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50, No. 0, pp.85-124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19
Received 30 Sep 2019 Revised 14 Nov 2019 Accepted 15 Nov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12.50.85

오순절주의적 경험의 패러다임

이진민
순복음엘림교회 총무목사, 조직신학 jinmin94@hanmail.net
Paradigm of Pentecostal Experience
Jin Min Lee
Ph.D. Executive Pastor, Systematic Theology Sunbokeum Elim Church

초록

본 연구는 인식론 측면에서 오순절주의가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오순절주의가 지향해야 할 경험의 패러다임에 대해 논의한다. 일반적으로 ‘경험’(Experience)은 인간이 무언가를 대면하여 얻은 정보를 지칭하는 매우 단순한 개념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철학이나 신학적 문제로서, 특히 존재론이나 인식론적 문제로서 논의되는 경우,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쉽지 않다. 이는 첫째, 주체와 대상 사이에 발생하는 경험 정보들에 대한 신뢰성의 문제 때문이고, 둘째, 경험의 영역 안에서 작용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믿는 기독교 내에서도 경험의 신뢰성과 이와 관계되는 인간 이성에 관한 모호한 이해 때문에 경험에 대한 신학적 의견이 분분하다. 기독교 신학이 유신론의 입장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이해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칸트주의적 이성관, 즉 초월에 대한 인간 이성의 인식한계를 인정하는 관점과 모호한 동거를 하는 듯하고, 이러한 이성적 지식에 집중된 합리론적 접근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 이에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오순절주의가 지향하는 경험에 대한 이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관점에서의 경험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발생하는 정보들에 대한 존재론적·인식론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재적 근거를 가지며, 특히 인식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이성은 초월적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오순절주의의 경험에 대한 초월적 이해의 신학적 가치를 깨닫고 발전시킨다면, 기독교 내에 만연한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영적인 경험을 바라보는 개방된 인식으로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through researching how Pentecostal understands experience in terms of epistemology, is to debate the paradigm of experience that the Pentecostalism should aim for. In general, “Experience” is understood as a very simple concept referring to information that humans get from facing something. However, it is not easy to define this in case of discussing with a philosophical or theological problem, especially as an ontology or epistemological problem. First problem comes from the reliability of the experience information that occurs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The second problem comes from differences in understanding of “human reason” that operate within the realm of experience. Even in Christianity believing in the same object theological opinions on experiences are divided because of the vague understanding of the reliability of experiences and its related human reason. Although Christian theology is based on a position of theism, the study of understanding the experience of God as a transcendental being seems to be a vague cohabitation with a Kantistic view of reason recognizing the limit of human reasoning for transcendence, and seems to be trying not to escape the rational approach focused on this rational knowledge. Therefore, this study pays attention to the understanding of the Pentecostal experience as an alternative to this problem. Because experience from this point of view has a real evidence to ensure the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credibility of the information that occurs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especially in terms of epistemology, human reason can recognize transcendental existence. If we recognize and develop the theological value of the transcendental understanding of experiences of Pentecostalism, we will gain a positive result in the transformation of the open perception of spiritual experiences from a rigid perception of transcendental existence widespread in Christianity.

Keywords:

Epistemology, Experience, Kant, Transcendental Being, Reason, Pentecostal Experience

키워드:

인식론, 경험, 칸트, 초월적 존재, 이성, 오순절적 경험

Ⅰ.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경험’(Experience)은 인간이 무언가를 대면하여 얻은 정보를 지칭하는 매우 단순한 개념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철학이나 신학적 문제로서, 특히 존재론이나 인식론적 문제로서 취급될 때는 그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의 정의가 경험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거대담론(meta-narrative)이기 때문이다.1) 이러한 차이는 첫째, 주체와 대상 사이에 발생하는 경험 정보들에 대한 신뢰성의 문제 때문이고, 둘째, 경험의 영역 안에서 작용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현재까지도 이에 대한 학문상의 합의점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이 경험에 대한 정의를 모호한 영역 안에 잔류시키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경험은 상식선이든, 철학적으로 이해하든, 신학적으로 이해하든지 간에, 이에 대한 경험유무(經驗有無)는 삶에 대한 이해나 태도에 있어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경험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삶 자체가 될 수 있기에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 양식(a state of being)이 될 수 있다. 특히 경험이 종교적 이해와 연결되면 더욱 그러하다. 만약 혹자가 종교적으로 진정한 신자라면, 그는 삶 속에서 초월적 존재를 경험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고, 그 경험을 통해 신자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덕일 것이다. 기독교가 이런 종교적 경험을 추구하려면, 경험에 대한 모호한 이해를 근거로는 유의미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일 대상을 믿는 기독교 내에서도 경험의 신뢰성과 인간 이성에 대한 모호한 이해 때문에 경험에 대한 신학적 의견이 분분하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이는 기독교 신학이 유신론의 입장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이해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칸트주의적 이성관, 즉 초월에 대한 인간 이성의 인식한계를 인정하는 관점과 모호한 동거를 하는 듯하고, 이성적 지식에 집중된 합리론적 접근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2)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굳어지면 질수록 기독교는 무신론자들에게 치명적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신학은 현실성이 없는 변증법적 퇴물 취급을 받게 될 것이고. 교회는 더 이상 초월적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경험’에 대한 이해를 모호한 영역에 남겨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그것에 대한 확실하고 실증적인, 그리고 모범적 이해가 시급히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오순절주의의 경험에 대한 이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관점에서의 경험은 실재적으로 주체와 대상 사이에 발생하는 정보들에 대한 존재론적·인식론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며, 특히 인식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이성이 초월적 존재를 인식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신학계에서는 오순절주의적 관점을 경험주의나 반지성주의적 관점을 가진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오순절주의의 경험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신학적 접근이 가능한 것이고, 기독교 신학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연구자는 본 소고를 통해 오순절주의적 경험 이해의 본질적 지향성을 중심으로 한 신학적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지면상의 한계를 고려하여, 먼저 인식론 측면에서 오순절주의가 주체와 대상 간의 경험 정보를 인식하는 수단으로써 이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를 근거하여 오순절주의가 지향하는 경험의 실체적 특징들이 가지는 학문적 근거로서, 그리고 건전한 기독교 신학을 위한 신학적 근거로서의 의의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II. 오순절주의의 경험 이해

