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San Theological Institute of Hansei University
[ Article ]
Journal of Youngsan Theology - Vol. 47, No. 0, pp.159-188
ISSN: 1738-1509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Mar 2019
Received 11 Jan 2019 Revised 12 Feb 2019 Accepted 18 Feb 2019
DOI: https://doi.org/10.18804/jyt.2019.03.47.159

요한의 세례와 초기 교회 공동체의 세례: 마태복음 28:19의 삼위일체적 세례의 신조와 이해를 중심으로

이상윤
국제신학훈련원, 조직신학/오순절신학 lsyinlove@hanmail.net
John’s Baptism and the Baptism of the Early Church Community: The Creed of the Trinitarian Baptism in Matthew 28:19
Lee, Sang Yun

초록

초대교회 공동체에는 요한의 전승에 의한 물세례, 예수 이름으로 주는 세례, 삼위일체적 세례(마 28:19)가 있었다. 요한의 죄 사함의 세례는 그 자체가 중생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한 세례를 예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정결 의식으로 고착될 수 있는 죄 사함의 세례의 한계를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전환시켰다. 예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구원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분명히 드러냈으며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는 관문을 통과하는 신앙의 고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케리그마적인 요소가 강화된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삼위일체적 세례가 공식화될 때까지 사도들에 의해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 이후, 성령세례를 강조하게 되었고 성령 체험은 그리스도의 명령인 삼위일체적 세례를 실현하는 촉매의 역할을 했다. 초대교회가 세례의 신조로 받아들인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를 원시 기독교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세례와의 모순 관계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선교적, 예언적 선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요한의 세례와 초기 교회 공동체의 세례를 마태의 삼위일체론적 세례의 신조와 이해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Abstract

There were three different kinds of baptism in the early church community which were ‘water baptism by the tradition of John’, ‘baptism by the name of Jesus’, and ‘the trinitarian baptism’ (Matthew 28:19). John’s baptism to forgive sins does not have the authority to be born again, but it is sufficient to introduce the complete baptism by Christ. Baptism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ransferred the limits of the baptism of forgiveness of sin, which can be fixed in a cleansing ritual, into a redemptive view. The baptism in the name of Jesus clearly shows who is in charge of salvation, and it contains the confession of faith to pass through the gateway to the church community.

The baptism in the name of Jesus which augmented by the kerygmatic element, was widely accepted by the apostles until the triune baptism was formulated. After being baptized in the Spirit, the early church emphasized on the Spirit baptism. The experience of the Holy Spirit served as a catalyst to establish the trinitarian baptism which Christ commanded. The triune baptism of Matthew, which the early church accepted as the creed of baptism, should be understood as a missionary and prophetic proclamation rather than an understanding of the contradiction with the baptism in the primitive early church. In this article, John’s baptism and the baptism of the early church community are examined with the perspectives of Matthew’s creed and understanding of trinitarian baptism.

Keywords:

John’s Baptism, Water Baptism, Trinitarian Baptism, Qumran, Matthew 28:19

키워드:

요한의 세례, 물세례, 삼위일체적 세례, 쿰란, 마태복음 28:19

I. 들어가는 말

요한의 세례는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다(마 3:1-6; 막 1:2-5; 눅 3:3-7; 요 1:26-34). 그만큼 세례는 공관복음 기자들과 요한에게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초대교회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세례의 기원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구약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세례가 신약 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요한의 세례가 그리스도의 사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초대교회의 일원이 되는 결정적인 의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세례가 요한에 의해 도입되었다거나 기원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부족하다. 성경은 유대 전쟁으로 인한 성전 파괴와 유대교의 제의적 역할이 축소됐을 때 그 대안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았던 것을 기록하고 있다(마 3:5-6; 막 1:5; 눅 3:7). 유대인들에게 베풀었던 요한의 세례는 단순한 정결 의식이나 제의적 성격이 아니라 케리그마의 선포와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의 세례가 유대교의 정결 의식과 율법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쿰란 공동체2)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를 구약의 전승이나 쿰란의 전통과 연관시키거나 초대교회의 세례와 연결시킬 때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세례의 의미 또한 유대교의 제의적 성격과는 많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쿰란 공동체와 유대교 전통은 정결 의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율법적 해석과 쿰란의 전승에서 찾아볼 수 없는 ‘죄 사함의 세례’이다(막 1:4; 눅 3:3). 요한의 세례는 쿰란 공동체가 새로운 사람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행했던 의식3)과 구별된다. 또한, 유대 공동체가 질병으로 인해 격리되었던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행했던 의식(레 14:1-8)과도 구별된다. 실제로 요한의 세례에서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발견할 수 없다. 쿰란과 유대 정결 의식이 공동체의 위생과 개인의 정결을 위해 일상적으로 이루진 것에 반에 요한의 세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요한의 세례가 사도들과 초대교회가 행했던 세례와 신학적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세례에 대한 오순절의 신학적 논쟁은 요한과 원시 기독교 공동체4)가 베풀었던 물세례가 방법적인 면에서 침례(immersion)인지, 아니면 세례(sprinkling or pouring baptism)였는지에 대한 문제와 성령세례와의 차이점을 규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요한의 세례와 초기 교회 공동체의 세례를 마태의 삼위일체론적 세례의 신조와 이해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II. 초대교회 이전의 세례: 요한의 세례와 쿰란의 정결 의식과의 관례

