장한다.70) 반면 뷔르트(G. Brillenburg Wurth)는 칼뱅이 하나님 나라의 영역을 교회의 영역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생각하였다고 주장하였다.71) 칼뱅은 분명하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또한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만으로 통치하신다.”고 주장하였다.72)『영혼 수면론 논박』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의 설립 내지는 신자들의 전진”이라고 말하였다.73) 칼뱅의 사고 안에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교회보다 더 넓은 차원으로 생각되더라도, 그리스도의 나라는 교회와 거의 동일시된다. 팔머(Timothy P. Palmer)가 말한 것처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교회인 것이다.74)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 새로운 모습의 교회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만물이 회복되어 새로워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75)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이 두 실재가 서로 동일시되든, 전자가 후자보다 더 넓은 개념이든, 다음과 같이 계속되는 질문이 이어진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면, 여기서 교회란 가시적 교회를 말하는가 아니면 비가시적 교회를 말하는가? 중세 때, 하나님 나라의 이해는 주로 가시적 교회, 말하자면 제도적 교회와 동일시됐다. 초판『기독교 강요』를 출판할 때에 칼뱅은 당시의 가시적 교회의 부패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주로 비가시적 교회와 연결시켰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몸의 머리와 같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수에 들게 하시기 위해서, 이 백성은 그분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창세 전에 선택되었다.”76)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비가시적 교회를 가리킨다. 제네바 교회에서 목회하기 전까지 칼뱅은 비가시적 교회를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 교회를 목회한 후부터는 점차적으로 가시적 교회를 강조하였다. 칼뱅은 최종판『기독교 강요』에서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를 구별하였다. 먼저 비가시적 교회에 대해 다음과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이 교회를 두 가지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종종 교회라는 용어는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교회 안으로는 양자로 삼으시는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과 성령의 성화에 의해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가 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교회는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들만이 아니라 창세 이래 지금까지 선택받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77)

또한 칼뱅은 가시적 교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렇지만 종종 교회라는 명칭은 한 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고백하는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전체 무리를 가리키고 있다.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게 되며, 성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참된 교리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증거하며 또한 말씀 전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사역이 보존된다.78)

이러한 구별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가시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로서, 창세 이래로 현재까지 선택 받은 사람들 전체를 말한다면 가시적 교회는 제도적 교회로서 세례와 성찬이 집례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실적, 경험적 교회를 가리킨다. 전자는 가라지 없이 알곡만 존재하고, 후자는 알곡이 가라지와 함께 존재한다.

칼뱅은 교회론 서두에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였다. 보하텍(J. Bohatec)은 “칼뱅이 말하는 참 교회는 비가시적 교회이다.”라고 말하였다.79) 하지만 칼뱅이 참 교회를 단순하게 비가시적 교회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시적 교회 안에 거짓 교회도 있고 참 교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시적 교회가 참 교회가 되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은 비가시적 교회에 있어야 했다. 게다가 칼뱅은 가시적 교회의 부패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시적 교회와의 교제 없이 비가시적 교회로 직접적으로 접붙임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 나라를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 둘 다 연결해서 이해할 때,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개념 자체도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신다. 즉 참 교회의 지체를 아신다. 이것은 선택에 기초하는 비가시적 교회를 말한다. 그런데 이 비가시적 교회의 지체들을 지상의 가시적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함으로써, 비가시적 교회의 지체임을 확증시킨다. 가시적 교회를 회복시키고 발전시킴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80)