1. 경험의 인식론적 패러다임

1) 초월을 인식하는 이성의 회복

일반적인 경험은 작용하는 대상과 반응하는 대상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이 관계적 사건 안에서 인간의 경험은 “인지에 대한 대상과 방법”(both the what and the how of knowing)” 모두를 수용한다. 언뜻 보면, 경험이라는 것이 한시적인 가시적 사건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지”(knowing)와 관계한다고 볼 때, 경험은 단순한 사건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경험이 한시적 사건이라면, 우리의 경험은 생물학적 감각 영역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적 대상은 감각을 넘어서는 관념적 영역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인지적 대상에 대한 경험이 고유한 이성을 통한 인식(perception)의 과정을 통해서 구체화되기 때문에, 경험은 어떤 방식과 대상, 이 모두가 인지적 영역 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논의되어야 한다.3) 이러한 이해에 따라, 어떤 경험의 인지에 대한 영역이 감각적이든 관념적이든지 간에, 그에 대한 필수적 작용은 이성을 매개로 하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험의 영역에서는 초월적 대상은 경험의 영역에서 제외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한다. 칸트에 의하면, 초월적 대상에 대한 경험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경험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4) 특히 칸트가 이해하는 “감각과 이성”은 제한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서 사물의 진정한 내적 본성에 대한 초월적 통찰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과 이성에 의한 경험은 현상계(現象界)에서만 그 기능은 완수된다. 그러므로 그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은 물질적 존재가 아닌 초월적 존재를 경험할 수 없고 단지 관념적 차원에서 사유(思惟)적 존재로서 경험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5)

오순절주의는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을 거룩한 영적 존재로 이해하기는 하지만, 그분은 “성육신”(Incarnation)을 통해 인간에게 실재적 존재로서 나타났으며, 실재적이고 현재적인 은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어 인간이 자신의 감각과 이성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존재하고 활동하는 존재로서 이해한다.6) 그리고 이러한 초월적인 하나님의 실재적 현현(顯現)을 경험한 인간의 이성은 더이상 그것을 관념 속에서만 경험하지 않는다. 초월적 존재를 인식한 인간은 비로소 초월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능한 이성이 아닌 창조 때 부여받은 회복된 감각과 이성을 통해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실재적이고 현재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순절주의 경험은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현현(manifestation)에 대한 개방적 인식(open recognition)에 기초한다. 왜냐하면, 초월적 경험의 대상인 성령은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스스로가 초월에 대한 경험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지 않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태초에 인간의 이성은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과 만나는 것에 어떠한 거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범죄를 인지한 순간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회피했다(창 3:8). 결국, 인간이 가진 죄의 본성이 인간 자신과 초월적 하나님의 만남을 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더이상 피하거나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언제나 자신을 개방해 놓는다(사 49:14-15). 하나님은 그 만남의 장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성령을 통해 마련해 놓고 인간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너무도 심각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마음속에 ‘과연 내가 하나님을 진짜로 만날 수 있을까?’라고 하는 의심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로서 부여받은 이성의 “계시”에 대한 인식적 개방성을 회복해야 한다.7)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완성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사건으로써 기억한다. 이것은 제사장을 통해서만이 간접적으로 가능했던 하나님과의 만남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이제는 누구나 제사장 없이도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만남에 대한 실재적인 방법을 기독교는 무엇이라고 언급하는가?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신적 계시의 유일한 근거를 “성경”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에 대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최종의 권위이기 때문이다.8) 이것은 분명히 수호되어야 할 기독교의 정신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집중한 나머지 신적 계시에 대한 이해의 범위는 축소되고, 성령을 통한 초월적 현현의 만남에 대해서는 소위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이유로, 이에 대한 대부분의 신학적 이해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테일러(Charles Taylor)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이 초월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 사회가 기계론적 과학의 승리(the triumph of mechanistic science)와 사회적 삶의 이성에 근거한 구조(the rational construction of social life)를 가짐으로 인해서 신성한 본성을 알아볼 수 없는 세속사회(secular society)가 되었기 때문”이다.9) 세속적인 현대 사람들은 더 이상 신성이나 종말에 대한 기대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 종말이나 신성과 같은 것은 비과학적이고 불필요한 것에 불과한 것이고, 이성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허구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오순절주의적 신학자들은 오순절 공동체 안에서 목격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표준화의 한계성을 밝히기 위해 애쓰지만, 사도 바울의 다메섹 사건처럼, 결국 그들 스스로가 부정할 수 없는 성령의 강력한 작용에 의한 경험들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죄성은 이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그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신비스러운 혹은 기적적인” 것이라 말하면서, 현실과의 연관성에 모호하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를 비판한 메튜(Mathew S. Clark)는 오순절주의 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순절주의자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지적한다.10) 오순절주의자는 소위 신비하거나 기적적인 것들로 이해되는 경험들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오순절 성경 신학자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고든 피(Gordon Fee)에 따르면, 오순절주의에서 교리적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사도행전적 경험은 특별한 경험으로 보기보다는 그저 정상적인(normative), 즉 신도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한다.11) 이에 이들은 방언(speaking in tongues), 예언(prophecy), 신유(healing)와 같은 성령의 현시들을 근거로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권세를 일상 안에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초기 단계의 오순절운동 안에서부터 있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사역과 삶 속에 이미 임하였고 오순절 날 성령을 보내신 것을 그 왕국의 사역을 교회가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라는 신학적 이해가 있었다.12)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합리주의적 관점을 옹호하는 신학자들로부터 여전히 비판받는다. 그들은 빈번히 오순절주의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성령의 현시들에 대한 진정성을 제기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인간이 선한 능력을 상실한 무능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초월의 손길은 항상 우리를 향해 뻗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13) 그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다시금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능력한 존재인 인간에게 자신의 계시를 인식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태초부터 자신의 피조물에게 모든 것을 맞추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창 2:5; 22:14). 이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것처럼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초월적 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신다(행 24:49). 다만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만나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성을 개방하는 최소한의 반응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파함(Charles F. Parham)은 “우리가 우리의 개인성(Individuality)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성령은 강력하게 일하실 것이다.”라고 강조한 것이다.14) 따라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오순절주의 경험은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그 자신의 “초월을 인식하는 이성”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오순절주의와 더불어 대부분의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παρουσία)에 대한 지상명령으로 이해한다.15) 그리고 이것을 기독교 신학의 대표적 종말론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야기한다. 특히 이때, 사도행전의 말씀을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능 부여”(empowerment)의 메시지로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경험을 강조한다. 이 ‘권능’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성결운동가들은 이를 “성화를 위한 능력”으로 혹은 “봉사를 위한 능력”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초기 오순절 지도자들은 이것을 ”복음전파의 능력”으로 강조한다.16) 연구자는 이러한 오순절 사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들은 오순절주의 경험의 실천적인 측면에 집중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그러한 경험의 동기가 아닌 결과들이다. 성령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전환은 인간의 생각이나 태도의 변화로 가능하다. 이에 연구자는 이 ‘권능’(δύναμις)의 1차적 단계가 ‘초월을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의 회복’이라고 이해한다. 이 회복된 이성을 통해서 초월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가 가능해질 수 있고, 그 초월적 경험들이 경험자의 삶 속에서 실재적으로 만나지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증인으로서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증인’(μάρτυς)이라는 법정(法庭) 용어가 지시하는 사람의 자격은 그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때 ‘직접적’이라는 것은 생각이나 판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사실, 즉 직접적인 자신의 경험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순절주의 경험이 “성화를 위한 능력”, “봉사를 위한 능력”, 그리고 “복음전파의 능력”으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모든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개방적 인식의 회복, 즉 ‘초월을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의 회복’이 논리상 선행되어야 한다.