마태는 세례 요한을 구약에서 예언된 선지자로 인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마태는 세례 요한이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로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마 11:9-10; 21:23-26)과 그리스도에게 그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구약에서 예언된 엘리야로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마 17:11-12). 요한은 예언된 마지막 선지자로서(사 40:3) 예수의 등장과 그의 구속의 사역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다(마 3:3). 그의 세례 또한 예수의 구속사의 시작을 알리고 예수에 의한 성령의 세례를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마 3:11). 요한의 물세례를 요한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5) 요한의 세례와 제2성전 시대의 유대 공동체와의 연관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쿰란 공동체와 요한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요한과 쿰란 공동체의 관계, 둘째,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금욕생활을 했던 요한(마 3:4; 막 1:6)과 쿰란의 금욕주의적 생활 방식의 상호 연관성에 관한 문제, 셋째, 요한의 세례와 쿰란의 정결 의식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요세푸스는 쿰란 공동체가 도시를 형성하지 않고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살았던 에세네파를 통칭하는 말로 이해하고 있지만, 플리니우스는 사해 서쪽 주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을 쿰란 공동체로 규정하고 있다.6) 요세푸스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에세네파가 당시 4,000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주로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서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7) 만약 사해 지역으로 한정할 경우 약 80-200명 정도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8) 요세푸스는 에세네파의 여러 그룹들 가운데 특별히 쿰란 지역의 공동체가 많은 문서를 작성하고 보관했던 것을 미루어 볼 때 사해 지역의 에세네파가 쿰란 공동체의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 중심이었다고 이해한다.9) 요세푸스의 의견을 지지하며 쿰란 공동체를 에세네파와 동일시하는 가설은 크로스(M. Cross), 밀릭(J. T. Milik), 슈테게만(H. Stegemann), 버머스(G. Vermes) 등에 의해 제기되고 있으나 쉬프만(L. H. Schiffmann)은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가 아니라 사두개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10) 하지만 쿰란 공동체와 에세네파를 동일시하는 견해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특정 지역의 지역적 공동체로 보는 주장보다는 여러 지역에서 같은 신앙적 특성을 지키며 살았던 포괄적 신앙 공동체로 이해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 쿰란과 요한의 관계

누가는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기 전까지 광야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눅 1:80). 이것을 근거로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와 접촉했을 가능성과 요한의 세례가 쿰란 공동체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베츠(O. Betz)는 금욕주의를 추구했던 에세네파가 다른 사람들의 자녀를 입양해 자신들의 자녀처럼 돌보고 쿰란 공동체의 삶의 방식에 따라 성장시켰다는 요세푸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등장할 때까지 쿰란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1)

이런 주장은 ‘요한이 어디에서 그의 세례의 형식을 가져왔는가?’ 하는 의문과 광야에서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았던 요한의 삶의 방식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에 관한 의문 때문이다.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만 먹었던 요한의 삶(마 4:3; 막 1:6)과 선별된 음식으로 하루에 일정량의 음식만 먹었던 쿰란 공동체의 금욕주의가 서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12) 그러나 요한의 광야 생활과 금욕 생활만으로 요한을 쿰란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첫째, 제2성전 시대, 특별히 안토니우스 펠릭스 총독 시절(AD 52-60)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출현해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세속을 떠나 광야로 나와 금욕 생활을 할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13)

둘째, 요한과 쿰란의 금욕주의는 뚜렷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쿰란 공동체는 몸을 씻는 정결 의식만큼이나 음식에서도 금욕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절대 과식을 하거나 일정량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건과 금욕주의 생활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일정량의 빵과 포도주를 매일 제공받았다.14) 하지만 요한은 일정량의 포도주를 제공받았던 쿰란 공동체와 달리 포도주나 독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눅 1:15).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마 3:4; 막 1:6). 메뚜기에 대한 다른 해석들이 있을 수 있으나15) 요한이 메뚜기를 먹은 것은 쿰란의 전통이라기보다는 메뚜기를 정결한 음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레위기의 전통(레 11:22)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요한이 쿰란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면 왜 쿰란 공동체와는 다른 금욕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2. 쿰란의 세례