칼뱅은 가시적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과 성례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전자는 가시적 교회의 설립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확장되는 도구가 말씀의 선포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시는가?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데 어떻게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시는가? 칼뱅의 답은 분명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이다. 왕국은 영적이며 그리스도는 말씀의 검으로 통치한다.81)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령으로 모임 전체를 다스리는 곳에서만 그는 참으로 주관하시는 것이다.”82) 말씀의 홀을 가지고 복음 선포를 하며 성령의 역사에 의해 설립된 가시적 교회의 증대가 하나님 나라와 완전히 동일시될 수 없을지라도, 이것이 그 나라의 진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말씀이라는 통치의 홀을 들어 올리고자 하는 당시 가시적 교회에 대한 종교개혁 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칼뱅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 안에서 현재성과 미래성이라는 이중적 시간 개념이 들어가 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에 임하는 사건이지만, 도래가 임박한 미래에 완성된다.83) 오스카 쿨만(O. Cullman)이 하나님 나라를 “이미와 아직 아니”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긴장 가운데 설립되는 나라임을 주장한 이후로, 하나님 나라는 실현된 종말론인 동시에, 성취의 과정 속에 있는 종말론으로 간주되었다.84) 칼뱅에게서도 하나님 나라의 두 차원, “이미”와 “아직 아니”가 발견된다. “이들의 나라와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있는 것이요, 예컨대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의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비록 사람들이 그것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 이 나라를 바라볼 수는 있다.”85) “그리스도의 나라는 시작은 되었지만 그 완성은 마지막 날까지 유예되어 있는 까닭에, 그 나라가 완성될 때에 있게 될 일들이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나타난다.”86)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주권에 따라 점진적으로 자라고 진보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확장된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까지 교회 확장의 구도 안에서 현실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성장한다. 칼뱅이 하나님 나라를 이중적 시간 개념으로 파악한 것처럼, 가시적 교회 역시 종말론적 완성을 목표로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연결된다. 가시적 교회인 경험적이고 현실적 교회는 완전한 영적 상태로 존재하지 못하고 부패성과 연약성을 특징적으로 가지고 있기에, 완전한 영적 상태로서 종말론적 완성에서 누리게 될 비가시적 교회는 가시적 교회의 목표와 방향으로 존재한다.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가시적 교회와 관계하고, 미래성은 비가시적 교회와 관계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도 일어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보다 더 크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세상과 비교했을 때, 하나님 나라의 “보다 명확한 형태”인 것이다.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구별된다. 또한 이 나라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둘 다 동시에 관계한다. 가시적 교회는 비가시적 교회를 지향하면서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역동적 성장을 하는 하나님 나라의 더욱 명확한 현현인 것이다.87)


V. 하나님 나라와 세상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칼뱅에게서 어떤 관계일까? 이 질문은 우선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묻는 것이다. 칼뱅에게서 교회와 국가는 어떤 관계인가? 이들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인가?(재세례파) 아니면 교회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가?(천주교의 계급구조), 국가가 교회를 통제해야 하는가?(루터)?88) 칼뱅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나라이지만,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를 포함함을 천명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기관이며, 국가는 세상 나라의 대표기관이다. 하지만 앙드레 비엘레(André Biéler)가 말했던 것처럼, 교회와 국가는 동일한 기원에서 나온 기관으로 둘 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수단이다.89) 칼뱅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시키지 않고 구별한다. 그에게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Seigneur)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주이다. 그러므로 시민 정부와 나라, 왕들도 그리스도 아래 지배를 받아야 한다.90) 하지만 두 나라의 통치 방식은 다르다.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며, 국가는 법과 검을 가지고 통치한다.

칼뱅은 “시민 정부론”(Du gouvernement civil)을『기독교 강요』4권 마지막 장에서 다루면서 그의 책을 끝마친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신자와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그의 신학 방향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맥키가 말한 것처럼, “성소에서 불러내어 이 세상 속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이다.91) 칼뱅은『기독교 강요』끝에서 시민 정부론을 다루면서 이중 통치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그는『기독교 강요』3권에서 “기독교인의 자유”를 다룰 때, 이미 이중 통치에 대해서 말하였다.