2) 의식적 인식

오순절주의자들의 경험이 표상(表相)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이고 격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영지주의(Gnosticism)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오순절주의는 영지주의와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오순절주의는 하나님과 세상을 플라톤적 이원론(Platonic dualism)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는다.17) 왜냐하면, 오순절주의 세계관 안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은 언제든 인간의 삶 속에 개입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도 인간과의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관계를 통해 가능하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오해한 신학자들은 오순절주의 경험과 신비주의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로버트 마페스 앤더슨(Robert Mapes Anderson)은 방언(glossolalia)을 의식의 황홀경 상태에서의 경험적인 현상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황홀경의 의식 상태는 “감정을 격하게 일어나게 하는 방법”(orgiastic techniques)들을 통해 이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독특한 심리학적 상태나 육체적 상태가 그들에게는 오순절주의 경험에서의 성령에 사로잡힌 것과 같은 것으로 오해되는 것이다.18) 더군다나 이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으려는 광란의 모습(The notion of frenzy), 억제되지 않은 감정 표현(uninhibited emotion-mongering) 같은 것들은 오순절주의 경험과는 매우 다르다. 오순절주의 경험은 단순한 동물적 감각으로써의 ‘감정’(emotion)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순절주의는 ‘감정’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전체적 인간 본성의 한 부분’(part of the whole God created nature of humanity)으로 이해한다.19) 루이스에 따르면, 인간 본성 각각의 측면들, 즉 육체적(physical), 정신적(spiritual), 감정적(emotional), 사회적(social), 지성적(intellectual), 심리적(psychological)인 요소들이 거룩하고 초월적이며 주권적인 하나님께 반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본성으로서 존재하는 ‘감정’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본성들이 하나님 그리고 구원과 종말에 대해 전체론적(holistic)으로 반응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 오순절주의 경험의 요소들이라고 말한다.20) 오순절주의자들이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할 때 자신의 의식이나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현상들은 “황홀경”으로 구분한다. 왜냐하면, 오순절주의자들은 그 자신들을 하나님의 “꼭두각시(puppets)”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자신들은 “성령의 동역자”(co-worker with Gos’s Spirit)이며, “성령 안에서”(in the Spirit) 행동하고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21) 러셀 스피틀러(Russell Spittler)는 오순절주의 경험을 신비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방언을 말할 때나 일반적으로 “성령 안에서의 쓰러짐”(slain in the Spirit)이라고 불리는 현상들 속에서, 오순절주의자들은 의식을 잃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오순절주의자들은 “무의식”(nothingness)이나 “자의식 소멸”(the disappearance of the self)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22)

무엇보다 오순절주의 경험은 황홀경이나 감정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는다. 와링턴(Keith Warrington)은 오순절주의가 경험을 중요하게 강조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의 발전을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지성(the mind)을 무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현현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지성과 감정을 기꺼이 사용한다고 말한다.23) 오순절주의 경험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과 같이 일차적인 작용에 따른 느낌이나 감정과 같은 단순한 감각 경험 그 이상의 것이다. 더욱이 의식적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황홀경(ecstasy)의 탈혼 상태의 무의식적 경험이 아니다. 오순절주의 경험은 하나님의 현현을 마주하고 경험하면서 이에 대해 인간의 지성이 반응을 하고 이것을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는 인지 감각적 경험이다.

3) 전방위성

오순절주의 경험은 전방위(all directions)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경험이 가지는 직접·간접성에 대한 특징에서 비롯된 이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과 타인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인식되는 “상호주관성”에 의한 객관적 특징을 가진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24) 이 경험의 당사자는 자신의 신체를 통해 성령의 초월적 작용을 인식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이 아닌 어떤 타자로부터 스스로가 조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스스로의 신체적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로 격렬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오순절주의 경험의 한 예로서 성령침례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가 그 성취에 대한 증거를 통해 의심 없이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25) 오순절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성령침례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성령에 대한 경험을 주로 전했던 토레이(R. A. Torrey)도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5절, 그리고 19장 2절을 들어 성령침례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예 또는 아니오’로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것임을 설명한다. 그는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5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도들에게 요한의 침례로만 만족하지 말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 몇 날이 못 되어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토레이의 관점에서 이러한 오순절 날의 경험이 그것을 경험한 자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경험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2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것을 받지 않았을 때와 받았을 때가 분명히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순절주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회적 체험이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경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오순절주의 경험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오순절운동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들과 120문도들, 파함과 벧엘성경학교에 모여 함께 기도하던 40여 명의 학생들, 그리고 수많은 오순절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공유한다.27) 이렇게 오순절주의 경험은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공동체적인 전방위(all directions)적인 경험이다.