쿰란 공동체의 가장 큰 신앙적 구심점은 금욕주의와 정결 의식이다. 물로 몸을 씻는 정결 예식은 제2성전 시대의 유대 사회의 여러 분파에서 발견된다. 그중에 가장 엄격했던 부류가 쿰란-에세네파(the Essenes, Ἐσσηνοί)이다.16) 쿰란 공동체가 정결 의식에 얼마나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는가는 쿰란의 유적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쿰란 공동체는 정결 의식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먼 산에서부터 수로를 연결하고 물이 한 곳으로 모일 수 있도록 직경 8m, 깊이 10m 정도 되는 저수 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동 식사를 위한 장소 옆에 계단식 목욕실을 설치했다.17)

쿰란 공동체의 정결 의식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입교를 위해 단 한 번만 행했던 정결 의식과 둘째,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반복했던 의식이다.18) 쿰란 공동체는 매일 공동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공동 식사는 3년의 금욕 생활과 시험을 거친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었다.19) 3년의 수련 기간을 끝내고 특별한 정결 의식인 세례를 통해 공식적으로 구성원이 되었으며 공동 식사를 위해 찬물로 몸을 씻고 흰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20) 쿰란 공동체의 정결 의식은 남녀의 차별이 있었다. 여성 개종자는 세례만 받았지만, 남자 개종자는 할례와 세례를 모두 받아야 했다.21) 쿰란 공동체가 세례를 통해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였으며,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세례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III. 요한의 세례의 특징

쿰란의 정결 의식이 레위기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쿰란의 정결 의식은 요한의 세례와는 목적과 내용에 있어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구약에서 등장하지 않던 세례가 어디에서부터 기원이 됐는가 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20세기 종교사학자들 중에는 요한의 세례를 페르시아 만다교의 제의의 영향이나 헬레니즘 시대 종교들의 제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22) 20세기 후반에는 요한의 세례와 유대교의 정결 예식의 전통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23) 요한이 쿰란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주장 외에 요한의 세례와 쿰란 공동체의 정결 의식의 연관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쿰란 공동체가 행했던 입교 혹은 이방인의 개종을 위한 정결 의식은 유대교 전통의 일종이다. 이런 정결 의식은 1세기 후반에 폭넓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24)

요한의 세례가 요단강 강가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볼 때 그의 세례가 침례(immersion)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마태와 마가는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의 기록은 요한의 세례가 물에 완전히 잠겼다 올라오는 침례(immersion)였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의 세례와 쿰란의 정결 의식이 외형적으로 물에 잠겼다 나오는 침례였냐 아니면 세례(pouring)였냐 하는 해묵은 논쟁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평탄케 하는 선구자로 이해하고 있다(마 2:3; 막 1:3; 눅 3:3; 요 1:23). 그러나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임할 때의 모습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물에서 올라오는 때’ 성령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마 3:16, εὐθὺς ἀνέβη ἀπὸ τοῦ ὕδατος; 막 1:10, ἀναβαίνων ἐκ τοῦ ὕδατος), 누가는 ‘기도하실 때’(눅 3:21, προσευχομένου)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그리스도가 물에서 올라오는 장면보다는 오순절 날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던 것과 같이(행 2장), 그리스도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에게 임하는 모습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눅 3:21-22). 그리고 요한의 세례가 쿰란 공동체의 전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신학적으로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세례자의 유무’와 세례를 통한 ‘죄 사함’의 문제이다.

1. 세례자에 의한 세례

요한을 따라다닌 별명은 세례자(the baptist)이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많은 사람이 몰려왔고, 심지어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도 그에게 나왔다(마 3:7). 신학적으로 요한의 세례는 구약의 정결 예식이나 쿰란의 세례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쿰란과 요한의 세례의 뚜렷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셀프(self) 세례가 아니라 세례자에 의한 세례라는 점이다. 쿰란 공동체와 유대교는 율법의 규범과 제사장의 판단을 따라 정결 의식을 완성했다. 이것은 한센병 환자의 정결 의식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한센병에 걸렸던 사람은 그의 몸이 다 치료를 받았는지를 제사장에게 보여야 했고 제사장의 말에 따라 옷과 물건을 정결하게 했으며 물로 몸을 씻었다(레 13:34-35). 이 유대 전통은 신약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눅 17:11-14). 공관복음은 요한의 세례가 이루어진 장소에 관해 구체적인 장소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의 세례는 요단강 건너편에 있던 ‘베다니’(요 1:28)25)와 ‘에논’(요 3:23)에서 이루어졌다. 요한은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그리스도와의 만남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요 1:36). 요한은 그곳에서 세례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성령과 불(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로 세례를 베풀 자로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하기도 했다(마 3:11).