칼뱅은 한 사람 그리스도인 안에 이중 통치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먼저 영적인 통치로서 양심이 경건과 하나님의 경외에 관한 일로 가르침을 받은 자의 영혼의 삶에 관한 것이며, 다음으로 정치적 통치로서 시민의 질서와 의무에 관한 가르침을 받은 자의 현세적 삶에 관한 것이다. 칼뱅은 전자를 영적인 나라라고 부르고 후자를 정치적 나라라 칭했다. 이것은 결국 한 사람 그리스도인 안에는 각기 다른 왕과 다른 법들이 권위를 행사하고 있음을 말한다.92)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칼뱅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다루면서 서로 구별된 이중 통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이중 통치는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당시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종이 틈타고 있었다. 그러므로 칼뱅은 칭의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인간의 모든 복종을 무효화시키며 사회 질서의 실정법까지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자들에 대한 비판을 가했던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통치자들과 다양한 법률들에 의해 통치될 수 있는 두 가지 세계를 가지고 있다. 양자의 구별은 복음이 영적 자유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이 정치적 규약들에 잘못 적용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93) 열광주의자들(재세례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복음적 통치가 정치적 통치로부터 신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외적으로 복속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 양심을 지닐 수 있다.”94) 칼뱅은 두 통치를 구별함으로써 영적 자유가 그의 방종을 따라 정치적 규약들을 잘못 적용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함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두 통치를 구별한 것은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서로 구별하기 위함이다. 칼뱅에 의하면 신약 시대 때, 사도들의 목적은 국가를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을 세우는 데 있었다.95) 따라서 개혁자는 영적 통치에 지배를 받은 자들은 사회와 국가의 통치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지배를 받고 순종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편에서는 국가 통치의 자율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세속 통치와 구별된 영적 통치의 고유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칼뱅은 루터와 달리 국가로부터 교회의 독립성이 확보되기를 원했다.96) 비록 기독교인이 위정자로 활동하더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교회의 독립성은 필요했다. 칼뱅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중요하다. “교회는 국가의 관원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떠맡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관원은 교회가 하는 일을 수행할 수 없다.”97) 그가 제네바 교회를 조직할 때,『교회법령』에 근거하여 치리회(consistoire)를 세우고자 했던 것은 영적인 권한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길 원했기 때문이다.98)

그는 교회와 국가를 서로 다른 영역으로 확실하게 구별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서로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세속적인 통치와 세상적인 권위에서 손을 떼기를 원하신다.”99) “교회는 (국가가 가지는) 강제력을 갖지 않고 또 강제력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100) 이렇듯 칼뱅은 두 기관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했다. 이 점에서 칼뱅은 목사가 국가직을 겸하는 것을 금지했다. “목사의 직무는 왕의 직무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그 직무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두 가지 직무를 겸할 수 없다.”101) 칼뱅의 이상(vision)은 서로 다른 권위를 인정하면서 두 통치가 서로 협력을 이루는 것에 있었다.102) 반드루넨(David M. VanDrunen)은 이에 대해 “교회의 영적 통치는 시민적 통치를 돕고 장려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시민적 통치는 우상숭배와 신성모독과 같은 종교에 대한 공격이 대중 사이에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 있어서 교회를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03)

이 점에서 국가에 대한 신적 기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국가의 기원은 어디인가? 국가는 죄의 결과로 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죄가 국가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죄에 대한 치료책으로 제정된 것이 국가였다. 국가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104) 따라서 칼뱅은 시민 정부론을 다룰 때 정부를 “하나님이 세운 정체”(polices établies de Dieu)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105)『로마서 주석』에서도 칼뱅은 정부와 위정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의롭고 합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세운 것이며, 결국 인류의 선과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106) 그는 시민 정부는 영적인 나라와 다른, 하나님의 또 다른 통치의 방식이며, 이를 통해서 인류에 대한 명백한 하나님의 섭리가 인식된다고 생각하였다.107) 칼뱅에게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관계와 유사하다. 교회는 국가의 영혼이며, 국가는 교회를 존재하게 하는 외적 토대인 육체와 같다.

시민 정부론을 다룰 때, 칼뱅은 이중 통치에 관해서 두 가지 것을 경계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세운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국가가 하나님의 통치에 맞서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중 통치는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서로 다른 경륜에 속한다. 이양호가 말한 것처럼, 칼뱅에게서 시민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와 대립되어서도 안 되며 시민 통치는 영적 통치와 대치되어서도 안 된다.108) 칼뱅은 시민 통치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했다. 폭정을 일삼는 독재자라고 해서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그를 대적하는 행위를 일으키거나, 성경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거부하게 한다면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칼뱅적 저항은 수동적이지 폭력을 동반하는 저항은 아니었다.109) 칼뱅은 프랑스와 1세에게 보낸 서문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와 국가의 주라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통치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통치자가 이를 따를 때, 그의 통치는 합법적이며 그렇지 않을 때는 일종의 강탈 행위가 된다.110)

칼뱅에게서 교회와 국가는 둘 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수단이다. 하지만 교회는 영적 통치의 중심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와 직접적으로 관계하며, 국가는 종말에 없어질 일시적 정체(regime temporel)이다. 이 점에서 칼뱅은 성직자들이 국가를 다스리는 “신정통치”(théocratie)를 추구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통치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보다 더 큰 통치”를 추구하였다.111) 즉, “그리스도의 통치”(christocratie)이다.