2. 경험의 존재론적 패러다임

1) 초월에 대한 관계적 인식

초월적 존재를 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존재의 형이상학적 측면이 다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과거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적인 이해에서는 초월적 존재의 존재 여부는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니었다.28) 그리고 이들의 상대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 보편적 진리의 탐구를 주장했던 소크라테스의 이해에서도 초월적 존재 여부에 관하여는 다소 중립적인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관심은 초월적 존재의 실체가 아닌, 보편적 진리로서의 절대적 윤리 기준의 재건(再建)에 있었기 때문이다.29) 이후 초월적 존재로서의 이데아(Idea)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철학적 이해 속에 초월적 존재로서의 이데아(Idea)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 발견되기 전, 그것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실재적 실체(實體)로만 이해되었다. 비록 이데아(Idea)에 대한 인간의 직관적 이성이나 그것으로부터의 추론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이데아(Idea), 즉 초월적 존재는 인간의 심적 인식에 의해서만 그 존재론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직관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써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하고 있듯이, 이데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조명’(Illumination)에 의해서 인간의 직관 속에서 인식되는 초월적(超越的)이고 선재(先在)적인 것이다.30) 플라톤은 이데아와 물질세계를 완전히 분리된 이원론(二元論)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들을 일원론(一元論)적으로 이해한다.31) 그리고 칸트 또한 그의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어쩌면 초월적 하나님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도덕적 심판자로 그 존재가 요구될 뿐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인간의 현실 세계에서 그것을 완전히 분리하여 이해한다.32)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존재의 초월성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초월(超越)’이라는 말의 함의(含意)에서 드러나듯, 그것은 어떠한 영역에도 제한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순절주의는 경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초월적 존재와 세상의 관계를 플라톤과 칸트가 이해하는 이원론(二元論)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하는 일원론(一元論)과 같은 극단적 측면에서 이해하지 않는다. 연구자는 이 지점을 오순절주의가 “관계(關係)적 존재론(存在論)”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오순절주의가 경험 대상인 하나님을 관계적 속성을 지닌 삼위일체의 존재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고, 하나님이 세상을 초월하는 동시에 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존재로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적 속성을 인간의 초월적 경험과 더불어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 때문이다. 한 예로써, 오순절주의는 사도행전에 진술된 오순절 날의 경험인 “방언”을 대표적인 초월적 경험의 실체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초월적 존재와의 직접적 관계성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방언은 인간 자신의 의지적 통제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πνεύματος αγίου και ήρξαντο λαλείν) 경험된 것이다. 사도들과 120문도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방언이 경험되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들의 진술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자신들의 인지 영역과 분리된 존재의 강력한 작용에 의해 조종당할 수밖에 없는 초월적 경험이었다. 오순절주의는 이러한 초월적 경험에 대한 현재적 재현을 중요한 신앙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실재로 그것과 동일하게 초월적 존재는 인간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다.33) 이러한 관점에서 오순절주의는 초월적 존재와 인간이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으며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비록 각각의 존재가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초월적 경험은 인간의 종속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2) 전인적 인식

오순절주의 경험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통해서 발현되는 “전인적”(the whole man)인 것이다. 여기서 “전인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적 측면에서 “이성적 인식”(rational perception)과 “감각적 인식”(sensory perception)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종합적 판단”(synthetic judgment)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인간의 내적·외적 자극으로 발생되는 모든 것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있다 혹은 없다”와 같은 존재적 인식, “기쁘다 혹은 슬프다”와 같은 감정적 인식, “옳다 혹은 그르다”와 같은 판별 인식 등 소위 이성의 해석적 인식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인간의 오감, 즉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의 생물적 감각을 통한 인식이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주변에 대한 상황이나 자신의 물리적 상태를 인식하게 된다.

오순절주의 경험은 성령의 강력한 통제로 일어난다. 이것은 성령의 사역(work)적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생의 경험과 구별된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경험의 구조적 속성상 수동적이면서 동시에 능동적인 성령에 의한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중생의 경험과 비교해 볼 때, 중생과 구별된 별개의 경험이기는 하지만, 중생의 경험과 같이 경험적 구조를 가지는 오순절주의 경험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는 경험이다.

중생의 경험은 한 영혼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 신분에 영적 변화가 일어나며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갖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34)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하심의 선물로 믿음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구원론적인 것이다. 성도가 된다는 것, 즉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는 것은 성령이 내주하시면서 모든 것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알게 하시는 성령이 인간 안에 역사하시면서 빛을 비추시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실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35) 그런데 오순절주의 경험 또한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일어나는 경험이다. 특히 성령침례의 증거로써 나타나는 “방언”(tongue)이 그러하다. 초월적인 성령이 인간에게 임하게 되면 성령이 성도들의 혀를 통제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순간 자신의 신체적 통제력 밖에서 성령에 의해 말을 하게 된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화된 음성을 듣게 되고 이러한 사실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초월적 존재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종합적인 사고로써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자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적 경험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오순절주의 경험은 한 인간의 감각과 이성 안에서 전인(the whole man)적 요소들이 성령에 의해 경험되는 것이다.

3) 구원의 보증과 성화의 회복

오순절주의 경험은 인간의 존재적 문제, 즉 구원에 대한 문제와 성화에 대한 문제에 대한 회복의 기능을 가진다. 특히 이러한 회복의 기능은 전방위적인 성령의 초월적 사역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앞서 연구자는 오순절주의 경험이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식 능력의 이성적 회복으로써 작용한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 오순절주의 경험의 이러한 회복의 속성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그 주어진 은총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된 보증”(the seal of finished salvation in Jesus Christ)의 회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순절주의의 성화론인 “갈보리의 완성된 사역”(the finished work of Calvary)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성화를 오순절주의 경험을 계기로 하여 다시금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 성화를 회복하고 그것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36) 특히, 더함(William H. Durham)은 오순절주의 경험은 성화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성화의 능력이 이것을 계기로 “퇴보한 자들”(backsliders), 다시 말해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성화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동기가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그들이 은혜의 첫 상태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37)