요한복음 1:29과 누가복음 3:9은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언적 선포의 핵심을 보여준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푸는 세례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준비하며 종말론적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였다. 그는 예언된 메시아의 구속사적 삶(요 1:29)과 이스라엘에게 임할 종말에 대해 선포하며(눅 3:7-9)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푼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베풀며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마 3:13-17; 막 1:7-11).

스스로 물로 씻는 정결 의식이 아닌 세례자에 의한 요한의 세례는 초대교회로 계승되었다(요 4:1-2).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대교회 내에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됐다. 그것은 ‘세례의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가, 교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교회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인의 영성에 미칠 영향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논쟁에 휘말렸다. 고린도교회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분열되기도 했었다(고전 1:12-15).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세례에 대해 크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세례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나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세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로 분열하고 나뉘었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그리스보와 가이오 그리고 스데바나 집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준 것을 감사하며, 누가 고린도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를 묻고 있다(고전 1:13-15). 초대교회의 세례에 관한 이런 문제는 초대교회가 레위기와 쿰란의 정결 의식과는 다른, 세례자가 없이 완성될 수 없는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여 교회의 전통으로 삼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 죄 사함의 세례

공관복음의 기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죄 사함’과 연관시키고 있다(마 3:6; 막 1:4; 눅 3:3). 이에 반에 쿰란이나 유대의 정결 의식은 죄 사함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26) 쿰란의 정결 의식은 개인의 죄 사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정결이 목적이었고,27) 죄 사함의 의식이라기보다는 인간 상호 간의 의(義) 혹은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의 문제였다.28) 요세푸스는 요한의 세례를 의로운 삶과 몸의 정결을 위한 유대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29) 그러나 누가는 요한의 세례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로 규정하고 있다(눅 3:3).

요한의 세례를 ‘죄 사함’과 케리그마에 연관시키는 것은 공관복음 기자들의 관심이며 신학적 이해이다. 마가와 누가가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요한의 세례의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면(막 1:1-6), 마태는 케리그마를 위한 요한의 세례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마태는 ‘죄 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βάπτισμα μετανοίας 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라는 마가(막 1:4)와 누가(눅 3:3)의 표현을 생략하고, 요한의 세례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Μετανοεῖτε·ἤγγικεν γὰρ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는 말과 함께 케리그마적 선포(마 3:1-11)와 일치를 시키고 있다. 마태는 ‘죄 사함’이라는 요한의 세례의 의미보다 왜 ‘죄 사함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당위성에 더욱 집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정수는 마태의 관점에서 보면 요한의 세례는 다가올 심판을 피하기 위한 죄 사함의 마지막 회개의 기회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0)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βάπτισμα μετανοίας)로 규정하고 있는데(행 19:4) 이 세례가 구원을 위해서는 불완전한 세례임을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19장의 바울과 에베소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에베소 제자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행 19:3).31) 그러나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게 한다(행 19:5).


IV. 오순절 이후 원시 교회 공동체의 세례

요한의 세례를 행하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승귀(exaltation)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이전과는 다른 세례를 행하기 시작했다. 세례의 형식은 요단강 강가에서 요한이 행하던 침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대 전승, 쿰란 공동체, 그리고 요한의 세례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용어와 해석이 등장했으며 근본적인 신학적 차이와 의미를 포함한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단순히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요한의 세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1. ‘죄 사함의 세례’에서‘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제자들은 세례에 관한 한 그리스도보다 요한에게 영향을 받았다. 요한복음의 기자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요한이 베풀던 세례를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요 4:2). 심지어 예수는 세례를 주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들이 세례를 준 사람의 수가 요한이 세례를 준 사람들보다 많았다고 바리새인들이 듣고 있었다(요 4:1-2). 시몬 베드로의 형제였던 안드레(요 1:40)를 비롯한 두 명의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요 1:36-38). 하지만 초대교회와 제자들이 신학적으로 요한의 세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에 집중되어 있었고 예수를 만난 이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의 세례에 포함되었다는 성경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요한은 1세기 유대인들이 행했던 세례에 새롭고 특별한 의미를 부가했다. 그의 세례는 하나님의 나라와 ‘요한 자신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이’(막 1:7)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영적이고 도덕적인 회심을 상징하는 일회성 의식이었다.32)