계속해서 우리는 교회 밖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의 문제를 다룬다. 반드루넨이 “하나님은 영적 나라를 구속주로 통치하시고 시민적 나라를 구속주가 아니라 창조주와 보존자로 다스리신다.”고 주장하였다.112) 그런데 영적 나라-구속주, 시민적 나라-창조주와 보존자, 이러한 단순한 환원적 대입이 정당한가? 칼뱅이 이중 통치(나라)를 말할 때, 이 두 나라를 구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은 세상이 아닌, 교회에 있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몸과 영혼 사이에, 이 일시적인 현세의 삶과 다가올 영원한 삶 사이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와 세속 법령이 매우 다른 것임을 충분히 명백하게 이해할 것이다.113)
그리스도께서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에, 영적인 하나님 나라와 현세의 정치 질서를 구별하셔서 말씀하신 것이었다.114)

이들 인용문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는 현실 정치 질서와 구별되고, 서로 다른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현실 정치 역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창조주와 섭리주의 통치만 시민적 나라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교회와 세상 둘 다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통치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메르그(E. Doumergue)가 말한 것처럼, 두 통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두 눈과 두 팔에 해당되는 것이다.115) 그러면 여기서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가 아닌, 비구속적 측면에서의 통치라고 할 수 있는가? 반드루넨과 이양호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육신한 예수의 “육체 밖에”(extra carnem)서도 존재한다는 칼뱅의 주장인 소위,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extra-calvinisticum)의 사상을 두 통치의 문제에 적용한다.116) 육체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육체 밖에서 계속되는 통치 사역은 영적인 나라와 시민 정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육체 밖의 그리스도의 통치 혹은 창조주와 섭리주의 통치로 제한하는 것보다는, 육체 밖의 통치의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육체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와 구속론적 차원에서 통치 역시 가능함을 주장한다.

칼뱅에게서 그리스도는 두 나라를 다스리는 주이다. 사회와 국가 안에서도 육체 안의 그리스도가 다스리고, 구원론적 차원에서도 통치는 계속된다. 그리스도가 두 나라를 다스리는 주임을 칼뱅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냈다. 프랑스와 1세에게 쓴 편지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로도 여전히 땅을 다스려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조금도 불확실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였다.117) 여기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교회로 제한하지 않고 땅을 다스린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시편 주석』(110:1)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손으로 해서,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gouverne tout le monde).”고 말하였다. 교회를 포함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다. 계속해서『마가복음 주석』(16:19)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시고(gouverne)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을 주재하신다(presider).”고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마태복음 주석』(5:19)에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손으로 세상(monde)을 회복하셔서 그의 나라를 전적으로 세우시고 견고하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를 배제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교회 안에 고립되어 있지 않다.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면서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주가 되신다. 그렇다면 교회 밖에서의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즉, 교회 안에서 그의 영적 통치를 실행하기 위한 외적 토대를 놓는 것이다.118) 그리스도가 교회 밖 세상에서 세상 자체를 직접적으로 구속하거나 성화를 시키지는 않지만, 믿는 자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목적 하에서 세상을 유지, 보존하는 방식으로 통치한다. 따라서 이것을 단지 육체 밖의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 우편에서 그리스도의 통치의 위력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상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는 사상은 칼뱅의 하나님 주권 사상에 근거한다. 칼뱅은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곳곳에서 피력하였고, 그 사상이 그의 전체 사상에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하신 후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그리스도에게 주어져 주권이 대리적으로 위임된다는 사실이다.119) 무엇보다도 칼뱅은 하나님 우편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적 통치가 그를 믿는 신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에 받아들여진 후 그의 몸의 임재를 우리의 시야에서 제거하셨으나(행 1:9), 이는 아직 지상에서 걷는 신자들을 돕는 것을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현존의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기(gouverner le monde) 위함이다.”120)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세상 통치는 신자들 안에 더욱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칼뱅에게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적이어서 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 밖, 세상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그리스도의 현존의 능력 안에 사는 신자들의 삶 때문이다. 칼뱅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룰 때, 신자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그들의 삶 전체에 임해야 함을 주장했다.121)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지만 교회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세상에서 주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일하고, 활동하고, 사회적 삶을 성취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회의 영역을 포함하면서 넘어선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통치는 세상 속에 신자들을 통해서 성취된다. 만약 신자가 교회에만 머물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통치의 영역이 교회의 영역으로 제한될 수 있지만 그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으로 나가기에,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장(場)이 된다. 제네바에 머물며 칼뱅에게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던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는 제네바 도시를 가리켜 “사도 시대 이후로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라고 불렀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학교란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말한다. 녹스는 이 그리스도의 학교를 단지 교회가 아닌 제네바시 전체를 지칭했다. 칼뱅에게서 그리스도의 통치(나라)는 제네바시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개념이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권의 행사가 칼뱅의 관심사였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전 세상을 거룩하게 하며, 모든 세상이 개혁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목표이다.122)