오순절주의 경험이 갖는 “구원의 보증 혹은 인치심”의 의미는 초기 오순절 지도자들의 메시지에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다.38) 이들은 오순절주의 경험을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 경험은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확인하고 보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고, 이로써 자신들의 삶 속에 더욱더 확실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순절주의 경험은 성령의 초월적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보증으로서 확인되는 ‘선물’(gift)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물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구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계시를 갖게 되고, 이것을 근거로 종말의 때를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초기 오순절주의 지도자들은 오순절주의 경험이 구원의 보증과 성화의 회복으로서의 경험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오순절주의 경험은 현재에도 강조되어야 할 오순절주의 메시지의 중심이다. 이 시대는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넘어, 그 존재에 대해 무관심, 즉 그 존재 여부가 인간들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를 향해 오순절주의 경험은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경험의 기회를 다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3. 경험의 학문적 패러다임

1) 성령에 의한 계시성

오순절주의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즉 성령에 의한 계시에 대한 권위적인 원천으로서 끊임없는 대화의 대상으로 본다. 이에 그 경험의 근거를 성경 속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더군다나 오순절주의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근본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하는 “축자영감”(逐字靈感, verbal inspiration)과 그것은 어떠한 오류나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무오”(無誤, inerrancy)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계시임을 절대적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경향은 오순절주의자들이 성경의 모든 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는 점과, 그 모든 것들이 실재적인 사건이라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성경 읽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기대한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39) 오순절주의 운동이 파함의 벧엘성경학교에서의 성경 읽기와 성경연구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성경에 대한 이해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순절주의 관점에서 성경 읽기와 성경연구는 단순한 읽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가 있기를 바라는 것에 상응하는 하나님에 대한 연결의 직통인 것이다.40) 그러한 절대적 권위 위에 있는 성경 속에서 오순절주의자들의 신학과 경험이 검증될 수 있다는 것은 오순절주의자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이다. 경험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측면이 객관적 권위로써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학문적 재료로서의 충분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것이 직접적인 하나님과 만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경험 없이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성경은 그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종교 분야의 베스트셀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교적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성경은 말할 수 없이 신비롭고 심오한 것들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된다.41) 그래서 특히 오순절주의자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이들의 경험은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중(意中)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는 촉진제가 된다. 그리고 신앙생활 속에서의 영적 자각과 덕행들을 위한 요구가 강조되게 되는 것이다.

오순절주의는 성경을 무오하고 축자영감에 의한 저서로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언적 은사들을 장려하기 때문에, 다니엘과 이사야같이 영감 받은 저자들이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에 미래의 사건들을 예언하는 것에 하등의 철학적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특히 역사비평을 옹호하는 신학자들은 이러한 오순절주의의 시각을 맹목적이고 비지성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예언의 현재성(現在性, nowness)을 인정하는 관점에서 다니엘과 이사야의 기록은 맥락 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언들을 ‘사건 후 예언’으로 보지 않는다. 루이스는 “만약 성령께서 그렇게 예언하시기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 예언들을 사건 이전의 기록으로서 취급할 신학적 필요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중요한 본문의 결정적 요인은 성령의 영감이지, 반드시 역사적 배치(historical placement)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순절주의자들이 성경 본문들의 기원들과 국면들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평가한다.42) 하지만 워필드(Benjamin B. Warfield)와 같은 은사중단론자(cessationist)들은 경험을 신학적 과제의 필수적인 면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적이나 이적들을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43) 선입견(preconceived notions)이라는 것은 하나의 신학적 범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은사중단론자들은 현시대에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신성한 성령 경험들은 별 의미 없는 것들이고, 특히 하나님의 계시와는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기사와 이적은 초대교회 당시 전도를 위한 목적이 컸으며, 특히 계시는 성경의 특별계시로써 이미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계시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가 오랜 시간 동안 교회 안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크로스(Terry L. Cross)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관점이 열려 있지 않다면, 그러한 관점의 신학은 한계를 쉽게 드러내거나 엄청난 결과들의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44) 그리고 그는 성령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개입하고 나타나시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열린 마음을 가질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루디아와 바울의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을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45)

이러한 관점에서 올리베리오(L. William Oliverio Jr.)는 오순절주의 신학에서 경험이 가지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이러한 오순절주의 관점을 “새로운 기독교 전통의 탄생이다.”(A new Christian tradition was born)라고 말한다.46) 명제적 계시에 한정된 스콜라주의(scholasticism)적 전통에 갇혀 있는 신학으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어렵다. 기독교 신학이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시며 인간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로 교회와 성도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험, 진정한 경험, 실재적 경험을 이해하고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 전통으로서의 오순절주의 전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이해에서 성령에 의한 계시적 경험으로서의 오순절주의 경험은 기독교적 계시 인식의 패러다임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아주사거리 부흥운동의 확산에 중요한 기여를 한 바틀만(Frank Bartleman)은 오순절주의 예배와 신학화에 있어서 경험의 역할을 언급한다. 바틀만은 성령의 사역들을 “영접”(receiveth)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순절주의 방식”(Pentecostal methods)들은 어리석게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이러한 오순절주의 방식 속에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은 생각과 신실하심에 대한 전 영역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방식들은 계시로써 진리를 밝혀준다고 말한다.47) 이런 바틀만의 진술에 대해 알트하우스(Peter Althouse)는 “종교적 경험은 오순절주의의 전형적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바틀만의 입장을 인용하면서, 오순절주의가 회심의 위기사건들과 방언을 동반한 성령침례 경험을 중요한 경험의 순간들로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의 현시(the Spirit’s presence) 또한 오순절 예배에 일반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바틀만이 “계시”(revelation)를 성경적 조명(Scriptural illumination)뿐만 아니라 환상(visions), 꿈(dreams), 예언(prophecy) 그리고 다른 카리스마적 현상과 같은 성령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특별한 지식”(special knowledge)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48) 뉴먼(Peter D. Neumann)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오순절주의 경험의 계시적 속성에 대한 유산(heritage)과 경험이 자신들에게 진실된 것이라면, 그것들을 좀 더 중요한 자리에 두어야 한다.49) 그리고 오순절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신학적 자료로서 그리고 가능성 있는 것으로서 낙관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경직된 성령에 대한 이해에서는 결코 초월적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실재적인 하나님의 현현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의심이라는 그릇된 죄악의 씨앗이 자라날 것이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성령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성령에 의한 계시적 경험을 거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전제에 대한 검증 도구