예수의 승천 이후, 요한의 세례는 사도들에 의해 구속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행 2:38). 공관복음의 기자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떻게 제2성전 체제에서 실행되던 ‘죄 사함’의 권세를 대신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누가는 그리스도의 승귀 이후 초대교회에서 행해졌던 요한의 세례와 차원이 다른 신학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는 세례가 단순히 물에서 올라오는 의식이나 요한에 의해 행해지는 ‘죄 사함’의 세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초대교회가 어떻게 세례를 행하고 받아들였는지를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2:38은 온전한 ‘죄 사함의 세례’는 첫째, ‘회개’가 선행되어야 하며,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여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례 예식에 사용된 용어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신앙 고백이며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서는 관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33)

‘예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를 죄 사함의 능력과 결부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위와 구속사적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마태와 마가는 중풍병자를 고치는 예수의 사역을 통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마 9:6; 막 2:10), 마태는 성전에서 예수가 가르칠 때 그를 막아서며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고 묻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내러티브(narrative)를 등장시켜 예수의 권위를 다시 한번 확고히 하고 있다(마 21:23-27).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성전 체제에서 ‘죄 사함’의 권위를 성전이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과 권세 아래로 귀속시키고 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는 중생의 의미로서의 ‘죄 사함’이 아닌 일상의 죄를 씻는 반복적인 정결 의식은 세례가 아닌 성만찬으로 대체되었다.34) 신현우는 이런 현상은 유대 전쟁으로 인한 성전의 파괴와 제의적 체계가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세례와 성만찬의 제의적 상징이 초기 교회 공동체가 유대교로부터 제의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5)

요한은 그의 ‘죄 사함’의 세례가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아에게 귀속되고 있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고히 하고 있다.36) 요한은 자신의 권위가 예수의 권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대중들 앞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으며(마 1:7-8), 자신의 세례가 예수를 통해 받는 최종적 죄 사함의 전조임을 분명히 한다.37) 초대교회는 요한의 모호한 죄 사함의 세례를 ‘예수의 이름으로’ 대체하면서 요한의 ‘죄 사함’의 의미를 소멸시키거나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죄를 씻기 위한 세례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세례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38) 또한 구원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예수의 이름이 구원의 능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39) 초대교회는 세례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례의 수여자가 회중 앞에서 “예수는 주님이시다.”(롬 10:9; 고전 12:3; 딤전 6:12)라는 신앙의 고백과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6세기에 기록된 사본에 따르면 사도행전 8:37에서 빌립은 세례를 주기 전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했다.40)

요세푸스는 요한의 세례가 가진 ‘죄 사함’의 기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요한의 세례를 통해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육신의 정화를 위한 것으로 이해했다. 요세푸스가 요한의 세례를 죄의 용서와 거리를 두는 이유는 제2성전 시대에 죄의 용서에 대한 중요성이 희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1세기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방인과의 접촉이 불가피했던 시대에 정결법의 준수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죄의 용서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41)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닌 것(요 1:20; 3:28)과 그가 베푸는 물세례와 비교되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세례의 한계성을 말하고 있다(마 3:11).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줌으로써 요한의 세례와 차별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죄 사함’을 위한 요한의 세례가 구원의 문제까지 접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속 사건임을 견고히 했다.42)

그러므로 요한의 죄 사함의 세례와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의 구별은 구속사적인 구별이며, 그리스도에 의한 ‘성령과 불의 세례’(βαπτίσει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 마 3:11)는 요한의 세례와의 구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약속된 요한의 ‘죄 사함의 세례’가 실제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질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43)

2.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세례

원시 기독교 교회는 처음부터 세례 의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으며(행 2:41), 베드로, 빌립, 바울, 아볼로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자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행 8:12,38; 10:48; 16:15,33; 19:5; 고전 1:14-16). 죄 사함만을 위한 요한의 세례와 달리, 초대교회의 세례는 중생의 문제 외에도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고 신앙 공동체로 들어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행 2:41). 그리스도와 연합된 공동체의 정체성은 같은 신앙의 고백과 의식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초대교회의 신앙적인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 세례이다. 유대 공동체가 율법이나 아브라함의 혈통에 의해 구성원이 정해졌다면 초대교회는 세례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들의 구성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를 통해 예수에게 속하고(고전 1:10-17)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고전 12:3; 롬 10:9) 어둠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했다(골 1:13).44) 세례는 회심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었으며 혈육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했다.45) 세례에 의한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역적으로 혹은 혈통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46) 이것은 바울의 세례에 대한 이해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바울은 누가 세례를 주었느냐가 아니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ἐβαπτίσθημεν εἰς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를 받은 자(롬 6:3)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롬 6:5). 세례는 십자가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이 개인에게 성취되는 실존적 사건이다. 바울은 세례의 또 다른 의미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행위로 생각하고 있다(갈 3:27). 바울에게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실존적 죽음에 맡겨지고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적인 체험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47)