앞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신자의 차원을 다루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신자의 성화가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됨을 보았다.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는 교회를 넘어서 국가와 사회로 확장된다. 하나님의 은혜의 무대인 교회에서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셨다.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세상이라는 무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기도 하고 반대로 흐리게도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거룩한 소명들을 수행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더욱 빛날 것이다. “칼뱅에게서 두 통치(나라)는 그 두 영역 위에 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권위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루터가 그리스도를 세상 나라로부터 배재했다면, 칼뱅은 그리스도를 두 나라 위에 놓았다.”123)


VI. 나가는 말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 나라 사상을 수많은 신학적 주제들과 연결하면서 다루었다. 이것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파악 가능하다. 신자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 그리고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먼저 칼뱅은 하나님 나라가 육적인 나라가 아닌 영적인 나라임을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에 의해서 접근되고, 이 세상 차원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선다. 칼뱅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위해서 다양한 유사한 표현(그리스도의 나라, 주의 나라, 천상의 나라, 하늘나라, 자유의 나라, 의의 나라, 메시아의 나라)들을 같이 사용한다. 그중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하나님 나라의 유사어로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대리적으로 세상을 통치하기에,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간접적 차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중보자와 대리자로 세워서 신자와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고 보호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종말에 아버지 하나님에게 그의 나라를 바칠 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서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며 그의 나라를 확장시킨다.

하나님 나라의 최소 범위는 신자이다. 신자로부터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된다. 이것은 구원론적 사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신자의 구원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담고 있다. 신자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 편에서의 선택과 성령의 역사가 전제되며 신자 편에서의 자기 부정과 미래 삶의 묵상이 필수적이다. 신자의 성화는 하나님의 통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하나님 나라의 더 큰 범위는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교회론적 차원이다. 신자들에 대한 복음 통치와 신자들 간의 영적 교제가 있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와 연결될 때, 가시적·비가시적 교회의 두 차원 모두에 관계한다. 하나님은 비가시적 교회의 지체들을 지상의 가시적 교회의 지체의 일원이 되게 함으로써 비가시적 교회의 지체로 확증한다. 가시적 교회의 관점으로 봤을 때, 하나님 나라는 출발과 연약함이 있으며 성장과 진보가 있으며 무엇보다 종말론적 완성이 남아 있다. 칼뱅의 하나님 나라 개념 안에는 현재성과 미래성이라는 이중적 시간 개념이 들어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가시적 교회와 관계하고 미래성은 비가시적 교회와 관계한다.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교회 밖과 비교했을 때,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하나님 나라의 보다 명확한 현현인 것이다.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신자와 교회로부터 국가와 세상으로 확장된다. 이런 이유에서 칼뱅주의는 중세의 세계 회피적 종교가 아닌 “세계-형성적 기독교”(world-formative Christianity)의 특징을 가진다.124) 사회 참여적이고, 사회 개혁·변혁적 특징을 그 자체 안에 내포한다. 칼뱅은 국가와 사회를 교회의 지배로부터 제외시켰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교회가 국가보다 우월하지 않으며(천주교), 그 역도 아니다(루터). 교회와 국가가 서로 대립되거나 이질적인 것도 아니다(재세례파). 칼뱅은 교회와 국가를 구별하지만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두 개의 서로 다른 확장 수단으로 보았다. 두 통치 영역의 구별은 세상적 권력의 형태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음을 뜻하며 하나님의 통치의 행위는 세상 역사 안에 있으면서도 역사를 초월함을 말한다.