전통적으로 오순절주의 경험은 권위로 작용했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과 성경에 대한 신학적 가설을 가져야만 하는 것들이었다.50) 1990년 초, 파커(Stephen E. Parker)는 오순절주의자들을 연구하면서, 오순절주의 경험이 신학적 구조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51)

켈케이넌(M. Kärkkäinen)은 “경험이 먼저 오고 그 후 신학이 뒤따른다.”라고 말한다.52) 이러한 관점에서 아모스 용(Amos Yong)도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성경과 성경의 적용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53) 이에 대해 연구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단순한 지적인 신학에 맞서 진정한 신학의 근거를 제시해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54) 요즘 많은 오순절주의 신학자들에게 이러한 이해가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세에 따라 오순절주의 신학을 경험에 후속되는 신학으로 정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순절운동은 신학적 명제를 설정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창승은 “오순절 운동은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신학적 주제에 따른 성경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55) 그의 지적처럼 오순절주의 신학의 방법론적 구조는 문헌자료에 대한 지성적 연구 과정에서 시작하여 경험이라는 검증적 도구를 통한 실험적 과정으로 마무리되는 형태를 가진다. 따라서, 경험을 오순절주의 신학의 전제로 이해하려는 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순절주의의 시작을 신학으로 보는 것과 경험으로 보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혹은 ‘어느 쪽이든 간에 오순절주의자들 모두가 성령을 경험하기 위해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오순절주의 신학을 경험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오순절주의 신학의 정체성에 심각한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56)

오랜 시간 동안 오순절주의는 신학이 없는 신앙운동으로 평가받아 왔다. 심지어 오순절주의의 앞마당에서도 이러한 평가가 되고 있다.57) 하지만 오순절운동의 시작된 일화로서 부정할 수 없는 파함과 그의 제자들의 벧엘성경학교에서의 사건을 살펴본다면, 분명 그들의 노력에는 신학적 형성과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오순절운동의 슬로건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던 성령침례에 대한 파함의 가르침은 경험에서 나오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파함과 그의 제자들은 사도행전의 말씀을 근거로 한 명제적 전제를 가지고 고민했다.58) 전제는 신학이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오순절주의는 ‘경험’이 전제가 된 것이 아니라 ‘신학적 명제’가 전제가 되어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순절주의 안에서 ‘경험’이 가지는 의미는 전제가 아닌 전제를 위한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경험’을 신학적 전제로 설정을 하게 되면, 오순절주의 경험은 오순절주의가 아닌 은사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경험이 근거가 되어 성경을 연구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신학적 명제들이 형성된다. 그리고 더욱이 성령의 경험을 실존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이것을 통해 성경 속의 경험을 증명하는 방법론을 사용하게 된다. 이에 스통스타드(Torill R. Stongstad)는 “경험 후에, 그 경험을 전제로 삼아 신학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59)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일부 학자들은 우려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이 지적하듯, 방법론적 측면에서 “경험”이 전제로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가져야 할 객관성과 타당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60) 하지만 각 사람에게 경험된 다양한 성령의 경험들을 하나의 전제로 통합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난제 속에서 현대 독자가 경험하는 그것은 성경의 경험과 완전하게 동일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릴지도 모른다.61) 이렇게 성경과 독자의 경험이 이질화(heterogenization)된다면, 결국 전제인 경험은 상대화(relativization)되고 성령의 경험은 객관성과 타당성 획득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것은 성령 경험에 대한 이해의 유사성을 빌미로 경험을 전제로 하는 은사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된 신학적 이해가 오순절주의적 이해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오순절주의자들은 신학적 측면에서 경험의 전제로서의 위치를 주장하면서, 오순절주의의 신학의 명제적 근원을 부정한다. 와링턴은 오순절주의 안에서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오순절주의는 교리적이거나 신학적인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62) 또한 홀렌베거(Walter J. Hollenweger)는 오순절운동을 구전적 흑인 문화(oral culture)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이해한다.63) 이러한 관점들은 오순절운동의 원동력을 성령의 경험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오순절운동의 시작을 파함의 벧엘성경학교에서가 아닌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거리 운동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64) 연구자는 이러한 해석적 오해가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저변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오순절주의 내에 이러한 은사주의적 해석이 마치 오순절주의 해석으로 여겨지고 있다면, 이에 대한 수정이 요구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순절주의는 경험을 전제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전제가 다른 신학은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성령의 경험을 신학적 접근의 전제가 아닌 결과로서 설정할 때, 오순절주의는 비로소 바람직한 성령론적 성경해석방법을 취하게 된다. 본래 오순절주의 성령론적 성경해석은 성경의 사건을 근거로 하여 전제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적 사건으로 실현시키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성령의 경험을 성경을 통해 검증한다. 여기에는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목숨과 같이 수호하는 근본주의적(fundamental) 성격이 기초하고 있다.65)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순절주의 성령론적 성경해석은 해석의 첫 삽을 성경 연구에서 시작한다. 파함에 의한 오순절 신학의 형성과정은 무엇보다 성경 텍스트를 중심으로 선행 연구를 하고 그 연구에서 전제를 만들어 내고 그 전제를 가지고 검증의 과정을 거쳐 신학화의 결론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순절주의 성령론적 성경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는 방언이다.”라는 오순절주의 신학명제이다.66) 성경을 통해 만들어진 전제가 실재적인 성령의 경험을 통해서 검증된다는 것은 전제의 객관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경험의 진실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의 역사성과 신적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성령론적 성경해석 방법으로 신문철과 김한경이 평가하고 있는 영산의 성경해석방법은 이러한 오순절주의 성령론적 성경해석의 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67) 영산의 성령론적 성경해석의 근본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집중되고 있으며, 특히, 요한삼서 1:2에 대한 영산의 해석은 성경 텍스트 안에서 “삼중축복”이라는 신학적 전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도의 삶 속에서 현재적 경험으로 검증하여 결론에 이르는 오순절주의 성령론적 성경해석의 모범으로 가치 있는 접근의 용례가 될 것이다.68) 따라서 이러한 경험의 ‘결과’로서의 설정은 성경의 신적 권위의 객관성과 정당성뿐만 아니라, 성령의 경험에 대한 현재성과 객관성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오순절주의 성경해석 방법론은 성령론적 성경해석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오순절주의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경험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것은 오순절주의는 경험을 시작점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69) 오순절주의는 경험이 아닌 신학적 고민 즉, 성경 연구를 통해 신학적 명제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70)