V. 삼위일체적 세례의 공동체적 의미와 신조

초기 교회 공동체는 세 가지 형태의 세례가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첫째는 요한의 전승에 의한 물세례, 둘째는 ‘예수 이름으로’ 베풀던 세례,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 행했던 삼위일체적 세례이다. 초대교회에서 세례를 위해 사용한 ‘예수 이름으로’의 고백은 삼위일체적 세례 신조(마 28:19)보다 앞선 것으로 보인다.48)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던 초대교회가 시간이 지난 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삼위일체적 세례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49) 삼위일체적 세례가 서신서와 사도행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마태복음이 바울과 누가의 기록보다는 나중에 기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50) 이 말은 마태복음 28:19이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마태의 기록 당시 이미 본문에 속해 있었고 단순히 시기적으로 마태복음의 기록 연대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비해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의미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

마태는 삼위일체적 세례를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지상 명령으로 기록하고 있다(마 28:19). 그러나 삼위일체적 세례가 처음부터 초대교회에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다. 베드로는 복음을 듣고 회심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하고 있으며(행 2:38; 8:16; 10:48), 바울도 에베소 성도들에게 삼위일체적 세례가 아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행 19:5).

초대교회에서 ‘성령세례’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중생과 성령세례는 성령과의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51) 이 둘은 모두 성령의 고유한 역할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임재와 체험을 ‘성령세례’(Πνεύματι βαπτισθήσεσθε Ἁγίῳ)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행 1:5). 바울은 ‘성령충만’(πληροῦσθε ἐν Πνεύματι)을 받으라는 말로 쓰기도 한다(엡 5:18). 누가가 성령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면, 바울은 각 사람이 성령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교회를 세워 가야 할지를 설명하고 있다.52) 성령의 구원론적 사역과 성령의 능력 부음(empowerment)은 바울과 누가의 주된 관심이다. 바울은 성령의 구원론적 사역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고전 12:3), 누가는 구원론적 사역보다는 성령의 케리그마를 위한 능력 부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행 1:8).

만약 오순절 성령 체험이 없었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행하는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행 1:5)과 그 약속의 성취(행 2:1-4)가 초대교회에서 행해지던 세례와 결합되었고 삼위일체적 세례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가 중생의 의식적 행위로서의 물세례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적 세례의 신조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라고 할지라도 마태의 세례가 중생 이후의 성령세례를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 종말론적, 예언적 선포로서의 삼위일체적 세례

성령세례는 종말론적 주제 중의 하나이며 예언적 선포이다(욜 2:28-29). 오순절 성령의 강림 후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관심은 물세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요한의 세례와 초기 원시 기독교의 세례는 처음부터 죄 사함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으나53) 누가는 세례를 통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영적인 변화를 기술하고 있다(행 3:38). 멘지스(Robert P. Menzies)는 물세례를 구원을 위한 칭의(혹은 “죄 용서”)나 정화로 이해하고 있으며 새로운 하나님의 계약 백성, 즉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멘지스는 성령을 포함한 삼위일체의 신조를 바탕으로 한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근본적인 차이를 구분한다.54)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초대교회의 물세례의 관심은 성령세례로 대체되었다(행 1:5). 초대교회의 삼위일체적 세례는 사도행전 1:5의 예언적 선포가 종말론적 성취와 함께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누가는 물세례(ἐβάπτισεν ὕδατι)가 더이상 필요 없다거나 성령세례(Πνεύματι βαπτισθήσεσθε Ἁγίῳ)로 인해 물세례의 기능이 상실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승천하기 전 교회에 남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는 예수의 명령은 초대교회가 지켜야 할 종말론적, 예언적 선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마태는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취해 나가야 할 종말론적, 예언적 선포로서 그의 복음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삼위일체적 세례를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으로 배치하고 있다.