따라서 칼뱅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시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며 억측이다. 오히려 칼뱅은 목회자가 교회를 말씀으로 다스리고, 위정자는 국가를 법률과 검으로 통치해야 함을 주장하며 이 행위들이 섞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서로 구별되지만 균형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교회 밖, 국가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있으며 그 나라가 확장된다는 사고는 두 가지 신학적 전제를 가진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부활과 승천 후, 하나님 우편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는 사상이다.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이다. 그것은 신자와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말하고, 이것은 신학적으로 “육체 밖의 그리스도”의 통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는 교회 밖에서 직접적으로 구속과 성화를 그리스도가 이룬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신자들의 구원을 위한 외적 토대를 세우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더 큰 현존의 능력으로 나타나기에, 신자들의 교회 밖에서의 활동은 구속론적 특징을 간접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즉 그리스도에게 복종된 신자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밖에 구원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교회로 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성도의 삶이 사용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듯 칼뱅에게서 그리스도는 세상 나라로부터 배제되는 신자와 교회의 주만 되신 것이 아니라, 두 통치·두 나라 모두의 주이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제25차 온신학 전문위원세미나(2019년 4월 22일)에서 발표되었고 수정 보완된 논문임.

Notes
1) 고용수, “하나님 나라와 교육목회,”『장신논단』제16권 (2000): 639; 성종현,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비젼,”『장신논단』제30권 (2007): 79-109.
9) “하나님 나라는 영적이다(le royaume de Dieu est spirituel).”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Jean 18:36.
10) Calvin, IRC II. ii. 12.
11) Calvin, IRC II. ii. 13.
12) Calvin, Commentaire sur la première épître aux Corinthiens 1,20.
13)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Luc 19,12.
14)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Jean 18,36.
15) Calvin, Commentaire sur l’épître aux Hébreux 12,27.
16) Calvin, Commentaire sur l’épître aux Hébreux 12,2.
17) Calvin, Commentaire sur les Actes des Apôtres 2,17.
18) Calvin, IRC I. xiv. 15. II. xv. 14. III. xx. 42. IV. xx. 1.
19) 팔머(T. P. Palmer)의 분석에 의하면, 칼뱅은『기독교 강요』최종판에서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용어들인 regum Dei를 61회, regnum Christi를 41회, regnum caelorum를 33회 regnum caeleste를 27회 사용하였다. Timothy Pavitt Palmer, “John Calvin’s view of the Kingdom of God,” (Ph. D. diss, The University of Aberdeen, 1988), 64.
20) Calvin, IRC III. x. 1.
21) Calvin, IRC III. xv. 5.
22) Calvin, IRC II. xi. 12.
23) Calvin, IRC II. viii. 16.
24) Calvin, IRC IV. i. 16.
25) Calvin, IRC III. xix. 15.
28) Calvin, Commentaire sur la première épître aux Corinthiens 15,27.
29) 칼뱅에게서 “하나님과의 연합”(unio cum Deo)의 개념도 같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신자도 중보자와의 연합 없이 하나님과의 직접적 연합은 불가능하다.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경륜 안에서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할 때, 그것이 결국 하나님과의 연합인 것이다. 더구나 그리스도가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좌정한 후에 그리스도와의 연합 역시 직접적인 연합은 아니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보내시면서, 신자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간접적 연합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미하엘 벨커는 칼뱅의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특징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현존을 성령론적으로 표현하였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 없이는 결코 현존하지 않는다.” 미하엘 벨커, “성령-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삼중 형태로,”『영산신학저널』제27권 (2013): 8. 지상에서 신자는 하나님과의 직접적 연합을 할 수 없다. 오직 중보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연합이 가능하다. 또한 승천 후,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가 직접적으로 내려와 현존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올라가 직접적으로 그와 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간접적으로 신자와 연합한다. 그리고 이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간접적 연합인 것이다.
30) Calvin, IRC II. vx. 5.
31) Calvin, Commentaire sur la première épître aux Corinthiens 15,28.
32) Palmer, “John Calvin’s view of the Kingdom of God,” iv.
33) Ibid., 68.