3) 성경 연구를 선행하는 신학적 접근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 근거들을 성경 속에서 찾았고 나누었다. 대표적인 모범으로서의 오순절운동의 아버지인 파함도 전도여행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해답과 정석을 성경 속에서 찾으려고 애를 썼다.71) 그 결과로 오순절주의의 성령침례 교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더욱더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더욱이 오순절주의자들은 개신교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에 유일하고 궁극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72)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자는 오순절주의의 성경신학적 접근이 초기 오순절운동에서부터 형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이 발생하기 전 웨슬리의 뒤를 이은 성결운동에서는 성령을 경험해야 하는 목적을 성화로부터 능력 부여로 옮겨놓았고, 특히 봉사를 위한 능력 부여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아사 마한(Asa Mahan)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다. 더욱이 성령을 경험한 이들은 봉사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73) “오벌린 완전주의”(Overlin Perfectionism)의 선구자이기도 한 찰스 G. 피니(Charles G. Finney)는 성령의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화를 강조하면서, 그로 인한 삶의 능력 부여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강조한다.74) 또한 부흥운동가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는 그의 집회 메시지를 통해 성령 경험을 강력히 강조하면서, 성화의 삶과 봉사의 능력을 강조한다.75) 그런데 이들은 강조하고 있던 “성령 경험”을 “성령침례”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 운동 시대를 함께 하던 파함은 이들이 성령침례의 증거로서 다양한 것을 언급하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76) 이에 자신이 개교한 벧엘성경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이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회개, 회심, 성화, 신유 그리고 주님의 임박한 재림”이라는 주제들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이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The Bible Evidence)는 방언이다.”라고 하는 신학적 명제를 도출하게 된 것이다.77)

사이먼 찬(Simon K. H. Chan)은 오순절주의 경험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기독교 전통의 성령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 매우 유익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78) 오순절주의자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에 대한 초월적 이해의 신학적 가치를 깨닫고 발전시킨다면, 기독교 전통 속에서 영적인 경험을 바라보는 경직된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오순절주의 경험은 오순절 공동체가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기준이 되는 권위적인 모범적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매개체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경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경험에 대한 권위를 부여한다. 이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오순절주의의 습성이다. 왜냐하면, 오순절운동 자체가 성경의 권위를 희석시키는 고등비평에 맞서려는 정신이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79) 이러한 관점에서 오순절주의가 가지는 초월적 경험에 대한 성경 신학적 접근은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III.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오순절주의 경험이 지향하는 본질적 속성들 속에서 기독교 신학의 경험 이해에 대한 건전한 패러다임을 살펴보았다. 신학에서의 경험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유신론적이다. 그러나 보수적 경향이 강한 신학일수록 인간에 대한 비관적 관점에서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철저하게 인정한 나머지, 인간의 초월에 대한 실재적 인식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존재적 사실을 인정하고 그 초월적 속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와 같은 태도에서는 진정으로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 반면에 오순절주의의 경험에 대한 이해는 초월적 존재의 모든 역사적 계시를 인정하고 그것이 자신의 실재적 경험이 되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오순절주의는 초월적 존재의 현재적 현현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 그것을 감각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이성적 측면에서도 인식 가능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록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신분적으로는 의인이지만 여전히 타락한 본성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언약을 통해 이루어진 초월적 경험은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고 이해한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오순절적 경험이 오순절주의 공동체의 특수한 경험이라고 분류하여 기독교 비주류의 소유물로 취급당해 왔다. 이는 기독교 안에서 오순절주의적 경험이 회심 경험의 경우처럼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80) 하지만, 오순절주의적 경험이 가지는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연속성을 근거하여 고려해볼 때 이것은 충분히 기독교 전통교리로 수호될 수 있는 신학적 가치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는 오순절주의 경험이 강조하는 초월적 존재인 성령 하나님에 대한 개방적 인식이 가능한 이성적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를 그리스도인 모두가 공유하여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의 경험을 소유한 풍요로운 신앙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하여 인식론적 측면의 경험에 대한 패러다임을 재조명한 것이다. 이진민, “오순절주의의 경험에 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한세대학교, 2018).