3. 삼위일체적 세례: 교회론적 이해

삼위일체적 표현은 마태복음 28:19 외에도 여러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다(고전 12:4-6; 고후 13:13; 벧전 1:2; 요일 3:19-24). 고린도후서 13:13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본문들은 복수의 명사를 사용해 삼위의 다른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55) 그러나 마태복음 28:19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각각의 이름으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의 세례는 교회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라쿠그나(C. M. LaCugna)는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가 하나님의 본질과 능력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56) 프랜스(R. T. France) 역시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는 초기 원시 교회의 세례 의식이 완성된 것을 표현한 것이며 세례에 대한 교회의 분명하고 공식적인 언어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다.57)

세례는 존재론적 전환을 가져오며 과거의 정체성으로부터 새로운 존재론적 전환을 맞게 하는 의식이다. 이런 존재론적 전환은 세례 의식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계약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동시에 성령에 의해 교회(ἐκκλησία)의 일원이 된 것을 확증한다.58) 바울은 이런 존재론적 전환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는 말 외에도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닌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고 말한다(롬 8:15; 갈 4:6).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에만 ‘교회’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것(마 16:18; 18:17)과 삼위일체적 신조가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마 28:19). 만약 이 신조가 마태 이전의 전승이었다면 복음서나 바울 서신에 적어도 한 번은 나타났을 것이다.59) 누가의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서가 아닌 마태복음에서 삼위일체적인 세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마태복음에서만 기록되고 있는 교회론적인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태는 로마의 압제 속에서도 율법 교육을 통해 유대교가 내적 강화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보고, 교육을 통해 교회를 지키고 성장과 발전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마태의 주된 관심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문화하고 그것을 교육함으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올바른 기독교인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60) 기독교의 신앙적 가치와 세례 예식의 언어를 교회의 공식적인 언어적 체계로 잡기 위한 마태의 노력은 초대교회가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가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삼위일체적 세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공식적인 언어로 인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마리아의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행 8:16)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초기 원시 교회들은 믿음의 모태인 예루살렘 교회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다른 지역의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행 8:14-16).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거나 세례를 준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두 사도가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행 8:17).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한 사건에서도 누가는 고넬료의 가정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건보다는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임한 사건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행 10:44-45).

막스 터너(Max Turner)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체험한 성령 공동체를 하나님의 통치와 성령을 통해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이해하고 있다.61) 초대교회는 물세례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한 성령을 마시는 사건을 통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는 오순절 사건을 경험하고 기억하게 되었다.62) 바울은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자유자든지 노예이든지 어떤 조건과 제한도 없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성령의 역사 안에서 공동체적인 정체성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고전 12:13). 더 나아가 성령으로 하나 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교회를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확인하고 예수의 머리 됨(headship)을 경험하게 한다(엡 1:22-23).

오순절 성령 체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원시 교회 공동체의 세례 의식의 신조로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리스도의 명령의 성취와 함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초대교회들이 공동체적 연관성과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63)


VI. 선교적 선포로서의 마태의 세례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를 단순히 원시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기 위한 신조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적 세례는 부활한 예수를 통한 선교적 명령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마 28:18-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예수의 약속인 성령의 세례를 포함하고 있으며 요한의 물세례와 병행된다. 누가는 성령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예언적인 선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누가는 ‘성령의 세례’(행 1:5)를 ‘아버지의 약속’(행 1:4; 눅 24:49)의 성취와 연관 짓고 있으며 오순절의 사건을 성령에 대한 요엘의 약속의 예언적 성취로 구체화시킨다(행 2:17, 33, 38-39). 던(James D. G. Dunn)은 누가가 성령세례에 대한 ‘아버지의 약속’을 다른 구원의 약속들(사 32:15, 44:3; 겔 36:26, 27, 39:29; 슥 12:10)을 포함해 이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64) 던은 종말론적으로서의 성령과 구원론적인 영으로서의 성령을 나누고 성령세례를 구원론적이며 동시에 선교를 위한 능력 부여라고 주장한다.65) 이것에 대해 막스 터너는 누가가 신학적으로 회심과 구원을 위한 성령의 은사와 선교를 위한 성령의 은사로 나누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66) 터너는 예언의 영이 성령세례를 통해 그 수혜자인 성도들의 내적인 삶을 변화시키고 선교를 위한 교회의 집합적 삶의 헌신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67)

터너는 예언의 영으로서 성령의 기능이 계시와 은사적인 지혜 외에도 다양한 형태와 역할을 하며 구원론적 기능 외에 교회의 예언적, 선교적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68) 바울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의 행위가 완성된다고 강조하고 있다(딛 3:5). 사도행전 2:38은 세례를 주는 수단이 물에서 성령으로 바뀐다는 기능적 요소만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통해 물세례의 모든 의미와 역할이 실현된다는 예언적 선포이다. 사도행전 1:5 역시 죄의 씻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삼위일체적 세례가 성령으로 인해 완성될 것에 대한 예언적 선포로 이해 될 수 있다.