34) 칼뱅에게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은 단지 하나님 나라가 신자나 교회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이르는 모든 창조 세계 전체까지 확장됨을 말한다. 이런 이유에서 팔머는 칼뱅이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섭리 개념처럼 사용하였다고 주장한다. Ibid., 78-89.
38) Calvin, Comm. Daniel 7,27, Hesselink, “Calvin on the Kingdom of Christ,” 150에서 재인용.
39) Calvin, IRC II. x. 17.
40)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Luc 17,20.
41) Calvin, Commentaire sur l’Acte 1,3.
42) Calvin, IRC III. vii. 1-3.
43) Calvin, IRC IV. xvi. 17.
44)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6,10.
45) Calvin, IRC III. vii. 4.
46) Calvin, IRC III. ix. 1.
47) Calvin, IRC III. vi. 3.
48) Calvin, IRC III. ix. 1.
50) Calvin, IRC III. ix. 3.
51) David E. Holwerda, “Eschatology and History: A Look at Calvin’s Eschatological Vision,” in Exploring the Heritage of John Calvi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6), 119.
52) Calvin, IRC III. xx. 42.
54) Calvin, IRC III. iii. 19.
55) Calvin, IRC III. xi. 1.
56) Calvin, IRC III. xvi. 1.
57) Calvin, Commentaire sur l’épître aux Romains 8,9.
58) Calvin, IRC II. xv. 3-6.
59)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3,3.
60)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Jean 3,3.
61) Calvin, Catéchisme de l’Eglise de Genève, CO 6, 91.
62)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Luc 17,20-21.
63)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6,10.
65)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6,10.
66) Calvin, Commentaire sur l’épître aux Ephésiens 5,31-32.
67) 칼뱅은 교회를 “신비적 몸의 연합”(l’union du corps mystique)이라 불렀다. Calvin, CO 5, 545.
68) Calvin, Commentaire sur les Acte des Apôtres 10,47.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Jean 10,16.
72) Calvin, IRC IV. ii. 4.
73) 칼뱅, “영혼 수면론 논박,”『칼뱅 작품 선집2』박건택 편역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9), 111.
75)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11,11
76) Calvin, CO 1, 72.
77) Calvin, IRC I. i. 7.
78) Ibid.
79) Josef Bohatec, Calvins Lehre von Staat und Kirche (Breslau: M. and H. Marcus, 1937), 267, 272, 276, Palmer, “John Calvin’s view of the Kingdom of God,” 276에서 재인용.
80)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Luc 17,20.
81)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Luc 12,13.
82) Calvin, IRC IV. ix. 1.
83) Calvin, IRC III. ix. 6.
85) 칼뱅, “영혼 수면론 논박,” 111.
86) Calvin, Commentaire sur les Acte des Apôtres 3,21.
88) 루터는 부패한 교회의 자정능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어서, 세상 권세에 기대를 걸었다.
90) Calvin, IRC IV. xx. 5.
92) Calvin, IRC III. xix. 15.
93) Ibid.
94)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22,21.
95) Calvin, IRC IV. xx. 12.
97) Calvin, IRC IV. xi. 3.
98) 칼뱅은 교회가 설교와 성례와 치리를 행사하면서, 국가의 지배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요구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칼뱅이 국가의 사법권에 로마교회의 성직자들이 일반 사법권에서 면책을 받았던 것과 같은 요구를 목회자(성직자)의 특권으로 내세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Calvin, IRC IV. xi. 15.
99) Calvin, IRC IV. xi. 8.
100) Calvin, IRC IV. xi. 16.
101) Calvin, IRC IV. xi. 8.
102) “위정자가 이 땅에서 악을 처벌함으로써 교회를 추문으로부터 정화시켜야 하는 것처럼, 말씀을 전하는 목사는 사악한 자들의 수를 줄게 함으로써 위정자를 도와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들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상호 협력하여 서로를 도와야 하는 것이다.” Calvin, IRC IV. xi. 3.
105) Calvin, IRC IV. xx. 1.
106) Calvin, Commentaire sur l’épître aux Romains 13,1.
109) “우리는 왕들을 비롯해서 권세 있는 자들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그들이 만왕의 왕이자 아버지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권세와 권위를 부정하지 않을 때에만 그렇게 하여야 한다.” Calvin, Commentaire sur les Actes des Apôtres 4,19.
110) 프랑스와 1세에게 서문. Calvin, CO 1, 11.
113) Calvin, IRC IV. xx. 1.
114) Calvin, Commentaire sur l’Evangile de Mattieux 22,22.
117) Calvin, CO 3, 27.
118) 최윤배에 의하면 “깔뱅의 경우 정부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공간을 창조한다.” 최윤배,『깔뱅신학 입문』, 657.
119) Calvin, IRC II. xvi. 15.
120) Calvin, IRC II. xiv. 14.
121) Calvin, IRC III. vii.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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