Notes
1) 경험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개념적 모호성과 객관성 확보의 용례적 기준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경험에 대한 논의의 시도들이 나타났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들은 Hans-Georg Gadamer, Truth and Method, Joel Weinsheimer & Donald G. Marshall, trans. (New York: Continuum, 1989), 49-69, 340-54; Paula Cooey, “Experience, Body, and Authority,” Harvard Theological Review, Vol. 82 (1989): 324-42; Donald Gelpi, The Turn to Experience in Contemporary Theology (New York: Paulist Press, 1994)를 참조.
3) 어떤 면에서 인식을 통한 “경험”은 감각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참일 수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일부는 무비판적인 인지를 통해 획득된 것만을 참된 “경험”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람이 경험의 사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응할 때, 그것은 경험이 아닌 다른 것이 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이해나 판단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나 판단과 같은 경험을 아무런 분석 없이 쉽게 결론지어 정의하거나 받아들인다. 이들의 지적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는지, 정확한 자료나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는지, 또는 관찰들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 혹은 아닌지도 검토하지 않은 채 정의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Richard Paul and Linda Elder, Critical Thinking: Tools for Taking Charge of Your Learning and Your Life (Upper Saddle River, NJ: Pearson Prentice Hall, 2006), 25-28.
5) Ibid., 63.
7)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인간이 신을 향한 이성적 개방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을 따라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을 소유한 존재이다. 따라서 그에게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비록 그가 인간의 이성을 극단적 낙관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그의 인간 이성의 개방성에 대한 주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구속사(Heilsgeschichte)와 세속사(Profan Geschichte)를 모두 포함하는 보편사(Universale Geschichte)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긍정적 이해일 것이다. Wolfhart Pannenberg,『인간학 I』박일영 역 (왜관: 분도 출판사, 1996), 75-80.
13)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원천적으로는 완전성을 소유했었지만, 타락으로 인해 그 완전성에서 이탈하여 선함의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Augustinus, Confessions, 10, 32, Boniface Ramsey,『초대 교부들의 세계』이후정, 홍삼열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77; 선한용,『시간과 영원』(서울: 성광문화사, 1989), 163.
16) Parham,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64; William J. Seymour, “The Holy Spirit Bishop of the Church,” The Apostolic Faith 3 (Los Angeles, June 1907), 1; “The Baptism of Holy Ghost,” The Apostolic Faith 13 (Los Angeles, May 1908), 2; William H. Durham, “The two great experience of gift,” Pentecostal Testimony, Vol. 1, No. 8 (1911), 5.
17) D. R. Nichols, “The Search for a Pentecostal Structure in Systematic Theology,” Pneuma, Vol. 6, No. 2 (1984): 57-76; Paul W. Lewis, “Towards a Pentecostal Epi-stemology: the Role of Experience in Pentecostal Hermeneutics,” The Spirit & Church, Vol. 2, No. 1 (2010): 104. 시편 139편 7장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이 세상에 함께 하신다.
20) Lewis, “Towards a Pentecostal Epistemology,” 103.
21) Clark et al., What is Distinctive about Pentecostal Theology?, 48. 메튜는 오순절주의 경험들, 즉 성령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경험들이 다른 종교적 경험들이나 악령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것들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의 진위는 공동체의 철저한 감시를 통해서 책임지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메튜는 이런 경험에 대한 기준을 논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튜는 황홀경에 대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24)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사이에 정신분석학에서 새롭게 선보인 정신분석의 임상적 용어이다. 이 용어는 인간의 인식활동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객관성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현재 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원은 철학적 개념에서 발전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내의가 “공동체적 의식” 혹은 “공동체적 자아”를 가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주관성은 비과학적이고 객관성만이 신뢰할 만 하다는 실증주의(positivism)에 대한 현상학적 비판에서 발생한 것이다. 인간의 경험은 주관적인 속성을 필연적으로 갖는다. 특히 인간의 물리적 경험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경험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그것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일방적이고 경솔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이고 그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인정할 때 “객관성”(objectivity)이라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상호주관성”이다. 이러한 점에서 연구자는 이 용어를 오순절주의 경험의 객관성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최영만, “상호주관성: 정신분석 패러다임의 변화,”『정신분석』, Vol. 19, No. 2 (2008): 125-38.
32) S. P. Lamprecht,『서양 철학사』김재길, 윤명로, 최명관 역 (서울: 을유문화사, 1994), 280.
38) Parham,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72; idem, “Baptism of the Holy Ghost,” 32; Seymour, “Receive Ye The Holy Ghost,” The Apostolic Faith 5 (Los Angeles, January 1907): 2; Durham, “The two great experience or gift,” 6.
41) 루이스는 성경해석학 안에서 오순절주의 경험의 특성은 복음주의와 다른 신학적 입장과의 매우 다른 틀(framework)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Lewis, “Towards a Pentecostal Epistemology,” 95.
42) Ibid., 117.
45) Ibid., 6.
52) Veli Matti Kärkkäinen, Toward a Pneumatological Theology: Pentecostal and Ecumenical Perspectives on Ecclesiology, Soteriology, and Theology of Mission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2), 6.
56) Ibid., 75-76.
57) Lewis, “Towards a Pentecostal Epistemology,” 103.
58) Lilian Thistlethwaite, “The Wonderful History of the Latter Rain: The First Shower of the Latter Rain-Bethel Bible School,” in Sarah E. Parham, The Life of Chrales F. Parham, (New York: Garland Publishing, 1985), 58; Parham, “Baptism of the Holy Ghost,” 65; Parham, Apostolic Faith, Report Editional Files, Vol. 2 (Springs: Baxter, 1926): 2.
60) Oscar Cullmann, Salvation in History, Sidney G. Sowers, trans.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7), 67.
63) Walter J. Hollenweger, Pentecostalism: Origins and Developments Worldwide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7), 18.
64) 이창승, “태초에 신학이 있었다,” 74; Jean-Daniel Plüss, “Azusa and Other Myths: The Long and Winding Road from Experience to Stated Belief and Back Again,” Pneuma, Vol. 15, No. 2 (1993): 192.
66) Parham, “Baptism of the Holy Ghost,” 32; idem, Apostolic Faith, 2.
69) James R. Goff, Jr., Fields White Unto Harvest: Charles F. Parham and the Missionary Origins of Pentecostalism, 5; Charles F. Parham, 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35.
70) John Thomas Nichol, Pentecostalism (New York: Harper & Row, 1966), 27-28.
73) Asa Mahan, “Doctrine of The Holy Ghost: Explained and Elucidated.” in Asa Mahan and Charles G. Finney,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 (New York: Palmar and Hughes, 1876), 52.
74) Charles G. Finney, “Reasons Why The Power is Not Received,” The Baptism of the Holy Ghost, 231.
75) Rodney Baker, The Impact of Prayer on The Ministries of D. L. Moody, C. H. Spurgeon, and Billy Graham: A Descriptive Study (D. Min. diss., Libert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1999), 36-38; James F. Findlay Jr., Dwight L. Moody (Eugene, OR: Wipf & Stock, 1969), 238-39.
76) Parham, The Life of Charles F. Parham, 67-70; Goff Jr., “Initial Tongues in the Theology of Charles Fox Parham,” 67; idem, “Charles F. Parham and His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Pentecostal Movement: A Reevaluation,” 226-37; idem, Fields White Unto Harvest: Charles F. Parham and the Missionary Origins of Pentecostalism, 11-16; Larry Martin, “Preface,” The Topeka Outpouring of 1901, Eyewitness Accounts of the Revival that Birthed the 20th Century Pentecostal/Charismatic Movement, ed. (Joplin, MO: Christian Life Books, 1997), 35-36; Blumhofer, The Assemblies of God: a chapter in the story of American Pentecostalism Volume 1-to 1941, 49-50을 참조.
77) Parham, “Baptism of the Holy Ghost,” 11-38. Cecil M. Robeck Jr., “An Emerging Magisterium? The Case of the Assemblies of God,” Pneuma, Vol. 25. 2 (2003): 172; 이진민,『초기 오순절 지도자들과 성령침례』(서울: 학교법인 순총학원, 2011), 9.
79) Parham, 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24-39.
80) Lewis, “Towards a Pentecostal Epistemology,”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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