마태는 이런 삼위일체적 세례 이해를 토대로 그의 공동체가 선교할 것을 권고하며,69) 선교적 선포의 핵심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70) 이런 측면에서 마태복음 28:19의 삼위일체적 세례는 사도행전의 교회들이 널리 받아들였던 세례의 형태이기보다는 교회의 선교적 명령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VII. 나가는 말

제2성전 시대에 쿰란 공동체는 여러 지역에 공동체를 이루어 그들만의 신앙의 유산과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금욕적인 생활로 율법과 구약의 전승을 계승하고 있었으며 철저한 정결 의식을 지키고 있었다. 신학자들은 원시 기독교 교회의 세례를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서 찾으려는 경향도 있으나 죄 사함이나 성례전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 교회의 세례와 신학적 유사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원시 기독교 교회의 세례는 레위기 전통이나 쿰란 공동체의 영향이 아닌 요한의 세례에 영향을 받았다. 세례의 형식적인 면에서는 요한의 세례를 그대로 계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은 요단강 강가에서 쿰란 공동체와는 다른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으며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세례가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요한의 세례와 초대교회의 세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었지만 초대교회의 세례는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요한의 죄 사함의 세례는 그 자체가 죄 사함의 권위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한 세례를 예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한 세례로 요한의 불완전한 죄 사함의 세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정결 의식으로 고착될 수 있는 죄 사함의 세례의 한계를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전환시켰다. 예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구원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분명히 드러냈으며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는 관문을 통과하는 신앙의 고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케리그마적인 요소가 강화된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삼위일체적 세례가 공식화될 때까지 사도들에 의해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사도들은 요한의 죄 사함의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엄격히 구분했으며, 죄 사함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베풀었다. 마태복음 28:19의 삼위일체적 세례는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복음서에도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오고 있는데 서신서와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까지만 해도 삼위일체적 세례가 원시 기독교 교회에서 실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의 강림 이후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강조하게 되었고, 성령 체험은 그리스도의 명령인 삼위일체적 세례를 실현하는 촉매의 역할을 했다. 초대교회가 세례의 신조로 받아들인 마태의 삼위일체적 세례는 원시 기독교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세례와의 모순 관계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선교적, 예언적 선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Notes
2) 쿰란 공동체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을 공유하고 필사하여 보관하며 철저한 금욕적 생활을 했던 신앙 공동체를 말한다. 쿰란 사본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으며, 구약성경의 사본들, 외경과 위경의 사본, 쿰란 공동체를 위한 사본으로 나눌 수 있다. 쿰란 사본은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경)이나 알렙포 사본(925년경)보다 1000년이나 앞선 것이며 에스겔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약성서 본문을 수록하고 있다. 송창현, “쿰란 사본과 성서 연구,”『성경원문연구』제16호 (2005): 7.
3) 쿰란 공동체의 정결 의식은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공동체로 들어오기 위한 의식이다. 쿰란 공동체는 1년 동안 금욕 생활을 견뎌낸 사람에게 준회원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물로 씻는 정결 의식을 했다. 그 후 2년의 시험 기간을 통과한 후에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정결 의식은 공동 식사를 위한 것이었다. 공동 식사는 정회원들만 참석할 수 있었고 반드시 찬물로 몸을 씻고 흰 옷으로 갈아입은 후 공동 식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요세푸스 III: 유대전쟁사』김기찬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3), 199.
4) 원시 기독교 공동체는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의 1세기 초대교회를 의미한다.
7) Ibid., 47.
8) Ibid.
15) 메뚜기(locust)라는 말과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먹었던 쥐엄 열매(pod)의 어원이 같다는 것과 매일 광야에서 메뚜기를 구할 수 없었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근거로 요한은 메뚜기가 아닌 쥐엄 열매를 먹었다는 주장도 있다.
16) 에세네파는 주로 쿰란(Qumran) 동굴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금욕 생활을 했기 때문에 쿰란 공동체라고도 부르며, 1946-56년까지 900여 편의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이 와디 쿰란 지역과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19) Ibid.
20) Ibid., 199.
23) Ibid.
25) 베다니는 성경에서 두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있었던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막 11:1; 눅 19:29; 요 11:1)과 여리고에서 남동쪽으로 11km 떨어진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이다(요 1:28).
27) Ibid., 942.
31)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약 12명(행 19:7)이었으며, 요한의 세례는 받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는 못한 상태였다(행 19:3-5).
35) Ibid.
38) Ibid., 87.
43) Ibid., 84.
48) Ibid., 68.
49) Ibid.
50) Ibid., 69.
5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63) Oneness Movement와 같이 삼위일체적 세례를 거부하는 부류는 이단으로 정죄되고 있다.
65) Ibid., 25-26.
68) Ibid., 11.
70) Ibid.,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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